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7일, 프랑스에서 핵폐기물 수송열차의
운행을 저지하려던 한 젊은이가 열차에 치어 사망했습니다. 당시, 그는 세 명의 동료와 함께 철로에 몸을 묶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와 함께 시위에 참여했던 동료들에 의하면 그는 묶여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동료들이 발표한 성명서
전문을 게재합니다.
 |
▲ 핵폐기물 수송열차를 멈추려다
사망한 청년, 세바스티앙 브리아 |
세바스티앙은 2004년 11월 7일 핵폐기물을 싣고 독일의 고어레벤으로 가던 열차에 치어 숨졌습니다. 몇 주 전, 그는
몇몇 동료와 함께 핵폐기물의 위험성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시위를 결단했다. 그가 사망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시위가 비폭력적이며
신중하고도 자발적인 행동이었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상황에 의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시위는 적어도 무책임하거나 자포자기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우리의 행동은 너무나
오랫동안 존재해온 핵에너지의 실제적이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한 절실한 신념에서 기인한 것이다. 우리의 행동은 그 지역에 대한
정확한 사전 지식과 기차의 비상 제동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매우 신중하게 준비되었다.
우리는 기차가 멈추지 못할 경우에 대해서도 몇 번이나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시야가 제한된 긴 곡선 철로에 있었기 때문에,
철로에서 신속하게 벗어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철로 밑으로 두 개의 파이프를 설치하고 우리 넷은 철로
옆에 누워있었다. 비상시에 신속히 대피할 수 있기 위해 아무도 철로 사이에는 눕지 않았다. 우리는 파이프로부터 재빨리 팔을
빼낼 수 있도록 사슬로 묶여있지 않았다.
 |
| ▲ 핵폐기물 수송열차 |
불행하게도 1,500미터 전방에서 기차를 멈추기로 예정되어있던 우리 동료들은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나
수송열차의 선두에서 비행하던 헬리콥터가 연료 보급 때문에 현장에 없었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열차가 오고 있음을
나타내는 헬기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열차 옆에서 오토바이 경찰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정지신호를
보낼 수 없었다. 따라서 열차는 헬리콥터나 우리의 정지조로부터 아무런 경고를 받지 못했고,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은 채 우리를
향해 시속 100km의 속력으로 달려오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의 중첩이 우리를 위험으로 몰아갔다. 철로 옆에 누워있던 우리가
열차가 속도를 줄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수 초 이내로 대피하는 것을 연습해왔었다.
세바스티앙은 철로에서 몸을 피하다가 기차에 치였다. 조사 과정에서 증명되겠지만, 그의 팔이 파이프에 끼어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기에 우리는 그를 미처 도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철로에서 30미터쯤 떨어진 숲 가장자리에서 10시간 가량을 추위에 떨며 숨어있었다. 그 동안 우리도, 행동장소에서
15km 떨어진 우리측 정탐조도, 열차를 멈추기로 한 정지조도 경찰에 의해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새벽 5시에 철로에 파이프를
설치할 때에도 우리는 발각되지 않았다. 분명, 함께 행동에 참여했던 우리 모두의 책임은 밝혀져야 한다. 지금 우리는 일생에서
최악의 순간에 처해있다.
시위의 목적은 잘 알려져 있지만, 우리는 해마다 계속 파괴되어 가는 우리의 지구를 보호하는 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획일적인 상황에 대한 모든 문제 제기가 무시당하는 현실을 우려하고 있었다. 우리는 치기어린 모험심 때문에 기차를
멈추려 했던 것이 아니라, 이런 방법만을 통해 이 나라의 핵 정책이 주요 이슈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세바스티앙의 죽음은
그가 선택한 것도, 누가 원하지도 않았던 사고였다. 그는 유흥이나 음주운전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세상에
전하려고 행동하던 중에 숨진 것이다.
그의 죽음은 결코 우리에게 단순한 사건으로 남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외롭고 힘들 때, 이처럼 많은 격려와 위로를 받을
줄은 몰랐다. 우리의 친구들과 가족들, 단체들, 또 세바스티앙을 추모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준 수천의 이름
모를 독일과 프랑스 사람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그분들이 보여 준 연대의 힘에 우리는 압도당했으며 감동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죽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의 죽음에 애도하고 가족에게 힘이 되어주는 일이다. 비숑(세바스티앙의
애칭)은 단순한 한 명의 반핵운동가가가 아니라 언제나 삶의 기쁨과 활력이 넘치는 친구였다. 이 성명은 고백이나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자 하는 글이 아니며,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이번 사건의 진실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세바스티앙의 동료들
운행을 저지하려던 한 젊은이가 열차에 치어 사망했습니다. 당시, 그는 세 명의 동료와 함께 철로에 몸을 묶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와 함께 시위에 참여했던 동료들에 의하면 그는 묶여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동료들이 발표한 성명서
전문을 게재합니다.
사망한 청년, 세바스티앙 브리아
세바스티앙은 2004년 11월 7일 핵폐기물을 싣고 독일의 고어레벤으로 가던 열차에 치어 숨졌습니다. 몇 주 전, 그는
몇몇 동료와 함께 핵폐기물의 위험성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시위를 결단했다. 그가 사망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시위가 비폭력적이며
신중하고도 자발적인 행동이었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상황에 의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시위는 적어도 무책임하거나 자포자기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우리의 행동은 너무나
오랫동안 존재해온 핵에너지의 실제적이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한 절실한 신념에서 기인한 것이다. 우리의 행동은 그 지역에 대한
정확한 사전 지식과 기차의 비상 제동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매우 신중하게 준비되었다.
우리는 기차가 멈추지 못할 경우에 대해서도 몇 번이나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시야가 제한된 긴 곡선 철로에 있었기 때문에,
철로에서 신속하게 벗어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철로 밑으로 두 개의 파이프를 설치하고 우리 넷은 철로
옆에 누워있었다. 비상시에 신속히 대피할 수 있기 위해 아무도 철로 사이에는 눕지 않았다. 우리는 파이프로부터 재빨리 팔을
빼낼 수 있도록 사슬로 묶여있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1,500미터 전방에서 기차를 멈추기로 예정되어있던 우리 동료들은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나
수송열차의 선두에서 비행하던 헬리콥터가 연료 보급 때문에 현장에 없었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열차가 오고 있음을
나타내는 헬기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열차 옆에서 오토바이 경찰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정지신호를
보낼 수 없었다. 따라서 열차는 헬리콥터나 우리의 정지조로부터 아무런 경고를 받지 못했고,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은 채 우리를
향해 시속 100km의 속력으로 달려오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의 중첩이 우리를 위험으로 몰아갔다. 철로 옆에 누워있던 우리가
열차가 속도를 줄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수 초 이내로 대피하는 것을 연습해왔었다.
세바스티앙은 철로에서 몸을 피하다가 기차에 치였다. 조사 과정에서 증명되겠지만, 그의 팔이 파이프에 끼어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기에 우리는 그를 미처 도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철로에서 30미터쯤 떨어진 숲 가장자리에서 10시간 가량을 추위에 떨며 숨어있었다. 그 동안 우리도, 행동장소에서
15km 떨어진 우리측 정탐조도, 열차를 멈추기로 한 정지조도 경찰에 의해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새벽 5시에 철로에 파이프를
설치할 때에도 우리는 발각되지 않았다. 분명, 함께 행동에 참여했던 우리 모두의 책임은 밝혀져야 한다. 지금 우리는 일생에서
최악의 순간에 처해있다.
시위의 목적은 잘 알려져 있지만, 우리는 해마다 계속 파괴되어 가는 우리의 지구를 보호하는 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획일적인 상황에 대한 모든 문제 제기가 무시당하는 현실을 우려하고 있었다. 우리는 치기어린 모험심 때문에 기차를
멈추려 했던 것이 아니라, 이런 방법만을 통해 이 나라의 핵 정책이 주요 이슈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세바스티앙의 죽음은
그가 선택한 것도, 누가 원하지도 않았던 사고였다. 그는 유흥이나 음주운전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세상에
전하려고 행동하던 중에 숨진 것이다.
그의 죽음은 결코 우리에게 단순한 사건으로 남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외롭고 힘들 때, 이처럼 많은 격려와 위로를 받을
줄은 몰랐다. 우리의 친구들과 가족들, 단체들, 또 세바스티앙을 추모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준 수천의 이름
모를 독일과 프랑스 사람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그분들이 보여 준 연대의 힘에 우리는 압도당했으며 감동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죽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의 죽음에 애도하고 가족에게 힘이 되어주는 일이다. 비숑(세바스티앙의
애칭)은 단순한 한 명의 반핵운동가가가 아니라 언제나 삶의 기쁨과 활력이 넘치는 친구였다. 이 성명은 고백이나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자 하는 글이 아니며,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이번 사건의 진실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세바스티앙의 동료들
번역 : 국제연대 자원활동가 모임 ‘그린허브’ 회원 장지원
정리 : 국제연대국 마용운
사진 : indymedia Deutschland (http://de.indym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