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 반도체 산단 재검토·송전탑 반대 전국 대행진 마지막 회]
대통령은 끝내 답하지 않았다.
해남 영암 나주 광주 고창 정읍 부안 전주 완주 임실 진안 장수 무주 대전 예산 서천 금산 홍성 당진 서산 보령 천안 공주 논산 부여 청주 용인 서울.
8월 20일 오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읽힌 공동선언문은 지역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스물일곱 개였다.
한 달 내내 폭염이었다. 마지막 날에는 비가 내렸다.
법원 앞에서 시작한 마지막 날
오전 9시 30분, 서울고등법원 앞이었다.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 계획 승인처분 취소소송의 항소심 변론이 열리는 날이었다. 행진단은 계획 취소에 동의하는 시민 7905명의 서명을 법원에 전달했다.
김현정 경기행동 집행위원장은 세 가지를 쟁점으로 세웠다고 했다. 기업이전단지 계획이 있었는데도 환경영향평가에서 빠진 채 승인이 난 것, 입지 선정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과 용수 공급이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것, 용인에 전기를 대기 위해 전국에 345kV 송전선로를 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삼성 서초 본관 앞 기자회견삼성전자가 용인에 건설하겠다는 반도체 공장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건설될 송전탑으로 인해 이 행진이 시작되었다.
ⓒ 환경운동연합
행렬은 강남역을 지나 11시 30분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 닿았다. 사흘 전 청주 SK하이닉스 3공장 앞과 같은 구도였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그 전기를 쓸 기업이, 다른 한쪽에는 그 송전선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후 1시,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다시 걸음이 시작됐다. 우산과 피켓, 송전탑 모형이 앞에 섰다. 청와대 사랑채 앞까지 30분 거리였다. 오후 2시 집회에는 천여 명이 모였다.
광주전남대책위 정철 공동대표는 해남군청 앞에 검은 지도가 펼쳐지던 첫날을 다시 불러왔다. 최대 피해지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이웃 지역과 노선을 다투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이웃에게 떠넘기지 않는 것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염치라고 했다. 없는 것은 기술도 재원도 아니라고 했다. 절차이고, 합의이고, 염치라고 했다.
보고는 숫자로 이어졌다. 전북은 345kV 26개 사업 1070km에 철탑 2200기, 14개 시군 전역이 경과지다. 충남은 이미 선 4000기 위에 노선 10개가 더 얹힌다. 충북은 단양을 뺀 10개 시군 모두다. 조경희 전북대책위 상임대표는 필요한 것이 서울로 가는 송전탑 고속도로가 아니라 지역에서 쓰는 배전망이라고 했다. 한동희 충남대책위 상임위원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수도권이 수요를 줄이려는 노력도 없이 부담만 넘긴다면 단 1kW도 보낼 수 없다고 했다.
대전주민송전탑백지화대책위 김재용 위원장은 개발독재의 유령이 아직 맴돌고 있다고 했다. 몇몇 주민을 들러리로 세워 언론 플레이를 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야말로 그 잔재라는 것이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영이 회장은 어느 지역도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한 달의 걸음이 남긴 힘이라고 했다.
안재훈 전국행동 집행위원장은 이 길이 전력정책의 현실을 확인하는 길이었다고 했다. 특정 기업을 위해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비수도권을 수도권의 전력식민지로 굳히는 길이었다는 것이다. 길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결같이 왜 묻지도 않고 결정하느냐고 물었다. 원한 것은 더 많은 돈도, 옆 동네로 선을 밀어내는 것도 아니었다. 왜 필요한지, 왜 이곳인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설명하고 함께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광화문 광장을 지나는 행진단용인반도체산단 재검토와 송전탑을 반대하며 약 한달간 걸어온 행진단이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 환경운동연합
그 시각 국회에서는
주민들이 답을 기다리던 그날, 국회 본회의에서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기존 송전사업자뿐 아니라 민간사업자도 국가기간 전력망 개발사업의 시행자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연 법이다. 민간이 송전망을 지은 뒤 완공된 설비를 한국전력에 넘기는 방식이다.
왜 이렇게 많은 송전망이 필요하냐고 묻는 동안, 통과된 것은 그것을 더 빨리 짓는 법이었다.
같은 날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 재전망 토론회를 열었다.
2040년 전망에서 첨단산업의 추가 최대전력은 24.3~24.6GW, 데이터센터는 11.9GW였다. 합치면 36GW를 넘는다. 넉 달 전인 4월 전망보다 약 28GW가 늘었다. 정부는 메가프로젝트에 따른 기업 투자계획을 다시 조사해 그 수요를 전량 반영했다고 밝혔다.
김성환 장관은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해졌다고 했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를 위한 전력을 국가의 전략과제이자 안보자산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재생에너지와 일부 원전을 섞겠다고 했다. 수요와 공급의 언어였다. 그 전기가 지나갈 지역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송전선로를 두고는 주민 간담회를 세 차례 열었다고 했다. 한 입 가지고 두말한 적은 없다고 했다.
세 번이었다. 걸어온 지역은 스물일곱 곳이었다. 8월 5일 간담회에는 주민 대여섯 명이 앉았고, 정부는 그 자리를 두고 갈등이 해소된 것처럼 발표했다. 두말하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일 수 있다. 남는 질문은 그 한 입이 누구를 향해 열렸는가다.
이름과 달리 토론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준비해 온 원고를 읽었다. 물을 것이 많았지만 마이크는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장관은 대신 개인적으로 이야기하자고 했다. 우리가 하려던 말은 김성환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공론장에서 장관에게 묻고 답을 듣고 싶었다.
결국 밀양에서 온 사람이 자리에서 소리를 냈다. 행정대집행 12년이 지났는데 할머니들은 아직 마을회관에 가지 못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한다고 했다. 자신을 붙들고 장례식만 잘 치러 달라고 하신다고 했다. 국가가 무슨 권리로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느냐고 물었다.
경주에서 온 사람은 나아리의 12년을 물었다. 월성 핵발전소 옆에서 사람들이 병들고, 재산권을 잃고, 이웃이 하나씩 떠났다고 했다. 이주만 시켜 달라는 요구가 12년째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 책임도 지지 못하면서 핵발전소를 더 짓는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장관은 답하지 않았다. 12년 전의 일에 답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다음 12년의 노선이 정해지고 있었다.

▲송전탑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앞세운 채 청와대를 향해 행진중인 행진단용인반도체산단 재검토와 송전탑을 반대하며 약 한 달간 걸어온 행진단이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 환경운동연합
답하지 않는 것도 답이다
저녁 7시 30분부터 문화제가 열렸다. 답답한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위로하는 공연이 이어졌다. 그렇게 시간을 쌓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산성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고, 차량이 막아선 남태령에서도 고립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절망 속에서도 노래하며 힘을 냈다.
밤 9시 30분, 사람들은 사랑채 앞 인도에 자리를 폈다. 해남에서 출발한 행진단과 경과지 주민들이 함께였다. 스물두 날 동안 트랙터와 트럭을 앞세우고 걸었던 사람들이다. 담벼락 아래는 좁았다. 자리를 좁혀 앉으면 옆 사람의 어깨가 닿았다. 걸어온 얼굴들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밤을 새웠다. 대통령은 응답하지 않았다. 그 밤, 사람들은 서로에게 응답했다.
담벼락 이쪽에서만 응답이 오갔다. 답하지 않은 시간도 지워지지 않는다. 밀양의 12년이 그랬고, 나아리의 12년이 그렇다.

▲ 청와대 사랑채 앞 담벼락에 기대어 밤을 새우는 행진 참가자들 ⓒ 환경운동연합
8월 21일 오전 9시, 같은 자리에서 마무리 기자회견이 열렸다. 대통령실은 끝내 답하지 않았다.
수요는 결국 공급으로 이어진다. 아직 짓지 않은 시설의 전력사용량이 확정된 수요처럼 반영되면 부족이 만들어지고, 그 부족은 다시 핵발전소를 더 짓고 더 오래 돌릴 명분이 된다. 그렇게 만든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또 다른 지역에 초고압 송전선로가 들어선다.
지역이 떠안는 목록은 이미 길다. 철탑을 떠안고, 그 철탑이 실어 나를 전기가 만드는 기후재난을 떠안고, 석탄발전 폐쇄가 미뤄지면 한 번 더 떠안는다. 이제 그 목록에 핵폐기물이 얹히려 한다.
스물두 날을 걸었다. 넉 달 만에 28GW가 늘었다. 걸음의 속도와 계획의 속도는 애초에 겨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길에서 만난 목소리 가운데 가장 짧은 말은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사흘 전 청주 옥산의 아침, 구호를 외칠 차례가 되자 사회자는 현수막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재검토'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백지화로 바꿔 외치겠다고 말한 뒤 선창했다. 그 한마디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21일 아침 청와대 앞에서 분명해졌다.
7월 30일 해남에서 우리는 이렇게 썼다. 송전선로는 지도 위에서는 선이지만 땅 위에서는 삶이다. 걷는 일은 우리의 몫이지만 답하는 일은 대통령의 몫이다.
걷는 일은 끝냈다. 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답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답이다. 우리는 그 답을 기록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지역으로 돌아갔다. 돌아간 곳마다 노선이 지난다.
다음에 이 선이 다시 그어질 때, 스물일곱 개의 이름을 부르며 걸었던 이 한 달은 어디에 적혀 있을 것인가.
글쓴이: 최경숙 환경운동연합 정책변화팀 활동가
[용인 반도체 산단 재검토·송전탑 반대 전국 대행진 마지막 회]
대통령은 끝내 답하지 않았다.
해남 영암 나주 광주 고창 정읍 부안 전주 완주 임실 진안 장수 무주 대전 예산 서천 금산 홍성 당진 서산 보령 천안 공주 논산 부여 청주 용인 서울.
8월 20일 오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읽힌 공동선언문은 지역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스물일곱 개였다.
한 달 내내 폭염이었다. 마지막 날에는 비가 내렸다.
법원 앞에서 시작한 마지막 날
오전 9시 30분, 서울고등법원 앞이었다.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 계획 승인처분 취소소송의 항소심 변론이 열리는 날이었다. 행진단은 계획 취소에 동의하는 시민 7905명의 서명을 법원에 전달했다.
김현정 경기행동 집행위원장은 세 가지를 쟁점으로 세웠다고 했다. 기업이전단지 계획이 있었는데도 환경영향평가에서 빠진 채 승인이 난 것, 입지 선정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과 용수 공급이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것, 용인에 전기를 대기 위해 전국에 345kV 송전선로를 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삼성 서초 본관 앞 기자회견삼성전자가 용인에 건설하겠다는 반도체 공장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건설될 송전탑으로 인해 이 행진이 시작되었다.
ⓒ 환경운동연합
행렬은 강남역을 지나 11시 30분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 닿았다. 사흘 전 청주 SK하이닉스 3공장 앞과 같은 구도였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그 전기를 쓸 기업이, 다른 한쪽에는 그 송전선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후 1시,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다시 걸음이 시작됐다. 우산과 피켓, 송전탑 모형이 앞에 섰다. 청와대 사랑채 앞까지 30분 거리였다. 오후 2시 집회에는 천여 명이 모였다.
광주전남대책위 정철 공동대표는 해남군청 앞에 검은 지도가 펼쳐지던 첫날을 다시 불러왔다. 최대 피해지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이웃 지역과 노선을 다투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이웃에게 떠넘기지 않는 것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염치라고 했다. 없는 것은 기술도 재원도 아니라고 했다. 절차이고, 합의이고, 염치라고 했다.
보고는 숫자로 이어졌다. 전북은 345kV 26개 사업 1070km에 철탑 2200기, 14개 시군 전역이 경과지다. 충남은 이미 선 4000기 위에 노선 10개가 더 얹힌다. 충북은 단양을 뺀 10개 시군 모두다. 조경희 전북대책위 상임대표는 필요한 것이 서울로 가는 송전탑 고속도로가 아니라 지역에서 쓰는 배전망이라고 했다. 한동희 충남대책위 상임위원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수도권이 수요를 줄이려는 노력도 없이 부담만 넘긴다면 단 1kW도 보낼 수 없다고 했다.
대전주민송전탑백지화대책위 김재용 위원장은 개발독재의 유령이 아직 맴돌고 있다고 했다. 몇몇 주민을 들러리로 세워 언론 플레이를 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야말로 그 잔재라는 것이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영이 회장은 어느 지역도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한 달의 걸음이 남긴 힘이라고 했다.
안재훈 전국행동 집행위원장은 이 길이 전력정책의 현실을 확인하는 길이었다고 했다. 특정 기업을 위해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비수도권을 수도권의 전력식민지로 굳히는 길이었다는 것이다. 길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결같이 왜 묻지도 않고 결정하느냐고 물었다. 원한 것은 더 많은 돈도, 옆 동네로 선을 밀어내는 것도 아니었다. 왜 필요한지, 왜 이곳인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설명하고 함께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광화문 광장을 지나는 행진단용인반도체산단 재검토와 송전탑을 반대하며 약 한달간 걸어온 행진단이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 환경운동연합
그 시각 국회에서는
주민들이 답을 기다리던 그날, 국회 본회의에서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기존 송전사업자뿐 아니라 민간사업자도 국가기간 전력망 개발사업의 시행자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연 법이다. 민간이 송전망을 지은 뒤 완공된 설비를 한국전력에 넘기는 방식이다.
왜 이렇게 많은 송전망이 필요하냐고 묻는 동안, 통과된 것은 그것을 더 빨리 짓는 법이었다.
같은 날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 재전망 토론회를 열었다.
2040년 전망에서 첨단산업의 추가 최대전력은 24.3~24.6GW, 데이터센터는 11.9GW였다. 합치면 36GW를 넘는다. 넉 달 전인 4월 전망보다 약 28GW가 늘었다. 정부는 메가프로젝트에 따른 기업 투자계획을 다시 조사해 그 수요를 전량 반영했다고 밝혔다.
김성환 장관은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해졌다고 했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를 위한 전력을 국가의 전략과제이자 안보자산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재생에너지와 일부 원전을 섞겠다고 했다. 수요와 공급의 언어였다. 그 전기가 지나갈 지역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송전선로를 두고는 주민 간담회를 세 차례 열었다고 했다. 한 입 가지고 두말한 적은 없다고 했다.
세 번이었다. 걸어온 지역은 스물일곱 곳이었다. 8월 5일 간담회에는 주민 대여섯 명이 앉았고, 정부는 그 자리를 두고 갈등이 해소된 것처럼 발표했다. 두말하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일 수 있다. 남는 질문은 그 한 입이 누구를 향해 열렸는가다.
이름과 달리 토론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준비해 온 원고를 읽었다. 물을 것이 많았지만 마이크는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장관은 대신 개인적으로 이야기하자고 했다. 우리가 하려던 말은 김성환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공론장에서 장관에게 묻고 답을 듣고 싶었다.
결국 밀양에서 온 사람이 자리에서 소리를 냈다. 행정대집행 12년이 지났는데 할머니들은 아직 마을회관에 가지 못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한다고 했다. 자신을 붙들고 장례식만 잘 치러 달라고 하신다고 했다. 국가가 무슨 권리로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느냐고 물었다.
경주에서 온 사람은 나아리의 12년을 물었다. 월성 핵발전소 옆에서 사람들이 병들고, 재산권을 잃고, 이웃이 하나씩 떠났다고 했다. 이주만 시켜 달라는 요구가 12년째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 책임도 지지 못하면서 핵발전소를 더 짓는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장관은 답하지 않았다. 12년 전의 일에 답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다음 12년의 노선이 정해지고 있었다.
▲송전탑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앞세운 채 청와대를 향해 행진중인 행진단용인반도체산단 재검토와 송전탑을 반대하며 약 한 달간 걸어온 행진단이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 환경운동연합
답하지 않는 것도 답이다
저녁 7시 30분부터 문화제가 열렸다. 답답한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위로하는 공연이 이어졌다. 그렇게 시간을 쌓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산성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고, 차량이 막아선 남태령에서도 고립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절망 속에서도 노래하며 힘을 냈다.
밤 9시 30분, 사람들은 사랑채 앞 인도에 자리를 폈다. 해남에서 출발한 행진단과 경과지 주민들이 함께였다. 스물두 날 동안 트랙터와 트럭을 앞세우고 걸었던 사람들이다. 담벼락 아래는 좁았다. 자리를 좁혀 앉으면 옆 사람의 어깨가 닿았다. 걸어온 얼굴들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밤을 새웠다. 대통령은 응답하지 않았다. 그 밤, 사람들은 서로에게 응답했다.
담벼락 이쪽에서만 응답이 오갔다. 답하지 않은 시간도 지워지지 않는다. 밀양의 12년이 그랬고, 나아리의 12년이 그렇다.
▲ 청와대 사랑채 앞 담벼락에 기대어 밤을 새우는 행진 참가자들 ⓒ 환경운동연합
8월 21일 오전 9시, 같은 자리에서 마무리 기자회견이 열렸다. 대통령실은 끝내 답하지 않았다.
수요는 결국 공급으로 이어진다. 아직 짓지 않은 시설의 전력사용량이 확정된 수요처럼 반영되면 부족이 만들어지고, 그 부족은 다시 핵발전소를 더 짓고 더 오래 돌릴 명분이 된다. 그렇게 만든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또 다른 지역에 초고압 송전선로가 들어선다.
지역이 떠안는 목록은 이미 길다. 철탑을 떠안고, 그 철탑이 실어 나를 전기가 만드는 기후재난을 떠안고, 석탄발전 폐쇄가 미뤄지면 한 번 더 떠안는다. 이제 그 목록에 핵폐기물이 얹히려 한다.
스물두 날을 걸었다. 넉 달 만에 28GW가 늘었다. 걸음의 속도와 계획의 속도는 애초에 겨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길에서 만난 목소리 가운데 가장 짧은 말은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사흘 전 청주 옥산의 아침, 구호를 외칠 차례가 되자 사회자는 현수막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재검토'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백지화로 바꿔 외치겠다고 말한 뒤 선창했다. 그 한마디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21일 아침 청와대 앞에서 분명해졌다.
7월 30일 해남에서 우리는 이렇게 썼다. 송전선로는 지도 위에서는 선이지만 땅 위에서는 삶이다. 걷는 일은 우리의 몫이지만 답하는 일은 대통령의 몫이다.
걷는 일은 끝냈다. 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답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답이다. 우리는 그 답을 기록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지역으로 돌아갔다. 돌아간 곳마다 노선이 지난다.
다음에 이 선이 다시 그어질 때, 스물일곱 개의 이름을 부르며 걸었던 이 한 달은 어디에 적혀 있을 것인가.
글쓴이: 최경숙 환경운동연합 정책변화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