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핵발전소 저지 전국 탈핵 순례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핵발전소 추가 말라!>3화
울진 순례 사흘
김형연·이정숙 울진 순례단, 사흘 동안 47.7km 걸으며 만난 울진의 목소리
경북 울진에 들어서면 바다가 먼저 보인다. 산과 바다가 맞닿은 길, 마을회관과 편의점, 밭과 어촌이 이어진다. 그 풍경 사이로 송전탑이 나타나고, 조금 더 걸으면 거대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와 마을 사이에 발전소가 있고, 발전소와 송전탑 사이에 사람이 산다.
울진 순례단은 둘이다. 김형연 동해삼척기후위기비상행동 청년위원장과 이정숙 공동대표. 9월 1일 한울핵발전소를 출발해 울진군청까지 17.4km, 이튿날 오산보건진료소까지 16.4km, 사흘째 기성역까지 13.9km. 사흘 동안 47.7km를 걸었다.
나는 영광을 걷고 있어 그 길에 서지 못했다. 대신 저녁마다 두 사람의 기록과 목소리를 건네받았다. 이번 회차는 동해안을 걷는 둘의 사흘이다.

울진 한울원전 앞에서 출정 기자회견을 하는 순례단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울진은 어차피 죽는 땅
자신을 집돌이라고 소개하는 김형연 활동가가 길 위에서 전한 말이 있다.
"울진은 어차피 죽는 땅."
울진의 한 관광 해설사에게 들었다는 문장이다. 그 말을 하는 해설사의 목소리에 분노는 없었다고 했다. 항의도 없었다고 했다. 관광을 안내하는 사람이 자기가 안내하는 땅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섬뜩한 것은 문장이 아니라 문장에 아무 힘도 실려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핵발전소에 오래 기대온 지역이 다른 미래를 상상하기 어려워졌을 때 나오는 말이다.
김형연씨가 울진에서 가장 불안하게 여기는 것도 핵발전소 자체가 아니라 핵발전에 종속된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먼저 포기하고, 그 포기가 다시 핵발전을 불러들이는 순환.
그는 울진을 걸으며 느낀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생태계가 경제에 압도돼 있는 상태예요. 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의 도시이지, 절대 주민의 도시가 아니에요."
핵발전소가 지역에 돈을 가져온다는 말은 맞다. 문제는 그것이 무엇과 바꾼 돈이냐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에 가격을 매기는 데 익숙하다. 바다에는 어업 보상금이, 산에는 송전선로 보상비가, 발전소 곁 마을에는 지원금이 매겨진다. 숫자가 붙는 순간 훼손된 자연도 빼앗긴 자리도 계산이 끝난 일이 된다. 그러나 사라진 오징어와 떠난 청년은 그 값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걷는 사람의 눈에 핵발전소는 풍경의 배경으로 물러나 있지 않다. 마을회관 옆에 있고, 밭 너머에 있고, 바다를 마주 보고 있다. 걸어서 지나가야만 그 배치가 보인다.

푸른 바다를 뒤로 한, 핵발전의 도시 울진을 알리는 조형물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열세 기에서 열일곱 기로
경주 월성원자력본부에서는 월성 2·3·4호기와 신월성 1·2호기 다섯 기가 돌아간다. 울진에서는 한울 1~6호기와 신한울 1·2호기 여덟 기가 돌아간다. 경북 동해안에서만 가동 중인 원자로가 열세 기다.
여기에 신한울 3·4호기가 더해진다. 한수원은 지난해 5월 3호기 본 공사를 착수했고, 올해 5월 29일에는 4호기 원자로건물 기초지반에 첫 콘크리트를 부었다. 3호기는 2032년, 4호기는 2033년 준공이 목표다.
그리고 영덕이 있다. 지난 6월 17일 한수원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신규 대형핵발전소 2기의 부지로 영덕군을 선정했다. 1기당 1.4GW, 합쳐서 2.8GW. 2037년과 2038년 준공, 이후 60년 가동이 목표다. 열셋에 둘을 더하고 다시 둘을 더하면 열일곱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명분은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가 끌어 올린 전력수요다. 그런데 길 위에서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금 급하다는 전기를 10년도 더 지나야 돌아가는 발전소로 대겠다고 한다. 12차 전기본이 새로 넣겠다는 핵발전소는 그보다도 뒤다. 급한 것은 전기가 아니라 착공이다.
부지를 정한 방식도 그렇다. 한수원 부지선정평가위원회는 영덕군에 91.01점, 울주군에 82.63점을 매겨 영덕을 확정했다. 부지 적정성과 환경성, 건설 적합성, 주민 수용성에 무엇을 근거로 점수가 갈렸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영덕 주민들은 3개월 만에 이 작업이 가능한지 묻는다. 15년 전 조사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영덕은 1989년부터 핵폐기장과 핵발전소 건설을 주민의 힘으로 세 번 막아냈고, 2015년 주민투표를 거쳐 2021년 천지원전 백지화를 끌어냈다. 그 결과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돌릴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는가. 주민의 뜻을 물었다는 말은 또 무엇이 되는가.
말할 수 없는 사람들
두 사람은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하나같이 슬픔이 배어 있었다고 전했다. 어떤 사람들이 사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비슷했다. 지역주민 반, 발전소 공사 인력 반. 핵발전소가 없으면 지역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의존도가 거의 절대적이라고 했다.
핵발전소가 들어오기 전 울진은 어촌이었다. 오징어도 가자미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잡히지 않는다. 살아남으려면 발전소에서 나오는 돈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농사도 예전 같지 않아 결국 발전소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굴뚝 없는 깨끗한 공장인 줄 알았다고 했다.
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의 말도 있었다. 핵발전을 반대하는 이유는 핵폐기물 때문이라고, 그것만 아니라면 다르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런 말을 밖에서는 하지 못한다고 했다. 활동에 나서면 손가락질받는다는 것이다.
위험을 가장 가까이에서 아는 사람이 그 위험을 말하지 못하는 곳. 우려를 말하면 곧바로 지역경제를 해치는 사람이 되는 곳. 발전소는 산업시설을 넘어 지역의 말과 관계까지 쥐고 있었다. 오래 버텨온 활동가들이 지쳐 물러났다는 이야기도 여러 번 들었다.
지원금은 한 세대가 쓰고 위험은 여러 세대가 진다. 어업이 무너지고, 청년이 떠나고, 남은 이들은 발전소 일자리에 묶인다. 그리고 지역경제가 약해질수록 다음 시설을 받아들일 수용성 점수는 올라간다. 우리는 이것을 지역 발전이라 부르지 않는다. 핵발전 종속이라 부른다.
두 사람이 걷는 동안에도 발전소는 멈추고 있었다. 8월 19일 오전 한울 4호기가 운전 중 자동 정지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사건조사에 들어갔다. 그에 앞서 8월 3일에는 한울 6호기에서 옮겨온 사용후핵연료를 신한울 2호기 저장조에 넣는 준비 작업 중 운전원의 오조작으로 붕산수 125.6ℓ가 외부로 누출됐다.
한울원자력본부는 누설수를 회수하고 사고 구역을 통제한 뒤 아스콘과 일부 콘크리트를 제거하는 등 제염 작업을 진행했다. 제염 이후 주변 방사선 준위는 자연방사선 수준이며 발전소 부지 외부에 미친 영향은 없었다는 게 한울본부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 사고가 3주가 지나도록 지역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뒤늦게 사실을 안 울진군의회 원전관련특별위원회와 한울원전환경감시위원회, 한울원자력안전협의회는 8월 27일 공동성명을 내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주민이 참여하는 조사 기구를 구성하라고 요구했다. 무엇이 새어 나갔는지보다 무엇이 전해지지 않았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그래서 더 어려운 질문

신한울 3,4호기 건설 현장을 지나는 두명의 탈핵 순례자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저녁이면 둘뿐인 순례단은 노곤한 몸을 풀고 서로에게 묻는다. 왜 이 길을 걷느냐고.
"핵발전소를 막으려고."
"한수원과 국가가 하는 말을 그냥 듣고 있을 수 없어서요."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냐는 물음에는 "지구 위에 있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길 위에서 받은 것도 있었다. 지역 사람들이 건네준 설익은 고구마 몇 덩이, 눈 맞춤, 지나가며 보내는 응원. 둘뿐인 순례단에는 하루치의 몫이다.
울진에서 우리는 찬성한다는 사람도 반대한다는 사람도 만났다. 없으면 지역경제가 무너진다는 말과 핵폐기물 때문에 결국 없어져야 한다는 말을 같은 마을에서 들었다. 모순돼 보이지만 하나의 현실에서 나온 말이다. 핵발전소가 지역의 삶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왔다.
그래서 이 길은 우리에게 더 어려운 질문을 남긴다. 핵발전소를 없앨 것인가가 아니라, 핵발전소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 답이 없다면 탈핵은 지역에 또 하나의 희생을 요구하는 말이 된다.
월성 나아리에는 12년째 천막이 서 있다. 이주만 시켜 달라며 시작된 그 천막은, 국가가 지역 주민에게 얼마나 오래 답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두 사람은 그 앞을 지나 서울로 간다. 오늘의 영덕이 12년 뒤 또 하나의 천막이 되지 않도록.
발전소는 남는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글쓴이: 최경숙 환경운동연합 정책변화팀 활동가
신규 핵발전소 저지 전국 탈핵 순례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핵발전소 추가 말라!>3화
울진 순례 사흘
김형연·이정숙 울진 순례단, 사흘 동안 47.7km 걸으며 만난 울진의 목소리
경북 울진에 들어서면 바다가 먼저 보인다. 산과 바다가 맞닿은 길, 마을회관과 편의점, 밭과 어촌이 이어진다. 그 풍경 사이로 송전탑이 나타나고, 조금 더 걸으면 거대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와 마을 사이에 발전소가 있고, 발전소와 송전탑 사이에 사람이 산다.
울진 순례단은 둘이다. 김형연 동해삼척기후위기비상행동 청년위원장과 이정숙 공동대표. 9월 1일 한울핵발전소를 출발해 울진군청까지 17.4km, 이튿날 오산보건진료소까지 16.4km, 사흘째 기성역까지 13.9km. 사흘 동안 47.7km를 걸었다.
나는 영광을 걷고 있어 그 길에 서지 못했다. 대신 저녁마다 두 사람의 기록과 목소리를 건네받았다. 이번 회차는 동해안을 걷는 둘의 사흘이다.
울진 한울원전 앞에서 출정 기자회견을 하는 순례단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울진은 어차피 죽는 땅
자신을 집돌이라고 소개하는 김형연 활동가가 길 위에서 전한 말이 있다.
"울진은 어차피 죽는 땅."
울진의 한 관광 해설사에게 들었다는 문장이다. 그 말을 하는 해설사의 목소리에 분노는 없었다고 했다. 항의도 없었다고 했다. 관광을 안내하는 사람이 자기가 안내하는 땅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섬뜩한 것은 문장이 아니라 문장에 아무 힘도 실려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핵발전소에 오래 기대온 지역이 다른 미래를 상상하기 어려워졌을 때 나오는 말이다.
김형연씨가 울진에서 가장 불안하게 여기는 것도 핵발전소 자체가 아니라 핵발전에 종속된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먼저 포기하고, 그 포기가 다시 핵발전을 불러들이는 순환.
그는 울진을 걸으며 느낀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생태계가 경제에 압도돼 있는 상태예요. 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의 도시이지, 절대 주민의 도시가 아니에요."
핵발전소가 지역에 돈을 가져온다는 말은 맞다. 문제는 그것이 무엇과 바꾼 돈이냐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에 가격을 매기는 데 익숙하다. 바다에는 어업 보상금이, 산에는 송전선로 보상비가, 발전소 곁 마을에는 지원금이 매겨진다. 숫자가 붙는 순간 훼손된 자연도 빼앗긴 자리도 계산이 끝난 일이 된다. 그러나 사라진 오징어와 떠난 청년은 그 값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걷는 사람의 눈에 핵발전소는 풍경의 배경으로 물러나 있지 않다. 마을회관 옆에 있고, 밭 너머에 있고, 바다를 마주 보고 있다. 걸어서 지나가야만 그 배치가 보인다.
푸른 바다를 뒤로 한, 핵발전의 도시 울진을 알리는 조형물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열세 기에서 열일곱 기로
경주 월성원자력본부에서는 월성 2·3·4호기와 신월성 1·2호기 다섯 기가 돌아간다. 울진에서는 한울 1~6호기와 신한울 1·2호기 여덟 기가 돌아간다. 경북 동해안에서만 가동 중인 원자로가 열세 기다.
여기에 신한울 3·4호기가 더해진다. 한수원은 지난해 5월 3호기 본 공사를 착수했고, 올해 5월 29일에는 4호기 원자로건물 기초지반에 첫 콘크리트를 부었다. 3호기는 2032년, 4호기는 2033년 준공이 목표다.
그리고 영덕이 있다. 지난 6월 17일 한수원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신규 대형핵발전소 2기의 부지로 영덕군을 선정했다. 1기당 1.4GW, 합쳐서 2.8GW. 2037년과 2038년 준공, 이후 60년 가동이 목표다. 열셋에 둘을 더하고 다시 둘을 더하면 열일곱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명분은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가 끌어 올린 전력수요다. 그런데 길 위에서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금 급하다는 전기를 10년도 더 지나야 돌아가는 발전소로 대겠다고 한다. 12차 전기본이 새로 넣겠다는 핵발전소는 그보다도 뒤다. 급한 것은 전기가 아니라 착공이다.
부지를 정한 방식도 그렇다. 한수원 부지선정평가위원회는 영덕군에 91.01점, 울주군에 82.63점을 매겨 영덕을 확정했다. 부지 적정성과 환경성, 건설 적합성, 주민 수용성에 무엇을 근거로 점수가 갈렸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영덕 주민들은 3개월 만에 이 작업이 가능한지 묻는다. 15년 전 조사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영덕은 1989년부터 핵폐기장과 핵발전소 건설을 주민의 힘으로 세 번 막아냈고, 2015년 주민투표를 거쳐 2021년 천지원전 백지화를 끌어냈다. 그 결과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돌릴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는가. 주민의 뜻을 물었다는 말은 또 무엇이 되는가.
말할 수 없는 사람들
두 사람은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하나같이 슬픔이 배어 있었다고 전했다. 어떤 사람들이 사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비슷했다. 지역주민 반, 발전소 공사 인력 반. 핵발전소가 없으면 지역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의존도가 거의 절대적이라고 했다.
핵발전소가 들어오기 전 울진은 어촌이었다. 오징어도 가자미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잡히지 않는다. 살아남으려면 발전소에서 나오는 돈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농사도 예전 같지 않아 결국 발전소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굴뚝 없는 깨끗한 공장인 줄 알았다고 했다.
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의 말도 있었다. 핵발전을 반대하는 이유는 핵폐기물 때문이라고, 그것만 아니라면 다르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런 말을 밖에서는 하지 못한다고 했다. 활동에 나서면 손가락질받는다는 것이다.
위험을 가장 가까이에서 아는 사람이 그 위험을 말하지 못하는 곳. 우려를 말하면 곧바로 지역경제를 해치는 사람이 되는 곳. 발전소는 산업시설을 넘어 지역의 말과 관계까지 쥐고 있었다. 오래 버텨온 활동가들이 지쳐 물러났다는 이야기도 여러 번 들었다.
지원금은 한 세대가 쓰고 위험은 여러 세대가 진다. 어업이 무너지고, 청년이 떠나고, 남은 이들은 발전소 일자리에 묶인다. 그리고 지역경제가 약해질수록 다음 시설을 받아들일 수용성 점수는 올라간다. 우리는 이것을 지역 발전이라 부르지 않는다. 핵발전 종속이라 부른다.
두 사람이 걷는 동안에도 발전소는 멈추고 있었다. 8월 19일 오전 한울 4호기가 운전 중 자동 정지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사건조사에 들어갔다. 그에 앞서 8월 3일에는 한울 6호기에서 옮겨온 사용후핵연료를 신한울 2호기 저장조에 넣는 준비 작업 중 운전원의 오조작으로 붕산수 125.6ℓ가 외부로 누출됐다.
한울원자력본부는 누설수를 회수하고 사고 구역을 통제한 뒤 아스콘과 일부 콘크리트를 제거하는 등 제염 작업을 진행했다. 제염 이후 주변 방사선 준위는 자연방사선 수준이며 발전소 부지 외부에 미친 영향은 없었다는 게 한울본부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 사고가 3주가 지나도록 지역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뒤늦게 사실을 안 울진군의회 원전관련특별위원회와 한울원전환경감시위원회, 한울원자력안전협의회는 8월 27일 공동성명을 내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주민이 참여하는 조사 기구를 구성하라고 요구했다. 무엇이 새어 나갔는지보다 무엇이 전해지지 않았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그래서 더 어려운 질문
신한울 3,4호기 건설 현장을 지나는 두명의 탈핵 순례자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저녁이면 둘뿐인 순례단은 노곤한 몸을 풀고 서로에게 묻는다. 왜 이 길을 걷느냐고.
"핵발전소를 막으려고."
"한수원과 국가가 하는 말을 그냥 듣고 있을 수 없어서요."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냐는 물음에는 "지구 위에 있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길 위에서 받은 것도 있었다. 지역 사람들이 건네준 설익은 고구마 몇 덩이, 눈 맞춤, 지나가며 보내는 응원. 둘뿐인 순례단에는 하루치의 몫이다.
울진에서 우리는 찬성한다는 사람도 반대한다는 사람도 만났다. 없으면 지역경제가 무너진다는 말과 핵폐기물 때문에 결국 없어져야 한다는 말을 같은 마을에서 들었다. 모순돼 보이지만 하나의 현실에서 나온 말이다. 핵발전소가 지역의 삶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왔다.
그래서 이 길은 우리에게 더 어려운 질문을 남긴다. 핵발전소를 없앨 것인가가 아니라, 핵발전소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 답이 없다면 탈핵은 지역에 또 하나의 희생을 요구하는 말이 된다.
월성 나아리에는 12년째 천막이 서 있다. 이주만 시켜 달라며 시작된 그 천막은, 국가가 지역 주민에게 얼마나 오래 답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두 사람은 그 앞을 지나 서울로 간다. 오늘의 영덕이 12년 뒤 또 하나의 천막이 되지 않도록.
발전소는 남는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글쓴이: 최경숙 환경운동연합 정책변화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