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영산강을 그리며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의 가사 속에 나오는 영산강.
어릴 적 나에게 영산강은 단순한 강이 아니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놀이터였고,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던 어머니의 품과 같았다. 물이 빠진 하구의 갯벌에 나가면 발이 푹푹 빠지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멱을 감고, 때로는 뻘에 미끄러져 온몸이 갯뻘진흙투성이가 되어도 서로를 처다 보며 마냥 즐겁게 웃었다. 때론 등으로 뻘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나가던 순간들은 어린 마음에도 작은 모험이었다.

그곳에서는 늘 무언가를 잡을 수 있었다. 운저리를 낚아 올릴 때의 짜릿함, 짱둥어가 튀어 오르는 모습을 쫓던 장난기, 아나고를 기다리며 숨죽이던 시간들. 손으로 고막을 캐고, 게를 잡고, 맛조개를 쏙쏙 뽑아 올리던 일은 놀이이자 삶의 일부였다. 그 모든 것이 자연과 함께 호흡하던 시간이었고, 아무것도 인위적이지 않았던 순수한 세계였다.
하지만 1978년 시작되어 1981년에 완공된 하구둑은 그 모든 풍경을 서서히 바꾸어 놓았다. 강은 더 이상 예전처럼 흐르지 않았고, 바다와 강이 자연스럽게 섞이던 기수역의 경계는 막혀버렸다. 갯벌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는 간척지로 변해 농경지가 들어섰다. 논과 밭이 생기며 사람들의 삶은 편리해졌을지 모르지만, 어린 시절의 영산강은 점점 기억 속으로만 남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변화는 또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농경지였던 곳은 다시 도시화의 물결에 휩쓸렸고, 건물과 도로가 들어서며 강은 점점 더 인간 중심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흐르지 못하는 물은 탁해졌고, 생명으로 가득하던 하구는 점점 숨을 잃어갔다. 예전에는 손만 뻗으면 잡히던 생물들이 이제는 찾아보기조차 어려워졌다.
지금의 영산강 하구는 심각한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물빛은 예전의 맑음을 잃었고, 바람 속에서도 어딘가 무거운 냄새가 느껴진다. 어린 시절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곳이, 이제는 조용히 신음하는 듯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 변화를 지켜보는 마음은 안타깝고 또 미안하다. 우리가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조심스럽게 대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안타깝고 안타깝게 자꾸만 밀려온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 강을 사랑한다. 안개 속에서 울리던 기적 소리와 갈매기 울음, 그리고 갯벌 위를 뛰어다니던 어린 날의 나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영산강은 변했지만, 그 속에 담긴 나의 시간과 추억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언젠가는 다시 숨 쉬는 강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이 편지는 그리움이자 바람이다. 어린 시절의 영산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잊혀졌을 뿐이라 믿고 싶다. 다시금 맑은 물이 흐르고, 생명들이 돌아오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강이 되기를. 그날이 오면, 나는 다시 그곳에 서서 조용히 말할 것이다.
‘목포는 항구다’처럼 강은 흘러야 강이다 “영산강아, 강으로 돌아와 다오.”
영산강에서 양효식 씀
어린 시절의 영산강을 그리며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의 가사 속에 나오는 영산강.
어릴 적 나에게 영산강은 단순한 강이 아니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놀이터였고,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던 어머니의 품과 같았다. 물이 빠진 하구의 갯벌에 나가면 발이 푹푹 빠지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멱을 감고, 때로는 뻘에 미끄러져 온몸이 갯뻘진흙투성이가 되어도 서로를 처다 보며 마냥 즐겁게 웃었다. 때론 등으로 뻘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나가던 순간들은 어린 마음에도 작은 모험이었다.
그곳에서는 늘 무언가를 잡을 수 있었다. 운저리를 낚아 올릴 때의 짜릿함, 짱둥어가 튀어 오르는 모습을 쫓던 장난기, 아나고를 기다리며 숨죽이던 시간들. 손으로 고막을 캐고, 게를 잡고, 맛조개를 쏙쏙 뽑아 올리던 일은 놀이이자 삶의 일부였다. 그 모든 것이 자연과 함께 호흡하던 시간이었고, 아무것도 인위적이지 않았던 순수한 세계였다.
하지만 1978년 시작되어 1981년에 완공된 하구둑은 그 모든 풍경을 서서히 바꾸어 놓았다. 강은 더 이상 예전처럼 흐르지 않았고, 바다와 강이 자연스럽게 섞이던 기수역의 경계는 막혀버렸다. 갯벌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는 간척지로 변해 농경지가 들어섰다. 논과 밭이 생기며 사람들의 삶은 편리해졌을지 모르지만, 어린 시절의 영산강은 점점 기억 속으로만 남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변화는 또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농경지였던 곳은 다시 도시화의 물결에 휩쓸렸고, 건물과 도로가 들어서며 강은 점점 더 인간 중심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흐르지 못하는 물은 탁해졌고, 생명으로 가득하던 하구는 점점 숨을 잃어갔다. 예전에는 손만 뻗으면 잡히던 생물들이 이제는 찾아보기조차 어려워졌다.
지금의 영산강 하구는 심각한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물빛은 예전의 맑음을 잃었고, 바람 속에서도 어딘가 무거운 냄새가 느껴진다. 어린 시절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곳이, 이제는 조용히 신음하는 듯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 변화를 지켜보는 마음은 안타깝고 또 미안하다. 우리가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조심스럽게 대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안타깝고 안타깝게 자꾸만 밀려온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 강을 사랑한다. 안개 속에서 울리던 기적 소리와 갈매기 울음, 그리고 갯벌 위를 뛰어다니던 어린 날의 나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영산강은 변했지만, 그 속에 담긴 나의 시간과 추억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언젠가는 다시 숨 쉬는 강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이 편지는 그리움이자 바람이다. 어린 시절의 영산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잊혀졌을 뿐이라 믿고 싶다. 다시금 맑은 물이 흐르고, 생명들이 돌아오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강이 되기를. 그날이 오면, 나는 다시 그곳에 서서 조용히 말할 것이다.
‘목포는 항구다’처럼 강은 흘러야 강이다 “영산강아, 강으로 돌아와 다오.”
영산강에서 양효식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