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끝이 아니라 2부의 시작…시작했으니 끝을 볼 것”
월성원전 이주대책위 천막농성 12년 기념행사 개최
- 2014년부터 요구한 ‘안전한 곳으로의 이주’, 12년 지나도록 정부·한수원 대책 없어
- 월성원전 이주대책위, 12년 12일 이어온 천막농성과 월요상여시위 마무리…새로운 방식의 투쟁 시작
- 천막은 접지만 이주대책 법제화·월성원전 수명연장 저지·영덕 신규원전 반대로 투쟁 확장
월성원전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이주할 권리를 요구해 온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가 12년 12일 동안 이어온 천막농성과 월요상여시위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방식의 투쟁에 나선다.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 천막농성 12년 추진위원회는 9월 5일 오후 3시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전 인근에서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 천막농성 12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월성원전 인접지역 주민들과 경주를 비롯해 서울·부산·울산·밀양·광주 등 전국에서 지난 12년 동안 이주대책위와 함께해 온 연대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의 사회를 맡은 이상홍 탈핵경주시민공동 집행위원장은 “주민 대부분이 이제 여든을 넘기면서 매주 행진과 천막농성을 이어가는 일이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12년을 계기로 천막농성과 월요상여시위는 마무리하지만, 이주대책위의 활동은 계속됩니다. 여러 지역과 연대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갈 것입니다. 오늘은 끝나는 날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하는 날입니다”라고 말했다.
행사는 엄혜린 씨의 생명평화 탈핵 기도로 시작했다. 이어 주민들은 월성원전 앞에서 이어온 천막농성 12년의 시간을 담은 기념 그림을 처음 공개하는 제막식을 진행했다. 지난 12년을 기억하기 위해 제작한 ‘이주’ 기억배지도 주민들에게 전달됐다.

“오늘로 1부를 마치고, 이제 2부가 시작되는 것 아닙니까”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의 투쟁은 2014년 8월 25일 시작됐다.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은 월성원전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이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며 원전 앞에 천막을 세웠다. 이후 매주 월요일 자신의 이름을 적은 상여를 끌고 원전 앞을 걸으며 이주대책 마련을 요구해 왔다.
이날 첫 번째 주민 발언에 나선 김진선 월성원전 이주대책위 총무는 12년의 활동을 ‘1부’에 비유했다. 김 총무는 “오늘로써 우리가 1부를 마치고, 앞으로 2부가 시작되는 것 아닙니까. 앞으로도 모두 건강하게 함께 계속 같이 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성혜중 씨는 2014년 농성을 시작하며 이주대책위가 발표했던 보도자료를 12년 만에 다시 낭독했다. 당시 주민들은 “우리 이주대책위원회 회원들은 안전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월성원자력발전소에 가장 인접하여 살고 있는 주민들은 이주를 희망하고 있으니 강력히 이주대책을 요청합니다”라고 밝혔다. 12년 전 요구는 이날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김해준 씨의 발언에서는 주민들이 버텨온 시간의 무게가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83세인 김 씨는 “한숨밖에 안 나옵니다. 언제 될란가, 오늘은 될란가, 내일은 될란가. 그렇게 속아, 속아가며 최근까지 왔습니다”라며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놓고 죽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힘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고 말했다.
황분희 부위원장은 천막과 상여를 마치는 것이 투쟁의 종료가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황 부위원장은 “여러분들이 오늘 오셔서 ‘12년 이제 끝냈어, 너무 안됐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아니에요. 지금은 다음을 위해서 더 합니다. 시작했으니까 끝을 볼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걸어 다닐 수 있고 우리 회원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동안은 어디든지 갑니다. 월성이 어떤 곳인지, 우리가 12년 동안 실제로 겪은 일을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며 “오늘로 상여행진은 끝났지만 그보다 더 힘을 내서 국회든 청와대든, 어디든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고 두드릴 수 있는 곳은 두드리겠습니다”라고 밝혔다.
행사에서는 주민들의 과거 목소리를 담은 녹음도 함께 재생됐다. 김진선·성혜중·김해준 씨 등 주민들의 과거 발언과 이날 현재의 목소리가 교차하며, 12년 동안 변하지 않은 요구와 달라진 주민들의 시간을 함께 보여줬다.
한수원 소송으로 농성장 철거·이전…그러나 이주대책은 여전히 없어
주민들이 12년 동안 농성장을 지켜왔지만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이주 요구에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수력원자력이 제기한 소송으로 지난해 주민들은 오랜 시간 지켜온 기존 천막농성장을 철거해야 했다. 이후 이주대책위는 새로운 터로 농성장을 옮겨 활동을 계속했다.
원전 최인접지역에서 주민들은 오랜 기간 건강과 안전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고, 자신의 재산만으로는 다른 지역으로 삶터를 옮기기 어려운 현실을 알려왔다. 그러나 원전 인접지역 주민이 안전상의 이유로 이주를 원할 경우 이를 지원하는 법과 제도는 현재까지 마련되지 않았다.
이날 연대사에 나선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겸 신규핵발전소저지와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집행위원장은 “새로운 원전을 이야기하기 전에, 지금 원전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주민들의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순서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안 집행위원장은 “정부는 새로운 원전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이미 원전이 들어선 지역 주민들의 이주 문제에는 답하지 않고 있다”며 “국가가 필요해서 원전을 지었다면 그 부담을 주민들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됩니다. 이주를 원하는 주민이 실제로 이주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환경운동연합이 월성 주민들과 함께 원전 주변 주민들의 이주를 국가가 지원할 수 있도록 법·제도 개선 운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상현 탈핵부산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제가 탈핵과 이주대책위의 활동을 몰랐다면 오늘 본 월성 해변은 평온한 풍경으로만 보였을 것”이라며 “보이지 않는 방사능을 몸에 품고 살아온 주민들의 활동이 이곳의 위험을 가시적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12년의 상여농성은 끝나지만, 고리·영광·월성·울진·영덕에서 지치지 않고 계속 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상임공동대표 천도 스님은 12년간 이어진 투쟁을 문을 여는 일에 비유했다. 천도 스님은 “지금까지 밀어왔으니까 이걸로 안 됐으면 이제 당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제 같이 또 당겨보는 겁니다”라며 “우리 어르신들이 원하는 것은 큰 게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향희·장영식·이은정·강언주 씨 등 지난 시간 월성 주민들과 함께해 온 연대자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윤은성·희음 시인은 시 낭송으로 주민들의 12년을 기억했으며, 경주피터가 노래 공연으로 함께했다.

천막은 접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이주대책 법제화’와 더넓은 연대로
이주대책위원회는 이날을 계기로 12년간 지속해 온 천막농성과 매주 월요일 진행해 온 상여시위를 마무리한다. 이는 이주 요구와 활동의 종료가 아니라 투쟁 방식의 전환이다. 주민들의 고령화와 변화한 활동 여건 속에서 농성장을 상시 유지하고 매주 상여시위를 이어가는 방식 대신, 정부와 국회에 제도적 책임을 요구하고 다른 원전지역의 현안과 연결하는 방향으로 활동의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특히 이주대책위와 연대단체들은 앞으로 원전 인접지역 주민의 이주대책 마련을 위한 법·제도 개선을 핵심 과제로 제기할 예정이다. 개별 주민들이 오랜 시간 문제를 호소하고 버티는 방식이 아니라, 원전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떠나기를 원하는 주민에게 국가와 사업자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제도적으로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월성원전의 수명연장 문제에도 대응을 이어간다. 주민들의 기존 피해와 이주 요구조차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전 가동기간을 추가로 연장하는 것은 인접지역 주민들에게 위험과 부담을 다시 떠넘기는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최근 신규원전 부지로 선정된 경북 영덕의 신규원전 건설 반대 투쟁과의 연대도 확대할 계획이다. 이미 원전이 들어선 지역에서 해결되지 않은 주민들의 삶과 권리 문제를 신규원전 예정지역에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월성 이주대책위의 향후 활동은 ‘월성 주민의 이주’라는 요구에서 출발해 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의 법제화, 노후원전 수명연장 저지, 신규원전 예정지역과의 연대로 확장될 예정이다. 황 부위원장은 천지원전 추진 당시 영덕 주민들에게 “당신들이 여기 원전을 받아들이면 월성과 똑같이 됩니다. 월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시면 한번 와보십시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실제 영덕 주민들이 버스를 타고 나아리를 방문하기도 했다며, 이번 신규원전 추진에 대해서도 “못 짓게 싸울 때 우리 이주대책위도 연대해서 같이 가고, 우리가 겪은 이야기를 하겠다”고 밝혔다.
행사 참석자들은 오후 4시 30분부터 나아리 마을을 함께 행진하며 지난 12년의 활동을 기억하고 앞으로의 투쟁을 이어갈 뜻을 밝혔다. 천막은 접혔고 매주 월요일 이어지던 상여행진도 멈췄다. 그러나 2014년 주민들이 처음 내걸었던 “안전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요구는 12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다. 월성원전 이주대책위는 그 요구가 실현될 때까지 장소와 방식을 바꾸어 싸움을 이어갈 예정이다.
*사진/영상 다운로드 : 링크
*사진출처 : 환경운동연합, 울산환경운동연합
2026년 9월 7일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 천막농성 12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회

[발언문 전문]
생명평화 탈핵 기도문 | 엄혜린
우리는 풍경 한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나무처럼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도 나무와 다를 바 없는 생명임을,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나임을 압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몸이 아픕니다. 우리의 일부인 나무는 불에 타버렸습니다. 우리의 일부인 바다는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32기의 핵발전소는 언제 터질지 모릅니다. 일본은 880톤에 달하는 녹아내린 핵연료를 회수하지 못하고 있고, 방사성 오염수 해양 투기로 환경오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후쿠시마의 사고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후쿠시마 핵사고로 희생당한 땅과 뭇 생명들, 그리고 아직까지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 다 같이 묵념합시다. 인간의 이기적인 탐욕으로 죽어간 뭇 생명과 동식물들에게 참회와 용서를 빕니다. 다 같이 묵념.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구적 사고와 행동이 무엇인지. 연결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마음. 그 마음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연결이 시작됩니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 모든 생명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겠습니다. 12년 함께 걸어온 그 마음을 담아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2026년 9월 5일, 월성 핵발전소 이주대책위 천막농성 12년하고 12일을 함께한 우리 모두.
이주대책위 발언

1) 김진선 총무
반갑습니다. 이렇게 멀리까지 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핵이라는 것이 이렇게 위험한데도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그런 곳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살아왔고, 또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계속 활동해 왔습니다. 이런 곳에 멀리서 찾아와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가 오늘로써 1부를 마치고, 앞으로는 2부가 시작되는 것 아닙니까. 앞으로도 더 많이 후원해 주시고, 모두 건강 잘 지키시면서 함께, 같이 계속 갔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 성혜중 | 2014년 8월 25일 이주대책위 성명서 낭독
본 이주대책위원회 위원들은 월성원자력발전소에 가장 인접하여 살고 있는 주민들로, 농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보통 사람들인 저희들이 왜 ‘이주대책위원회’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이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위원장인 저도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월성원자력발전소의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월성 1호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30년 수명이 다 된 노후 원전을 ‘계속운전’이라는 명분 아래 10년이나 수명을 연장하려 하고 있습니다. 수명이 다 되면 폐기 처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월성 1호기의 가동을 근본적으로 반대합니다. 그 배경에는 월성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다는 것이 있습니다. 발전소의 고위 관계자부터 말단 직원까지 뇌물 스캔들의 중심에 있었으며, 그러한 비리는 우리의 재산과 생명을 좌우하는 안전 문제와 직결돼 있습니다. 또 짝퉁 부품이 판을 치고 있는 이런 현실에서 그 어떤 점검과 검증을 수행하더라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중수로에서 배출되는 삼중수소가 경주시내보다 30배나 높게 나왔다는 조사 내용은 우리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30년 동안 배출된 삼중수소의 피해는 우리 주민들이 입고 있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피해 여부에 대한 조사나 실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주민을 너무나 무시하고 멸시하는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습니다. 또한 상권은 몰락해 있고 지역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토지나 건물은 매매도 되지 않으며, 우리의 자력으로는 아무리 살아보려고 노력해도 살아갈 수 없는 실정입니다. 우리 이주대책위원회 회원들은 안전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월성원자력발전소에 가장 인접하여 살고 있는 주민들은 이주를 희망하고 있으니 강력히 이주대책을 요청합니다.

3) 김해준
한숨밖에 안 나옵니다. 언제 될란가, 오늘은 될란가, 내일은 될란가. 그렇게 속아, 속아가며 최근까지 왔습니다. 한수원 본부장이나 이런 사람들이 와서 술 한잔 사주고 달래고 가고, 또 달래고 가고 그랬습니다. 그러고 좀 있으면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똑같이 이야기하고, 또 다른 사람이 오면 또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월성원전 사람들입니다.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제 83살입니다. 83살인데,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놓고 죽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좀 많이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이제 힘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 황분희 부위원장
반갑습니다. 지금은 제가 가슴이 너무 벅차요. 12년 동안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고, 너무 힘든 일도 많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여러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나름대로 힘차게 이주대책을 위해서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내려놓고 또다시 한번 기상을 해보자, 이런 마음으로 오늘을 계기로 상여시위는 끝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같이 이 행사를 하자고 이상홍 국장님한테 간곡히 얘기한 이유가 있습니다. 정말 10년 넘는 시간 동안 많은 분들이 저희를 도와주셨어요. 마음으로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도 너무 감사하게 받은 것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12년을 하고 이제 건강도 안 좋고 더 이상 예전처럼 하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그냥 내려놓기에는, 정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뭔가 여러분들을 모아놓고 정말 감사했던 마음을 전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행사를 하지 않으면 한 사람 한 사람 누가 도와주셨는지, 전화번호도 다 알지 못하고 그분들께 일일이 이야기할 수도 없더라고요. 그러면 또 마음이 아팠어요. ‘이분이 정말 우리를 도와줬는데 내가 그분께 어떻게 감사하다고 이야기하지?’ 그런 마음이 들어서 국장님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전국에 계신 분들이 오시면 제가 정말 감사하다고, 정말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오셔서 ‘아, 12년 이제 끝냈어. 너무 안됐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아니에요. 지금은 다음을 위해서 더 합니다. 시작했으니까 끝을 볼 겁니다. 제가 걸어 다닐 수 있고 우리 회원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동안은 어디든지 갑니다. 여러분들이 저희가 필요하다면, 월성에 사는 이 모습들을 알려줘야 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요청하세요. 어디든지 가서 월성이 어떤 곳인지, 우리가 12년 동안 실제로 겪은 일을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처음 영덕 천지원전 문제로 싸울 때도 그곳에 가서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딸이 퇴근하고 오면 저녁 5시에 영덕으로 출발해서 영해면이며 죽장이며 시골 곳곳을 다니면서 월성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면 그분들도 처음에는 ‘탈핵하는 사람은 탈핵을 하니까 원자력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다가, ‘저 사람은 실제로 원전 옆에서 살면서 겪은 이야기를 하는구나. 그럼 저 사람 말이 맞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는 곳마다 이야기했습니다. “당신들이 여기 원전을 받아들이면 월성과 똑같이 됩니다. 월성이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시지요? 그러면 월성에 한번 와보세요. 원전을 찬성하는 분도, 반대하는 분도 다 오세요. 버스 한 대만 타고 오시면 우리 동네 현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했더니 정말 영덕에서 버스 한 대가 왔습니다. 찬성하시던 분들도 같이 오셨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와서 처음 한 말이 “원전을 받아들였으면 안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우리 동네를 보고 ‘죽음의 동네 같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가게마다 문이 닫혀 있고, 닫혀 있는 가게들 유리창은 깨져 있고, 마을이 참 피폐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월성에는 영덕처럼 내세울 만한 특산물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덕은 아니잖아요. 영덕대게도 있고, 영덕송이도 있고, 얼마나 좋은 곳입니까. “당신들은 원전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절대 천지원전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든 막아냈는데 이번에 정부가 또 그곳에 원전을 짓겠다고 하니까, 그래도 우리가 다시 노력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못 짓게 싸울 때 우리 이주대책위도 연대해서 같이 가고, 우리가 겪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지금은 12년 전보다 동네가 더 나빠졌어요. 폐기물 문제도 있고, 중수로에서 나오는 여러 폐기물 문제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은 그런 내용을 잘 모릅니다. 누가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줍니까. 한수원이 알려줍니까. 언론에 잠깐 뉴스로 나오면 본 사람은 보고 못 본 사람은 못 봅니다. 이런 것들도 앞으로 계속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 손자도 이제 고등학생이 됐어요. 한 10년, 20년만 지나면 제가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몸속에 들어간 방사성물질이 몇십 년 뒤에라도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늘 긴장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오늘 여러분들을 보니까 정말 힘이 납니다. 앞으로 더 해야 하고, 저 사람들과 더 싸워야 하고, 더 바른 소리를 해야 합니다. 주변에서는 이제 연세도 그만큼 들었으니 좀 그만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하지만 아니요. 나는 할 겁니다. 내가 이걸 한다고 해서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나는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계속 해야겠습니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셨고,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이주도 해야 되겠지만 탈핵도 해야 하고, 앞으로 원전을 더 이상 짓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 작은 땅에 원전이 계속 늘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연대해가겠습니다. 밀양에서 어르신들이 와주셨다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먼 곳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도 밀양에 가서 함께하고 밀양의 상황도 많이 봤습니다. 앞으로 더 합시다. 더 열심히 합시다. 오늘로 상여행진은 끝났지만, 그보다 더 힘을 내서 국회든 청와대든 어디든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고 두드릴 수 있는 곳은 두드리겠습니다. 힘을 모아 연대하는 입장에서 여러분과 함께해야 합니다. 같이 해주실 거죠? 감사합니다.
연대사
1) 안재훈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집행위원장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 주민 여러분, 함께하신 모든 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니 먼저 죄송하고, 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12년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원전과 핵폐기물의 위험을 이야기하고, 주민들의 안전과 삶을 지키기 위해 싸워오셨습니다. 천막 농성장을 지키며, 매주 월요일 상여시위로, 국회로, 청와대로, 월성1호기 수명연장 무효 소송, 갑상선암 피해 소송까지 그 긴 시간을 버텨주신 주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해서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도리어 원전 확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신규원전과 SMR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새로운 원전을 이야기하기 전에, 지금 원전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주민들의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순서 아닙니까? 원전은 발전소를 짓는 것으로 끝나는 사업이 아닙니다. 수십 년 동안 그곳에서 일상적인 방사능 피폭과 암 발병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는 주민이 있고, 원전사고 위험과 핵폐기물을 떠안아야 하는 지역이 있고, 원전 때문에 삶의 터전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부는 새로운 원전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이미 원전이 들어선 지역 주민들의 이주 문제에는 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국가가 필요해서 원전을 지었다면, 그 부담을 주민들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됩니다. 이주를 원하는 주민이 실제로 이주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앞으로 월성 주민들과 함께 원전 주변 주민들이 안전과 생존을 이유로 이주를 원할 경우 국가가 책임지고 이주를 지원할 수 있는 법과 제도 개선 운동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이 문제는 월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주 월성, 부산 고리, 울산 새울, 울진 한울, 영광 한빛까지 원전이 있는 지역마다 주민들이 감내한 희생이 있습니다. 핵발전의 편익은 국민 모두가 누린다고 하면서, 왜 그 위험과 희생은 특정 지역 주민들에게 집중되어야 합니까?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새로운 원전을 얼마나 지을 것인가를 이야기하기 전에 이미 원전으로 희생해온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부터 국가가 답해야 합니다.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 여러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주민들의 이주가 현실이 되는 그날까지 함께하겠습니다.
2) 박상현 탈핵부산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저는 월성원전 인접 지역 이주대책위와의 기억이 없습니다. 여기에 결합한 새롭게 탈핵운동과 결합한 분들을 대신 할 순 없지만 새롭게 탈핵운동과 결합하는 분들을 대신에 발언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대체로 핵발전과 관계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월성 핵발전소 해변에 가보았습니다. 낚시는 하는 사람과 접근 제한 구역이러는 팻말, 녹색 펜스, 그리고 일광욕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가 탈핵이라는 걸 몰랐다면, 월성원전 인접 지역 이주대책위의 활동을 몰랐다면, 핵발전소 인접지역의 활동을 몰랐다면 이 풍경은 너무나 평온한 해안가의 풍경이었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방사능을 몸에 품고 있는 어르신들의 활동 때문에 이 광경은 평온한 풍경이 아니라 인접 지역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험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12년의 상여 농성은 끝이 나지만 농성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이들 또한 고리, 영광, 월성, 울진, 그리고 영덕에서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싸워나가도록 하겠습니다.

3) 천도스님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상임공동대표
반갑습니다. 와, 진짜 12년 너무 길었죠? 그런데 아까 제막식 할 때 딱 보니까 오늘 답이 나오더라고요. 밀어서 안 되면 당기고, 당겨서 안 되면 밀어라. 우리가 보통 문을 열 때 그렇게 하잖아요. 지금까지 밀어왔으니까, 이걸로 안 됐으니까 이제는 당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아셨죠? 이제 같이 또 당겨보는 겁니다. 정말 거리에서 싸우는 동안 연세가 이렇게 많이 들어버렸는데, 내생보다 이주가 좀 더 빨리 올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생이 너무 일찍 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좀 더 힘을 내고, 좀 더 연대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더 큰 것을 바라는 게 아니잖아요. 원전이 그렇게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하면서 왜 주민들에게 온갖 보상을 해주겠습니까? 위험하고 위험부담이 크니까 그런 것이라도 내세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어르신들이 원하는 것은 큰 게 아니잖아요.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겁니다. 저는 황분희 언니를 만나고 나서 전기가 정말 누구의 눈물을 타고 흐르는지를 늘 생각하게 됩니다. 발언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기 아껴 써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광화문에서 자유발언을 하실 때 눈물로 호소하던 그 발언이 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 전기가 어디서 오는지 아느냐? 누구의 눈물을 타고 오는지 아느냐?” 이 말씀을 하시면서 “서울 것들, 도시 것들, 전기 아껴 써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제가 잊을 수가 없어서 지금까지도 늘 “전기 아껴 써라”라고 합니다. 우리는 원전을 바라보지 않으니까 잊어버리고 살잖아요. 원전을 눈만 뜨면 바라보고 살아가는 이분들의 심정을 저희가 1분이라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정말 깜깜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어르신들은 나이가 들고, 친구들은 떠나고, 이제 남아 계신 분들도 몇 분 안 됩니다. 우리 어르신들이 좀 더 안전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다 가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힘을 좀 빼려고 했는데 또 이렇게 힘이 들어가네요. 오늘 함께해주시고 연대해주신 분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느냐’고 하지만 사실 이 마을에서 잃어버린 것도 참 많습니다. 하지만 낯선 분들이 늘 찾아와 손잡아주고 연대해주고 같이 커피도 마셔주셨잖아요. 제가 살고 있는 언양에서 여기까지 아침에 오려면 한 시간 반 정도 운전해서 옵니다. 와서 30~40분 정도 함께하고 이야기 좀 나누고 손잡아드리고 다시 돌아가면 또 일을 해야 해요. 처음에는 저도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은 꼭 오겠습니다”라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하지만 마음은 늘 여기 있습니다. 월요일 아침마다 페이스북을 보면서 ‘오늘도 오셨구나. 아직도 계시는구나’ 하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늘 같이 연대하는 마음과 응원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두 손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기도라고 하죠. 자기 방식대로 두 손을 모아주시겠습니까? 기도할게요. 따라해 주세요. “월성 나아리 주민들이,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 어려움과 걱정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안전하고 행복하시길.” 원전을 반대하거나… 원전을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기도해주려고 했는데, 참 기도해주기가 어렵네요. 그렇죠? 친원전하는 사람들까지 기도해주려고 했는데 오늘은 안 되겠네요. 그래서 원전을 반대하는 분들이 위험과 불안과 걱정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안전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연대의 목소리
1) 문정현 신부
나아리 주민들, 안녕하세요. 거기 한번 가본 일이 생각납니다. 그날 아침에 주민들이 나와서 상여를 메고 집회를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핵발전소 하면 일본의 후쿠시마가 생각납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남의 일이 아니죠. 여기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정말 우리 주민들이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오랫동안, 12년 동안 활동하신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큰일 하셨습니다. 핵발전소가 문을 닫지 않는 한 위험은 존재하는데, 언제까지나 그 시위만 계속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얼마나 지치셨으면 상여 행진을 중단하시겠습니까. 그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마음으로는 함께하고 싶었지만 거리상 가지 못한 것은 너무 죄송합니다. 여러분, 힘내십시오. 상여 행진은 중단하더라도 그 싸움만은 그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수고하실 것 같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그리고 고맙습니다.

2) 이향희 울산 주민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우리 사회는 방사능에 대한 우려와 함께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탈핵운동 진영에는 새로운 돌파구가 열린 듯했습니다. 오랫동안 힘겹게 현장을 버텨온 활동가들에게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은 새로운 가능성 그 자체로 다가왔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이 무렵 『한국탈핵』의 저자 김익중 교수님의 울산 강연장에서 그분들을 처음 만났던 것 같습니다. 탈핵 활동가 대회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당시의 모습만큼은 여전히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황분희, 신용화. 할머니 한 분과 젊은 새댁처럼 보이는 주민 두 분이 울산 강연장을 찾아오셨지요. 새로운 얼굴들이 반갑고도 신기해 유심히 지켜보던 중이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황분희 님이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월성핵발전소가 있는 나아리에 살고 있습니다. 가족들 건강하라고 직접 키운 농작물을 살뜰히 먹였는데, 내가 내 손으로 사랑하는 손주를 내부피폭시키고 있었단 말입니까? 철마다 정성껏 보낸 제철 식재료가, 실은 이 손으로 보낸 방사능 오염물질이었단 말입니까?”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참담함을 쏟아내던 그 눈빛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신용화 님은 나아리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똑똑한 젊은 사람이 할매, 할배들 대신해서 단디 해봐라” 하는 성화에 등 떠밀려 대책위 사무국장을 맡았지만, 거주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며 주민 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후쿠시마의 비극을 지렛대 삼아 탈핵운동의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저의 얄팍한 이기심이 산산조각 깨져버린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울산 중구에서 함께 활동하던 지인이 경주로 이사했다며 집들이를 청했습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마당에서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는데, 알고 보니 그곳이 양남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제 오랜 지인을 길 위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양남면 청년회와 지역 주민들을 독려하며 나아리 주민들과 뜨겁게 연대하고 있는 이재걸 님입니다. 사람들의 일상이 흘러가는 곳이자 내 지인의 삶터. 나아리는 단지 ‘원전 소재지’나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싸우는 곳’이라는 수식어 그 이상의 복잡다단한 삶의 무게를 지닌 공간입니다. 삼중수소에 노출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피폭의 고통 속에서 온몸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 나아리와 그곳 주민들에게 진정한 평화가 깃들기를 간절히 빕니다.

3) 장영식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월성 나아리로 가는 길은 무거웠습니다. 신고리핵발전소, 지금은 새울(새로운 울산)이라고 부르지만, 건설 때문에 정든 삶의 터를 두 번이나 쫓겨나야 하는 골매마을에서 천도제를 지내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해무가 가득했던 월성 나아리 농성장의 천막과 깃발들은 색이 바랬습니다. 농성장에서 월성한수원까지 행진하던 상여들도 시간의 흐름이 깊이 패여 있었습니다. 농성장 안의 사진들 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문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대통령 후보 때 농성장을 방문한 모습이었습니다. 농성장에서 황분희 씨를 만났습니다. 황분희 씨는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이미 저를 알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맞아주셨던 어머니는 두 개의 깃발을 들고 핵발전소 가까이 갔습니다. 어머니는 나아리 바닷가에서 깃발들을 힘차게 흔들어 보이셨고, 저는 그 장면을 사진기에 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진의 배경에는 짙은 해무로 핵발전소는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 배경과 손자의 소변 검사에서 삼중수소가 배출된 이야기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들려주었습니다. 갑상선암 수술을 하면서도 그 원인을 알지 못했던 어머니는 자기 때문에 손자들에게까지 천형을 물려주게 되었다는 애절한 이야기를 하시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마치 밀양과 청도 할매들이 참혹했던 행정대집행을 겪고서도 ‘고향의 봄’을 부르며 산정에서 내려와 “우리는 지지 않았다”라며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셨듯이, 어머니의 두 눈에는 이미 탈핵의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12년이 지났습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늙어가고 있습니다. 농성장도 상여 시위도 힘에 부칩니다.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는 이재명 정부와 싸울 기력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바위처럼 꿈쩍하지 않고 “탈핵”을 외칩니다. 탈핵은 생명이며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9월 5일 나아리에서 모진 세월을 살아오신 그 바위들을 만납시다. 그 바위들 앞에서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나눕시다. 잡은 손 놓지 않겠다고 약속합시다.

4) 이은주 울산 북구 주민
울산 북구 주민 이은주입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나아리에 언제부터 같이 왔나 되돌아보니까 2019년 7월부터 왔더라고요. 2024년 7월까지 계속 왔고, 그다음에 일자리를 새로 가지면서 한 2년 정도 같이 못 왔습니다. 그전에는 매주 월요일마다 와서 울산 시민들에게도 이 문제를 많이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울산 북구는 월성 핵발전소와 아주 인접해 있고, 제가 사는 곳도 17km 이내입니다. 그래서 이게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울산 북구 주민들의 몸에서도 삼중수소가 검출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저는 2019년에 와서야 처음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김진선 총무님을 비롯한 어르신들과 아침마다 상여를 메고 함께했습니다. 오늘은 무거운 이야기 말고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라고 해서 하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안 오셨는데, 저랑 닮았다고 했던 분이 있어요. 여기 플래카드에 있는 신용화 사무국장님입니다. 저는 안경을 안 썼지만 둘이 같이 다니면 사람들이 맨날 자매냐고 했어요. 둘이 닮았다고요. 저를 보고도 어느 분은 ‘용화 씨’라고 부르신 적도 있어요. 2019년, 2020년쯤 둘이 서울도 다니고 국회도 다니고 많이 함께했습니다. 그때 울산에도 월성 핵발전소 핵쓰레기장 문제에 대응하는 북구 주민대책위가 있었고, 거기에서 같이 활동하면서 용화 씨와 많이 다녔습니다. 용화 씨는 서울말을 쓰고 저는 부산말을 쓰는데, 서울 사람들은 그런 말투 차이를 잘 모르시는지 맨날 둘이 닮았다고 했습니다. 오늘 왔으면 용화 씨와 저를 같이 불러놓고 ‘진짜 닮았어요?’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지금 어머님이 아프셔서 서울 병원에 가 있어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오면 김진선 총무님이 정말 반갑게 맞아주셨어요. 그때도 제가 이미 쉰이 넘었는데 저를 보고 ‘울산 아가씨’라고 하셨어요. 어디 가서 제가 그런 소리를 듣겠습니까. ‘울산 아가씨’라는 노래도 있다면서 그렇게 불러주셨습니다. 오랫동안 같이 있으면서 느꼈던 것은, 앞에서도 말씀하셨지만 어르신들이 정말 단단하시다는 겁니다. 그 착한 성품과 진솔함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밀양 할머니들을 뵐 때 그렇고, 나아리 어르신들을 뵐 때도 ‘나도 저렇게 함께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2019년 7월 경주에서 열린 집회에서 황분희 어머님을 처음 뵀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듣고 제가 겁도 없이 ‘매주 오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해버렸어요. 그런 약속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후에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감히 다시 약속드리겠습니다. 이주해서 그날 함께 신나게 춤추는 날까지 어르신들과 계속 연대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그 약속을 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5) 강언주 부산 시민
안녕하세요. 강언주입니다. 이상홍 국장님이 저한테 오늘은 연대발언 말고 월성과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좀 재미있게 해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자회견하고, 집회하고, 농성하고, 인터뷰하면서 같이 분노하고 항의하고 소리 질렀던 기억들이 먼저 떠오르는 거예요. 물론 그 와중에도 웃고 떠들고 했던 기억도 있죠. 농성장에서 수박 먹고 같이 짜장면 먹고. 왜 재밌던 기억을 떠올리면 뭘 그렇게 같이 먹었던 게 생각날까요. 뭘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생각났어요. 사실 저와 지금 새알미디어를 함께하고 있는 남태제 감독과의 인연도 어떻게 보면 월성 때문에 시작된 거예요. 서로 녹색당원이고 탈핵과 관련한 활동을 해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길게 이야기를 나눈 건 2019년 부산에서 영화 〈월성〉 상영회를 했을 때였어요. 제가 그날 GV 진행을 맡았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월성은 지금의 새알미디어가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좀 거창하게는 “새알을 탄생하게 해준 게 바로 월성이다”라고 할 수도 있겠어요. 지난 시간 동안 월성 주민분들, 그리고 이상홍 국장님도 참 무던히 부산을 오가셨죠. 한번은 이른 아침부터 나서서 태화강역에 도착하고, 다시 동해선을 타고 부산까지 오신 황분희 부위원장님을 부산지방법원이 있는 거제역에서 마중한 적이 있어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시는 부위원장님을 보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마음이 찡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서울 광화문에도 가고, 국회에도 가고, 이 문제를 알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니셨을 텐데, 그에 비하면 부산 정도야 가까운 거리였을 텐데요. 그런데 그날은 부위원장님을 보면서 유독 ‘참 세상이 모질고 나쁘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위원장님이 혼자 오셨을 그 길과 시간 때문이었을까요. 이상홍 국장님이 저에게 여러 번 했던 당부들이 생각나서였을까요. 그날이 선고일이었는지 변론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갑상선암 공동소송 2심에서 패소하던 날, 1분도 채 되지 않는 판결을 듣고 너무 허무했던 날도 기억납니다. ‘승소’라고 적힌 기자회견 현수막을 펼치고 싶었는데 결국 그러지 못했어요. 기자회견 사회였는데 목까지 올라오는 험한 말을 참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2년 전 농성 10년 행사 때 비가 참 많이 왔잖아요. 그날 처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월성에 왔었는데, 오늘도 같이 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는 뒤돌아서면 쑥 커져 있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이놈의 나라는 왜 이렇게 변함이 없는지 좀 답답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날 비가 정말 많이 왔는데 황분희 부위원장님이 마이크를 잡고 말씀하실 때 너무 환하게 웃으시는 거예요. 그게 생각나서 나중에 인터뷰하면서 여쭤봤더니 그러시더라고요. “날도 이렇게 궂은데 우리를 응원하러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와줬다는 게 너무 좋았다고, 그래서 너무 행복했다”고요. 오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만큼은 주민분들과 함께 우리가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이기지 못했을 뿐 우리가 결코 진 싸움은 아니잖아요. 밀양 할매들의 말씀처럼, 우리가 하고 있는 싸움은 결국 언젠가는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월성에서 시작된 수많은 인연과 이야기들은 계속 이어질 거예요. 12년 더하기 12일. 정말 너무나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고맙습니다.
6) 이림 경주시민
지역에 남는 기억 중 하나는, 보통 상여시위를 끝내면 황분희 부위원장님이 걸어서 올라가시던 모습입니다. 그래서 저도 부위원장님을 따라 같이 걸어 올라가곤 했습니다. 같이 걸어가면서 부위원장님이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들려주셨는데, 아마 그 시간이 많이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냥 그렇게 맹숭맹숭 헤어지는 것보다는 차라도 한잔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뒤로는 갈 때마다 제가 차를 준비해 갔습니다. 오랜 세월 이렇게 힘들게 활동하셨는데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것도 문을 닫아야 하는구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어르신들도 너무 연로하셨고, 그 곁에서 함께해 온 분들도 너무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이주가 아직 이루어진 것은 아니어서 아쉽지만, 그래도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와서 함께 걸어주고 그 뜻을 같이해준 것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 낭송
관을 끄는 날들이 지나가면 _윤은성
1.
베크렐(Becquerel)은 방사성 물질이 방사선을 방출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국제단위
1초 동안 한 개의 원자핵이 붕괴할 때
베크렐은 그때 방출되는 방사능의 강도
베크렐이란 단위를 알고 나니
베크렐에 우리가 갇혔단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어떻게 될까
안전하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사용 후 핵 연료를 보관하는 것이 포화에 다다라도
대책을 기다릴 수 있을까
우리는 폐기된 방사능의 무덤과 공존할 수 있을까
탄소배출이 적게된다는 이유를 믿을 수 있을까
2.
한동안 바다가 찍힌 사진을 봤어. 월성 나아리엔 바다와 발전소와 관들이 있었지. 주거지와 제한 구역이 붙어 있고, 찾아간 모래사장에는 아이들과 가족들도 많았어.
이제 이런 풍경은
익숙하고도 매번 낯설어서
우리가 자꾸 이상한 꿈속에 있는 것 같지.
파랗고 눈이 시려.
10년 후의 바다도 100년 후의 바다도 지금과 같을까.
우리는 지금 평온할까.
여름이 지나가고 있어.
모래사장엔 볕이 있고, 떠도는 숨이 있고. 소금기 어린 생명들이 있을 테지. 다시 내년 여름이면 오가는 아이들의 맨발들이 있을 테지.
우리는 이곳에서 할 말을 잃고서, 커다란 발전소와 작아진 바다를 번갈아 보았어. 너무 큰 정적이 자꾸 소리를 삼킨단 걸 알았어. 들으려 노력하다가. 울렁이는 마음을 눌러 둔 채.
걷고 멈춰서 보았어.
바다는 아름다웠고. 한동안 몸이 따갑도록 놀다가 나와도 좋을 것 같았어. 어쩔 수 없다는 듯 깔깔 웃으며 서로를 해변 밖 바닷물 쪽으로 밀어내는 장난을 쳐봐도
좋을 것 같았어.
우린 그런 웃음을 정말로 지을 수는 없었지.
그런 장난도 칠 수는 없었어.
우리는 저마다 바다 사진을 찍었고.
나는
내가 그 바다에 속할 수도
속하지 않을 수도 없이
누군가의 손을 놓아버린 마음으로
죽음에서 나만 살아 돌아온 심정으로
하루를 살았지.
안전한 우주를 상상하며
개와 함께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어두운 집 안 곳곳을
환하게 밝히지.
이 전기가 다 어디에서 온 건지 떠올리며
창밖 밝은 도시의 밤을 내다보지.
3.
다시 하루가 시작되면. 사진 속 보이지 않는 곳은
관을 끌고 가는 사람들이 줄지어 선 마을이야.
아이들이 블루베리를 따다가 서로에게 먹여줘.
방사능이 넘쳐도 열매가 자라더라.
관을 끌던 사람들이 집으로 되돌아가고.
기다리던 가족들이
남아있는 곡식을 가져다가
말없이 밥을 짓고 함께 들어.
손님도, 오래 누웠던 반려자도,
잠시 안아본 자손들도,
멀리서 찾아오곤 하는 잘 우는 사람들도,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게 된 마을 주민들도.
이곳이 망가졌다는 것을 알아.
같은 바다마을에서
같은 볕과 공기에 싸여서
제한구역 바깥으로 이주해 나가지 못한 채
관을 끄는 사람이 되어서
하늘을 바라봐.
서로의 눈을 마주쳐.
우리는 계속 몸 안 모르는 곳이 속속 망가져가는데.
빠르게 이곳을 뜰 방법이 없지.
보이지 않는 창살 속에 갇혔지.
여기서
살아서 나가는 방법이 없냐고
관을 끌던 사람들이 학자나 공무원을 붙잡고 물으면
웃으며 똑같은 대답들을 반복해.
여기는 깨끗하고 안전한 곳이라고.
여기는 깨끗하고 안전한 곳이라고.
4.
우리는 계속해서
짙은 파란색 바다를 따라서 걷고 걸을 거야.
햇볕과 바람에 감사하며
바다에 몸을 담그고도 평온히 웃을 수 있게 될 때
그때 이곳은 애쓰지 않고도 서로의
사랑을 알아보는 세상이 되어 있을 텐데.
핵발전소 안에 가면
일부러 보여주기 위해 기르고 잡아먹는
물살이들이 있대.
오염수가 아니라 깨끗한 물이라고 그들은 말하겠지.
우리는 그곳의 물살이를 소문으로만 들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발전소가 지어질 계획이라는데
봄이 오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치 않은
날들이네.
언제 터져도 이상치 않은 몸들이
그림자 끌고서 길고 긴
핵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
하지만 우리가 바다에서 보고 싶은 것은 철새들. 고래들.
뛰어다니는 아이들. 조개와 해초를 줍고 헤엄치는 친구들.
핵의 긴 시간이 아닌 아주 오래 서로를 지켜줄
바다의 시간.
우리는 핵이 아닌 생명을 원해.
우리는 핵이 주는 편리함과 자본이 아닌 서로를 아낄 시간을 원해.
40년 수명의 오래된 핵발전소는 수명연장 하지 말자.
새로운 핵발전소도 마을 안의 슬픔도 원하지 않아.
우리 이제 그 많은 데이터와 전력을 쓰는 일도 핵에너지를 지구와 맞바꾸는 일도 질병과 죽음을 예견하며 미리 놀라하는 일도 그만 하자.
5.
돌아보면 감사한 일들이 빛처럼 많아.
핵발전소가 줄지어 선 곳 맞은편
바다가 너무 파랗고
시리게 빛나면
다시 여름이라고, 겨울이라고
기억할 죽음과 생명이 이곳이 너무 많다고 우리는 또다시 말하자.
조금 더 천천히 오래오래 사랑한다고 말하자.
**이 시는 2025년 동료들과 함께 생태 학살 현장을 찾아간 후 쓴 시들을 모아 출간한 시집 『여름, 연루』수록작을 수정한 것입니다.

살아서 죽은 이름으로 _ 월성원전 이주대책위 천막농성 12년 기념행사에 부쳐, 희음
흰 아침 위에 획 하나가 그어졌다.
첫째 날이었다.
숫자는 매일 몸을 바꿔
슬픔을 으깨고
요구를 칼질하며
굽은 등으로 옮겨 앉았다.
목소리를 업고 버틴 사천 일이었다.
*
미역을 널고
누구라도 활개 치고 물 삼키고 자지러지던 바다.
여기에 벼락처럼 공장이 섰다.
대문을 열어 둔 마을에 속삭인 뒤였다.
전기를 만든다고, 깨끗하다고,
땅이 흔들려도 끄떡없다고.
*
삼중수소는 물의 얼굴.
공장으로부터
땅 밑 물길로 스미는 얼굴.
형체도 냄새도 없었다.
몸은 소리 없이 시들어갔다.
*
월요일 아침마다
상여가 이어졌다.
살아서, 죽은 이름으로
길 위를 걸었다.
*
법은 구백열네 걸음의 바깥에
금 하나를 그었다.
안쪽은 위험, 바깥은 안전.
집들은 그 금에서
겨우 몇십 걸음 밖이었다.
금은 땅 위에 있고
물은 땅 아래로 흘렀지만
모두는 손쉽게 안전한 쪽 사람이 되었다.
길고 깊은 흉터가 목마다 새겨지고,
걸음마도 떼기 전인 손주의 오줌이
비명 같은 눈금을 가리켜도.
*
금 안쪽 모래밭에선
자꾸 모래성이 세워지고
저녁이면 텐트마다 불이 켜졌다.
연인들이 바다를 보며 저녁을 지었고
"제한구역 알림"
팻말은 웃고 있었다.
누구도 발밑을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도 이 마을을 데려가지 않았다.
*
몸보다 먼저 늙은
천막을 접는다.
사천 번의 아침이
어깨에서 미끄러진다.
*
접힌 자리에 이름이 남는다.
사천 번 끌고 나온 이름을
바다가 먼저
받아 적는다.
*경주 월성 핵발전소 옆 마을 나아리 주민들은 2014년 8월 25일부터 방사능 피폭 없이 살 수 있는 곳으로 이주할 권리를 요구하며 이주대책위를 만들고 천막 농성과 상여 행진을 시작했다. 주민들의 몸에서는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됐고, 갑상선암을 비롯한 건강 피해가 이어졌다. 그러나 집이 원자력안전법상 제한구역(914m) 밖이라는 이유로 이주 대책에서 번번이 제외됐다. 농성은 4000일을 넘겨 12년에 이르렀다. 2026년, 이주대책위는 오랜 천막을 거두기로 했다. 이주할 권리를 향한 목소리는 자리를 옮겨 어디서든 계속될 것이다.
“오늘은 끝이 아니라 2부의 시작…시작했으니 끝을 볼 것”
월성원전 이주대책위 천막농성 12년 기념행사 개최
- 2014년부터 요구한 ‘안전한 곳으로의 이주’, 12년 지나도록 정부·한수원 대책 없어
- 월성원전 이주대책위, 12년 12일 이어온 천막농성과 월요상여시위 마무리…새로운 방식의 투쟁 시작
- 천막은 접지만 이주대책 법제화·월성원전 수명연장 저지·영덕 신규원전 반대로 투쟁 확장
월성원전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이주할 권리를 요구해 온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가 12년 12일 동안 이어온 천막농성과 월요상여시위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방식의 투쟁에 나선다.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 천막농성 12년 추진위원회는 9월 5일 오후 3시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전 인근에서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 천막농성 12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월성원전 인접지역 주민들과 경주를 비롯해 서울·부산·울산·밀양·광주 등 전국에서 지난 12년 동안 이주대책위와 함께해 온 연대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의 사회를 맡은 이상홍 탈핵경주시민공동 집행위원장은 “주민 대부분이 이제 여든을 넘기면서 매주 행진과 천막농성을 이어가는 일이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12년을 계기로 천막농성과 월요상여시위는 마무리하지만, 이주대책위의 활동은 계속됩니다. 여러 지역과 연대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갈 것입니다. 오늘은 끝나는 날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하는 날입니다”라고 말했다.
행사는 엄혜린 씨의 생명평화 탈핵 기도로 시작했다. 이어 주민들은 월성원전 앞에서 이어온 천막농성 12년의 시간을 담은 기념 그림을 처음 공개하는 제막식을 진행했다. 지난 12년을 기억하기 위해 제작한 ‘이주’ 기억배지도 주민들에게 전달됐다.
“오늘로 1부를 마치고, 이제 2부가 시작되는 것 아닙니까”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의 투쟁은 2014년 8월 25일 시작됐다.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은 월성원전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이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며 원전 앞에 천막을 세웠다. 이후 매주 월요일 자신의 이름을 적은 상여를 끌고 원전 앞을 걸으며 이주대책 마련을 요구해 왔다.
이날 첫 번째 주민 발언에 나선 김진선 월성원전 이주대책위 총무는 12년의 활동을 ‘1부’에 비유했다. 김 총무는 “오늘로써 우리가 1부를 마치고, 앞으로 2부가 시작되는 것 아닙니까. 앞으로도 모두 건강하게 함께 계속 같이 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성혜중 씨는 2014년 농성을 시작하며 이주대책위가 발표했던 보도자료를 12년 만에 다시 낭독했다. 당시 주민들은 “우리 이주대책위원회 회원들은 안전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월성원자력발전소에 가장 인접하여 살고 있는 주민들은 이주를 희망하고 있으니 강력히 이주대책을 요청합니다”라고 밝혔다. 12년 전 요구는 이날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김해준 씨의 발언에서는 주민들이 버텨온 시간의 무게가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83세인 김 씨는 “한숨밖에 안 나옵니다. 언제 될란가, 오늘은 될란가, 내일은 될란가. 그렇게 속아, 속아가며 최근까지 왔습니다”라며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놓고 죽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힘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고 말했다.
황분희 부위원장은 천막과 상여를 마치는 것이 투쟁의 종료가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황 부위원장은 “여러분들이 오늘 오셔서 ‘12년 이제 끝냈어, 너무 안됐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아니에요. 지금은 다음을 위해서 더 합니다. 시작했으니까 끝을 볼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걸어 다닐 수 있고 우리 회원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동안은 어디든지 갑니다. 월성이 어떤 곳인지, 우리가 12년 동안 실제로 겪은 일을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며 “오늘로 상여행진은 끝났지만 그보다 더 힘을 내서 국회든 청와대든, 어디든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고 두드릴 수 있는 곳은 두드리겠습니다”라고 밝혔다.
행사에서는 주민들의 과거 목소리를 담은 녹음도 함께 재생됐다. 김진선·성혜중·김해준 씨 등 주민들의 과거 발언과 이날 현재의 목소리가 교차하며, 12년 동안 변하지 않은 요구와 달라진 주민들의 시간을 함께 보여줬다.
한수원 소송으로 농성장 철거·이전…그러나 이주대책은 여전히 없어
주민들이 12년 동안 농성장을 지켜왔지만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이주 요구에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수력원자력이 제기한 소송으로 지난해 주민들은 오랜 시간 지켜온 기존 천막농성장을 철거해야 했다. 이후 이주대책위는 새로운 터로 농성장을 옮겨 활동을 계속했다.
원전 최인접지역에서 주민들은 오랜 기간 건강과 안전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고, 자신의 재산만으로는 다른 지역으로 삶터를 옮기기 어려운 현실을 알려왔다. 그러나 원전 인접지역 주민이 안전상의 이유로 이주를 원할 경우 이를 지원하는 법과 제도는 현재까지 마련되지 않았다.
이날 연대사에 나선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겸 신규핵발전소저지와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집행위원장은 “새로운 원전을 이야기하기 전에, 지금 원전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주민들의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순서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안 집행위원장은 “정부는 새로운 원전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이미 원전이 들어선 지역 주민들의 이주 문제에는 답하지 않고 있다”며 “국가가 필요해서 원전을 지었다면 그 부담을 주민들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됩니다. 이주를 원하는 주민이 실제로 이주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환경운동연합이 월성 주민들과 함께 원전 주변 주민들의 이주를 국가가 지원할 수 있도록 법·제도 개선 운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상현 탈핵부산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제가 탈핵과 이주대책위의 활동을 몰랐다면 오늘 본 월성 해변은 평온한 풍경으로만 보였을 것”이라며 “보이지 않는 방사능을 몸에 품고 살아온 주민들의 활동이 이곳의 위험을 가시적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12년의 상여농성은 끝나지만, 고리·영광·월성·울진·영덕에서 지치지 않고 계속 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상임공동대표 천도 스님은 12년간 이어진 투쟁을 문을 여는 일에 비유했다. 천도 스님은 “지금까지 밀어왔으니까 이걸로 안 됐으면 이제 당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제 같이 또 당겨보는 겁니다”라며 “우리 어르신들이 원하는 것은 큰 게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향희·장영식·이은정·강언주 씨 등 지난 시간 월성 주민들과 함께해 온 연대자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윤은성·희음 시인은 시 낭송으로 주민들의 12년을 기억했으며, 경주피터가 노래 공연으로 함께했다.
천막은 접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이주대책 법제화’와 더넓은 연대로
이주대책위원회는 이날을 계기로 12년간 지속해 온 천막농성과 매주 월요일 진행해 온 상여시위를 마무리한다. 이는 이주 요구와 활동의 종료가 아니라 투쟁 방식의 전환이다. 주민들의 고령화와 변화한 활동 여건 속에서 농성장을 상시 유지하고 매주 상여시위를 이어가는 방식 대신, 정부와 국회에 제도적 책임을 요구하고 다른 원전지역의 현안과 연결하는 방향으로 활동의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특히 이주대책위와 연대단체들은 앞으로 원전 인접지역 주민의 이주대책 마련을 위한 법·제도 개선을 핵심 과제로 제기할 예정이다. 개별 주민들이 오랜 시간 문제를 호소하고 버티는 방식이 아니라, 원전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떠나기를 원하는 주민에게 국가와 사업자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제도적으로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월성원전의 수명연장 문제에도 대응을 이어간다. 주민들의 기존 피해와 이주 요구조차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전 가동기간을 추가로 연장하는 것은 인접지역 주민들에게 위험과 부담을 다시 떠넘기는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최근 신규원전 부지로 선정된 경북 영덕의 신규원전 건설 반대 투쟁과의 연대도 확대할 계획이다. 이미 원전이 들어선 지역에서 해결되지 않은 주민들의 삶과 권리 문제를 신규원전 예정지역에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월성 이주대책위의 향후 활동은 ‘월성 주민의 이주’라는 요구에서 출발해 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의 법제화, 노후원전 수명연장 저지, 신규원전 예정지역과의 연대로 확장될 예정이다. 황 부위원장은 천지원전 추진 당시 영덕 주민들에게 “당신들이 여기 원전을 받아들이면 월성과 똑같이 됩니다. 월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시면 한번 와보십시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실제 영덕 주민들이 버스를 타고 나아리를 방문하기도 했다며, 이번 신규원전 추진에 대해서도 “못 짓게 싸울 때 우리 이주대책위도 연대해서 같이 가고, 우리가 겪은 이야기를 하겠다”고 밝혔다.
행사 참석자들은 오후 4시 30분부터 나아리 마을을 함께 행진하며 지난 12년의 활동을 기억하고 앞으로의 투쟁을 이어갈 뜻을 밝혔다. 천막은 접혔고 매주 월요일 이어지던 상여행진도 멈췄다. 그러나 2014년 주민들이 처음 내걸었던 “안전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요구는 12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다. 월성원전 이주대책위는 그 요구가 실현될 때까지 장소와 방식을 바꾸어 싸움을 이어갈 예정이다.
*사진/영상 다운로드 : 링크
*사진출처 : 환경운동연합, 울산환경운동연합
2026년 9월 7일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 천막농성 12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회
[발언문 전문]
생명평화 탈핵 기도문 | 엄혜린
우리는 풍경 한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나무처럼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도 나무와 다를 바 없는 생명임을,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나임을 압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몸이 아픕니다. 우리의 일부인 나무는 불에 타버렸습니다. 우리의 일부인 바다는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32기의 핵발전소는 언제 터질지 모릅니다. 일본은 880톤에 달하는 녹아내린 핵연료를 회수하지 못하고 있고, 방사성 오염수 해양 투기로 환경오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후쿠시마의 사고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후쿠시마 핵사고로 희생당한 땅과 뭇 생명들, 그리고 아직까지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 다 같이 묵념합시다. 인간의 이기적인 탐욕으로 죽어간 뭇 생명과 동식물들에게 참회와 용서를 빕니다. 다 같이 묵념.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구적 사고와 행동이 무엇인지. 연결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마음. 그 마음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연결이 시작됩니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 모든 생명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겠습니다. 12년 함께 걸어온 그 마음을 담아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2026년 9월 5일, 월성 핵발전소 이주대책위 천막농성 12년하고 12일을 함께한 우리 모두.
이주대책위 발언
1) 김진선 총무
반갑습니다. 이렇게 멀리까지 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핵이라는 것이 이렇게 위험한데도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그런 곳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살아왔고, 또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계속 활동해 왔습니다. 이런 곳에 멀리서 찾아와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가 오늘로써 1부를 마치고, 앞으로는 2부가 시작되는 것 아닙니까. 앞으로도 더 많이 후원해 주시고, 모두 건강 잘 지키시면서 함께, 같이 계속 갔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 성혜중 | 2014년 8월 25일 이주대책위 성명서 낭독
본 이주대책위원회 위원들은 월성원자력발전소에 가장 인접하여 살고 있는 주민들로, 농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보통 사람들인 저희들이 왜 ‘이주대책위원회’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이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위원장인 저도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월성원자력발전소의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월성 1호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30년 수명이 다 된 노후 원전을 ‘계속운전’이라는 명분 아래 10년이나 수명을 연장하려 하고 있습니다. 수명이 다 되면 폐기 처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월성 1호기의 가동을 근본적으로 반대합니다. 그 배경에는 월성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다는 것이 있습니다. 발전소의 고위 관계자부터 말단 직원까지 뇌물 스캔들의 중심에 있었으며, 그러한 비리는 우리의 재산과 생명을 좌우하는 안전 문제와 직결돼 있습니다. 또 짝퉁 부품이 판을 치고 있는 이런 현실에서 그 어떤 점검과 검증을 수행하더라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중수로에서 배출되는 삼중수소가 경주시내보다 30배나 높게 나왔다는 조사 내용은 우리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30년 동안 배출된 삼중수소의 피해는 우리 주민들이 입고 있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피해 여부에 대한 조사나 실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주민을 너무나 무시하고 멸시하는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습니다. 또한 상권은 몰락해 있고 지역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토지나 건물은 매매도 되지 않으며, 우리의 자력으로는 아무리 살아보려고 노력해도 살아갈 수 없는 실정입니다. 우리 이주대책위원회 회원들은 안전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월성원자력발전소에 가장 인접하여 살고 있는 주민들은 이주를 희망하고 있으니 강력히 이주대책을 요청합니다.
3) 김해준
한숨밖에 안 나옵니다. 언제 될란가, 오늘은 될란가, 내일은 될란가. 그렇게 속아, 속아가며 최근까지 왔습니다. 한수원 본부장이나 이런 사람들이 와서 술 한잔 사주고 달래고 가고, 또 달래고 가고 그랬습니다. 그러고 좀 있으면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똑같이 이야기하고, 또 다른 사람이 오면 또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월성원전 사람들입니다.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제 83살입니다. 83살인데,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놓고 죽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좀 많이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이제 힘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 황분희 부위원장
반갑습니다. 지금은 제가 가슴이 너무 벅차요. 12년 동안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고, 너무 힘든 일도 많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여러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나름대로 힘차게 이주대책을 위해서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내려놓고 또다시 한번 기상을 해보자, 이런 마음으로 오늘을 계기로 상여시위는 끝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같이 이 행사를 하자고 이상홍 국장님한테 간곡히 얘기한 이유가 있습니다. 정말 10년 넘는 시간 동안 많은 분들이 저희를 도와주셨어요. 마음으로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도 너무 감사하게 받은 것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12년을 하고 이제 건강도 안 좋고 더 이상 예전처럼 하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그냥 내려놓기에는, 정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뭔가 여러분들을 모아놓고 정말 감사했던 마음을 전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행사를 하지 않으면 한 사람 한 사람 누가 도와주셨는지, 전화번호도 다 알지 못하고 그분들께 일일이 이야기할 수도 없더라고요. 그러면 또 마음이 아팠어요. ‘이분이 정말 우리를 도와줬는데 내가 그분께 어떻게 감사하다고 이야기하지?’ 그런 마음이 들어서 국장님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전국에 계신 분들이 오시면 제가 정말 감사하다고, 정말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오셔서 ‘아, 12년 이제 끝냈어. 너무 안됐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아니에요. 지금은 다음을 위해서 더 합니다. 시작했으니까 끝을 볼 겁니다. 제가 걸어 다닐 수 있고 우리 회원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동안은 어디든지 갑니다. 여러분들이 저희가 필요하다면, 월성에 사는 이 모습들을 알려줘야 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요청하세요. 어디든지 가서 월성이 어떤 곳인지, 우리가 12년 동안 실제로 겪은 일을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처음 영덕 천지원전 문제로 싸울 때도 그곳에 가서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딸이 퇴근하고 오면 저녁 5시에 영덕으로 출발해서 영해면이며 죽장이며 시골 곳곳을 다니면서 월성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면 그분들도 처음에는 ‘탈핵하는 사람은 탈핵을 하니까 원자력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다가, ‘저 사람은 실제로 원전 옆에서 살면서 겪은 이야기를 하는구나. 그럼 저 사람 말이 맞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는 곳마다 이야기했습니다. “당신들이 여기 원전을 받아들이면 월성과 똑같이 됩니다. 월성이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시지요? 그러면 월성에 한번 와보세요. 원전을 찬성하는 분도, 반대하는 분도 다 오세요. 버스 한 대만 타고 오시면 우리 동네 현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했더니 정말 영덕에서 버스 한 대가 왔습니다. 찬성하시던 분들도 같이 오셨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와서 처음 한 말이 “원전을 받아들였으면 안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우리 동네를 보고 ‘죽음의 동네 같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가게마다 문이 닫혀 있고, 닫혀 있는 가게들 유리창은 깨져 있고, 마을이 참 피폐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월성에는 영덕처럼 내세울 만한 특산물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덕은 아니잖아요. 영덕대게도 있고, 영덕송이도 있고, 얼마나 좋은 곳입니까. “당신들은 원전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절대 천지원전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든 막아냈는데 이번에 정부가 또 그곳에 원전을 짓겠다고 하니까, 그래도 우리가 다시 노력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못 짓게 싸울 때 우리 이주대책위도 연대해서 같이 가고, 우리가 겪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지금은 12년 전보다 동네가 더 나빠졌어요. 폐기물 문제도 있고, 중수로에서 나오는 여러 폐기물 문제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은 그런 내용을 잘 모릅니다. 누가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줍니까. 한수원이 알려줍니까. 언론에 잠깐 뉴스로 나오면 본 사람은 보고 못 본 사람은 못 봅니다. 이런 것들도 앞으로 계속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 손자도 이제 고등학생이 됐어요. 한 10년, 20년만 지나면 제가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몸속에 들어간 방사성물질이 몇십 년 뒤에라도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늘 긴장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오늘 여러분들을 보니까 정말 힘이 납니다. 앞으로 더 해야 하고, 저 사람들과 더 싸워야 하고, 더 바른 소리를 해야 합니다. 주변에서는 이제 연세도 그만큼 들었으니 좀 그만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하지만 아니요. 나는 할 겁니다. 내가 이걸 한다고 해서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나는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계속 해야겠습니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셨고,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이주도 해야 되겠지만 탈핵도 해야 하고, 앞으로 원전을 더 이상 짓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 작은 땅에 원전이 계속 늘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연대해가겠습니다. 밀양에서 어르신들이 와주셨다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먼 곳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도 밀양에 가서 함께하고 밀양의 상황도 많이 봤습니다. 앞으로 더 합시다. 더 열심히 합시다. 오늘로 상여행진은 끝났지만, 그보다 더 힘을 내서 국회든 청와대든 어디든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고 두드릴 수 있는 곳은 두드리겠습니다. 힘을 모아 연대하는 입장에서 여러분과 함께해야 합니다. 같이 해주실 거죠? 감사합니다.
연대사
1) 안재훈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집행위원장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 주민 여러분, 함께하신 모든 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니 먼저 죄송하고, 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12년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원전과 핵폐기물의 위험을 이야기하고, 주민들의 안전과 삶을 지키기 위해 싸워오셨습니다. 천막 농성장을 지키며, 매주 월요일 상여시위로, 국회로, 청와대로, 월성1호기 수명연장 무효 소송, 갑상선암 피해 소송까지 그 긴 시간을 버텨주신 주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해서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도리어 원전 확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신규원전과 SMR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새로운 원전을 이야기하기 전에, 지금 원전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주민들의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순서 아닙니까? 원전은 발전소를 짓는 것으로 끝나는 사업이 아닙니다. 수십 년 동안 그곳에서 일상적인 방사능 피폭과 암 발병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는 주민이 있고, 원전사고 위험과 핵폐기물을 떠안아야 하는 지역이 있고, 원전 때문에 삶의 터전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부는 새로운 원전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이미 원전이 들어선 지역 주민들의 이주 문제에는 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국가가 필요해서 원전을 지었다면, 그 부담을 주민들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됩니다. 이주를 원하는 주민이 실제로 이주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앞으로 월성 주민들과 함께 원전 주변 주민들이 안전과 생존을 이유로 이주를 원할 경우 국가가 책임지고 이주를 지원할 수 있는 법과 제도 개선 운동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이 문제는 월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주 월성, 부산 고리, 울산 새울, 울진 한울, 영광 한빛까지 원전이 있는 지역마다 주민들이 감내한 희생이 있습니다. 핵발전의 편익은 국민 모두가 누린다고 하면서, 왜 그 위험과 희생은 특정 지역 주민들에게 집중되어야 합니까?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새로운 원전을 얼마나 지을 것인가를 이야기하기 전에 이미 원전으로 희생해온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부터 국가가 답해야 합니다.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 여러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주민들의 이주가 현실이 되는 그날까지 함께하겠습니다.
2) 박상현 탈핵부산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저는 월성원전 인접 지역 이주대책위와의 기억이 없습니다. 여기에 결합한 새롭게 탈핵운동과 결합한 분들을 대신 할 순 없지만 새롭게 탈핵운동과 결합하는 분들을 대신에 발언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대체로 핵발전과 관계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월성 핵발전소 해변에 가보았습니다. 낚시는 하는 사람과 접근 제한 구역이러는 팻말, 녹색 펜스, 그리고 일광욕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가 탈핵이라는 걸 몰랐다면, 월성원전 인접 지역 이주대책위의 활동을 몰랐다면, 핵발전소 인접지역의 활동을 몰랐다면 이 풍경은 너무나 평온한 해안가의 풍경이었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방사능을 몸에 품고 있는 어르신들의 활동 때문에 이 광경은 평온한 풍경이 아니라 인접 지역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험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12년의 상여 농성은 끝이 나지만 농성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이들 또한 고리, 영광, 월성, 울진, 그리고 영덕에서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싸워나가도록 하겠습니다.
3) 천도스님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상임공동대표
반갑습니다. 와, 진짜 12년 너무 길었죠? 그런데 아까 제막식 할 때 딱 보니까 오늘 답이 나오더라고요. 밀어서 안 되면 당기고, 당겨서 안 되면 밀어라. 우리가 보통 문을 열 때 그렇게 하잖아요. 지금까지 밀어왔으니까, 이걸로 안 됐으니까 이제는 당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아셨죠? 이제 같이 또 당겨보는 겁니다. 정말 거리에서 싸우는 동안 연세가 이렇게 많이 들어버렸는데, 내생보다 이주가 좀 더 빨리 올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생이 너무 일찍 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좀 더 힘을 내고, 좀 더 연대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더 큰 것을 바라는 게 아니잖아요. 원전이 그렇게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하면서 왜 주민들에게 온갖 보상을 해주겠습니까? 위험하고 위험부담이 크니까 그런 것이라도 내세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어르신들이 원하는 것은 큰 게 아니잖아요.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겁니다. 저는 황분희 언니를 만나고 나서 전기가 정말 누구의 눈물을 타고 흐르는지를 늘 생각하게 됩니다. 발언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기 아껴 써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광화문에서 자유발언을 하실 때 눈물로 호소하던 그 발언이 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 전기가 어디서 오는지 아느냐? 누구의 눈물을 타고 오는지 아느냐?” 이 말씀을 하시면서 “서울 것들, 도시 것들, 전기 아껴 써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제가 잊을 수가 없어서 지금까지도 늘 “전기 아껴 써라”라고 합니다. 우리는 원전을 바라보지 않으니까 잊어버리고 살잖아요. 원전을 눈만 뜨면 바라보고 살아가는 이분들의 심정을 저희가 1분이라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정말 깜깜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어르신들은 나이가 들고, 친구들은 떠나고, 이제 남아 계신 분들도 몇 분 안 됩니다. 우리 어르신들이 좀 더 안전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다 가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힘을 좀 빼려고 했는데 또 이렇게 힘이 들어가네요. 오늘 함께해주시고 연대해주신 분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느냐’고 하지만 사실 이 마을에서 잃어버린 것도 참 많습니다. 하지만 낯선 분들이 늘 찾아와 손잡아주고 연대해주고 같이 커피도 마셔주셨잖아요. 제가 살고 있는 언양에서 여기까지 아침에 오려면 한 시간 반 정도 운전해서 옵니다. 와서 30~40분 정도 함께하고 이야기 좀 나누고 손잡아드리고 다시 돌아가면 또 일을 해야 해요. 처음에는 저도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은 꼭 오겠습니다”라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하지만 마음은 늘 여기 있습니다. 월요일 아침마다 페이스북을 보면서 ‘오늘도 오셨구나. 아직도 계시는구나’ 하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늘 같이 연대하는 마음과 응원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두 손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기도라고 하죠. 자기 방식대로 두 손을 모아주시겠습니까? 기도할게요. 따라해 주세요. “월성 나아리 주민들이,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 어려움과 걱정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안전하고 행복하시길.” 원전을 반대하거나… 원전을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기도해주려고 했는데, 참 기도해주기가 어렵네요. 그렇죠? 친원전하는 사람들까지 기도해주려고 했는데 오늘은 안 되겠네요. 그래서 원전을 반대하는 분들이 위험과 불안과 걱정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안전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연대의 목소리
1) 문정현 신부
나아리 주민들, 안녕하세요. 거기 한번 가본 일이 생각납니다. 그날 아침에 주민들이 나와서 상여를 메고 집회를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핵발전소 하면 일본의 후쿠시마가 생각납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남의 일이 아니죠. 여기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정말 우리 주민들이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오랫동안, 12년 동안 활동하신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큰일 하셨습니다. 핵발전소가 문을 닫지 않는 한 위험은 존재하는데, 언제까지나 그 시위만 계속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얼마나 지치셨으면 상여 행진을 중단하시겠습니까. 그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마음으로는 함께하고 싶었지만 거리상 가지 못한 것은 너무 죄송합니다. 여러분, 힘내십시오. 상여 행진은 중단하더라도 그 싸움만은 그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수고하실 것 같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그리고 고맙습니다.
2) 이향희 울산 주민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우리 사회는 방사능에 대한 우려와 함께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탈핵운동 진영에는 새로운 돌파구가 열린 듯했습니다. 오랫동안 힘겹게 현장을 버텨온 활동가들에게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은 새로운 가능성 그 자체로 다가왔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이 무렵 『한국탈핵』의 저자 김익중 교수님의 울산 강연장에서 그분들을 처음 만났던 것 같습니다. 탈핵 활동가 대회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당시의 모습만큼은 여전히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황분희, 신용화. 할머니 한 분과 젊은 새댁처럼 보이는 주민 두 분이 울산 강연장을 찾아오셨지요. 새로운 얼굴들이 반갑고도 신기해 유심히 지켜보던 중이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황분희 님이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월성핵발전소가 있는 나아리에 살고 있습니다. 가족들 건강하라고 직접 키운 농작물을 살뜰히 먹였는데, 내가 내 손으로 사랑하는 손주를 내부피폭시키고 있었단 말입니까? 철마다 정성껏 보낸 제철 식재료가, 실은 이 손으로 보낸 방사능 오염물질이었단 말입니까?”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참담함을 쏟아내던 그 눈빛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신용화 님은 나아리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똑똑한 젊은 사람이 할매, 할배들 대신해서 단디 해봐라” 하는 성화에 등 떠밀려 대책위 사무국장을 맡았지만, 거주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며 주민 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후쿠시마의 비극을 지렛대 삼아 탈핵운동의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저의 얄팍한 이기심이 산산조각 깨져버린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울산 중구에서 함께 활동하던 지인이 경주로 이사했다며 집들이를 청했습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마당에서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는데, 알고 보니 그곳이 양남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제 오랜 지인을 길 위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양남면 청년회와 지역 주민들을 독려하며 나아리 주민들과 뜨겁게 연대하고 있는 이재걸 님입니다. 사람들의 일상이 흘러가는 곳이자 내 지인의 삶터. 나아리는 단지 ‘원전 소재지’나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싸우는 곳’이라는 수식어 그 이상의 복잡다단한 삶의 무게를 지닌 공간입니다. 삼중수소에 노출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피폭의 고통 속에서 온몸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 나아리와 그곳 주민들에게 진정한 평화가 깃들기를 간절히 빕니다.
3) 장영식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월성 나아리로 가는 길은 무거웠습니다. 신고리핵발전소, 지금은 새울(새로운 울산)이라고 부르지만, 건설 때문에 정든 삶의 터를 두 번이나 쫓겨나야 하는 골매마을에서 천도제를 지내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해무가 가득했던 월성 나아리 농성장의 천막과 깃발들은 색이 바랬습니다. 농성장에서 월성한수원까지 행진하던 상여들도 시간의 흐름이 깊이 패여 있었습니다. 농성장 안의 사진들 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문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대통령 후보 때 농성장을 방문한 모습이었습니다. 농성장에서 황분희 씨를 만났습니다. 황분희 씨는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이미 저를 알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맞아주셨던 어머니는 두 개의 깃발을 들고 핵발전소 가까이 갔습니다. 어머니는 나아리 바닷가에서 깃발들을 힘차게 흔들어 보이셨고, 저는 그 장면을 사진기에 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진의 배경에는 짙은 해무로 핵발전소는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 배경과 손자의 소변 검사에서 삼중수소가 배출된 이야기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들려주었습니다. 갑상선암 수술을 하면서도 그 원인을 알지 못했던 어머니는 자기 때문에 손자들에게까지 천형을 물려주게 되었다는 애절한 이야기를 하시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마치 밀양과 청도 할매들이 참혹했던 행정대집행을 겪고서도 ‘고향의 봄’을 부르며 산정에서 내려와 “우리는 지지 않았다”라며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셨듯이, 어머니의 두 눈에는 이미 탈핵의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12년이 지났습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늙어가고 있습니다. 농성장도 상여 시위도 힘에 부칩니다.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는 이재명 정부와 싸울 기력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바위처럼 꿈쩍하지 않고 “탈핵”을 외칩니다. 탈핵은 생명이며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9월 5일 나아리에서 모진 세월을 살아오신 그 바위들을 만납시다. 그 바위들 앞에서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나눕시다. 잡은 손 놓지 않겠다고 약속합시다.
4) 이은주 울산 북구 주민
울산 북구 주민 이은주입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나아리에 언제부터 같이 왔나 되돌아보니까 2019년 7월부터 왔더라고요. 2024년 7월까지 계속 왔고, 그다음에 일자리를 새로 가지면서 한 2년 정도 같이 못 왔습니다. 그전에는 매주 월요일마다 와서 울산 시민들에게도 이 문제를 많이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울산 북구는 월성 핵발전소와 아주 인접해 있고, 제가 사는 곳도 17km 이내입니다. 그래서 이게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울산 북구 주민들의 몸에서도 삼중수소가 검출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저는 2019년에 와서야 처음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김진선 총무님을 비롯한 어르신들과 아침마다 상여를 메고 함께했습니다. 오늘은 무거운 이야기 말고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라고 해서 하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안 오셨는데, 저랑 닮았다고 했던 분이 있어요. 여기 플래카드에 있는 신용화 사무국장님입니다. 저는 안경을 안 썼지만 둘이 같이 다니면 사람들이 맨날 자매냐고 했어요. 둘이 닮았다고요. 저를 보고도 어느 분은 ‘용화 씨’라고 부르신 적도 있어요. 2019년, 2020년쯤 둘이 서울도 다니고 국회도 다니고 많이 함께했습니다. 그때 울산에도 월성 핵발전소 핵쓰레기장 문제에 대응하는 북구 주민대책위가 있었고, 거기에서 같이 활동하면서 용화 씨와 많이 다녔습니다. 용화 씨는 서울말을 쓰고 저는 부산말을 쓰는데, 서울 사람들은 그런 말투 차이를 잘 모르시는지 맨날 둘이 닮았다고 했습니다. 오늘 왔으면 용화 씨와 저를 같이 불러놓고 ‘진짜 닮았어요?’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지금 어머님이 아프셔서 서울 병원에 가 있어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오면 김진선 총무님이 정말 반갑게 맞아주셨어요. 그때도 제가 이미 쉰이 넘었는데 저를 보고 ‘울산 아가씨’라고 하셨어요. 어디 가서 제가 그런 소리를 듣겠습니까. ‘울산 아가씨’라는 노래도 있다면서 그렇게 불러주셨습니다. 오랫동안 같이 있으면서 느꼈던 것은, 앞에서도 말씀하셨지만 어르신들이 정말 단단하시다는 겁니다. 그 착한 성품과 진솔함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밀양 할머니들을 뵐 때 그렇고, 나아리 어르신들을 뵐 때도 ‘나도 저렇게 함께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2019년 7월 경주에서 열린 집회에서 황분희 어머님을 처음 뵀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듣고 제가 겁도 없이 ‘매주 오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해버렸어요. 그런 약속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후에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감히 다시 약속드리겠습니다. 이주해서 그날 함께 신나게 춤추는 날까지 어르신들과 계속 연대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그 약속을 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5) 강언주 부산 시민
안녕하세요. 강언주입니다. 이상홍 국장님이 저한테 오늘은 연대발언 말고 월성과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좀 재미있게 해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자회견하고, 집회하고, 농성하고, 인터뷰하면서 같이 분노하고 항의하고 소리 질렀던 기억들이 먼저 떠오르는 거예요. 물론 그 와중에도 웃고 떠들고 했던 기억도 있죠. 농성장에서 수박 먹고 같이 짜장면 먹고. 왜 재밌던 기억을 떠올리면 뭘 그렇게 같이 먹었던 게 생각날까요. 뭘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생각났어요. 사실 저와 지금 새알미디어를 함께하고 있는 남태제 감독과의 인연도 어떻게 보면 월성 때문에 시작된 거예요. 서로 녹색당원이고 탈핵과 관련한 활동을 해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길게 이야기를 나눈 건 2019년 부산에서 영화 〈월성〉 상영회를 했을 때였어요. 제가 그날 GV 진행을 맡았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월성은 지금의 새알미디어가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좀 거창하게는 “새알을 탄생하게 해준 게 바로 월성이다”라고 할 수도 있겠어요. 지난 시간 동안 월성 주민분들, 그리고 이상홍 국장님도 참 무던히 부산을 오가셨죠. 한번은 이른 아침부터 나서서 태화강역에 도착하고, 다시 동해선을 타고 부산까지 오신 황분희 부위원장님을 부산지방법원이 있는 거제역에서 마중한 적이 있어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시는 부위원장님을 보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마음이 찡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서울 광화문에도 가고, 국회에도 가고, 이 문제를 알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니셨을 텐데, 그에 비하면 부산 정도야 가까운 거리였을 텐데요. 그런데 그날은 부위원장님을 보면서 유독 ‘참 세상이 모질고 나쁘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위원장님이 혼자 오셨을 그 길과 시간 때문이었을까요. 이상홍 국장님이 저에게 여러 번 했던 당부들이 생각나서였을까요. 그날이 선고일이었는지 변론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갑상선암 공동소송 2심에서 패소하던 날, 1분도 채 되지 않는 판결을 듣고 너무 허무했던 날도 기억납니다. ‘승소’라고 적힌 기자회견 현수막을 펼치고 싶었는데 결국 그러지 못했어요. 기자회견 사회였는데 목까지 올라오는 험한 말을 참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2년 전 농성 10년 행사 때 비가 참 많이 왔잖아요. 그날 처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월성에 왔었는데, 오늘도 같이 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는 뒤돌아서면 쑥 커져 있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이놈의 나라는 왜 이렇게 변함이 없는지 좀 답답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날 비가 정말 많이 왔는데 황분희 부위원장님이 마이크를 잡고 말씀하실 때 너무 환하게 웃으시는 거예요. 그게 생각나서 나중에 인터뷰하면서 여쭤봤더니 그러시더라고요. “날도 이렇게 궂은데 우리를 응원하러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와줬다는 게 너무 좋았다고, 그래서 너무 행복했다”고요. 오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만큼은 주민분들과 함께 우리가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이기지 못했을 뿐 우리가 결코 진 싸움은 아니잖아요. 밀양 할매들의 말씀처럼, 우리가 하고 있는 싸움은 결국 언젠가는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월성에서 시작된 수많은 인연과 이야기들은 계속 이어질 거예요. 12년 더하기 12일. 정말 너무나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고맙습니다.
6) 이림 경주시민
지역에 남는 기억 중 하나는, 보통 상여시위를 끝내면 황분희 부위원장님이 걸어서 올라가시던 모습입니다. 그래서 저도 부위원장님을 따라 같이 걸어 올라가곤 했습니다. 같이 걸어가면서 부위원장님이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들려주셨는데, 아마 그 시간이 많이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냥 그렇게 맹숭맹숭 헤어지는 것보다는 차라도 한잔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뒤로는 갈 때마다 제가 차를 준비해 갔습니다. 오랜 세월 이렇게 힘들게 활동하셨는데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것도 문을 닫아야 하는구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어르신들도 너무 연로하셨고, 그 곁에서 함께해 온 분들도 너무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이주가 아직 이루어진 것은 아니어서 아쉽지만, 그래도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와서 함께 걸어주고 그 뜻을 같이해준 것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 낭송
관을 끄는 날들이 지나가면 _윤은성
1.
베크렐(Becquerel)은 방사성 물질이 방사선을 방출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국제단위
1초 동안 한 개의 원자핵이 붕괴할 때
베크렐은 그때 방출되는 방사능의 강도
베크렐이란 단위를 알고 나니
베크렐에 우리가 갇혔단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어떻게 될까
안전하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사용 후 핵 연료를 보관하는 것이 포화에 다다라도
대책을 기다릴 수 있을까
우리는 폐기된 방사능의 무덤과 공존할 수 있을까
탄소배출이 적게된다는 이유를 믿을 수 있을까
2.
한동안 바다가 찍힌 사진을 봤어. 월성 나아리엔 바다와 발전소와 관들이 있었지. 주거지와 제한 구역이 붙어 있고, 찾아간 모래사장에는 아이들과 가족들도 많았어.
이제 이런 풍경은
익숙하고도 매번 낯설어서
우리가 자꾸 이상한 꿈속에 있는 것 같지.
파랗고 눈이 시려.
10년 후의 바다도 100년 후의 바다도 지금과 같을까.
우리는 지금 평온할까.
여름이 지나가고 있어.
모래사장엔 볕이 있고, 떠도는 숨이 있고. 소금기 어린 생명들이 있을 테지. 다시 내년 여름이면 오가는 아이들의 맨발들이 있을 테지.
우리는 이곳에서 할 말을 잃고서, 커다란 발전소와 작아진 바다를 번갈아 보았어. 너무 큰 정적이 자꾸 소리를 삼킨단 걸 알았어. 들으려 노력하다가. 울렁이는 마음을 눌러 둔 채.
걷고 멈춰서 보았어.
바다는 아름다웠고. 한동안 몸이 따갑도록 놀다가 나와도 좋을 것 같았어. 어쩔 수 없다는 듯 깔깔 웃으며 서로를 해변 밖 바닷물 쪽으로 밀어내는 장난을 쳐봐도
좋을 것 같았어.
우린 그런 웃음을 정말로 지을 수는 없었지.
그런 장난도 칠 수는 없었어.
우리는 저마다 바다 사진을 찍었고.
나는
내가 그 바다에 속할 수도
속하지 않을 수도 없이
누군가의 손을 놓아버린 마음으로
죽음에서 나만 살아 돌아온 심정으로
하루를 살았지.
안전한 우주를 상상하며
개와 함께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어두운 집 안 곳곳을
환하게 밝히지.
이 전기가 다 어디에서 온 건지 떠올리며
창밖 밝은 도시의 밤을 내다보지.
3.
다시 하루가 시작되면. 사진 속 보이지 않는 곳은
관을 끌고 가는 사람들이 줄지어 선 마을이야.
아이들이 블루베리를 따다가 서로에게 먹여줘.
방사능이 넘쳐도 열매가 자라더라.
관을 끌던 사람들이 집으로 되돌아가고.
기다리던 가족들이
남아있는 곡식을 가져다가
말없이 밥을 짓고 함께 들어.
손님도, 오래 누웠던 반려자도,
잠시 안아본 자손들도,
멀리서 찾아오곤 하는 잘 우는 사람들도,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게 된 마을 주민들도.
이곳이 망가졌다는 것을 알아.
같은 바다마을에서
같은 볕과 공기에 싸여서
제한구역 바깥으로 이주해 나가지 못한 채
관을 끄는 사람이 되어서
하늘을 바라봐.
서로의 눈을 마주쳐.
우리는 계속 몸 안 모르는 곳이 속속 망가져가는데.
빠르게 이곳을 뜰 방법이 없지.
보이지 않는 창살 속에 갇혔지.
여기서
살아서 나가는 방법이 없냐고
관을 끌던 사람들이 학자나 공무원을 붙잡고 물으면
웃으며 똑같은 대답들을 반복해.
여기는 깨끗하고 안전한 곳이라고.
여기는 깨끗하고 안전한 곳이라고.
4.
우리는 계속해서
짙은 파란색 바다를 따라서 걷고 걸을 거야.
햇볕과 바람에 감사하며
바다에 몸을 담그고도 평온히 웃을 수 있게 될 때
그때 이곳은 애쓰지 않고도 서로의
사랑을 알아보는 세상이 되어 있을 텐데.
핵발전소 안에 가면
일부러 보여주기 위해 기르고 잡아먹는
물살이들이 있대.
오염수가 아니라 깨끗한 물이라고 그들은 말하겠지.
우리는 그곳의 물살이를 소문으로만 들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발전소가 지어질 계획이라는데
봄이 오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치 않은
날들이네.
언제 터져도 이상치 않은 몸들이
그림자 끌고서 길고 긴
핵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
하지만 우리가 바다에서 보고 싶은 것은 철새들. 고래들.
뛰어다니는 아이들. 조개와 해초를 줍고 헤엄치는 친구들.
핵의 긴 시간이 아닌 아주 오래 서로를 지켜줄
바다의 시간.
우리는 핵이 아닌 생명을 원해.
우리는 핵이 주는 편리함과 자본이 아닌 서로를 아낄 시간을 원해.
40년 수명의 오래된 핵발전소는 수명연장 하지 말자.
새로운 핵발전소도 마을 안의 슬픔도 원하지 않아.
우리 이제 그 많은 데이터와 전력을 쓰는 일도 핵에너지를 지구와 맞바꾸는 일도 질병과 죽음을 예견하며 미리 놀라하는 일도 그만 하자.
5.
돌아보면 감사한 일들이 빛처럼 많아.
핵발전소가 줄지어 선 곳 맞은편
바다가 너무 파랗고
시리게 빛나면
다시 여름이라고, 겨울이라고
기억할 죽음과 생명이 이곳이 너무 많다고 우리는 또다시 말하자.
조금 더 천천히 오래오래 사랑한다고 말하자.
**이 시는 2025년 동료들과 함께 생태 학살 현장을 찾아간 후 쓴 시들을 모아 출간한 시집 『여름, 연루』수록작을 수정한 것입니다.
살아서 죽은 이름으로 _ 월성원전 이주대책위 천막농성 12년 기념행사에 부쳐, 희음
흰 아침 위에 획 하나가 그어졌다.
첫째 날이었다.
숫자는 매일 몸을 바꿔
슬픔을 으깨고
요구를 칼질하며
굽은 등으로 옮겨 앉았다.
목소리를 업고 버틴 사천 일이었다.
*
미역을 널고
누구라도 활개 치고 물 삼키고 자지러지던 바다.
여기에 벼락처럼 공장이 섰다.
대문을 열어 둔 마을에 속삭인 뒤였다.
전기를 만든다고, 깨끗하다고,
땅이 흔들려도 끄떡없다고.
*
삼중수소는 물의 얼굴.
공장으로부터
땅 밑 물길로 스미는 얼굴.
형체도 냄새도 없었다.
몸은 소리 없이 시들어갔다.
*
월요일 아침마다
상여가 이어졌다.
살아서, 죽은 이름으로
길 위를 걸었다.
*
법은 구백열네 걸음의 바깥에
금 하나를 그었다.
안쪽은 위험, 바깥은 안전.
집들은 그 금에서
겨우 몇십 걸음 밖이었다.
금은 땅 위에 있고
물은 땅 아래로 흘렀지만
모두는 손쉽게 안전한 쪽 사람이 되었다.
길고 깊은 흉터가 목마다 새겨지고,
걸음마도 떼기 전인 손주의 오줌이
비명 같은 눈금을 가리켜도.
*
금 안쪽 모래밭에선
자꾸 모래성이 세워지고
저녁이면 텐트마다 불이 켜졌다.
연인들이 바다를 보며 저녁을 지었고
"제한구역 알림"
팻말은 웃고 있었다.
누구도 발밑을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도 이 마을을 데려가지 않았다.
*
몸보다 먼저 늙은
천막을 접는다.
사천 번의 아침이
어깨에서 미끄러진다.
*
접힌 자리에 이름이 남는다.
사천 번 끌고 나온 이름을
바다가 먼저
받아 적는다.
*경주 월성 핵발전소 옆 마을 나아리 주민들은 2014년 8월 25일부터 방사능 피폭 없이 살 수 있는 곳으로 이주할 권리를 요구하며 이주대책위를 만들고 천막 농성과 상여 행진을 시작했다. 주민들의 몸에서는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됐고, 갑상선암을 비롯한 건강 피해가 이어졌다. 그러나 집이 원자력안전법상 제한구역(914m) 밖이라는 이유로 이주 대책에서 번번이 제외됐다. 농성은 4000일을 넘겨 12년에 이르렀다. 2026년, 이주대책위는 오랜 천막을 거두기로 했다. 이주할 권리를 향한 목소리는 자리를 옮겨 어디서든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