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집] 9월 5일, 12년을 지켜온 월성원전 이주대책위 주민 곁에 함께 서주세요.

뜨거운 여름날, 주민들과의 첫 만남
지난 12년간 원전으로부터의 안전한 이주를 요구하며 천막을 세우고, 월요일 마다 상여를 끈 월성원전 최인접 마을의 주민들이 있다. 그런 그들이 9월 5일, 천막농성 12주년 행사를 기점으로 활동 방식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농성장을 철거하고, 월요 상여시위를 그만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 8월 3일, 월성원전 이주대책위 월요 상여시위에 함께하기 위해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로 향했다.
아침 8시,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홍보관 앞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뜨거운 햇빛 속에서 월요 상여시위를 준비하는 이주대책위 주민들과 울산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서울에서 왔다는 우리를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이해 주신 황분희 부위원장님. 그것이 나아리 주민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12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낸 월요일
8시 20분, 상여시위가 시작되고 상여곡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수원 정문을 향해 도로 위를 걸었고 그 뒤로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시위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차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사실 출근길이기 때문에 누군가 한 명쯤 경적을 울릴 만도 한데, 그 누구도 구슬픈 상여곡 사이로 무례를 범하지 않았다. 이주대책위의 12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낸 월요일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무뎌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상여곡도, 걸음을 멈추던 차들도, 이제는 더 이상 그 무엇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가 한수원 정문을 돌아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갈 때 서있던 차들이 쌩하고 달려 정문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달콤, 짭짤, 새콤했던 나아리에서의 여름
어쩐지 텁텁한 마음을 뒤로 하고 천막농성장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연대자 이림씨가 주최한 ‘탈핵 차담회’가 준비되고 있었다. 오미자차를 마시겠다는 경주환경연 이상홍 국장에게 “이 국장 단 거 먹으면 안 되잖아!”라며 잔소리 하는 황분희 부위원장님.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함께 오미자차를 마시는 성혜중 어르신과 김진선 어르신. 트럭을 주차하고는 호탕하게 웃으며 돌아오신 이재걸 어르신까지. 그 옆에서 나는 ‘레몬소금차’를 홀짝였다. 달콤한데 짭짤하고 또 새콤한, 오묘한 맛이 나는 나아리에서의 여름이었다.


원전 앞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이제는 이주대책위의 12년과 마주할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12년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인터뷰 진행했다. 나아리에서 살게 된 이유, 원전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된 순간, 대책위를 꾸리고 이주를 요구하던 날들, 다른 나아리 주민들과의 불화 등 그들은 ‘안전한 삶’이라는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시작된 일들이 어떻게 ‘우리의 운동’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했다.

<김진선 어르신>

<황분희 어르신>

<이재걸 어르신>

<이주대책위 농성장 앞>

<바다와 원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동안 그들의 눈시울이 약간 붉어진 듯 보였고, 그럼에도 목소리는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그렇게 아주 담담하게, 지금도 여전히 원전 앞에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이곳을 나가 마음 편히 살고 싶은 바람을 내보였다. 더욱이 마음이 아팠던 건 그들이 나아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원전이 아니었다면 아름다운 바다와 해당화, 그리고 가족들과의 추억이 있는 나아리를 절대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다.
9월 5일, 슬프도록 아름다운 원전 마을로
이주대책위는 9월 5일을 기점으로 활동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더는 천막을 지키는 일도, 매주 월요일 상여를 끄는 일도 힘에 부친다고 했다. 그러니 이후에는 젊은 친구들이 조금 더 이어서 해주었으면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 앞에서, 나는 어떠한 다짐을 했던 것도 같다.

매일 아무런 걱정 없이 전기를 쓰는, 깜깜한 밤에도 거리마다 환한 전광판들이 빛나는, 나아리로부터 300km 이상 떨어진 서울에 사는 우리가, 이들의 안전한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9월 5일, 슬프도록 아름다운 원전 마을 나아리에서 그 ‘무엇’을 우리 함께 고민해보자. 지난 12년의 시간을 묵묵히 견디고 지켜온 이들에게 크나큰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평안하다’는 감각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는 약속을 하자.
9월 5일, 반갑게 만날 순간을 기대하며.
* 당일 월성으로 직접 오는 것이 힘들다면 천막농성 12년 추진위원과 기억배지로도 함께할 수 있다. 후원금은 기념행사와 기록 제작, 주민들의 이주 요구를 이어가는 활동에 사용될 예정이다.


- 추진위원회 함께하기 : bit.ly/Wolsong12
- 월성원전 이주대책위 12년 기억배지 구매하기 : bit.ly/Wolsong12_badge
*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와 함께한 기억이 있다면 나누어 주셔도 좋겠다. 함께 울고 웃었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행사 당일, 모아진 이야기를 꺼내보며 이주대책위와의 12년의 시간을 추억하자.

- 이야기 모집 : dmssoal@gmail.com
[모집] 9월 5일, 12년을 지켜온 월성원전 이주대책위 주민 곁에 함께 서주세요.
뜨거운 여름날, 주민들과의 첫 만남
지난 12년간 원전으로부터의 안전한 이주를 요구하며 천막을 세우고, 월요일 마다 상여를 끈 월성원전 최인접 마을의 주민들이 있다. 그런 그들이 9월 5일, 천막농성 12주년 행사를 기점으로 활동 방식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농성장을 철거하고, 월요 상여시위를 그만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 8월 3일, 월성원전 이주대책위 월요 상여시위에 함께하기 위해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로 향했다.
아침 8시,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홍보관 앞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뜨거운 햇빛 속에서 월요 상여시위를 준비하는 이주대책위 주민들과 울산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서울에서 왔다는 우리를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이해 주신 황분희 부위원장님. 그것이 나아리 주민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12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낸 월요일
8시 20분, 상여시위가 시작되고 상여곡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수원 정문을 향해 도로 위를 걸었고 그 뒤로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시위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차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사실 출근길이기 때문에 누군가 한 명쯤 경적을 울릴 만도 한데, 그 누구도 구슬픈 상여곡 사이로 무례를 범하지 않았다. 이주대책위의 12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낸 월요일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무뎌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상여곡도, 걸음을 멈추던 차들도, 이제는 더 이상 그 무엇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가 한수원 정문을 돌아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갈 때 서있던 차들이 쌩하고 달려 정문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달콤, 짭짤, 새콤했던 나아리에서의 여름
어쩐지 텁텁한 마음을 뒤로 하고 천막농성장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연대자 이림씨가 주최한 ‘탈핵 차담회’가 준비되고 있었다. 오미자차를 마시겠다는 경주환경연 이상홍 국장에게 “이 국장 단 거 먹으면 안 되잖아!”라며 잔소리 하는 황분희 부위원장님.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함께 오미자차를 마시는 성혜중 어르신과 김진선 어르신. 트럭을 주차하고는 호탕하게 웃으며 돌아오신 이재걸 어르신까지. 그 옆에서 나는 ‘레몬소금차’를 홀짝였다. 달콤한데 짭짤하고 또 새콤한, 오묘한 맛이 나는 나아리에서의 여름이었다.
원전 앞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이제는 이주대책위의 12년과 마주할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12년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인터뷰 진행했다. 나아리에서 살게 된 이유, 원전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된 순간, 대책위를 꾸리고 이주를 요구하던 날들, 다른 나아리 주민들과의 불화 등 그들은 ‘안전한 삶’이라는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시작된 일들이 어떻게 ‘우리의 운동’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했다.
<김진선 어르신>
<황분희 어르신>
<이재걸 어르신>
<이주대책위 농성장 앞>
<바다와 원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동안 그들의 눈시울이 약간 붉어진 듯 보였고, 그럼에도 목소리는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그렇게 아주 담담하게, 지금도 여전히 원전 앞에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이곳을 나가 마음 편히 살고 싶은 바람을 내보였다. 더욱이 마음이 아팠던 건 그들이 나아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원전이 아니었다면 아름다운 바다와 해당화, 그리고 가족들과의 추억이 있는 나아리를 절대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다.
9월 5일, 슬프도록 아름다운 원전 마을로
이주대책위는 9월 5일을 기점으로 활동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더는 천막을 지키는 일도, 매주 월요일 상여를 끄는 일도 힘에 부친다고 했다. 그러니 이후에는 젊은 친구들이 조금 더 이어서 해주었으면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 앞에서, 나는 어떠한 다짐을 했던 것도 같다.
매일 아무런 걱정 없이 전기를 쓰는, 깜깜한 밤에도 거리마다 환한 전광판들이 빛나는, 나아리로부터 300km 이상 떨어진 서울에 사는 우리가, 이들의 안전한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9월 5일, 슬프도록 아름다운 원전 마을 나아리에서 그 ‘무엇’을 우리 함께 고민해보자. 지난 12년의 시간을 묵묵히 견디고 지켜온 이들에게 크나큰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평안하다’는 감각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는 약속을 하자.
9월 5일, 반갑게 만날 순간을 기대하며.
* 당일 월성으로 직접 오는 것이 힘들다면 천막농성 12년 추진위원과 기억배지로도 함께할 수 있다. 후원금은 기념행사와 기록 제작, 주민들의 이주 요구를 이어가는 활동에 사용될 예정이다.
- 추진위원회 함께하기 : bit.ly/Wolsong12
- 월성원전 이주대책위 12년 기억배지 구매하기 : bit.ly/Wolsong12_badge
*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와 함께한 기억이 있다면 나누어 주셔도 좋겠다. 함께 울고 웃었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행사 당일, 모아진 이야기를 꺼내보며 이주대책위와의 12년의 시간을 추억하자.
- 이야기 모집 : dmsso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