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고래에 관심이 많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추측해보자면 몇 가지가 있다. 어릴 적 보았던 ‘프리윌리’라는 영화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고, 고향이 부산인 덕분에 바다에 대한 동경도 있기 때문일 것이며, 많은 해양 생물 가운데 고래는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있던 고래가 한국에서 자주 보인다는 소식에 나는 설레기도 하였다. 그런 나에게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6월 8일 고래 보호 캠페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제일 처음 드는 생각은 ‘한국은 포경이 금지되어 있는데 무슨 일로 보호를 해야 한다는 것인가?’였다. 하지만 그 곳에서 접한 소식은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 농림수산식품부가 고래의 지속적인 이용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데 대해서
지난 6월 8일 바다위원회에서는 고래보호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사진: 한효정)
농림수산식품부가 2009년 3월의 로마회의와 4월의 동경회의에서 포경허용을 바라는 국가들과 더불어, 고래를 자원으로 간주하고 이의 ‘지속적인 이용’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 것이다. 또 ‘지속적인 이용’은 ‘지속가능한 생계, 문화적 전통의 보전, 식량안보, 그리고 빈곤의 감소에 기여하기 위해’ 서라고 한다.
먼저 지속가능한 생계라는 이야기가 있다. 생계를 위하여 고래를 잡아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어민들이 언제부터 고래로 생계를 유지했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어떤 기사에서는 고래를 ‘바다의 로또’라고 표현을 할 만큼 고래는 기본적 생계를 유지하는 대상이 아닌 일확천금을 노리는 복권과 같이 한탕 할 수 있는 대상일 뿐이다.
두 번째로는 문화적 전통의 보전이 있다. 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인 쿠바의 고히라는 곳에서는 돛새치의 뼈에서 가죽까지 모두 이용을 한다. 돛새치 한 마리를 잡음으로써 그들의 생활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것이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문화 중에서 고래를 이용하는 생활에서 파생된 문화가 있었던가.
세 번째인 식량안보와 네 번째, 빈곤의 감소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더욱이 우리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이 떨어지는 것은 식량 자원의 부족함에 있지 않고 세계 무역 자유화에 따른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포경을 하여 그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식량 안보는 해결되지 않으며 고래 고기는 한국인이 즐겨 먹는 고기도 아니다. 또 빈곤의 감소도 자원의 부족함에 있지 않고 분배의 문제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포경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가 포경을 해야 하는 적합한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포경을 재개 하겠다는 것은 정치적인 퍼포먼스로 밖에 여겨지지 않을뿐더러 ‘환경’이 모든 세계인의 관심사로 떠오르는 시점에서 우리는 한 발 퇴보를 하는 일이 될 것이다.

▲ 명동에 모인 많은 시민들은 우리나라가 고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기를 희망하며
<고래 보호 희망 메시지>를 적었다. (사진 : 한효정)
명동에는 많은 사람들이 선뜻 나서서 <고래 보호 희망 메세지> 코너에 글을 적어주었다. 그 날은 나처럼 우리나라는 고래잡이는 없어 고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그 위험성을 알려주었으며, 다시 한 번 생태계의 다양성을 생각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바다의 주인은 고래입니다.’라는 글을 간절한 바램을 담아 적고 생각을 해보니, 어릴 적 ‘프리윌리’의 주인공처럼 되고 싶었던 꿈이 조금은 이루어진 듯 했다. 꼭 수족관에서 꺼내어 구해줘야만 고래를 살린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난 고래를 위하여 작은 실천을 하였고 목소리를 냈으니 어찌 보면 그 꿈을 작게 시작하였고, 꿈을 이루어 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도심의 바다 속에서, 난 저 멀리 힘차게 살아가는 고래의 친구가 되었고, 비록 작고 힘이 없지만 그들을 위하여 작은 실천들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나는 고래에 관심이 많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추측해보자면 몇 가지가 있다. 어릴 적 보았던 ‘프리윌리’라는 영화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고, 고향이 부산인 덕분에 바다에 대한 동경도 있기 때문일 것이며, 많은 해양 생물 가운데 고래는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있던 고래가 한국에서 자주 보인다는 소식에 나는 설레기도 하였다. 그런 나에게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6월 8일 고래 보호 캠페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제일 처음 드는 생각은 ‘한국은 포경이 금지되어 있는데 무슨 일로 보호를 해야 한다는 것인가?’였다. 하지만 그 곳에서 접한 소식은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 농림수산식품부가 고래의 지속적인 이용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데 대해서
지난 6월 8일 바다위원회에서는 고래보호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사진: 한효정)
농림수산식품부가 2009년 3월의 로마회의와 4월의 동경회의에서 포경허용을 바라는 국가들과 더불어, 고래를 자원으로 간주하고 이의 ‘지속적인 이용’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 것이다. 또 ‘지속적인 이용’은 ‘지속가능한 생계, 문화적 전통의 보전, 식량안보, 그리고 빈곤의 감소에 기여하기 위해’ 서라고 한다.
먼저 지속가능한 생계라는 이야기가 있다. 생계를 위하여 고래를 잡아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어민들이 언제부터 고래로 생계를 유지했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어떤 기사에서는 고래를 ‘바다의 로또’라고 표현을 할 만큼 고래는 기본적 생계를 유지하는 대상이 아닌 일확천금을 노리는 복권과 같이 한탕 할 수 있는 대상일 뿐이다.
두 번째로는 문화적 전통의 보전이 있다. 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인 쿠바의 고히라는 곳에서는 돛새치의 뼈에서 가죽까지 모두 이용을 한다. 돛새치 한 마리를 잡음으로써 그들의 생활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것이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문화 중에서 고래를 이용하는 생활에서 파생된 문화가 있었던가.
세 번째인 식량안보와 네 번째, 빈곤의 감소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더욱이 우리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이 떨어지는 것은 식량 자원의 부족함에 있지 않고 세계 무역 자유화에 따른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포경을 하여 그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식량 안보는 해결되지 않으며 고래 고기는 한국인이 즐겨 먹는 고기도 아니다. 또 빈곤의 감소도 자원의 부족함에 있지 않고 분배의 문제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포경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가 포경을 해야 하는 적합한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포경을 재개 하겠다는 것은 정치적인 퍼포먼스로 밖에 여겨지지 않을뿐더러 ‘환경’이 모든 세계인의 관심사로 떠오르는 시점에서 우리는 한 발 퇴보를 하는 일이 될 것이다.
▲ 명동에 모인 많은 시민들은 우리나라가 고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기를 희망하며
<고래 보호 희망 메시지>를 적었다. (사진 : 한효정)
명동에는 많은 사람들이 선뜻 나서서 <고래 보호 희망 메세지> 코너에 글을 적어주었다. 그 날은 나처럼 우리나라는 고래잡이는 없어 고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그 위험성을 알려주었으며, 다시 한 번 생태계의 다양성을 생각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바다의 주인은 고래입니다.’라는 글을 간절한 바램을 담아 적고 생각을 해보니, 어릴 적 ‘프리윌리’의 주인공처럼 되고 싶었던 꿈이 조금은 이루어진 듯 했다. 꼭 수족관에서 꺼내어 구해줘야만 고래를 살린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난 고래를 위하여 작은 실천을 하였고 목소리를 냈으니 어찌 보면 그 꿈을 작게 시작하였고, 꿈을 이루어 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도심의 바다 속에서, 난 저 멀리 힘차게 살아가는 고래의 친구가 되었고, 비록 작고 힘이 없지만 그들을 위하여 작은 실천들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