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핵은 인류와 공존할 수 없다
-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80년, 우리에게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1945년 8월 6일과 9일, 인류는 사상 처음으로 원자폭탄의 참상을 목격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두 발의 핵무기는 각각 단 한 번의 폭발로 수십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고통을 남겼다. 올해는 그 참사가 벌어진 지 80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핵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 약 7만 명의 조선인이 그곳에 있었으며, 이 중 4만 명 가까이가 1945년 말 이전에 사망했다. 생존자들은 피폭 후유증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귀국 후에도 정부의 무관심과 사회의 편견 속에서 '비정상'으로 낙인찍히며 또 다른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지금도 경남 합천 등지에는 그들의 후손들이 살고 있지만, 여전히 제도적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한국 정부는 2017년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의료지원금과 실태조사 등을 시행하고 있지만, 피폭 2세·3세는 방사능 유전성에 대한 ‘과학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제도적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수많은 국내외 연구에서 방사선 노출과 유전 질환 사이의 상관관계가 제시되어 왔음에도,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며 “입증되지 않았다”는 말로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고통은 통계가 아니라 몸으로 입증되고 있으며, 고통을 증명해야 하는 과정은 피해자들에게 그 자체로 또 다른 폭력이다.
8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또다시 핵의 공포에 노출되어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자포리자 원전의 안전성이 위협받고 있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핵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과 군사적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한반도 역시 전술핵 재배치 논의와 군사훈련 강화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주요 강대국들은 핵전력 현대화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핵무기 감축은커녕 새로운 군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핵은 평화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주장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참사는, 핵발전조차 단 한 번의 사고로 수십 년간 회복되지 않는 재난을 초래할 수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후쿠시마 사고로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게 된 오늘날, 핵발전의 ‘안전 신화’는 이미 무너졌다. ‘전술핵’, ‘핵억제력’, ‘안전한 원전’이라는 미사여구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핵발전과 핵무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둘 다 생명과 안전이 아닌 권력과 이윤을 위한 도구로 기능하며, 그 피해는 언제나 가장 약한 이들에게 집중된다. 1945년 히로시마에서, 1986년 체르노빌에서, 2011년 후쿠시마에서 그러했듯이, 핵으로 인한 재앙은 국가와 국경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우리는 지금 다시금 결단의 기로에 서 있다. 핵 없는 세상은 이상이 아니라, 인류가 지속가능하게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핵무기로 희생된 이들, 핵발전소 주변에서 일상을 착취당하는 이들, 그리고 침묵 속에서 고통을 견디고 있는 수많은 피해자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멈추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는 우리의 이야기를 기억해줄 사람조차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핵과 공존하지 않는 세상.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며, 우리의 선택이다.
2025년 8월 6일
환경운동연합

[논평]
핵은 인류와 공존할 수 없다
-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80년, 우리에게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1945년 8월 6일과 9일, 인류는 사상 처음으로 원자폭탄의 참상을 목격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두 발의 핵무기는 각각 단 한 번의 폭발로 수십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고통을 남겼다. 올해는 그 참사가 벌어진 지 80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핵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 약 7만 명의 조선인이 그곳에 있었으며, 이 중 4만 명 가까이가 1945년 말 이전에 사망했다. 생존자들은 피폭 후유증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귀국 후에도 정부의 무관심과 사회의 편견 속에서 '비정상'으로 낙인찍히며 또 다른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지금도 경남 합천 등지에는 그들의 후손들이 살고 있지만, 여전히 제도적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한국 정부는 2017년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의료지원금과 실태조사 등을 시행하고 있지만, 피폭 2세·3세는 방사능 유전성에 대한 ‘과학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제도적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수많은 국내외 연구에서 방사선 노출과 유전 질환 사이의 상관관계가 제시되어 왔음에도,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며 “입증되지 않았다”는 말로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고통은 통계가 아니라 몸으로 입증되고 있으며, 고통을 증명해야 하는 과정은 피해자들에게 그 자체로 또 다른 폭력이다.
8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또다시 핵의 공포에 노출되어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자포리자 원전의 안전성이 위협받고 있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핵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과 군사적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한반도 역시 전술핵 재배치 논의와 군사훈련 강화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주요 강대국들은 핵전력 현대화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핵무기 감축은커녕 새로운 군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핵은 평화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주장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참사는, 핵발전조차 단 한 번의 사고로 수십 년간 회복되지 않는 재난을 초래할 수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후쿠시마 사고로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게 된 오늘날, 핵발전의 ‘안전 신화’는 이미 무너졌다. ‘전술핵’, ‘핵억제력’, ‘안전한 원전’이라는 미사여구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핵발전과 핵무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둘 다 생명과 안전이 아닌 권력과 이윤을 위한 도구로 기능하며, 그 피해는 언제나 가장 약한 이들에게 집중된다. 1945년 히로시마에서, 1986년 체르노빌에서, 2011년 후쿠시마에서 그러했듯이, 핵으로 인한 재앙은 국가와 국경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우리는 지금 다시금 결단의 기로에 서 있다. 핵 없는 세상은 이상이 아니라, 인류가 지속가능하게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핵무기로 희생된 이들, 핵발전소 주변에서 일상을 착취당하는 이들, 그리고 침묵 속에서 고통을 견디고 있는 수많은 피해자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멈추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는 우리의 이야기를 기억해줄 사람조차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핵과 공존하지 않는 세상.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며, 우리의 선택이다.
2025년 8월 6일
환경운동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