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핵발전소 저지 전국 탈핵 순례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핵발전소 추가 말라!> 7화
울진 순례 8일
울진에서 영덕까지 닷새 61.9km, 마을에 그어진 신규 핵발전소 예정지 표식
지난 4일 울진 기성역을 출발한 순례단은 후포와 영해, 석리를 지나 8일 영덕군청에 닿았다. 닷새 동안 걸은 거리는 61.9km였다.
나는 이 구간을 걷지 못했다. 서울 순례와 기자회견을 준비하기 위해 영광에서 먼저 길을 떠났다. 대신 저녁마다 순례단이 보내온 사진을 보고, 그날의 기록과 목소리를 전해 들었다. 이 글에 담긴 것은 내 발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걸음이다.
경북 동해안에서는 현재 원자로 13기가 가동 중이다. 영구정지된 월성 1호기와 건설 중인 신한울 3·4호기까지 합치면 원자로 16기가 한 지역에 모여 있다. 영덕에 신규 핵발전소 2기가 더 들어서면 18기가 된다. 순례단은 그 숫자가 세워질 땅을 걸어서 지나갔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영덕으로 향하는 길, 핵발전소가 들어오면 이 바다가 풍경이 달라진다.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산이 다 탔다"는 말
지난해 3월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안동과 청송을 거쳐 25일 오후 영덕으로 넘어왔다. 초속 25m가 넘는 바람을 탄 불은 청송에서 노물리 해안까지 서너 시간 만에 닿았다. 영덕에서 주불이 잡힌 것은 사흘 뒤인 28일 오후였다.
영덕에서만 1만 6207㏊가 탔다. 10명이 숨지고 56명이 다쳤다. 주택 1053채가 완전히 탔고 어선 29척이 피해를 입었다. 숫자로는 이렇게 적을 수 있다. 그러나 순례단은 길에서 마주친 흔적을 몇 줄로는 옮길 수 없다고 했다.
"산이 다 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린 것은 재만 남은 민둥산이었다. 실제 풍경은 달랐다. 나무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까맣게 그을린 기둥으로 서 있었다. 불길이 도깨비불처럼 날아다녔다는 주민들의 증언도 그 앞에 서고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검게 탄 나무 사이로 다시 돋아난 푸른 잎은 무섭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다.
신규 핵발전소 예정지에 포함된 노물리는 해안을 따라 걷는 길과 작은 항구를 가진 마을이었다. 지금은 항구로 이어지던 길이 통제돼 있다. 베어낸 나무와 철거된 집터, 타버린 주택 옆에 세운 임시주택이 남았다. 10년 전 주민들이 핵발전소 건설을 막으려고 주민투표를 준비했던 자리다. 그 위에 다시 핵발전소 예정지라는 선이 그어졌다.
복구 기다렸더니 핵발전소 기다리라고
정부와 경북도, 영덕군은 지난해 6월 석리·노물리 일대 98만㎡를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했다. 2028년까지 490억 원을 들여 도로와 상하수도를 정비하고 공원과 주차장, 관광시설을 확충한다는 계획이었다. 포항 흥해읍에 이어 두 번째로 추진되는 특별재생사업이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마을이 '한국의 산토리니'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그러나 복구가 시작되기도 전에 다른 계획이 그 위에 올라왔다.
영덕군은 올해 3월 석리·노물리·매정리와 축산면 경정리 일대 약 324만㎡를 신규 핵발전소 후보지로 신청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6월 17일 이 일대를 대형 원자로 2기의 건설 후보지로 선정했다. 엿새 뒤인 24일 영덕군은 특별재생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핵발전소 완공 목표는 2037년과 2038년이다. 앞으로 10년 넘게 남았다. 마을 뒤에는 산불로 드러난 급경사지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바위가 남아 있지만 구체적인 이주 대책은 아직 없다. 재난은 복구되지 않았는데, 복구할 땅이 다음 국책사업의 부지가 됐다.
노물리의 사정은 더 복잡하다. 마을 땅의 상당 부분은 핵발전소 예정구역에 들어갔지만, 주민들이 실제로 사는 주거지는 대부분 빠졌다. 특별재생사업은 멈췄고, 지금대로라면 해당 주거지는 핵발전소 건설에 따른 보상에서도 제외된다.
한 주민이 순례단에 말했다.
"재생사업을 한다고 해서 집을 못 짓게 했어요. 그래서 안 짓고 기다렸어요. 그런데 재생사업이 없어진다고 하니까 핵발전소가 들어올 때까지 또 기다려야 되잖아요. 그럼 발전소는 언제 들어올지."
불탄 집을 다시 지을 수도, 그렇다고 삶의 터전을 포기할 수도 없다. 복구를 기다렸더니 이제는 핵발전소를 기다리라고 한다. 주민이 감당하는 것은 산불과 핵발전소의 위험만이 아니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채 흘러가는 시간도 주민의 몫이다.

영덕이 핵발전소 건설 후보지로 예정된 후 특별 지역 재생 사업이 중단되었다.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주민이 스스로 만든 절차
영덕은 1980년대 후반부터 세 차례에 걸친 핵폐기장 건설 시도를 막아낸 곳이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2015년 천지 핵발전소 건설이 거론되자 주민들은 다시 깃발을 들었다. 장날마다 직접 만든 홍보물을 나눠주고 무기한 1인시위를 이어가며 주민투표를 요구했다.
당시 정부는 핵발전소 건설이 국가 사무이므로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영덕군도 투표를 실시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민들이 직접 투표를 만들었다. 영덕 전역이 반경 30km의 방사선비상계획구역 안에 들어가는 만큼, 영덕의 미래는 영덕군민이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영덕군이 주민등록 전산자료 제공을 거부하자 주민들과 전국에서 모인 자원봉사자들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1만 5000여 명의 동의를 받아 자체 투표인명부를 작성했다.
2015년 11월 11일과 12일 치러진 투표에는 1만 1209명이 참여했다. 주민들이 작성한 명부를 기준으로 한 투표율은 60.3%였다. 투표자 가운데 1만 274명, 91.7%가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열지 않은 절차를 주민들이 직접 설계하고 집행한 결과였다.
그 결정이 10여 년 만에 다시 뒤집히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달라졌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내린 결정은 과거의 기록으로 밀려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돌릴 수 있다면, 그날 주민들이 손에 쥔 투표용지는 무엇이었을까.

영덕이 신규 핵발전소 건설 예정지로 발표 된 후 산불 피해 대책이 중단되어 지역 주민이 고통받고 있으나, 신규 핵발전소 명칭 공모등 분위기를 띄우는 지자체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200명이 열 명이 되기까지
울진에서 영덕까지 걸은 이정숙 동해삼척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는 길에서 만난 주민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영덕의 핵발전소 문제 때문에 걷는다고 하자 주민들은 "맞다, 정말 그렇다"며 저녁과 차를 대접했다. 마주 앉은 자리에서는 오랫동안 눌러두었던 이야기가 나왔다.
세 차례나 핵폐기장을 막고 주민투표까지 치렀으니 싸우는 방법을 잘 알지 않느냐고 물었다. 주민들의 대답은 달랐다.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고 했다.
수온이 올라 대게가 잘 잡히지 않는다. 값이 오르니 찾는 사람도 줄었다. 산불이 휩쓸고 간 산에서는 송이도 제대로 딸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핵발전소가 들어오느냐 마느냐를 두고 갈등하는 사이 다른 투자도 들어오지 않았다. 지역 경제가 주저앉은 자리로 군수의 유치 선언과 이장들의 설득, 땅을 사려는 외지인의 발길이 함께 들어왔다.
처음 핵발전소 반대 모임에는 200명쯤 모였다고 한다. 지금 남은 사람은 열 명 남짓이다. 동네에서 핵발전소 반대 이야기를 꺼내면 눈치받는다. 그러면서도 주민들은 제대로 투표하면 반대가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이웃과 얼굴을 붉히는 것이 두려워 말하지 못할 뿐, 속으로 반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핵발전소든 송전탑이든 벌어지는 일은 닮았다. 보상금으로 주민을 나누고 반대하는 사람을 고립시킨다. 그렇게 반대 목소리가 줄어든 뒤 그것을 '주민 수용성'이라고 부른다.
영덕은 세 차례 핵폐기장을 막고 한 차례 주민투표에서 이겼다. 그러나 싸움이 길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지쳤고 마을의 신뢰는 부서졌다. 국책사업이 얻었다는 수용성에는 그렇게 사라진 목소리도 들어 있다.
1999년 4월 산업자원부 장관이 울진군수에게 보낸 공문이 있다. 당시 건설 중이거나 가동 중이던 원자로 6기에 4기를 더한 뒤에는 울진군 안에서 핵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거나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부지를 확보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조건은 이미 다 채워졌다. 울진에서는 한울 1∼6호기와 신한울 1·2호기 등 8기가 가동 중이고, 신한울 3·4호기가 건설되고 있다. 모두 합치면 10기다.

1999년 산업부 장관이 울진군에 보낸 공문울진군 안에서 핵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거나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부지를 확보하지 않겠다는 내용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그러나 한울핵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 습식저장률은 80%를 넘어섰고, 2031년이면 포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발전소 부지 안에 건식저장시설을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문서로 남은 약속조차 시간이 지나면 달리 해석되는 곳에서 주민에게 무엇을 믿고 동의하라고 할 것인가.
잿기둥으로 남은 노물리, 멈춰 선 490억 원의 재생사업, 91.7%라는 주민투표 결과, 200명에서 열 명이 된 반대 모임, 그리고 1999년의 공문.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걸어서 이어보면 하나의 질문이 된다.
국가가 지역에 한 약속은 언제까지 유효한가. 주민이 스스로 만든 민주적 절차의 수명은 정권보다 짧아야 하는가.
전력 소비의 편익은 수도권과 대도시가 누리지만 핵발전소와 핵폐기물, 송전선로의 위험은 특정 지역에 집중된다.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마을에는 복구를 약속했다가 핵발전소 부지로 정해지자 그 약속마저 거둬들였다. 이런 방식으로 위험을 지역에 몰아넣으면서 국가균형발전을 말할 수는 없다.
이번 회차는 내가 걷지 못한 길의 기록이다. 그러나 내가 떠난 뒤에도 길은 이어졌다. 대신 걸어준 사람들이 저녁마다 그날의 풍경과 사람들의 말을 건넸다. 지키는 일도 그렇게 이어져 왔을 것이다. 누군가 잠시 길을 떠나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걷고, 한 사람의 목소리가 작아지면 다른 사람이 그 말을 받아 전하면서.
9월 16일, 고리와 영광, 울진과 세종에서 출발한 네 갈래의 길이 청와대 앞에서 하나가 된다. 우리는 영덕에서 가져온 질문을 정부 앞에 내려놓을 것이다.
산불로 모든 것을 잃은 마을에 국가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지역의 미래는 대체 누가 결정하는가.
글쓴이: 최경숙 환경운동연합 정책변화팀 활동가
신규 핵발전소 저지 전국 탈핵 순례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핵발전소 추가 말라!> 7화
울진 순례 8일
울진에서 영덕까지 닷새 61.9km, 마을에 그어진 신규 핵발전소 예정지 표식
지난 4일 울진 기성역을 출발한 순례단은 후포와 영해, 석리를 지나 8일 영덕군청에 닿았다. 닷새 동안 걸은 거리는 61.9km였다.
나는 이 구간을 걷지 못했다. 서울 순례와 기자회견을 준비하기 위해 영광에서 먼저 길을 떠났다. 대신 저녁마다 순례단이 보내온 사진을 보고, 그날의 기록과 목소리를 전해 들었다. 이 글에 담긴 것은 내 발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걸음이다.
경북 동해안에서는 현재 원자로 13기가 가동 중이다. 영구정지된 월성 1호기와 건설 중인 신한울 3·4호기까지 합치면 원자로 16기가 한 지역에 모여 있다. 영덕에 신규 핵발전소 2기가 더 들어서면 18기가 된다. 순례단은 그 숫자가 세워질 땅을 걸어서 지나갔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영덕으로 향하는 길, 핵발전소가 들어오면 이 바다가 풍경이 달라진다.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산이 다 탔다"는 말
지난해 3월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안동과 청송을 거쳐 25일 오후 영덕으로 넘어왔다. 초속 25m가 넘는 바람을 탄 불은 청송에서 노물리 해안까지 서너 시간 만에 닿았다. 영덕에서 주불이 잡힌 것은 사흘 뒤인 28일 오후였다.
영덕에서만 1만 6207㏊가 탔다. 10명이 숨지고 56명이 다쳤다. 주택 1053채가 완전히 탔고 어선 29척이 피해를 입었다. 숫자로는 이렇게 적을 수 있다. 그러나 순례단은 길에서 마주친 흔적을 몇 줄로는 옮길 수 없다고 했다.
"산이 다 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린 것은 재만 남은 민둥산이었다. 실제 풍경은 달랐다. 나무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까맣게 그을린 기둥으로 서 있었다. 불길이 도깨비불처럼 날아다녔다는 주민들의 증언도 그 앞에 서고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검게 탄 나무 사이로 다시 돋아난 푸른 잎은 무섭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다.
신규 핵발전소 예정지에 포함된 노물리는 해안을 따라 걷는 길과 작은 항구를 가진 마을이었다. 지금은 항구로 이어지던 길이 통제돼 있다. 베어낸 나무와 철거된 집터, 타버린 주택 옆에 세운 임시주택이 남았다. 10년 전 주민들이 핵발전소 건설을 막으려고 주민투표를 준비했던 자리다. 그 위에 다시 핵발전소 예정지라는 선이 그어졌다.
복구 기다렸더니 핵발전소 기다리라고
정부와 경북도, 영덕군은 지난해 6월 석리·노물리 일대 98만㎡를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했다. 2028년까지 490억 원을 들여 도로와 상하수도를 정비하고 공원과 주차장, 관광시설을 확충한다는 계획이었다. 포항 흥해읍에 이어 두 번째로 추진되는 특별재생사업이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마을이 '한국의 산토리니'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그러나 복구가 시작되기도 전에 다른 계획이 그 위에 올라왔다.
영덕군은 올해 3월 석리·노물리·매정리와 축산면 경정리 일대 약 324만㎡를 신규 핵발전소 후보지로 신청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6월 17일 이 일대를 대형 원자로 2기의 건설 후보지로 선정했다. 엿새 뒤인 24일 영덕군은 특별재생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핵발전소 완공 목표는 2037년과 2038년이다. 앞으로 10년 넘게 남았다. 마을 뒤에는 산불로 드러난 급경사지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바위가 남아 있지만 구체적인 이주 대책은 아직 없다. 재난은 복구되지 않았는데, 복구할 땅이 다음 국책사업의 부지가 됐다.
노물리의 사정은 더 복잡하다. 마을 땅의 상당 부분은 핵발전소 예정구역에 들어갔지만, 주민들이 실제로 사는 주거지는 대부분 빠졌다. 특별재생사업은 멈췄고, 지금대로라면 해당 주거지는 핵발전소 건설에 따른 보상에서도 제외된다.
한 주민이 순례단에 말했다.
"재생사업을 한다고 해서 집을 못 짓게 했어요. 그래서 안 짓고 기다렸어요. 그런데 재생사업이 없어진다고 하니까 핵발전소가 들어올 때까지 또 기다려야 되잖아요. 그럼 발전소는 언제 들어올지."
불탄 집을 다시 지을 수도, 그렇다고 삶의 터전을 포기할 수도 없다. 복구를 기다렸더니 이제는 핵발전소를 기다리라고 한다. 주민이 감당하는 것은 산불과 핵발전소의 위험만이 아니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채 흘러가는 시간도 주민의 몫이다.
영덕이 핵발전소 건설 후보지로 예정된 후 특별 지역 재생 사업이 중단되었다.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주민이 스스로 만든 절차
영덕은 1980년대 후반부터 세 차례에 걸친 핵폐기장 건설 시도를 막아낸 곳이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2015년 천지 핵발전소 건설이 거론되자 주민들은 다시 깃발을 들었다. 장날마다 직접 만든 홍보물을 나눠주고 무기한 1인시위를 이어가며 주민투표를 요구했다.
당시 정부는 핵발전소 건설이 국가 사무이므로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영덕군도 투표를 실시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민들이 직접 투표를 만들었다. 영덕 전역이 반경 30km의 방사선비상계획구역 안에 들어가는 만큼, 영덕의 미래는 영덕군민이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영덕군이 주민등록 전산자료 제공을 거부하자 주민들과 전국에서 모인 자원봉사자들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1만 5000여 명의 동의를 받아 자체 투표인명부를 작성했다.
2015년 11월 11일과 12일 치러진 투표에는 1만 1209명이 참여했다. 주민들이 작성한 명부를 기준으로 한 투표율은 60.3%였다. 투표자 가운데 1만 274명, 91.7%가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열지 않은 절차를 주민들이 직접 설계하고 집행한 결과였다.
그 결정이 10여 년 만에 다시 뒤집히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달라졌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내린 결정은 과거의 기록으로 밀려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돌릴 수 있다면, 그날 주민들이 손에 쥔 투표용지는 무엇이었을까.
영덕이 신규 핵발전소 건설 예정지로 발표 된 후 산불 피해 대책이 중단되어 지역 주민이 고통받고 있으나, 신규 핵발전소 명칭 공모등 분위기를 띄우는 지자체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200명이 열 명이 되기까지
울진에서 영덕까지 걸은 이정숙 동해삼척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는 길에서 만난 주민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영덕의 핵발전소 문제 때문에 걷는다고 하자 주민들은 "맞다, 정말 그렇다"며 저녁과 차를 대접했다. 마주 앉은 자리에서는 오랫동안 눌러두었던 이야기가 나왔다.
세 차례나 핵폐기장을 막고 주민투표까지 치렀으니 싸우는 방법을 잘 알지 않느냐고 물었다. 주민들의 대답은 달랐다.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고 했다.
수온이 올라 대게가 잘 잡히지 않는다. 값이 오르니 찾는 사람도 줄었다. 산불이 휩쓸고 간 산에서는 송이도 제대로 딸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핵발전소가 들어오느냐 마느냐를 두고 갈등하는 사이 다른 투자도 들어오지 않았다. 지역 경제가 주저앉은 자리로 군수의 유치 선언과 이장들의 설득, 땅을 사려는 외지인의 발길이 함께 들어왔다.
처음 핵발전소 반대 모임에는 200명쯤 모였다고 한다. 지금 남은 사람은 열 명 남짓이다. 동네에서 핵발전소 반대 이야기를 꺼내면 눈치받는다. 그러면서도 주민들은 제대로 투표하면 반대가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이웃과 얼굴을 붉히는 것이 두려워 말하지 못할 뿐, 속으로 반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핵발전소든 송전탑이든 벌어지는 일은 닮았다. 보상금으로 주민을 나누고 반대하는 사람을 고립시킨다. 그렇게 반대 목소리가 줄어든 뒤 그것을 '주민 수용성'이라고 부른다.
영덕은 세 차례 핵폐기장을 막고 한 차례 주민투표에서 이겼다. 그러나 싸움이 길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지쳤고 마을의 신뢰는 부서졌다. 국책사업이 얻었다는 수용성에는 그렇게 사라진 목소리도 들어 있다.
1999년 4월 산업자원부 장관이 울진군수에게 보낸 공문이 있다. 당시 건설 중이거나 가동 중이던 원자로 6기에 4기를 더한 뒤에는 울진군 안에서 핵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거나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부지를 확보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조건은 이미 다 채워졌다. 울진에서는 한울 1∼6호기와 신한울 1·2호기 등 8기가 가동 중이고, 신한울 3·4호기가 건설되고 있다. 모두 합치면 10기다.
1999년 산업부 장관이 울진군에 보낸 공문울진군 안에서 핵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거나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부지를 확보하지 않겠다는 내용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그러나 한울핵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 습식저장률은 80%를 넘어섰고, 2031년이면 포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발전소 부지 안에 건식저장시설을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문서로 남은 약속조차 시간이 지나면 달리 해석되는 곳에서 주민에게 무엇을 믿고 동의하라고 할 것인가.
잿기둥으로 남은 노물리, 멈춰 선 490억 원의 재생사업, 91.7%라는 주민투표 결과, 200명에서 열 명이 된 반대 모임, 그리고 1999년의 공문.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걸어서 이어보면 하나의 질문이 된다.
국가가 지역에 한 약속은 언제까지 유효한가. 주민이 스스로 만든 민주적 절차의 수명은 정권보다 짧아야 하는가.
전력 소비의 편익은 수도권과 대도시가 누리지만 핵발전소와 핵폐기물, 송전선로의 위험은 특정 지역에 집중된다.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마을에는 복구를 약속했다가 핵발전소 부지로 정해지자 그 약속마저 거둬들였다. 이런 방식으로 위험을 지역에 몰아넣으면서 국가균형발전을 말할 수는 없다.
이번 회차는 내가 걷지 못한 길의 기록이다. 그러나 내가 떠난 뒤에도 길은 이어졌다. 대신 걸어준 사람들이 저녁마다 그날의 풍경과 사람들의 말을 건넸다. 지키는 일도 그렇게 이어져 왔을 것이다. 누군가 잠시 길을 떠나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걷고, 한 사람의 목소리가 작아지면 다른 사람이 그 말을 받아 전하면서.
9월 16일, 고리와 영광, 울진과 세종에서 출발한 네 갈래의 길이 청와대 앞에서 하나가 된다. 우리는 영덕에서 가져온 질문을 정부 앞에 내려놓을 것이다.
산불로 모든 것을 잃은 마을에 국가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지역의 미래는 대체 누가 결정하는가.
글쓴이: 최경숙 환경운동연합 정책변화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