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Interview]
#02 윤석열 퇴진 집회 '행사 준비팀' 조민기 활동가를 만나다.
"파면, 파면, 제발, 제발."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선고를 기다리며 조민기 활동가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원래 신을 믿지 않지만, 그날만큼은 저절로 신을 찾게 되었다. 그만큼 간절했다. 그리고 선고가 내려진 순간, 떠오른 떠오른 생각은 간결했다. ‘고생했다.’ ‘수고했다.’ 광장에서 보낸 4개월이 네 자로 정리되었다.

조민기 활동가는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에서 탈핵 활동을 하는 활동가다. 비상계엄 후 꾸려진 상황실 ‘행사준비팀’에서 발언자와 가수를 섭외하고 무대를 준비하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매주 이어진 집회에서 행진 차량에 올라 노래와 구호를 외쳤다.
"매일 기본 플레이리스트가 있어요. 그런데 어떤 노래를 언제 틀지는 사회자 마음이에요. 저는 질풍가도나 다만세처럼 다같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주로 틀었어요.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노래들이요. 현장에서 필요한 건 ‘할 수 있다’, ‘지치지 말자’는 메시지라고 생각했어요."

4개월 동안, 주말은 물론 평일 저녁에도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함께 구호를 외치고 서울 시내를 가로질러 행진했다. 60회가 넘는 집회를 하면서, 민기에게 특별히 기억에 남은 순간이 있다.
"딱 한 번, 낙원상가 밑을 지나 행진한 적이 있어요. 여느 때처럼 노래를 하고 구호를 외치는데, 터널처럼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런지 소리가 울리고 메아리가 치는 거예요. 마치 진공 상태에서 세상에 우리와 이 소리만 있는 것처럼……. 그 순간이 마음을 울렸어요.”

수천 명의 사람들 앞에 서도 떨리지는 않는다는 민기는, 행진 트럭에 올라 사람들과 함께 환호하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할 때 오히려 ‘힐링’이 되었다고 한다.
“매일 저녁 집회를 하고 밤늦게 집에 갔다가 다시 일찍 일어나 나오는 걸 4개월 동안 반복했어요. 힘들지 않았다면면 거짓말이죠. 지칠 때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가 준비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볼 때 그 이상의 힘을 얻었어요.”
그런 민기에게도 힘든 순간은 있었다. 예상보다 파면 선고가 늦어지던 때였다.

“언제 선고가 날까, 혹시라도 기각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마음 한 켠에 불안이 있던 그때, 오히려 ‘연대의 힘’을 실감했다.
“특히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놀고 싶고, 쉬고 싶었을 주말, 심지어 평일 저녁도 아무런 대가 없이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요. 시민들도 이렇게 나오는데 활동가인 나도 내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렇게 기다리던 파면 선고 후. 민기는 기쁘지만 그리움과 비슷한 마음을 느낄 때도 있다.

“우리가 기자회견이나 집회를 하면 이렇게 큰 반향이 오는 일이 많지 않잖아요. 대부분 지는 싸움을 하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행진을 하면서, 또 언제 한번 이렇게 모여 볼까, 언제 또 이렇게 반향이 있는 집회를 만들어 볼까, 언제 이런 감정을 또 느껴볼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주불’은 꺼졌지만 ‘잔불’은 여전히 남아 있는 지금, 그래서 민기는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날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말한다.
“지난 18일 파면 집회를 마무리 하면서 전광판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라는 문구를 띄웠어요. 그 두 문장에 4개월의 여정이 다 담긴 것 같아요. 그래서 저 역시 광장에서 만난 분들에게 이렇게 인사하고 싶어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우리 또 만나요.’”
[기획 Interview]
#02 윤석열 퇴진 집회 '행사 준비팀' 조민기 활동가를 만나다.
"파면, 파면, 제발, 제발."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선고를 기다리며 조민기 활동가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원래 신을 믿지 않지만, 그날만큼은 저절로 신을 찾게 되었다. 그만큼 간절했다. 그리고 선고가 내려진 순간, 떠오른 떠오른 생각은 간결했다. ‘고생했다.’ ‘수고했다.’ 광장에서 보낸 4개월이 네 자로 정리되었다.
조민기 활동가는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에서 탈핵 활동을 하는 활동가다. 비상계엄 후 꾸려진 상황실 ‘행사준비팀’에서 발언자와 가수를 섭외하고 무대를 준비하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매주 이어진 집회에서 행진 차량에 올라 노래와 구호를 외쳤다.
"매일 기본 플레이리스트가 있어요. 그런데 어떤 노래를 언제 틀지는 사회자 마음이에요. 저는 질풍가도나 다만세처럼 다같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주로 틀었어요.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노래들이요. 현장에서 필요한 건 ‘할 수 있다’, ‘지치지 말자’는 메시지라고 생각했어요."
4개월 동안, 주말은 물론 평일 저녁에도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함께 구호를 외치고 서울 시내를 가로질러 행진했다. 60회가 넘는 집회를 하면서, 민기에게 특별히 기억에 남은 순간이 있다.
"딱 한 번, 낙원상가 밑을 지나 행진한 적이 있어요. 여느 때처럼 노래를 하고 구호를 외치는데, 터널처럼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런지 소리가 울리고 메아리가 치는 거예요. 마치 진공 상태에서 세상에 우리와 이 소리만 있는 것처럼……. 그 순간이 마음을 울렸어요.”
수천 명의 사람들 앞에 서도 떨리지는 않는다는 민기는, 행진 트럭에 올라 사람들과 함께 환호하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할 때 오히려 ‘힐링’이 되었다고 한다.
“매일 저녁 집회를 하고 밤늦게 집에 갔다가 다시 일찍 일어나 나오는 걸 4개월 동안 반복했어요. 힘들지 않았다면면 거짓말이죠. 지칠 때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가 준비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볼 때 그 이상의 힘을 얻었어요.”
그런 민기에게도 힘든 순간은 있었다. 예상보다 파면 선고가 늦어지던 때였다.
“언제 선고가 날까, 혹시라도 기각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마음 한 켠에 불안이 있던 그때, 오히려 ‘연대의 힘’을 실감했다.
“특히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놀고 싶고, 쉬고 싶었을 주말, 심지어 평일 저녁도 아무런 대가 없이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요. 시민들도 이렇게 나오는데 활동가인 나도 내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렇게 기다리던 파면 선고 후. 민기는 기쁘지만 그리움과 비슷한 마음을 느낄 때도 있다.
“우리가 기자회견이나 집회를 하면 이렇게 큰 반향이 오는 일이 많지 않잖아요. 대부분 지는 싸움을 하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행진을 하면서, 또 언제 한번 이렇게 모여 볼까, 언제 또 이렇게 반향이 있는 집회를 만들어 볼까, 언제 이런 감정을 또 느껴볼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주불’은 꺼졌지만 ‘잔불’은 여전히 남아 있는 지금, 그래서 민기는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날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말한다.
“지난 18일 파면 집회를 마무리 하면서 전광판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라는 문구를 띄웠어요. 그 두 문장에 4개월의 여정이 다 담긴 것 같아요. 그래서 저 역시 광장에서 만난 분들에게 이렇게 인사하고 싶어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우리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