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과 방콕을 거쳐 비행기는 1월 13일에 스리랑카 콜롬보에 도착했다. 싸구려 게스트하우스에서 밤새 모기에 물려 긁적이며 잠을 설쳤지만 아침 공기는 상쾌했다. 현장 안내를 도와줄 스리랑카 환경정의센터 헤만타 위타나게 사무국장과 함께 그의 사무실에 가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미니버스를 타고 피해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콜롬보를 벗어난 지 채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해변도로 주변은 부서진 건물들과 쓰레기 더미들로 어수선했다. 야자나무 숲 사이로 간간이 허공에 매달린 철로와 부서진 방파제를 볼 수 있었다. 쓰레기 더미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한 무표정한 사람들, 스리랑카 남서부에 위치한 골(Galle)로 가는 해안 도로변의 풍경은 그저 우울하기만 했다.  | ▲항구도시 골의 파괴된 선착장 |
TV에서 봤던, 달리던 기차가 파도에 휩쓸려 1,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그곳에 차를 멈췄다. 세계각지에서 몰려든 취재진과 유족인 듯한 사람들, 넘어진 기차를 바로 세우고 겨우 사체만 수습한 현장에는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사고 현장을 걷다가 주인 없이 나뒹구는 신발들을 보고, 파도에 휩쓸려 죽어가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순간적인 공포에 ‘살려달라!’는 소리 한번 못 내고 죽어갔을 것이다. 그것은 나와 내 가족이 격을 수도 있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유품을 찾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은 눈물도 말랐는지 그저 무표정하기만 하였다.  | ▲파도가 삼킨 기차 |
골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파도가 삼킨 흔적은 더 잔인해져갔다. 썩는 냄새, 어슬렁대는 들개,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까마귀 떼, 주인 잃은 신발들.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그 모습에 비위가 좋은 나도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적극적이지 못한 채 우리 일행은 목적지인 골에 도착했다. 스리랑카 서남부 최대의 항구도시 골은 휴양·레저 도시로 변모하고 있었으나 이번 쓰나미 피해로 초토화되었다. 헤만타의 안내로 장애인 수용 시설인 삼보디 홈을 찾았다. 해일 이전에는 100여명이 수용되어 있었으나 이미 절반은 파도에 쓸려 죽고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 대부분도 병원에 입원해서 10여명의 장애인만 텅 빈 야전 침대가 놓인 건물 한구석에서 풍선놀이를 하고 있었다. 바닷가로부터는 꽤 떨어진 시내에 위치해 있었으나 이곳까지 바닷물이 밀려와 어린이, 노약자, 여성 그리고 장애인들이 죽었다고 한다. 야윈 모습의 수용시설 종사자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시설을 둘러보고 약간의 위로금을 전달하였다. 멀리 이국에서 찾아온 나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배웅하는 모습이 아직도 가슴에 맺혀있다. 곧 다시 찾을 것을 다짐하였다. 학교 운동장까지 떠밀려온 동강난 어선,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부서진 방파제,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무언가 찾으려는 굶주린 사람들의 서성거림, 유쾌하지 못한 거리의 풍경을 보며 무엇 하나 그들을 위 해 줄 수 없는 안타까움에 미안한 감정마저 느껴졌다. 죽은 사람들의 명복을 빌 여유도 없이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시 이질, 콜레라 등 전염병과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여성과 어린이들은 마약중독자와 정신이상자들에 의해 성폭력과 학대로부터 보호받기 힘든 처지였다. 종교 사원과 학교, 이재민 캠프에 수용돼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고 지금의 목숨만을 부지하고 구호의 손길만을 기다리며 겨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돕는 데에는 종교도 이념도 피부의 색깔도 상관없다. 이제 막 복구가 시작된 파도가 삼켰다가 토해낸 거리에서 힘없이 죽어가는 나약한 인간 세상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인간이 자연의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스리랑카의 경우 가난과 무지 그리고 환경파괴가 피해를 가중시킨 원인임을 알 수 있다. 2004년 12월 26일 오전 7시(현지시각),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근처에서 발행한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스리랑카에서 처음 감지된 것은 스리랑카 동부 트리코말리에서의 오전 9시 전후였으며, 서부 네곰보 지역은 오전 10시 30분경에야 해일을 닥쳐왔지만, 아무도 대피하라는 경보를 듣지 못했다. 스리랑카에는 해안보전법이 있어 해변으로부터 일정 거리에는 건축을 할 수 없으나 바닷가에 좀 더 가까이 살고 싶은 욕망에 이러한 법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었으며, 리조트와 휴양시설 건설 등을 위해 해변가 저지대를 막개발 한 것이 피해를 가중시킨 가장 큰 이유였다. 자연을 비웃는 듯, 철근과 콘크리트로 무장한 바닷가 저지대의 인간 요새인 호텔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졌고, 해안 지역의 막개발이 가져온 연안침식 또한 피해를 가중시킨 요인이었다. 스리랑카 전체 인구 2천만명의 1/4인 5백만 명이 전체 면적의 4%에 불과한 해변에 살고 있는, 해변가의 높은 인구 밀도도 피해를 가중시킨 주요 원인이었다. 자연의 영역을 과도하게 침입한 인간에게 자연은 관용을 베풀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산호초와 맹그로브 숲, 야자나무 숲이 잘 발달된 곳은 피해가 적었다.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한다  | ▲도움을 기다리는 흰 깃발 |
호주와 일본, 독일, 인도, 미국, 중국 등 세계 각지의 많은 사람들이 스리랑카로 달려와 그들을 돕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구호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집단으로 매장되는 시신, 치료받지 못한 채 썩어가고 죽어가는 형제들이 우리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부모 잃고 떠도는 아이들, 전염병과 성폭행에 노출되기 쉬운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도움의 손길을 마련하여야 한다. 긴급한 물질적 도움과 함께 또 다른 지진해일을 대비 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을 지원 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지진해일 교육과 해안보전구역인 그린벨트 설정 및 운영 방법, 그리고 발생한 쓰레기의 환경적인 처리 등 친환경 복구 계획을 진행하기 위한 전문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것은 먼 나라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도 언젠가는 격을 수 있는 일 아닌가? 도움과 나눔의 따스한 손길을 스리랑카 형제들에게 보내자!
<동남아시아 지진 해일 피해복구를 위한 모금에 참여해주세요> 우리은행 109-602817-13-002 예금주: 환경운동연합 기업은행 402-011341-01-016 예금주: 환경운동연합 문의 : 환경연합 마용운 (T. 02-735-7000, ma@kfem.or.kr) |
글, 사진/ 최형지 환경연합 회원, 강원도의회 의원 |
밤새 모기에 물려 긁적이며 잠을 설쳤지만 아침 공기는 상쾌했다. 현장 안내를 도와줄 스리랑카 환경정의센터 헤만타 위타나게 사무국장과
함께 그의 사무실에 가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미니버스를 타고 피해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콜롬보를 벗어난 지 채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해변도로 주변은 부서진 건물들과 쓰레기 더미들로
어수선했다. 야자나무 숲 사이로 간간이 허공에 매달린 철로와 부서진 방파제를 볼 수 있었다. 쓰레기 더미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한
무표정한 사람들, 스리랑카 남서부에 위치한 골(Galle)로 가는 해안 도로변의 풍경은 그저 우울하기만 했다.
TV에서 봤던, 달리던 기차가 파도에 휩쓸려 1,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그곳에 차를 멈췄다.
세계각지에서 몰려든 취재진과 유족인 듯한 사람들, 넘어진 기차를 바로 세우고 겨우 사체만 수습한 현장에는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사고 현장을 걷다가 주인 없이 나뒹구는 신발들을 보고, 파도에 휩쓸려 죽어가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순간적인 공포에 ‘살려달라!’는 소리 한번 못 내고 죽어갔을 것이다. 그것은 나와 내 가족이 격을 수도 있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유품을 찾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은 눈물도 말랐는지 그저 무표정하기만 하였다.
골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파도가 삼킨 흔적은 더 잔인해져갔다. 썩는 냄새, 어슬렁대는 들개,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까마귀 떼, 주인 잃은 신발들.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그 모습에 비위가 좋은 나도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적극적이지
못한 채 우리 일행은 목적지인 골에 도착했다. 스리랑카 서남부 최대의 항구도시 골은 휴양·레저 도시로 변모하고 있었으나 이번
쓰나미 피해로 초토화되었다.
헤만타의 안내로 장애인 수용 시설인 삼보디 홈을 찾았다. 해일 이전에는 100여명이 수용되어 있었으나
이미 절반은 파도에 쓸려 죽고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 대부분도 병원에 입원해서 10여명의 장애인만 텅 빈 야전 침대가 놓인 건물
한구석에서 풍선놀이를 하고 있었다. 바닷가로부터는 꽤 떨어진 시내에 위치해 있었으나 이곳까지 바닷물이 밀려와 어린이, 노약자,
여성 그리고 장애인들이 죽었다고 한다. 야윈 모습의 수용시설 종사자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시설을 둘러보고 약간의 위로금을 전달하였다.
멀리 이국에서 찾아온 나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배웅하는 모습이 아직도 가슴에 맺혀있다. 곧 다시 찾을 것을 다짐하였다.
학교 운동장까지 떠밀려온 동강난 어선,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부서진 방파제,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무언가 찾으려는 굶주린 사람들의 서성거림, 유쾌하지 못한 거리의 풍경을 보며 무엇 하나 그들을 위 해 줄 수 없는 안타까움에
미안한 감정마저 느껴졌다.
죽은 사람들의 명복을 빌 여유도 없이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시 이질, 콜레라 등 전염병과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여성과 어린이들은 마약중독자와 정신이상자들에 의해 성폭력과 학대로부터 보호받기 힘든 처지였다.
종교 사원과 학교, 이재민 캠프에 수용돼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고 지금의 목숨만을 부지하고 구호의
손길만을 기다리며 겨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돕는 데에는 종교도 이념도 피부의 색깔도 상관없다. 이제 막 복구가 시작된 파도가
삼켰다가 토해낸 거리에서 힘없이 죽어가는 나약한 인간 세상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인간이 자연의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스리랑카의 경우 가난과 무지
그리고 환경파괴가 피해를 가중시킨 원인임을 알 수 있다.
2004년 12월 26일 오전 7시(현지시각),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근처에서 발행한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스리랑카에서 처음 감지된 것은 스리랑카 동부 트리코말리에서의 오전 9시 전후였으며, 서부 네곰보 지역은 오전
10시 30분경에야 해일을 닥쳐왔지만, 아무도 대피하라는 경보를 듣지 못했다.
스리랑카에는 해안보전법이 있어 해변으로부터 일정 거리에는 건축을 할 수 없으나 바닷가에 좀 더
가까이 살고 싶은 욕망에 이러한 법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었으며, 리조트와 휴양시설 건설 등을 위해 해변가 저지대를 막개발 한
것이 피해를 가중시킨 가장 큰 이유였다. 자연을 비웃는 듯, 철근과 콘크리트로 무장한 바닷가 저지대의 인간 요새인 호텔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졌고, 해안 지역의 막개발이 가져온 연안침식 또한 피해를 가중시킨 요인이었다.
스리랑카 전체 인구 2천만명의 1/4인 5백만 명이 전체 면적의 4%에 불과한 해변에 살고 있는, 해변가의 높은 인구 밀도도
피해를 가중시킨 주요 원인이었다. 자연의 영역을 과도하게 침입한 인간에게 자연은 관용을 베풀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산호초와
맹그로브 숲, 야자나무 숲이 잘 발달된 곳은 피해가 적었다.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한다
호주와 일본, 독일, 인도, 미국, 중국 등 세계 각지의 많은 사람들이 스리랑카로 달려와 그들을
돕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구호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집단으로 매장되는 시신, 치료받지 못한 채 썩어가고
죽어가는 형제들이 우리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부모 잃고 떠도는 아이들, 전염병과 성폭행에 노출되기 쉬운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도움의 손길을 마련하여야 한다.
긴급한 물질적 도움과 함께 또 다른 지진해일을 대비 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을 지원 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지진해일 교육과 해안보전구역인 그린벨트 설정 및 운영 방법, 그리고 발생한 쓰레기의 환경적인 처리 등 친환경
복구 계획을 진행하기 위한 전문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것은 먼 나라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도 언젠가는 격을 수 있는 일 아닌가? 도움과 나눔의
따스한 손길을 스리랑카 형제들에게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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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 환경연합 마용운 (T. 02-735-7000,
ma@kfem.or.kr)
글, 사진/ 최형지 환경연합 회원, 강원도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