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 탈핵


석탄발전소는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킵니다.

핵발전소는 사고와 방사능, 핵폐기물로부터 안전하지 않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석탄발전소와 핵발전소를 폐쇄하고,

지속가능한 태양과 바람의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도록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기후에너지·탈핵


석탄발전소는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킵니다. 핵발전소는 사고와 방사능, 핵폐기물로부터 안전하지 않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석탄발전소와 핵발전소를 폐쇄하고, 지속가능한 태양과 바람의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도록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성명서·보도자료[탈핵 기획 기고⑩] 수명이 끝난 날, 수명 연장을 위한 심사가 시작됐다

최경숙 정책변화팀 활동가
2026-09-14
조회수 213

신규 핵발전소 저지 전국 탈핵 순례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핵발전소 추가 말라!> 10화

한빛 2호기 영구정지를 외치며 밤길을 걸은 사람들


9월 11일, 영광 순례단은 청와대로 가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날은 한빛 2호기가 40년의 설계수명을 다하는 날이었다. 순례단은 삼례읍행정복지센터를 출발해 여산면행정복지센터까지 17.2km를 걸어야 했다. 그러나 수명을 다한 핵발전소의 영구정지를 촉구하는 자리에 빠질 수 없었다. 영광 한빛핵발전소를 등지고 서울을 향해 떠난 지 열하루 만에 다시 발전소 앞으로 향했다.

순례단은 열흘 넘게 하루 20km 안팎을 걷고 있다. 그러나 한빛 2호기를 보내는 자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행사에 참석하느라 낮에 걷지 못한 길은 밤에 다시 걸었다.

영광 한빛핵발전소 앞에서 한빛2호기 영구정지 촉구 행사를 시작한 오전 10시 30분, 같은 시각에 국가는 그 원자로를 다시 돌리기 위한 길을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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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은 영광 한빛 2호기 수명 만료 폐로 선포식에 참석하기 위해 걷던 길을 돌아서 갔다.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멈춰야 할 날, 다시 돌리는 절차가 시작됐다

한빛 2호기는 1986년 9월 운영허가를 받아 40년을 가동했다. 지난해 12월 설계수명을 다한 한빛 1호기에 이어 이제 2호기도 멈출 차례다. 설계수명은 핵발전소의 안전을 약속한 사회적 시간표다. 그 시간이 끝났다면 가동을 멈추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한빛 1·2호기를 각각 10년 더 가동하기 위한 심사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한빛 2호기의 수명이 끝난 바로 그날, ‘한빛 1·2호기와 고리 3·4호기의 사고관리계획서 승인 및 운영변경허가(안)’을 심의했다. 계속운전을 하기 위해서는 사고관리계획서 심의가 우선이다. 수명이 끝난 날은 영구정지를 확인하는 날이 아니라 수명연장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날이 됐다.

더구나 원자로 네 기를 한 안건에 묶었다. 고리 3·4호기와 한빛 1·2호기가 같은 웨스팅하우스 900형 원자로라는 이유다. 그러나 같은 노형이라고 같은 핵발전소는 아니다. 운전 기간과 정비 이력, 설계변경 내용, 기기와 배관의 노화 상태가 다르다. 지진과 침수, 기상 조건, 주변 인구와 주민 대피 여건도 다르다. 같은 노형이라는 공통점은 검토의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심의를 한데 묶어 서둘러 처리할 근거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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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청 앞 기자회견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7년 동안 미루고 이제 와서 속도전인가

사고관리계획서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계획인 만큼 원자로 한 기마다 충분한 시간과 독립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더 안전하게 관리하겠다고 도입한 계획이 이제는 사업자와 규제기관이 낡은 핵발전소의 수명을 늘이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계속운전을 위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시 사고관리계획서를 준용하도록 한 ‘지침’ 때문이다. 사고를 줄이기 위한 것이 수명연장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한수원은 2019년 6월 국내 핵발전소 28기의 사고관리계획서를 한꺼번에 제출했다. 심사에는 7년이 걸렸다. 원안위는 인력과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 때문에 노형별로 순차 심사했다고 설명했다.

인력과 시간이 부족했다면 안전규제 인력과 전문성을 보강했어야 한다. 7년 동안 밀린 안건을 이제 여러 기씩 묶어 처리하는 것이 해답일 수는 없다. 오랫동안 심사했다고 해서 엄격하게 심사한 것도 아니다. 7년을 미뤄놓고 마지막에 속도를 높인다면 그것은 신중함이 아니라 지연 끝의 졸속 행정이다.

이날 회의에서 드러난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사고관리계획서에는 주기적안전성평가와 같은 명시적인 평가기준일이 없었다. 원안위와 KINS는 최신 기술기준을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는 명시적 규정도 없다고 답했다. 계획서가 제출된 뒤 심사에만 7년이 흘렀다. 그동안 국제 안전기준과 연구 결과, 사고 경험과 기술적 지식이 바뀌었다. 무엇을 어느 시점의 기준으로 평가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면, 2019년에 제출된 낡은 서류로 2026년의 핵발전소 안전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회의에서 드러난 기술적 허점들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고리 3·4호기의 노심용융물-콘크리트 반응(MCCI) 평가는 중대사고로 원자로용기가 파손돼 녹아내린 핵연료가 원자로 공동으로 떨어지는 상황에 대비해 약 20cm의 희생부재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계산된 측면 침식 깊이는 약 18cm로, 녹아내린 물질을 막아낼 방패의 여유는 고작 손가락 마디 정도인 약 2cm뿐이었다. 그것도 실제 원자로 규모의 실증 실험으로 확인한 값이 아니었다.

원자로 공동에 물을 주입해 용융물을 냉각한다는 대책을 세워놓고도 공동의 수위를 직접 측정할 계측기가 없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사고 때 물이 얼마나 차 있는지도 직접 확인하지 못하면서 물을 주입해 사고를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허가할 때까지 보완하는 심사

이날 심의는 앞으로 이어질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절차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더 무겁다. 한빛 1·2호기와 고리 3·4호기 뒤에는 한울 1·2호기와 월성 2·3·4호기가 기다리고 있다. 이미 고리 2호기 수명연장 허가를 시작으로 노후 핵발전소를 다시 가동하려는 절차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금까지 계속운전 심사에서 불허나 반려된 사례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료가 부족하면 부적격으로 판단해 심사를 끝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제도에는 자료 보완 횟수나 심사 종료 기준이 없다. 사업자는 기준을 충족할 때까지 자료를 보완하고, 심사는 다시 열리며, 마지막에는 허가가 남는다.

이것을 독립적인 안전 심사라고 할 수 있을까. 심사가 길어진 것과 심사가 엄격한 것은 다르다. 허가할 수 있을 때까지 보완을 반복하는 구조라면 심사는 안전성을 판단하는 문턱이 아니라 기업에 합격할 때까지 시험을 무한 재응시하게 해주는 허가 통로일 뿐이다.

고리 2호기는 계속운전 허가 이후에도 안전여유도 확보를 위해 설비 226개 품목과 케이블 22개 라인을 교체해야 했다. 안전설비가 모두 갖춰진 것을 확인한 뒤 허가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개선한다는 조건을 믿고 허가한 셈이다.

원안위는 핵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 아니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과 상관없이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독립적으로 판단하라고 만든 기관이다. 안전 근거가 부족하면 보완을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신청을 반려하거나 불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규제다.

그러나 지금 원안위가 따라가는 것은 안전 규제의 시간표가 아니라 정부의 수명연장 시간표로 보인다. 7년 동안 미뤄온 사고관리계획서를 여러 핵발전소씩 묶어 심의하고, 수명이 끝난 핵발전소를 대상으로 다음 허가 절차를 서두른다. 국가는 원자로의 설계수명은 연장하면서 주민이 위험을 견딘 시간은 계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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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배우는 길이었다.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수명을 다한 핵발전소와 밤길을 걷는 사람들

영광 순례단이 걷는 길은 전기가 흐르는 방향과 겹친다. 한빛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가 광주와 전북을 지나 수도권으로 향하는 길을 사람의 걸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도에서는 한 줄로 보이는 송전선로가 그 땅을 지날 때 마을과 논밭, 집과 사람의 삶으로 나뉜다.

영광과 고창 주민들은 지난 40년 동안 핵발전소의 사고 위험을 감당했다. 이제는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과 부지 안 핵폐기물 저장시설, 신규 핵발전소까지 떠안으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국가는 이를 전력 수급과 수용성의 문제라고 부르지만, 주민에게는 끝을 약속하지 않는 위험의 연장이다.

9월 11일 밤, 순례단은 다시 길 위에 섰다. 낮에 걸어야 했던 17.2km를 어둠 속에서 이어갔다. 피로가 쌓인 사람들이 서로를 지키겠다며 밤길을 걷고 있었다.


국가가 안전을 대하는 태도와 시민이 안전을 대하는 태도가 그날만큼 선명하게 갈린 적도 드물다. 국가는 수명이 끝난 원자로의 다음 10년을 계산했다. 시민들은 그 원자로 곁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지난 40년과 앞으로 살아갈 세대를 생각했다.

설계수명이 끝났다면 멈추는 것이 원칙이다.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면 허가하지 않는 것이 규제다. 확인되지 않은 문제가 남았다면 다음 회의에서 할 일은 표결이 아니라 재검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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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 2호기 폐로 선포식에 다녀와 밤의  순례길을 걷고 있는 순례단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글쓴이: 최경숙 환경운동연합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