강은 스스로 그러해야 합니다

지구에 사람이 살기 전에 바다가 있었고, 그 바다를 채우는 강이 있었습니다. 강은 인간보다 먼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강물의 흐름 위에 물길을 내고, 곡식을 기르고,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강이 내어준 그 곡식과 생명으로 지금의 부와 인류의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점점 잊고 있습니다. 강이 우리에게 생명을 내어주었다는 사실을 잊고, 강을 파헤치고, 잘라내고, 막고, 비틀고 있습니다.
세계의 많은 강들이 그렇게 헤집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강들도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17년 전, 영산강을 시작으로 생명의 강은 파헤쳐졌습니다. 여주의 남한강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수심 6미터.
그 수치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그것이 무엇이었든, 강에 살던 생명들의 보금자리는 부서지고 파괴되었습니다. 금모래, 은모래라 불리던 드넓은 모래사장은 사라졌고,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뽑혀 자리를 떠났다가 고사했습니다. 느리고 빠르게 흐르던 여울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펄이 쌓인 정체된 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강에는 마름이 살고 있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산업을 위해 물이 필요했고, 농사를 위해 물이 필요했으며, 보를 막아 물이 많아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묻겠습니다. 보를 막기 전에는 농사를 짓지 않았습니까? 보가 없을 때는 공장이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보가 없을 때는 물고기가 없었습니까? 보가 없을 때는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까?
또 묻겠습니다. 보를 열면 농민이 모두 무너집니까? 공장이 멈춥니까?

여주 남한강의 수위는 여주에 비가 오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충주댐의 방류량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남한강의 물은 여주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흘러 들어오는 것입니다. 너무나 기초적인 사실입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보를 잠시 개방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난리가 났습니다. 왜였습니까. 겨울에 보를 열면 농업이 무너질 것이라 두려웠기 때문입니까.
우리는 과학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과학적 자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자료가 무엇을 기준으로 해석되는지에 따라 결론은 달라집니다. 우리는 묻고자 합니다. 강을 살리는 기준은 무엇인가.
여주환경운동연합은 단 하나의 가치를 말합니다. "강은 흘러야 한다."
이 명확하고 온전한 생명의 원리를 외면한 채 강에 대해 어떤 논쟁이 가능하겠습니까. 강은 계산되지 않습니다. 강은 다만 그 시대와 함께 흐르며 우리의 삶을 기억해 왔습니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닙니다. 물길이 막히면 인간의 생명도 함께 막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재자연화. 어떻게 재자연화할 것인가. 보를 가끔 열 것인가. 보를 계속 열 것인가. 아니면 보를 해체할 것인가.
재자연화라는 말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이란 스스로 그러한 것입니다. 재자연화란 스스로 그러하게 되돌려 놓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태가 자연이 아니라면, 다시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재자연화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여울을 굴삭기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물고기의 길을 콘크리트로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물길을 열어주면 자연은 스스로 자연이 됩니다. 막힌 것을 열어주면 물은 스스로 흐릅니다.
17년 동안 막혀 있던 물길입니다. 이제는 열어야 합니다. 지금 여주 남한강의 세 개의 보는 강을 막고 있습니다. 강바닥은 펄로 덮이고, 실지렁이가 살아가며 물은 시궁의 냄새를 뿜고 있습니다. 이 물이 수도권 사람들이 마시는 물입니다. 여주환경운동연합은 단순히 물을 흐르게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강을 강답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말해왔습니다. 독일이 그랬고, 프랑스가 그랬으며, 영국이 그랬습니다. 수많은 연구와 데이터가 보의 문제를 지적해 왔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합니다. 강은 계산되지 않습니다. 강은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지금 우리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기억이 생명의 회복으로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재앙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남한강의 문제는 여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강 수계 전체의 문제이며, 수도권 전체의 문제입니다. 남한강이 살아야 팔당이 살고, 서울이 삽니다.

생태의 회복은 느립니다. 파괴는 순간이지만 회복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첫걸음은 지금이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보를 유지할 것인가. 부분적으로 열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해체할 것인가.
여주환경운동연합은 분명히 말합니다. 강은 완전히 흐르게 해야 합니다. 흐른다는 것은 단순히 물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이어지고 관계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그 강을 보고 싶습니다.
힘차게 휘도는 물길, 모래톱 위를 달리는 아이들, 여울 속에서 살아가는 물고기, 그리고 그 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 강의 흐름 속에 생명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이 질문은 여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강을 향한 질문이며, 외침입니다.
한강에서 김종현 씀
강은 스스로 그러해야 합니다
지구에 사람이 살기 전에 바다가 있었고, 그 바다를 채우는 강이 있었습니다. 강은 인간보다 먼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강물의 흐름 위에 물길을 내고, 곡식을 기르고,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강이 내어준 그 곡식과 생명으로 지금의 부와 인류의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점점 잊고 있습니다. 강이 우리에게 생명을 내어주었다는 사실을 잊고, 강을 파헤치고, 잘라내고, 막고, 비틀고 있습니다.
세계의 많은 강들이 그렇게 헤집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강들도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17년 전, 영산강을 시작으로 생명의 강은 파헤쳐졌습니다. 여주의 남한강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수심 6미터.
그 수치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그것이 무엇이었든, 강에 살던 생명들의 보금자리는 부서지고 파괴되었습니다. 금모래, 은모래라 불리던 드넓은 모래사장은 사라졌고,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뽑혀 자리를 떠났다가 고사했습니다. 느리고 빠르게 흐르던 여울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펄이 쌓인 정체된 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강에는 마름이 살고 있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산업을 위해 물이 필요했고, 농사를 위해 물이 필요했으며, 보를 막아 물이 많아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묻겠습니다. 보를 막기 전에는 농사를 짓지 않았습니까? 보가 없을 때는 공장이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보가 없을 때는 물고기가 없었습니까? 보가 없을 때는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까?
또 묻겠습니다. 보를 열면 농민이 모두 무너집니까? 공장이 멈춥니까?
여주 남한강의 수위는 여주에 비가 오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충주댐의 방류량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남한강의 물은 여주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흘러 들어오는 것입니다. 너무나 기초적인 사실입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보를 잠시 개방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난리가 났습니다. 왜였습니까. 겨울에 보를 열면 농업이 무너질 것이라 두려웠기 때문입니까.
우리는 과학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과학적 자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자료가 무엇을 기준으로 해석되는지에 따라 결론은 달라집니다. 우리는 묻고자 합니다. 강을 살리는 기준은 무엇인가.
여주환경운동연합은 단 하나의 가치를 말합니다. "강은 흘러야 한다."
이 명확하고 온전한 생명의 원리를 외면한 채 강에 대해 어떤 논쟁이 가능하겠습니까. 강은 계산되지 않습니다. 강은 다만 그 시대와 함께 흐르며 우리의 삶을 기억해 왔습니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닙니다. 물길이 막히면 인간의 생명도 함께 막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재자연화. 어떻게 재자연화할 것인가. 보를 가끔 열 것인가. 보를 계속 열 것인가. 아니면 보를 해체할 것인가.
재자연화라는 말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이란 스스로 그러한 것입니다. 재자연화란 스스로 그러하게 되돌려 놓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태가 자연이 아니라면, 다시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재자연화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여울을 굴삭기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물고기의 길을 콘크리트로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물길을 열어주면 자연은 스스로 자연이 됩니다. 막힌 것을 열어주면 물은 스스로 흐릅니다.
17년 동안 막혀 있던 물길입니다. 이제는 열어야 합니다. 지금 여주 남한강의 세 개의 보는 강을 막고 있습니다. 강바닥은 펄로 덮이고, 실지렁이가 살아가며 물은 시궁의 냄새를 뿜고 있습니다. 이 물이 수도권 사람들이 마시는 물입니다. 여주환경운동연합은 단순히 물을 흐르게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강을 강답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말해왔습니다. 독일이 그랬고, 프랑스가 그랬으며, 영국이 그랬습니다. 수많은 연구와 데이터가 보의 문제를 지적해 왔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합니다. 강은 계산되지 않습니다. 강은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지금 우리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기억이 생명의 회복으로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재앙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남한강의 문제는 여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강 수계 전체의 문제이며, 수도권 전체의 문제입니다. 남한강이 살아야 팔당이 살고, 서울이 삽니다.
생태의 회복은 느립니다. 파괴는 순간이지만 회복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첫걸음은 지금이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보를 유지할 것인가. 부분적으로 열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해체할 것인가.
여주환경운동연합은 분명히 말합니다. 강은 완전히 흐르게 해야 합니다. 흐른다는 것은 단순히 물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이어지고 관계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그 강을 보고 싶습니다.
힘차게 휘도는 물길, 모래톱 위를 달리는 아이들, 여울 속에서 살아가는 물고기, 그리고 그 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 강의 흐름 속에 생명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이 질문은 여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강을 향한 질문이며, 외침입니다.
한강에서 김종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