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집] 월성원전이주대책위의 12년, 당신의 기억을 나눠주세요.

여름, 산딸기 한 바구니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거대한 원전도, 상여도 아니다. 여름 햇볕 아래 놓여 있던 산딸기 한 바구니다.
어느 여름, 아마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의 천막농성이 열 해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농성장 주변으로는 원전과 송전탑, 낯선 철제 시설들이 너무도 가까이 보였다. 원전 인접지역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듣고 글로도 써봤지만, 실제로 그곳에 서면 ‘가깝다’는 말의 의미가 달라진다. 주민들의 집과 밭, 일상의 풍경 속에 원전이 너무 크고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산이나 바다처럼 보이지만, 주민들에게 원전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날 황분희 부위원장은 멀리 서울에서 왔다며 산딸기 한 바구니를 내주셨다. 우리가 온다고 미리 따서 씻어두신 산딸기였다. 그 다정함 앞에서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연대하러 왔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먼저 마음을 내어준 쪽은 주민들이었다.
손에 묻은 붉은 물과 여름의 습한 공기, 천막 안에서 주민들이 들려주던 이야기가 한 장면처럼 남았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억울함과 고통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누가 아픈지, 누가 요즘 농성장에 잘 나오지 못하는지, 오랫동안 함께했던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서로의 안부를 먼저 말했다. 열 해의 농성은 구호와 집회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

10년이 지나도, 농성장을 없애도
작년 여름 또 한 번 월성을 찾았다. 이번에는 농성장 이사를 돕기 위해서였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천막농성이 10년을 맞은 2024년, 농성장 철거 소송을 제기했다. 주민들의 이주 요구에는 답하지 않으면서, 주민들이 목소리를 내던 자리부터 없애려 했다. 법원은 결국 농성장을 철거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천막이 철거되자 한수원은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를 철제 구조물과 어색한 화단으로 채웠다. 오랫동안 농성장이 있었다는 흔적을 지워버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곳에서 11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만들고 싶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주대책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마당에 새 농성장을 만들었다. 천막을 치고 짐을 옮기고, 다가오는 태풍에 대비해 끈을 단단히 묶었다. 한여름 더위 속에서 모두의 옷이 땀에 젖었다. 농성장을 빼앗긴 날인데도 현장에는 이상할 만큼 활기가 있었다. 허탈함과 분노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 감정을 안고도 다시 천막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 기념으로 짜장면을 먹던 자리에서 황분희 부위원장은 “새로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주민들은 다시 노란 조끼를 입고 상여를 멨다. 농성장을 철거해도 농성은 계속된다는 듯, 늘 걸었던 월요일의 길을 다시 걸었다.

함께한 사람들 모두의 12년
영남권 최고기온이 40도를 웃돌며 폭염경보가 이어지던 이번 주, 환경운동연합은 월성원전이 있는 경주를 찾았다.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 주민들과 함께 월요상여행진을 걷고, 이주대책위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농성 초기부터 주민들과 함께한 사람, 한동안 월성을 떠나 있다가 다시 이주대책위를 찾은 사람, 최근에서야 이 싸움을 알게 된 사람. 월성을 기억하는 방식과 시간은 저마다 달랐다. 누군가는 같이 그림을 그렸던 순간을 떠올렸고, 누군가는 처음 상여를 끌었던 날을 기억했다. 오래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람도, 이주대책위가 있어서 고맙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주대책위의 12년이 이대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황분희 부위원장은 지난 12년 동안 만났던 수많은 이들의 얼굴을 헤아렸다. 이주대책위의 12년은 주민들만의 시간이 아니라, 곁을 지켜준 사람들 모두가 함께 만든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활동을 끝낼 수는 없다고 했다. 농성장을 접고 월요상여행진을 멈추며 운동의 방식을 바꾸더라도, 함께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되었다. 이주대책위의 12년은 주민들만의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농성장을 찾았던 사람, 함께 길을 걸었던 사람, 멀리서 소식을 전해 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저마다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당신이 기억하는 이주대책위를 들려주세요
당신은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처음 농성장을 찾았던 날, 주민들과 나누었던 대화, 상여를 함께 메고 걸었던 순간이 있을지 모른다. 농성장에서 얻어먹었던 밥이나 차 한 잔, 울고 웃었던 기억이 깊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의 천막농성은 오는 8월 25일로 12년을 맞는다. 이주대책위 주민들은 나이가 들었고, 오랜 시간 이어온 월요상여행진도 오는 9월 5일로 마무리한다. 활동의 방식을 전환하더라도 지나간 시간이 없던 일이 되지 않도록, 여러분의 기억을 모아 주민들에게 전하고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산딸기 한 바구니처럼, 한 사람의 작은 기억은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 오래 남을 수 있다. 흩어진 기억들이 모이면 주민들이 걸어온 12년은 천막이 있던 자리와 함께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9월 5일, 이주대책위의 이야기를 들으러 와주세요
9월 5일, 월성으로 와주시길 바란다. 주민들이 12년 동안 걸어온 길을 함께 걷고, 이주대책위원회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주었으면 한다. 그날은 단지 상여행진이 끝나는 날이 아니다. 우리가 주민들의 12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천막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이어갈지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이자 새로운 연대를 시작하는 날이어야 한다.
현장에 오기 어렵다면 천막농성 12년 추진위원으로 함께해도 좋다. 후원은 기념행사와 기록 제작, 주민들의 이주 요구를 이어가는 활동에 사용된다.
추진위원회 함께하기 : bit.ly/Wolsong12
당신이 기억하는 이야기 보내기 : dmssoal@gmail.com
[모집] 월성원전이주대책위의 12년, 당신의 기억을 나눠주세요.
여름, 산딸기 한 바구니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거대한 원전도, 상여도 아니다. 여름 햇볕 아래 놓여 있던 산딸기 한 바구니다.
어느 여름, 아마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의 천막농성이 열 해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농성장 주변으로는 원전과 송전탑, 낯선 철제 시설들이 너무도 가까이 보였다. 원전 인접지역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듣고 글로도 써봤지만, 실제로 그곳에 서면 ‘가깝다’는 말의 의미가 달라진다. 주민들의 집과 밭, 일상의 풍경 속에 원전이 너무 크고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산이나 바다처럼 보이지만, 주민들에게 원전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날 황분희 부위원장은 멀리 서울에서 왔다며 산딸기 한 바구니를 내주셨다. 우리가 온다고 미리 따서 씻어두신 산딸기였다. 그 다정함 앞에서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연대하러 왔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먼저 마음을 내어준 쪽은 주민들이었다.
손에 묻은 붉은 물과 여름의 습한 공기, 천막 안에서 주민들이 들려주던 이야기가 한 장면처럼 남았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억울함과 고통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누가 아픈지, 누가 요즘 농성장에 잘 나오지 못하는지, 오랫동안 함께했던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서로의 안부를 먼저 말했다. 열 해의 농성은 구호와 집회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
10년이 지나도, 농성장을 없애도
작년 여름 또 한 번 월성을 찾았다. 이번에는 농성장 이사를 돕기 위해서였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천막농성이 10년을 맞은 2024년, 농성장 철거 소송을 제기했다. 주민들의 이주 요구에는 답하지 않으면서, 주민들이 목소리를 내던 자리부터 없애려 했다. 법원은 결국 농성장을 철거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천막이 철거되자 한수원은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를 철제 구조물과 어색한 화단으로 채웠다. 오랫동안 농성장이 있었다는 흔적을 지워버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곳에서 11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만들고 싶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주대책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마당에 새 농성장을 만들었다. 천막을 치고 짐을 옮기고, 다가오는 태풍에 대비해 끈을 단단히 묶었다. 한여름 더위 속에서 모두의 옷이 땀에 젖었다. 농성장을 빼앗긴 날인데도 현장에는 이상할 만큼 활기가 있었다. 허탈함과 분노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 감정을 안고도 다시 천막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 기념으로 짜장면을 먹던 자리에서 황분희 부위원장은 “새로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주민들은 다시 노란 조끼를 입고 상여를 멨다. 농성장을 철거해도 농성은 계속된다는 듯, 늘 걸었던 월요일의 길을 다시 걸었다.
함께한 사람들 모두의 12년
영남권 최고기온이 40도를 웃돌며 폭염경보가 이어지던 이번 주, 환경운동연합은 월성원전이 있는 경주를 찾았다.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 주민들과 함께 월요상여행진을 걷고, 이주대책위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농성 초기부터 주민들과 함께한 사람, 한동안 월성을 떠나 있다가 다시 이주대책위를 찾은 사람, 최근에서야 이 싸움을 알게 된 사람. 월성을 기억하는 방식과 시간은 저마다 달랐다. 누군가는 같이 그림을 그렸던 순간을 떠올렸고, 누군가는 처음 상여를 끌었던 날을 기억했다. 오래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람도, 이주대책위가 있어서 고맙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주대책위의 12년이 이대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황분희 부위원장은 지난 12년 동안 만났던 수많은 이들의 얼굴을 헤아렸다. 이주대책위의 12년은 주민들만의 시간이 아니라, 곁을 지켜준 사람들 모두가 함께 만든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활동을 끝낼 수는 없다고 했다. 농성장을 접고 월요상여행진을 멈추며 운동의 방식을 바꾸더라도, 함께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되었다. 이주대책위의 12년은 주민들만의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농성장을 찾았던 사람, 함께 길을 걸었던 사람, 멀리서 소식을 전해 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저마다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당신이 기억하는 이주대책위를 들려주세요
당신은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처음 농성장을 찾았던 날, 주민들과 나누었던 대화, 상여를 함께 메고 걸었던 순간이 있을지 모른다. 농성장에서 얻어먹었던 밥이나 차 한 잔, 울고 웃었던 기억이 깊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의 천막농성은 오는 8월 25일로 12년을 맞는다. 이주대책위 주민들은 나이가 들었고, 오랜 시간 이어온 월요상여행진도 오는 9월 5일로 마무리한다. 활동의 방식을 전환하더라도 지나간 시간이 없던 일이 되지 않도록, 여러분의 기억을 모아 주민들에게 전하고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산딸기 한 바구니처럼, 한 사람의 작은 기억은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 오래 남을 수 있다. 흩어진 기억들이 모이면 주민들이 걸어온 12년은 천막이 있던 자리와 함께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9월 5일, 이주대책위의 이야기를 들으러 와주세요
9월 5일, 월성으로 와주시길 바란다. 주민들이 12년 동안 걸어온 길을 함께 걷고, 이주대책위원회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주었으면 한다. 그날은 단지 상여행진이 끝나는 날이 아니다. 우리가 주민들의 12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천막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이어갈지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이자 새로운 연대를 시작하는 날이어야 한다.
현장에 오기 어렵다면 천막농성 12년 추진위원으로 함께해도 좋다. 후원은 기념행사와 기록 제작, 주민들의 이주 요구를 이어가는 활동에 사용된다.
추진위원회 함께하기 : bit.ly/Wolsong12
당신이 기억하는 이야기 보내기 : dmsso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