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반핵, 탈핵은 다소 먼 나라 얘기처럼 여겨진다. 조선인 원폭 피해자들의 기억은 우리의 기억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두 차례의 원폭이 한반도를 식민 지배에서 해방시켜 준 것처럼 기억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핵폭격은 불필요한 행위였다. 당시 동아시아 전선에 소련의 참전이 확정되면서 일본의 패배는 이미 확정적이었다. 미국은 소련이 일본으로 남하하기 이전에 전쟁을 ‘미국의 승리’로 끝내고 싶었고, 그래서 소련 참전(8월 9일) 며칠 전에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8월 6일)한 것이다. 물론, 새로운 무기를 합법적으로 실험하고 싶었던 욕망도 있었다.
한국은 여전히 핵에 우호적이다. 핵발전은 한국에서 경제성,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이야기되곤 한다. 하지만 후쿠시마 참사 이후 더욱 높아진 안전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드는 천문학적인 건설 비용과 고준위 핵폐기물을 수십만 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비용까지 고려하면 경제성이 있다고 말하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기후위기 대응 수단으로서도 매우 부적절하다. 원전을 짓는데 부지선정, 설계, 시공 등의 과정이 필요하며 가동까지 약 12년 이상이 걸린다. 탄소예산을 고려하면 1.5도 상승을 막기 위해서 한국은 당장 2035년까지 66.7%의 배출량 감축이 필요하다. 최소 12년을 기다려서 핵발전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한다는 건 현실성이 전혀 없다.
한국에서 핵발전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는 핵무기 개발 가능성 때문이다. 작년(2024년) 국정감사 때 한 여당 의원은 플로토늄이나 수소폭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중수로 원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경주 월성 원전이 중수로 방식으로 지어진 것도 박정희 정부 당시 핵무기 개발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보수 정치인들을 필두로 한국의 핵무기 개발 담론이 크게 대두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황이 이러니 동맹국인 미국마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한국을 국가안보, 핵 비확산, 테러 지원 등을 이유로 하는 ‘민감국가’ 리스트에 한국을 포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은 핵무기를 가지면 안 되는가? 이유는 차고 넘친다. 우선 당장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에 포함된다면 미국과 각종 첨단산업의 교류부터 까다로워진다. 그럼에도 핵무기 개발을 강행한다면 최악의 경우, 북한처럼 국제사회로부터 각종 경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 경제는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한국 이외의 국가들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NPT(핵비확산조약) 체제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NPT 체제는 핵무기를 가지지 않는 나라들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하는 경우에 기술을 지원해왔다. NPT 체제의 혜택을 받은 대표적인 나라인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나서면, 다른 나라들도 국제규범을 지킬 이유가 없어진다. 국제규범이 무너지는 순간, 너도나도 핵무기를 개발하는 ‘핵무장 도미노’ 현상이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핵전쟁의 가능성도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현실주의 국제 정치학에서는 ‘양극 체제’를 가장 이상적인 국제 구조로 본다. 양극 체제는 매우 강력한 두 국가가 세계의 패권을 양분하는 체제로,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을 생각하면 된다. 학자들은 양극 체제가 두 국가만 고려하기 때문에 다양한 강력한 국가들이 존재하는 ‘다극 체제’보다 안정적으로 본다. 돌발 변수가 개입할 여지가 적어서 비교적 예측 가능성도 높고, 힘의 균형을 이루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핵무장 도미노’는 국제 정치의 힘의 균형을 전부 무너뜨리고 예측 가능성을 낮춘다. 이런 상태에서 ‘핵전쟁’같은 사고가 날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만약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날 확률이 1%라고 한다면 100기의 핵발전소를 지었을 때 거의 확실하게 핵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수 많은 국가들이 핵무기를 가지게 되었을 때, 핵전쟁의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역사적으로 양극 체제(냉전)가 확실하게 자리 잡았던 시기이자, 핵무기 개발 국가가 4개국(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뿐이었을 때도 전면적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적이 있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Cuban Missile Crisis)가 그랬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전쟁의 가능성을 50%로 볼 정도였다. 비록 미국과 소련의 극적인 합의로 핵전쟁은 없었지만, 양측의 오판으로 핵전쟁으로 갈 개연성은 매우 높았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수십 개국이 핵무기를 가진, 다극 체제에서 이런 위험이 얼마나 많고, 다양해지겠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핵발전 자체의 안전성 문제이다. 후쿠시마 핵사고는 일본 내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염수가 한국에서 논의되는 것 자체가 핵 문제의 ‘국제성’을 보여준다. 핵발전소의 안전은 반드시 국제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유럽의 경우, 국경을 넘어 환경적 악영향을 주는 핵발전소 건설은 상호 협의를 거쳐야 한다. 체르노빌 이후 만들어진 에스포 협약(Convention on Environmental Impact Assessment in a Transboundary Context)과 EU의 내부 규정이 협의를 강제한다. 실제로 체코 테멜린(Temelín) 핵발전소는 인접국 오스트리아와 협의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동북아시아에서는 핵발전소 건설과 관련한 국제적 협력, 협조, 상의 시스템은 전무한 상황이다. 사실 자국 내의 발전소 건설을 위해서 국제적으로 협조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도 낯설다. 핵사고가 발생하면 피해는 동심원으로 퍼진다고 한다. 하지만 바람의 영향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편서풍의 영향으로 방사능 오염물질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퍼질 수 있다. 한 나라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났을 때, 그 나라의 동쪽에 있는 나라가 어떤 측면에서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터지면 한국이, 한국에서 터지면 일본이 위협받는 형국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내버려둘 수 있을까?

[사진3] 중국 원전 지도
당연히 내버려둘 수 없다. 그래서 함께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동북아시아에 핵발전소를 지을 때 안전을 최우선으로 국가 간 협의를 강제하는 규범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그리고 우리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시민사회에 여러 방식으로 후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탄핵 광장이 열린 이 시기에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바로 광장에 나오는 것이다.
3월 15일 오후 2시부터 경복궁역 4번 출구 앞에서 “후쿠시마 핵사고 14년 탈핵-민주주의 행진”이 열린다. 한국에서 후쿠시마를 14년 동안 기억하는 건 그 기억이 남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화를 위해, 생명을 위해, 지구를 위해 그 기억은 어느새 국경을 넘어 우리의 것이 되었다. 기억을 확장하고, ‘나’를 확장해서 우리가 되고, 함께 이야기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그 걸음이 탈핵도 되고, 또 평화도 된다.
그러니, 우리 광장에 함께 모여서 탄핵 넘어 탈핵 하자!

[사진4] 3.15 후쿠시마 집회 안내
작성자 : 에너지기후팀 활동가 오민석
한국에서 반핵, 탈핵은 다소 먼 나라 얘기처럼 여겨진다. 조선인 원폭 피해자들의 기억은 우리의 기억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두 차례의 원폭이 한반도를 식민 지배에서 해방시켜 준 것처럼 기억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핵폭격은 불필요한 행위였다. 당시 동아시아 전선에 소련의 참전이 확정되면서 일본의 패배는 이미 확정적이었다. 미국은 소련이 일본으로 남하하기 이전에 전쟁을 ‘미국의 승리’로 끝내고 싶었고, 그래서 소련 참전(8월 9일) 며칠 전에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8월 6일)한 것이다. 물론, 새로운 무기를 합법적으로 실험하고 싶었던 욕망도 있었다.
한국은 여전히 핵에 우호적이다. 핵발전은 한국에서 경제성,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이야기되곤 한다. 하지만 후쿠시마 참사 이후 더욱 높아진 안전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드는 천문학적인 건설 비용과 고준위 핵폐기물을 수십만 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비용까지 고려하면 경제성이 있다고 말하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기후위기 대응 수단으로서도 매우 부적절하다. 원전을 짓는데 부지선정, 설계, 시공 등의 과정이 필요하며 가동까지 약 12년 이상이 걸린다. 탄소예산을 고려하면 1.5도 상승을 막기 위해서 한국은 당장 2035년까지 66.7%의 배출량 감축이 필요하다. 최소 12년을 기다려서 핵발전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한다는 건 현실성이 전혀 없다.
한국에서 핵발전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는 핵무기 개발 가능성 때문이다. 작년(2024년) 국정감사 때 한 여당 의원은 플로토늄이나 수소폭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중수로 원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경주 월성 원전이 중수로 방식으로 지어진 것도 박정희 정부 당시 핵무기 개발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보수 정치인들을 필두로 한국의 핵무기 개발 담론이 크게 대두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황이 이러니 동맹국인 미국마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한국을 국가안보, 핵 비확산, 테러 지원 등을 이유로 하는 ‘민감국가’ 리스트에 한국을 포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은 핵무기를 가지면 안 되는가? 이유는 차고 넘친다. 우선 당장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에 포함된다면 미국과 각종 첨단산업의 교류부터 까다로워진다. 그럼에도 핵무기 개발을 강행한다면 최악의 경우, 북한처럼 국제사회로부터 각종 경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 경제는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한국 이외의 국가들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NPT(핵비확산조약) 체제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NPT 체제는 핵무기를 가지지 않는 나라들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하는 경우에 기술을 지원해왔다. NPT 체제의 혜택을 받은 대표적인 나라인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나서면, 다른 나라들도 국제규범을 지킬 이유가 없어진다. 국제규범이 무너지는 순간, 너도나도 핵무기를 개발하는 ‘핵무장 도미노’ 현상이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핵전쟁의 가능성도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현실주의 국제 정치학에서는 ‘양극 체제’를 가장 이상적인 국제 구조로 본다. 양극 체제는 매우 강력한 두 국가가 세계의 패권을 양분하는 체제로,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을 생각하면 된다. 학자들은 양극 체제가 두 국가만 고려하기 때문에 다양한 강력한 국가들이 존재하는 ‘다극 체제’보다 안정적으로 본다. 돌발 변수가 개입할 여지가 적어서 비교적 예측 가능성도 높고, 힘의 균형을 이루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핵무장 도미노’는 국제 정치의 힘의 균형을 전부 무너뜨리고 예측 가능성을 낮춘다. 이런 상태에서 ‘핵전쟁’같은 사고가 날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만약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날 확률이 1%라고 한다면 100기의 핵발전소를 지었을 때 거의 확실하게 핵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수 많은 국가들이 핵무기를 가지게 되었을 때, 핵전쟁의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역사적으로 양극 체제(냉전)가 확실하게 자리 잡았던 시기이자, 핵무기 개발 국가가 4개국(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뿐이었을 때도 전면적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적이 있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Cuban Missile Crisis)가 그랬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전쟁의 가능성을 50%로 볼 정도였다. 비록 미국과 소련의 극적인 합의로 핵전쟁은 없었지만, 양측의 오판으로 핵전쟁으로 갈 개연성은 매우 높았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수십 개국이 핵무기를 가진, 다극 체제에서 이런 위험이 얼마나 많고, 다양해지겠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핵발전 자체의 안전성 문제이다. 후쿠시마 핵사고는 일본 내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염수가 한국에서 논의되는 것 자체가 핵 문제의 ‘국제성’을 보여준다. 핵발전소의 안전은 반드시 국제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유럽의 경우, 국경을 넘어 환경적 악영향을 주는 핵발전소 건설은 상호 협의를 거쳐야 한다. 체르노빌 이후 만들어진 에스포 협약(Convention on Environmental Impact Assessment in a Transboundary Context)과 EU의 내부 규정이 협의를 강제한다. 실제로 체코 테멜린(Temelín) 핵발전소는 인접국 오스트리아와 협의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동북아시아에서는 핵발전소 건설과 관련한 국제적 협력, 협조, 상의 시스템은 전무한 상황이다. 사실 자국 내의 발전소 건설을 위해서 국제적으로 협조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도 낯설다. 핵사고가 발생하면 피해는 동심원으로 퍼진다고 한다. 하지만 바람의 영향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편서풍의 영향으로 방사능 오염물질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퍼질 수 있다. 한 나라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났을 때, 그 나라의 동쪽에 있는 나라가 어떤 측면에서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터지면 한국이, 한국에서 터지면 일본이 위협받는 형국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내버려둘 수 있을까?
[사진3] 중국 원전 지도
당연히 내버려둘 수 없다. 그래서 함께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동북아시아에 핵발전소를 지을 때 안전을 최우선으로 국가 간 협의를 강제하는 규범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그리고 우리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시민사회에 여러 방식으로 후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탄핵 광장이 열린 이 시기에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바로 광장에 나오는 것이다.
3월 15일 오후 2시부터 경복궁역 4번 출구 앞에서 “후쿠시마 핵사고 14년 탈핵-민주주의 행진”이 열린다. 한국에서 후쿠시마를 14년 동안 기억하는 건 그 기억이 남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화를 위해, 생명을 위해, 지구를 위해 그 기억은 어느새 국경을 넘어 우리의 것이 되었다. 기억을 확장하고, ‘나’를 확장해서 우리가 되고, 함께 이야기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그 걸음이 탈핵도 되고, 또 평화도 된다.
그러니, 우리 광장에 함께 모여서 탄핵 넘어 탈핵 하자!
[사진4] 3.15 후쿠시마 집회 안내
작성자 : 에너지기후팀 활동가 오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