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 탈핵


석탄발전소는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킵니다.

핵발전소는 사고와 방사능, 핵폐기물로부터 안전하지 않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석탄발전소와 핵발전소를 폐쇄하고,

지속가능한 태양과 바람의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도록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기후에너지·탈핵


석탄발전소는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킵니다. 핵발전소는 사고와 방사능, 핵폐기물로부터 안전하지 않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석탄발전소와 핵발전소를 폐쇄하고, 지속가능한 태양과 바람의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도록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성명서·보도자료[탈핵 기획 기고⑨] 피켓을 대신 들고, 서로의 길 이어 걷는 이들의 이야기

최경숙 정책변화팀 활동가
2026-09-11
조회수 306

신규 핵발전소 저지 전국 탈핵 순례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핵발전소 추가 말라!> 9화 세종 순례 

세종에서 청와대 앞 탈핵 피켓까지 지키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만든 길


 지난 10일 오전 10시 30분, 청와대 분수대 앞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각자의 할 말과 염원을 적은 피켓을 들고 일인시위를 하는 사람들도 줄지어 서 있었다. 피켓에 적힌 요구는 서로 달랐지만, 그들이 향해 선 곳은 같았다. 국가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청와대였다.

나는 전국 탈핵 순례에서 먼저 떠나왔지만, 잠깐이라도 걸음을 잇고 싶어 청와대 분수대 앞에 섰다. "신규 핵발전소 철회하라",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중단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길 위에서 들었던 사람들의 말과 아직 걷고 있는 순례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은 지난해 7월 31일부터 매주 목요일 광화문에서 '광화문탈핵목요행동'을 이어왔다. 이재명 정부에 신규 핵발전소 건설 철회와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금지를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처음에는 십여 명이 시작했다. 지금은 뜻을 함께하는 70여 명이 삼삼오오 모여 광화문과 청와대 앞을 지키고 있다.

정부가 신규 대형 핵발전소에 이어 소형모듈원자로 건설까지 본격화하자 행동은 매일 이어지는 피켓 시위로 넓어졌다. 한 사람이 매일 서는 것은 어렵지만, 여러 사람이 시간을 나누면 자리를 비우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 피켓을 내려놓아야 할 때는 옆 사람이 대신 든다. 그렇게 한 사람의 한 시간이 모여 1년이 넘는 시간이 됐다.

이들이 청와대와 광화문에서 피켓을 드는 이유는 9월 1일 고리와 울진, 영광, 세종에서 출발한 사람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지금의 편리함을 위해 다른 지역과 다음 세대의 안전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마음, 위험을 떠안은 사람들을 혼자 두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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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탈핵목요행동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서로 다른 피켓이 지키려는 것

우리가 탈핵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동안 분수대 한쪽에서는 다른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4주기를 앞두고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일터에서 반복되는 젠더폭력을 규탄하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젠더폭력으로부터 자유롭게 일할 권리와 위험한 일을 혼자 하지 않아도 될 권리를 요구했다.

서로 다른 피켓을 들었지만 지키려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혼자 일하다 위험에 놓이지 않을 권리, 폭력의 징후를 개인이 감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사회, 핵발전소 사고와 핵폐기물의 위험을 특정 지역 주민에게 떠넘기지 않는 사회. 위험을 먼저 발견하고도 말할 힘이 없었던 사람들이 희생된 뒤에야 대책을 논의하는 일을 멈추자는 요구였다.

탈핵 순례단이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 현장과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분향소를 찾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참사의 원인과 모습은 다르지만, 잘못된 정책과 무책임한 행정이 만든 위험은 언제나 가장 약한 곳으로 흘러간다. 위험은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는 참사가 되어 터져 나온다.

그래서 연대는 내 문제와 다른 사람의 문제를 구분하지 않는 일에서 시작된다. 탈핵 피켓을 들면서 옆 기자회견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고, 자리를 비운 사람의 피켓을 대신 드는 것. 참사 현장에 잠시 멈춰 서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순례단이 말해온 '지키려는 마음'의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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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기후정의행진을 알리는 시민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다섯 날 98.5km, 환대가 이어 붙인 길

세종에서 출발한 순례단은 9월 6일 충북도청을 떠나 청주시청과 오창구룡성당을 지나고, 천안 목천성당과 천안역, 두정동성당을 거쳐 평택으로 향했다. 10일에는 평택성당에서 오산시청을 지나 오산성당에 도착했다. 닷새 동안 걸은 거리는 98.5km였다.

세종 순례팀이 걷는 길은 전기를 소비하는 도시와 앞으로 송전선로가 지날 지역, 전력정책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 결정에서는 밀려난 사람들을 만나는 길이었다.

길은 걷는 사람의 두 발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간식을 건네는 사람이 있었고, 성당은 순례단에게 잠자리를 내주었다. 시간을 내어 몇 구간이라도 함께 걷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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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이 걷는 동안 지역에 있는 성당에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해 주시는 일이 많다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목천성당에서 묵은 다음 날, 순례자 청명씨는 몸자보를 유심히 바라보는 한 신자를 만났다. 그는 "누구나 안전하게 살기를 바라며 서울로 가는 중"이라고 설명하고, 성당에서 묵게 해줘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러자 신자는 촛불 봉헌을 권했다. 처음 해보는 촛불 봉헌을 마치자 그가 점심값을 건넸다. 차를 타고 떠나는가 싶더니 다시 멈춰 세우고 돈을 더 내밀었다.

"너무 적어서요. 무사히 잘 가요."

작은 촛불 하나와 점심값이 핵발전 정책을 당장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무더위 속에서 하루 20km 안팎을 걷는 사람에게 그 마음은 다음 걸음을 내딛게 하는 힘이 된다. 순례는 각자의 두 발로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환대가 이어 붙인 길이다.

큰 목소리보다 섬세한 질문

모든 만남이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순례단이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한다고 외치면 이어폰을 낀 채 지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핵발전을 반대하려면 너희는 전기를 쓰지 말라", "촛불만 켜고 살아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사상 검증을 요구하는 이도 있었다.

병천 아우내에서는 한 시민과 말다툼이 벌어졌다. 순례자의 설명과 시민의 반박이 서로 더 큰 목소리로 부딪쳤고, 결국 주변 사람들이 말려 대화가 끝났다. 길 위에 남은 것은 이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아니라 제대로 묻지 못했다는 성찰이었다.

왜 상대에게 정확한 질문을 던지지 못했을까. 왜 스스로 생각하게 할 질문을 건네지 못하고 큰 목소리로 반박하고 말았을까.

순례 참가자들은 똑같은 말로 모두를 설득하려 하기보다 그 사람이 살아온 조건과 형편에 맞는 질문이 필요하다고 했다. 송전탑이 이 지역을 지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핵발전소와 핵폐기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묻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순례는 정답을 가진 사람이 답을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치는 길이 아니었다.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배우는 길이었다. 걷는 사람도 길 위에서 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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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만난 시민들와 걷는 이유에 대해 알리기 위해 대화를 하는 순례단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촛불만 켜고 살자는 것이 아니다

청명씨는 자신이 순례를 시작한 이유를 에너지 소비와 삶의 방식에서 찾았다. 더 편리하게 살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생산과 소비를 끝없이 늘리는 사회구조가 기후위기와 핵위기, 경제위기와 전쟁위기를 불러왔다고 했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릴 수는 없다. 정하니씨는 반도체 산업을 바라보며 인간의 욕망을 생각하게 되지만, 그 욕망 역시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생산하고 더 소비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개인에게만 절약을 요구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탈핵은 전기를 쓰지 말자는 주장이 아니다.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버리고 촛불만 켜고 살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김찬휘 녹색당 대표의 말처럼 기후위기를 막으면서 동시에 안전한 에너지를 사용하자는 요구다. 핵발전과 소형모듈원자로에 투입할 재원을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 개선, 에너지 효율 향상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얼마나 생산하고 소비할 것인지, 시설을 어디에 세울 것인지, 그 과정에서 주민의 결정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까지 물어야 한다. 지역의 희생을 전제로 한 에너지 체제를 그대로 둔 채 발전원의 이름만 바꾼다면 또 다른 갈등이 시작될 수 있다.

박춘성씨는 핵발전이 지속 가능할 수 없는 이유로 핵폐기물을 들었다. 지금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는 시간은 짧지만, 고준위핵폐기물은 수만 년 동안 관리해야 한다. 현재의 경제성 계산에는 미래 세대가 감당할 관리비용과 사고 위험이 제대로 포함돼 있지 않다. 현재 세대가 편리와 이익을 누리고 다음 세대에게 위험과 책임을 넘기는 계산이다.

끝나지 않았는데 '끝'이라고 쓰는 정부

순례단이 걷던 9월 6일, 한국수력원자력은 시운전 중인 새울 3호기를 수동 정지했다고 밝혔다. 터빈으로 공급되는 증기의 응축수를 배수하는 배관에서 누설이 확인됐다는 이유였다. 한수원은 상세 원인을 분석 중이며 방사선 영향은 없고 발전소는 안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한 뒤 보도자료를 "끝"이라는 글자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주민에게는 끝난 일이 아니다. 왜 누설이 발생했는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없는지, 시운전 과정과 안전점검이 충분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이제 시작돼야 한다. 더구나 핵발전소의 가동을 모두 멈춘 뒤에도 사용후핵연료를 수만 년 동안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 핵발전에서 '끝'은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정부는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 반도체 산업의 전력수요를 이유로 신규 핵발전소와 소형모듈원자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산업계가 요구하는 전력을 그대로 확정수요로 받아들이고,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더 짓는다면 위험은 다시 지역으로 향한다.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과 발전소·송전탑·핵폐기물을 떠안는 곳이 달라지는 구조도 그대로 남는다.

네 갈래 마음이 청와대로 간다

광화문탈핵목요행동 참가자들은 피켓을 들고 같은 자리를 지켰다. 세종 순례단은 무관심과 환대, 조롱과 응원을 함께 만나며 오산까지 걸었다. 서로 있는 곳과 행동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두 길을 움직인 마음은 같았다.

나와 가족만 안전하면 된다는 생각으로는 누구도 오래 안전할 수 없다. 핵발전소 인근 주민의 위험과 송전탑 아래 농민의 고통, 일터에서 젠더폭력을 마주하는 노동자의 두려움, 기후재난 앞에서 가장 먼저 삶터를 잃는 사람들의 처지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면 안전과 행복도 함께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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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을 향해 걷는 도중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순례단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9월 16일, 고리와 울진, 영광과 세종에서 출발한 네 갈래 길이 청와대 앞에서 만난다. 그날 청와대로 향하는 것은 순례단의 발걸음만이 아니다. 1년 넘게 광화문에서 피켓을 들어온 사람들의 시간, 성당 문을 열어준 사람들의 환대, 점심값을 두 번 건넨 신자의 마음, 무관심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순례자의 다짐도 함께 간다.

한 사람의 걸음은 작다. 피켓 한 장도 가볍다. 그러나 누군가 지치면 다른 사람이 피켓을 들고, 누군가 멈추면 다른 사람이 그 길을 이어 걷는다. 지키려는 마음은 그렇게 연대하는 마음이 된다. 그리고 그 마음들이 모여 청와대로 간다.



글쓴이: 최경숙 환경운동연합 정책변화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