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1일과 12일에 실시된 주민투표를 통해 ‘영덕 핵발전소 유치 반대 91.7%’라는 영덕군민의 뜻이 확인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때 함께했던 이들과 소소한 소회를 나누고 식사라도 하자는 제안이 있어 영덕으로 향했다.
올해 3월 25일 오후 5시 52분, 의성에서 발생한 불이 번지면서 시작된 산불은 나흘 만에 진압되었지만, 영덕에서는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주민 838명이 대피했고, 주택 945채가 완전히 소실되었으며 강구항에 정박해 있던 배 12척도 불탔다. 기록으로는 이렇게 적을 수 있지만, 영덕으로 향하는 길에 마주친 화마의 흔적은 몇 줄의 기록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무섭고 무거웠다.
영덕 핵발전소 건설 예정지였던 노물리는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와 작은 항구가 있는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3월의 화마로 얼룩져 마을에서 항구로 이어지던 길도 통제되고, 베어낸 나무들과 철거된 집터만이 남아 있다. 10년 전, 헌법이 보장한 민주주의 원칙과 지방자치의 실현을 위해 주민투표를 성사시키고 승리를 거두었던 그 현장은, 지금은 타버린 주택과 한쪽에 세워진 가설주택만이 남아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진설명: 노물리 바다로 내려가는 산책로의 중간 중간이 불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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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산불로 집을 잃은 주민들에게 제공된 가설주택, 주민들은 2년뒤 이 주택을 매입하든가 자신이 살 던 집으로 이주해야 한다.
타버린 산비탈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만약 그때 신규 핵발전소를 막아내지 못해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면, 건설 중이던 핵발전소 역시 불길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니, 자연을 통제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 우리의 오만함에 대한 반성이 절로 들었다.

사진설명: 노물리 항구로 내려가는 길. 집과 나무가 있었던 곳이지만, 산불 이후 집터는 철거되고, 나무는 베어졌다. 이 길은 현재 통제중.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핵발전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수명이 다하면 문을 닫고, 새로운 핵발전소 건설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대형 핵사고를 겪고도, 정부와 핵산업계는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 2015년 당시 이미 스물네 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또다시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며 예정지를 발표했다. 이에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너무나 당연했다.
특히 영덕은 198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까지 세 차례나 핵폐기장 건설 시도를 막아낸 치열한 투쟁의 현장이었다. 그런 역사적 경험이 있었기에 누구보다 먼저 강하게 저항의 깃발을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영덕의 핵발전소 반대 운동은 지역 차원의 저항을 넘어, 전국적인 탈핵 의제로 확장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영덕 주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했다. 장날 자체 홍보물을 나눠주기도 하고, 무기한 1인 릴레이 시위, 해맞이공원 타종식 기습 행동 등의 저항 운동을 이어나갔다.
2015년 당시 영덕핵발전소찬반주민투표추진위원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영덕군민의 68.3%는 신규 원전 건설 부지 선정에 앞서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비록 당시 영덕군수와 영덕군은 주민투표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영덕군민들은 민간 주도의 주민투표에도 참여 의사를 밝히며 주민주권 실천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회피한 ‘주민 동의’ 절차를 주민 스스로 설계하고 집행해 민주주의를 완성하겠다는 결심이었다.
추진위는 영덕핵발전소가 건설될 경우 영덕군 전역이 반경 30km 방사선비상계획구역에 포함된다며, 영덕의 미래는 영덕군민이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주민투표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섰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행정자치부,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주민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허위사실 유포, 금품·향응 제공, 관광 보내기 등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한 것이다. 영덕군 역시 주민투표를 위한 선거인단 명부 공개를 거부하며 절차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영덕 주민들은 어떤 방해에도 굴하지 않았다. 주민들의 이 굳은 의지는 전국 각지의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자원봉사자로 영덕으로 모이게 하는 힘이 되었다. 선거인단 명부가 제공되지 않자, 영덕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직접 가가호호 방문하며 선거인 명부 동의서 1만5천 명을 확보하는 등 초밀착 조직화를 통해 주민들의 의지를 모아냈다.

사진설명: 2015년 선거인 명부 대신 주민 동의서를 받으러 다니는 어린이. 영덕에 연대하기 위해 서울에서 엄마와 함께 방문한 이 어린이는 현재 중학생이 되었다.
사진출처:기린숲
2015년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이틀간 실시된 주민투표에는 총 11,209명이 참여해 선거인명부 대비 60.3%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그 결과 신규 핵발전소 건설 반대가 91.7%(10,274표)에 이르렀다. 정부와 핵산업계가 온갖 술수를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 유치를 반대하는 영덕군민들의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승리는 주민들의 것이었다.
영덕 주민들의 민주적 정당성으로 막아낸 신규 핵발전소 논의가,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유령처럼 영덕을 맴돌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마련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또다시 핵발전소 건설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내란 사태로 정통성을 상실한 윤석열 정부의 정책적 유산을, 이재명 정부가 다른 분야에서는 개혁을 서두르면서도 유독 핵발전 정책만은 그대로 계승하려는 듯한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다.
지금 영덕에서 다시 떠오르는 신규 핵발전소와 고리 2호기 수명 연장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일들은 단순한 에너지 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후쿠시마 이후 한국 사회가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민주주의 절차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지,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권리를 어디까지 존중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2015년 영덕 주민들이 보여준 저항과 참여는 그 자체로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성취였다. 주민들이 스스로의 삶을 지키기 위해 만든 절차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존중받아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며, 국가가 지켜야 할 책임의 출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부는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핵발전 확대,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주민 의견 묵살은 모두 동일한 문제를 가리킨다.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진정한 신념이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영덕 주민들이 지난 10년 동안 스스로 지켜온 민주적 결정과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일, 그리고 원안위의 위법적·졸속 결정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더 나아가, 핵발전에 의존하지 않고도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의 길을 마련하는 것은 현 정부가 반드시 져야 할 책임이다.
영덕에서 시작된 주민들의 거대한 용기와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기본을 세워야 한다. 주민의 생명과 안전이 국가의 에너지 전략보다 앞서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확고한 원칙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며,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끝까지 지켜내야 할 공동의 과제이다.
2015년 11월 11일과 12일에 실시된 주민투표를 통해 ‘영덕 핵발전소 유치 반대 91.7%’라는 영덕군민의 뜻이 확인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때 함께했던 이들과 소소한 소회를 나누고 식사라도 하자는 제안이 있어 영덕으로 향했다.
올해 3월 25일 오후 5시 52분, 의성에서 발생한 불이 번지면서 시작된 산불은 나흘 만에 진압되었지만, 영덕에서는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주민 838명이 대피했고, 주택 945채가 완전히 소실되었으며 강구항에 정박해 있던 배 12척도 불탔다. 기록으로는 이렇게 적을 수 있지만, 영덕으로 향하는 길에 마주친 화마의 흔적은 몇 줄의 기록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무섭고 무거웠다.
영덕 핵발전소 건설 예정지였던 노물리는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와 작은 항구가 있는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3월의 화마로 얼룩져 마을에서 항구로 이어지던 길도 통제되고, 베어낸 나무들과 철거된 집터만이 남아 있다. 10년 전, 헌법이 보장한 민주주의 원칙과 지방자치의 실현을 위해 주민투표를 성사시키고 승리를 거두었던 그 현장은, 지금은 타버린 주택과 한쪽에 세워진 가설주택만이 남아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진설명: 노물리 바다로 내려가는 산책로의 중간 중간이 불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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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산불로 집을 잃은 주민들에게 제공된 가설주택, 주민들은 2년뒤 이 주택을 매입하든가 자신이 살 던 집으로 이주해야 한다.
타버린 산비탈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만약 그때 신규 핵발전소를 막아내지 못해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면, 건설 중이던 핵발전소 역시 불길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니, 자연을 통제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 우리의 오만함에 대한 반성이 절로 들었다.
사진설명: 노물리 항구로 내려가는 길. 집과 나무가 있었던 곳이지만, 산불 이후 집터는 철거되고, 나무는 베어졌다. 이 길은 현재 통제중.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핵발전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수명이 다하면 문을 닫고, 새로운 핵발전소 건설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대형 핵사고를 겪고도, 정부와 핵산업계는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 2015년 당시 이미 스물네 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또다시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며 예정지를 발표했다. 이에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너무나 당연했다.
특히 영덕은 198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까지 세 차례나 핵폐기장 건설 시도를 막아낸 치열한 투쟁의 현장이었다. 그런 역사적 경험이 있었기에 누구보다 먼저 강하게 저항의 깃발을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영덕의 핵발전소 반대 운동은 지역 차원의 저항을 넘어, 전국적인 탈핵 의제로 확장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영덕 주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했다. 장날 자체 홍보물을 나눠주기도 하고, 무기한 1인 릴레이 시위, 해맞이공원 타종식 기습 행동 등의 저항 운동을 이어나갔다.
2015년 당시 영덕핵발전소찬반주민투표추진위원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영덕군민의 68.3%는 신규 원전 건설 부지 선정에 앞서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비록 당시 영덕군수와 영덕군은 주민투표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영덕군민들은 민간 주도의 주민투표에도 참여 의사를 밝히며 주민주권 실천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회피한 ‘주민 동의’ 절차를 주민 스스로 설계하고 집행해 민주주의를 완성하겠다는 결심이었다.
추진위는 영덕핵발전소가 건설될 경우 영덕군 전역이 반경 30km 방사선비상계획구역에 포함된다며, 영덕의 미래는 영덕군민이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주민투표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섰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행정자치부,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주민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허위사실 유포, 금품·향응 제공, 관광 보내기 등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한 것이다. 영덕군 역시 주민투표를 위한 선거인단 명부 공개를 거부하며 절차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영덕 주민들은 어떤 방해에도 굴하지 않았다. 주민들의 이 굳은 의지는 전국 각지의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자원봉사자로 영덕으로 모이게 하는 힘이 되었다. 선거인단 명부가 제공되지 않자, 영덕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직접 가가호호 방문하며 선거인 명부 동의서 1만5천 명을 확보하는 등 초밀착 조직화를 통해 주민들의 의지를 모아냈다.
사진설명: 2015년 선거인 명부 대신 주민 동의서를 받으러 다니는 어린이. 영덕에 연대하기 위해 서울에서 엄마와 함께 방문한 이 어린이는 현재 중학생이 되었다.
사진출처:기린숲
2015년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이틀간 실시된 주민투표에는 총 11,209명이 참여해 선거인명부 대비 60.3%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그 결과 신규 핵발전소 건설 반대가 91.7%(10,274표)에 이르렀다. 정부와 핵산업계가 온갖 술수를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 유치를 반대하는 영덕군민들의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승리는 주민들의 것이었다.
영덕 주민들의 민주적 정당성으로 막아낸 신규 핵발전소 논의가,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유령처럼 영덕을 맴돌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마련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또다시 핵발전소 건설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내란 사태로 정통성을 상실한 윤석열 정부의 정책적 유산을, 이재명 정부가 다른 분야에서는 개혁을 서두르면서도 유독 핵발전 정책만은 그대로 계승하려는 듯한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다.
지금 영덕에서 다시 떠오르는 신규 핵발전소와 고리 2호기 수명 연장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일들은 단순한 에너지 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후쿠시마 이후 한국 사회가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민주주의 절차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지,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권리를 어디까지 존중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2015년 영덕 주민들이 보여준 저항과 참여는 그 자체로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성취였다. 주민들이 스스로의 삶을 지키기 위해 만든 절차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존중받아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며, 국가가 지켜야 할 책임의 출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부는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핵발전 확대,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주민 의견 묵살은 모두 동일한 문제를 가리킨다.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진정한 신념이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영덕 주민들이 지난 10년 동안 스스로 지켜온 민주적 결정과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일, 그리고 원안위의 위법적·졸속 결정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더 나아가, 핵발전에 의존하지 않고도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의 길을 마련하는 것은 현 정부가 반드시 져야 할 책임이다.
영덕에서 시작된 주민들의 거대한 용기와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기본을 세워야 한다. 주민의 생명과 안전이 국가의 에너지 전략보다 앞서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확고한 원칙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며,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끝까지 지켜내야 할 공동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