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사진 : 장영식 작가
7년 미루던 사고관리계획서, 이제는 줄줄이 졸속심사인가
- 원안위는 정부의 수명연장 정책을 뒷바라지하는 기관이 아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오늘 고리 3·4호기와 한빛 1·2호기, 네 기의 원전에 대한 사고관리계획서를 단일 안건으로 심의했다. 그러나 같은 노형이라고 같은 원전이 아니다. 발전소마다 운전기간과 정비이력, 설계변경과 설비의 노화상태가 다르고, 부지의 지진·침수·기상조건과 중대사고 시 실제 대응여건도 다르다. 실제 이날 회의에서도 고리 3·4호기와 한빛 1·2호기의 지진 PSA 결과가 다르다는 질의가 나왔고, KINS는 각 발전소의 “부지 특성을 반영해서 지진 PSA를 수행한 게 맞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심의도 각 발전소의 고유한 조건과 위험을 충분히 따져야 한다. 같은 노형이라는 것은 공통점을 효율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출발점일 뿐, 원전 네 기를 한 회의에 줄줄이 올려 처리해도 된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사고는 노형별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조건을 가진 개별 원전에서 발생한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심사의 속도다. 사고관리계획서는 2019년 6월 총 28개 호기에 대해 동시에 제출됐다. 왜 심사가 이렇게 오래 걸렸느냐는 질문에 원안위는 “인력의 한계 그리고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 때문에 노형별로 순차적으로 심사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안전 규제 인력과 역량의 보강이지, 7년간 밀린 안건을 이제 여러 원전씩 묶어 속도전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인력과 시간이 부족해 7년 동안 처리하지 못했다면서, 이제 와서 네 기의 노후원전을 한 회의에 올려 연달아 처리한다면 누가 이를 철저한 안전규제라고 믿겠는가. 작년 고리 2호기 수명연장 허가를 시작으로, 노후원전의 수명연장 절차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고관리계획서와 수명연장 관련 심사를 잇달아 처리하는 모습은 원안위가 안전규제의 시간표가 아니라 정부의 원전 수명연장 시간표를 따라잡기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원안위는 독립적인 안전규제기관인가, 정부의 수명연장 정책을 뒷바라지하는 기관인가.
이번 원안위 회의는 그자체로 노후원전의 사고관리계획서가 미비함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먼저 안전성 평가의 기준 시점이 명확하지 않다. KINS는 사고관리계획서에는 주기적안전성평가(PSR)와 같은 명시적인 평가기준일, 이른바 cut-off date가 없으며, 더 나아가 “명시적으로 관련 법령에서 최신 기술 기준을 적용하여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답했다. 계획서 제출 이후 심사에만 7년이 걸렸다. 그 사이 국제 안전기준과 연구결과, 운전경험이 바뀌고 새로운 지식이 축적됐다. 그렇다면 심사를 시작할 때 어떤 기준과 문헌을 사용했는지, 7년 동안 새롭게 나온 기준과 연구 가운데 무엇을 반영하고 무엇을 반영하지 않았는지 그 이력이 명확하게 추적돼야 하지만, 법에 평가기준일이 없다는 답변은 구차하다. 특히 사고관리계획서에서 평가한 중대사고의 유형과 영향이 계속운전 심사의 방사선환경영향평가 등과 연결되어, 수명연장 안전성 판단의 기초가 될 자료라면 더더욱 어느 시점의 기술과 지식으로 평가했는지 분명해야 한다.
계산의 신뢰성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이번 회의에서 중형냉각재상실사고(MLOCA)의 피폭선량 값이 이상하다는 전문위원의 질의가 나온 뒤 사업자가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분석 입력값의 오류가 뒤늦게 발견돼 결과가 수정됐다. 당초 전문위원 검토결과보고서에도 이 수정 결과가 반영되지 않아 보고서를 다시 수정·채택했다는 사실까지 회의에서 확인됐다. 국민의 방사선 피폭 영향을 평가하는 핵심 계산에서 한수원의 자체 품질관리와 KINS의 검증은 왜 오류를 먼저 걸러내지 못했는가. 전문위원이 결과값의 이상을 지적하지 않았다면 이 오류는 발견됐을 것인가. 원안위는 수정된 값이 기준 이내라는 말로 끝낼 것이 아니라 오류 발생 원인과 다른 입력값·사고시나리오에 대한 전수 재검증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고리 3·4호기 중대사고 대책인 MCCI 평가도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 원자로용기가 파손돼 노심용융물이 원자로공동으로 떨어질 경우에 대비해 약 20cm의 희생부재를 설치하는데, KINS는 보수적인 계산을 거친 측면 침식 깊이가 약 18cm라고 설명했다. 계산상 여유는 약 2cm다. 그러나 ‘보수적으로 계산했다’는 말 하나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구나 이 값은 실제 원자로 규모의 실증실험 결과도 아니다. 중대사고 때 원자로공동에 물을 주입하는 전략을 마련하면서도 정작 원자로공동의 수위를 직접 측정하는 계측기가 없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심지어 사고관리계획서가 승인되지 않은 현재, 이번 계획서에 담긴 내용 그대로의 사고관리가 가능하냐는 질의에 “지금 상태로는 현재 보고드린 내용대로의 사고 관리는 수행이 될 수 없다”고 답했다. 기존 안전조치가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7년에 걸친 심사에도 이번 계획에 새로 담긴 설비와 절차의 현장 적용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처럼 확인하고 검증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결국 원안위원장도 이날 의결을 강행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음 회의의 목적이 결론적으로 통과시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고리2호기 계속운전 결정은 이미 시민들의 소송을 통해 사법적 검증대에 올랐다. 국회입법조사처 역시 원안위 계속운전 심사의 구조와 독립적 검증 문제를 올해 국정감사의 점검 과제로 제기했다. 그리고 이제 고리 3·4호기와 한빛 1·2호기를 비롯한 노후원전 심사가 뒤따르고 있다. 국민은 원안위를 지켜보고 있다. 이번 심의는 원안위가 정부가 밀어붙이는 수명연장을 차례대로 허가하는 기관인지, 아니면 정부가 가동을 원하더라도 안전근거가 부족하면 보류하고 불허할 수 있는 독립적인 규제기관인지에 대한 심의가 될 것이다.
원안위는 고리 3·4호기와 한빛 1·2호기 사고관리계획서를 각 발전소의 고유한 조건에 따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증하라. 평가에 사용한 기술기준과 참고문헌의 적용·변경 이력, 피폭선량 계산 오류의 원인과 전수 재검증 결과, MCCI 해석의 불확실성과 실제 안전여유, 원자로공동 계측의 한계, 최신 국제기준과의 비교자료, 선행 원전 사고관리훈련 결과와 후속계획 반영 내역을 공개하라.
확인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다면 다음 회의에서 표결부터 시도해서도 안 된다. 안전규제는 정부 정책을 뒷바라지하는 행정절차가 아니다. 7년을 기다린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신속한 수명연장이 아니라 철저하고 독립적인 안전검증이다.
2026년 9월 11일
환경운동연합
[논평]
*사진 : 장영식 작가
7년 미루던 사고관리계획서, 이제는 줄줄이 졸속심사인가
- 원안위는 정부의 수명연장 정책을 뒷바라지하는 기관이 아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오늘 고리 3·4호기와 한빛 1·2호기, 네 기의 원전에 대한 사고관리계획서를 단일 안건으로 심의했다. 그러나 같은 노형이라고 같은 원전이 아니다. 발전소마다 운전기간과 정비이력, 설계변경과 설비의 노화상태가 다르고, 부지의 지진·침수·기상조건과 중대사고 시 실제 대응여건도 다르다. 실제 이날 회의에서도 고리 3·4호기와 한빛 1·2호기의 지진 PSA 결과가 다르다는 질의가 나왔고, KINS는 각 발전소의 “부지 특성을 반영해서 지진 PSA를 수행한 게 맞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심의도 각 발전소의 고유한 조건과 위험을 충분히 따져야 한다. 같은 노형이라는 것은 공통점을 효율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출발점일 뿐, 원전 네 기를 한 회의에 줄줄이 올려 처리해도 된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사고는 노형별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조건을 가진 개별 원전에서 발생한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심사의 속도다. 사고관리계획서는 2019년 6월 총 28개 호기에 대해 동시에 제출됐다. 왜 심사가 이렇게 오래 걸렸느냐는 질문에 원안위는 “인력의 한계 그리고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 때문에 노형별로 순차적으로 심사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안전 규제 인력과 역량의 보강이지, 7년간 밀린 안건을 이제 여러 원전씩 묶어 속도전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인력과 시간이 부족해 7년 동안 처리하지 못했다면서, 이제 와서 네 기의 노후원전을 한 회의에 올려 연달아 처리한다면 누가 이를 철저한 안전규제라고 믿겠는가. 작년 고리 2호기 수명연장 허가를 시작으로, 노후원전의 수명연장 절차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고관리계획서와 수명연장 관련 심사를 잇달아 처리하는 모습은 원안위가 안전규제의 시간표가 아니라 정부의 원전 수명연장 시간표를 따라잡기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원안위는 독립적인 안전규제기관인가, 정부의 수명연장 정책을 뒷바라지하는 기관인가.
이번 원안위 회의는 그자체로 노후원전의 사고관리계획서가 미비함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먼저 안전성 평가의 기준 시점이 명확하지 않다. KINS는 사고관리계획서에는 주기적안전성평가(PSR)와 같은 명시적인 평가기준일, 이른바 cut-off date가 없으며, 더 나아가 “명시적으로 관련 법령에서 최신 기술 기준을 적용하여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답했다. 계획서 제출 이후 심사에만 7년이 걸렸다. 그 사이 국제 안전기준과 연구결과, 운전경험이 바뀌고 새로운 지식이 축적됐다. 그렇다면 심사를 시작할 때 어떤 기준과 문헌을 사용했는지, 7년 동안 새롭게 나온 기준과 연구 가운데 무엇을 반영하고 무엇을 반영하지 않았는지 그 이력이 명확하게 추적돼야 하지만, 법에 평가기준일이 없다는 답변은 구차하다. 특히 사고관리계획서에서 평가한 중대사고의 유형과 영향이 계속운전 심사의 방사선환경영향평가 등과 연결되어, 수명연장 안전성 판단의 기초가 될 자료라면 더더욱 어느 시점의 기술과 지식으로 평가했는지 분명해야 한다.
계산의 신뢰성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이번 회의에서 중형냉각재상실사고(MLOCA)의 피폭선량 값이 이상하다는 전문위원의 질의가 나온 뒤 사업자가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분석 입력값의 오류가 뒤늦게 발견돼 결과가 수정됐다. 당초 전문위원 검토결과보고서에도 이 수정 결과가 반영되지 않아 보고서를 다시 수정·채택했다는 사실까지 회의에서 확인됐다. 국민의 방사선 피폭 영향을 평가하는 핵심 계산에서 한수원의 자체 품질관리와 KINS의 검증은 왜 오류를 먼저 걸러내지 못했는가. 전문위원이 결과값의 이상을 지적하지 않았다면 이 오류는 발견됐을 것인가. 원안위는 수정된 값이 기준 이내라는 말로 끝낼 것이 아니라 오류 발생 원인과 다른 입력값·사고시나리오에 대한 전수 재검증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고리 3·4호기 중대사고 대책인 MCCI 평가도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 원자로용기가 파손돼 노심용융물이 원자로공동으로 떨어질 경우에 대비해 약 20cm의 희생부재를 설치하는데, KINS는 보수적인 계산을 거친 측면 침식 깊이가 약 18cm라고 설명했다. 계산상 여유는 약 2cm다. 그러나 ‘보수적으로 계산했다’는 말 하나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구나 이 값은 실제 원자로 규모의 실증실험 결과도 아니다. 중대사고 때 원자로공동에 물을 주입하는 전략을 마련하면서도 정작 원자로공동의 수위를 직접 측정하는 계측기가 없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심지어 사고관리계획서가 승인되지 않은 현재, 이번 계획서에 담긴 내용 그대로의 사고관리가 가능하냐는 질의에 “지금 상태로는 현재 보고드린 내용대로의 사고 관리는 수행이 될 수 없다”고 답했다. 기존 안전조치가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7년에 걸친 심사에도 이번 계획에 새로 담긴 설비와 절차의 현장 적용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처럼 확인하고 검증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결국 원안위원장도 이날 의결을 강행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음 회의의 목적이 결론적으로 통과시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고리2호기 계속운전 결정은 이미 시민들의 소송을 통해 사법적 검증대에 올랐다. 국회입법조사처 역시 원안위 계속운전 심사의 구조와 독립적 검증 문제를 올해 국정감사의 점검 과제로 제기했다. 그리고 이제 고리 3·4호기와 한빛 1·2호기를 비롯한 노후원전 심사가 뒤따르고 있다. 국민은 원안위를 지켜보고 있다. 이번 심의는 원안위가 정부가 밀어붙이는 수명연장을 차례대로 허가하는 기관인지, 아니면 정부가 가동을 원하더라도 안전근거가 부족하면 보류하고 불허할 수 있는 독립적인 규제기관인지에 대한 심의가 될 것이다.
원안위는 고리 3·4호기와 한빛 1·2호기 사고관리계획서를 각 발전소의 고유한 조건에 따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증하라. 평가에 사용한 기술기준과 참고문헌의 적용·변경 이력, 피폭선량 계산 오류의 원인과 전수 재검증 결과, MCCI 해석의 불확실성과 실제 안전여유, 원자로공동 계측의 한계, 최신 국제기준과의 비교자료, 선행 원전 사고관리훈련 결과와 후속계획 반영 내역을 공개하라.
확인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다면 다음 회의에서 표결부터 시도해서도 안 된다. 안전규제는 정부 정책을 뒷바라지하는 행정절차가 아니다. 7년을 기다린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신속한 수명연장이 아니라 철저하고 독립적인 안전검증이다.
2026년 9월 11일
환경운동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