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선언문 "송전선로 다섯 개, 에너지 식민지 거부한다"
- 전국대행진, 유성에서 충남으로-
대한민국 지도가 그려진 대형 현수막 위에는 해남에서 용인까지 이어지는 송전선로가 그어져 있었다. 참가자들은 그 위에 놓인 전선을 지역별로 하나씩 끊어냈다. 초고압 송전탑과 관계를 끊겠다는, '절연'을 선언하는 퍼포먼스였다. 전선이 끊어질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7일 오전 대전월드컵경기장. 폭염경보가 내려진 대전은 아침부터 열기로 가득했다. 그 속에서 전국대행진 참가자들의 걸음은 다시 북쪽을 향했다.

▲송전탑 '절연' 퍼포먼스국토를 뒤덮은 송전선로를 끊어내며 송전탑 반대의 뜻을 알리는 시민들 ⓒ 환경운동연합
해남에서 출발해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를 거쳐 청와대까지 이어지는 '용인반도체산단 재검토·송전탑 반대 전국대행진'은 이날 대전에서 이틀째 일정을 이어갔다. 전날 서구청까지 걸으며 주민들을 만난 참가자들은 이날 다시 대전월드컵경기장에 모였다. 유성구청까지 약 1시간 30분을 걷는 일정이었다.
출발에 앞서 김현정 경기행동 집행위원장은 서울까지 이어지는 길에 함께해 준 대전 시민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해남에서 시작된 이 행진이 청와대에 닿을 때까지 함께 걸어 달라고도 했다. 참가자들은 "해남에서 용인까지, 이재명 대통령은 응답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행진의 선두에는 조용준 대전환경운동연합 국장이 섰다. 참가자들은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묵묵히 걸었다. 연신 생수를 마시고 땀을 닦아냈지만 폭염은 쉽게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도로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강한 햇볕은 시간이 지날수록 참가자들의 체력을 빠르게 소진시켰다.
결국 폭염은 행진단에도 영향을 미쳤다. 더위를 견디지 못한 참가자 한 명은 안전을 위해 행진 지원 차량으로 옮겨 탔다. 두 명은 유성구청까지 함께 걸었지만 집회에는 참석하지 못한 채 휴식을 취해야 했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은 행진단의 체력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남은 참가자들은 다시 깃발을 들고 유성구청까지 걸음을 이어갔다.
이날 행진은 무더위와 싸우는 시간만은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겪는 폭염 자체가 기후위기의 현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후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정부는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전환보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와 이른바 3대 메가프로젝트를 위해 초고압 송전망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기자회견 중인 행진 참가자들대전 유성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에 참여 중인 행진 참가자들 ⓒ 환경운동연합
"협의했다"는 환경부, "거부했다"는 주민들
유성구청 앞에서 열린 마무리 집회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정부가 기후위기를 말하면서도 개발 중심 정책을 앞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AI 산업과 반도체 산업 육성을 이유로 막대한 전력을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해 지방 곳곳에 초고압 송전선로를 건설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첫 번째 발언에 나선 안재훈 송전탑건설반대전국행동 집행위원장은 해남에서 대전까지 오는 길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국 곳곳에서 보내준 연대 덕분에 다시 힘을 얻었다며, 청와대에 도착하는 마지막 날까지 시민들과 함께 걷겠다고 밝혔다.
안 집행위원장은 환경부를 향한 비판도 이어갔다. 환경부가 지난 5일 일부 주민들과 간담회를 진행한 뒤 이를 마치 지역사회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국행동과 지역 대책위가 공식적으로 간담회를 거부한 상황에서 이러한 방식은 주민 갈등을 오히려 키우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왕성수 대전 유성구 학하동 주민자치회장은 마을 뒤로 송전선로가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주민들과 함께 대책위를 꾸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입지선정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을 배제한 채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역 주민들이 끝까지 힘을 모아 송전탑 건설을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신민기 정의당 대전시당 유성구위원장은 전날 서구청 간담회를 언급했다. 그는 주민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야 할 지방정부가 스스로 역할의 한계를 말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주민들과 함께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해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해남에서 대전까지, 되풀이된 "에너지 식민지"
이날 발표된 '용인반도체산단 재검토·송전탑 반대 전국대행진 대전 선언문'에는 이번 행진의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겼다. 참가자들은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비수도권에 초고압 송전망을 집중시키는 현재의 국가 에너지 정책을 '에너지 식민지'를 강요하는 정책으로 규정하고, 이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대전은 현재 다섯 개의 송전선로가 검토되는 대표적인 피해 지역이다. 참가자들은 수도권 산업단지의 전력 수요를 위해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과 환경권을 희생시키는 정책은 중단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에너지 식민지'는 이날 처음 나온 말이 아니다. 해남에서도, 광주에서도 참가자들은 같은 말을 썼다.
선언문에는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것은 장거리 송전망 확대가 아니라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분산형 에너지 체계라는 주장도 실렸다. 대규모 산업단지 개발과 중앙집중형 전력망 확대는 또 다른 환경 갈등과 지역 희생을 낳을 뿐이며,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은 시민 참여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대전에서 충남으로 바통을 넘기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김재용 대전송전탑백지화주민대책위원장이 유종준 충남대책위 집행위원장에게 대형 현수막을 전달했다. 참가자들은 다시 한 번 "해남에서 용인까지, 그리고 청와대까지 이재명 대통령은 응답하라"고 외쳤다.
대전에서의 이틀은 폭염과의 싸움이었다. 참가자들은 탈진했고, 일부는 끝내 집회에 함께하지 못했다. 그러나 누구도 행진의 의미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폭염은 사람들을 잠시 멈춰 세울 수는 있었지만 걸음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해남에서 시작된 전국대행진은 이제 충남 예산을 향한다. 기후위기 시대에도 개발을 위해 지역을 희생시키는 국가 에너지 정책은, 누가 바꾸는가. 해남에서 대전까지 반복된 이 질문에 이재명 대통령은 언제 답하는가.
글쓴이 :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대전 선언문 "송전선로 다섯 개, 에너지 식민지 거부한다"
- 전국대행진, 유성에서 충남으로-
대한민국 지도가 그려진 대형 현수막 위에는 해남에서 용인까지 이어지는 송전선로가 그어져 있었다. 참가자들은 그 위에 놓인 전선을 지역별로 하나씩 끊어냈다. 초고압 송전탑과 관계를 끊겠다는, '절연'을 선언하는 퍼포먼스였다. 전선이 끊어질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7일 오전 대전월드컵경기장. 폭염경보가 내려진 대전은 아침부터 열기로 가득했다. 그 속에서 전국대행진 참가자들의 걸음은 다시 북쪽을 향했다.
▲송전탑 '절연' 퍼포먼스국토를 뒤덮은 송전선로를 끊어내며 송전탑 반대의 뜻을 알리는 시민들 ⓒ 환경운동연합
해남에서 출발해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를 거쳐 청와대까지 이어지는 '용인반도체산단 재검토·송전탑 반대 전국대행진'은 이날 대전에서 이틀째 일정을 이어갔다. 전날 서구청까지 걸으며 주민들을 만난 참가자들은 이날 다시 대전월드컵경기장에 모였다. 유성구청까지 약 1시간 30분을 걷는 일정이었다.
출발에 앞서 김현정 경기행동 집행위원장은 서울까지 이어지는 길에 함께해 준 대전 시민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해남에서 시작된 이 행진이 청와대에 닿을 때까지 함께 걸어 달라고도 했다. 참가자들은 "해남에서 용인까지, 이재명 대통령은 응답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행진의 선두에는 조용준 대전환경운동연합 국장이 섰다. 참가자들은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묵묵히 걸었다. 연신 생수를 마시고 땀을 닦아냈지만 폭염은 쉽게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도로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강한 햇볕은 시간이 지날수록 참가자들의 체력을 빠르게 소진시켰다.
결국 폭염은 행진단에도 영향을 미쳤다. 더위를 견디지 못한 참가자 한 명은 안전을 위해 행진 지원 차량으로 옮겨 탔다. 두 명은 유성구청까지 함께 걸었지만 집회에는 참석하지 못한 채 휴식을 취해야 했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은 행진단의 체력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남은 참가자들은 다시 깃발을 들고 유성구청까지 걸음을 이어갔다.
이날 행진은 무더위와 싸우는 시간만은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겪는 폭염 자체가 기후위기의 현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후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정부는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전환보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와 이른바 3대 메가프로젝트를 위해 초고압 송전망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기자회견 중인 행진 참가자들대전 유성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에 참여 중인 행진 참가자들 ⓒ 환경운동연합
"협의했다"는 환경부, "거부했다"는 주민들
유성구청 앞에서 열린 마무리 집회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정부가 기후위기를 말하면서도 개발 중심 정책을 앞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AI 산업과 반도체 산업 육성을 이유로 막대한 전력을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해 지방 곳곳에 초고압 송전선로를 건설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첫 번째 발언에 나선 안재훈 송전탑건설반대전국행동 집행위원장은 해남에서 대전까지 오는 길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국 곳곳에서 보내준 연대 덕분에 다시 힘을 얻었다며, 청와대에 도착하는 마지막 날까지 시민들과 함께 걷겠다고 밝혔다.
안 집행위원장은 환경부를 향한 비판도 이어갔다. 환경부가 지난 5일 일부 주민들과 간담회를 진행한 뒤 이를 마치 지역사회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국행동과 지역 대책위가 공식적으로 간담회를 거부한 상황에서 이러한 방식은 주민 갈등을 오히려 키우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왕성수 대전 유성구 학하동 주민자치회장은 마을 뒤로 송전선로가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주민들과 함께 대책위를 꾸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입지선정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을 배제한 채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역 주민들이 끝까지 힘을 모아 송전탑 건설을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신민기 정의당 대전시당 유성구위원장은 전날 서구청 간담회를 언급했다. 그는 주민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야 할 지방정부가 스스로 역할의 한계를 말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주민들과 함께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해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해남에서 대전까지, 되풀이된 "에너지 식민지"
이날 발표된 '용인반도체산단 재검토·송전탑 반대 전국대행진 대전 선언문'에는 이번 행진의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겼다. 참가자들은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비수도권에 초고압 송전망을 집중시키는 현재의 국가 에너지 정책을 '에너지 식민지'를 강요하는 정책으로 규정하고, 이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대전은 현재 다섯 개의 송전선로가 검토되는 대표적인 피해 지역이다. 참가자들은 수도권 산업단지의 전력 수요를 위해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과 환경권을 희생시키는 정책은 중단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에너지 식민지'는 이날 처음 나온 말이 아니다. 해남에서도, 광주에서도 참가자들은 같은 말을 썼다.
선언문에는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것은 장거리 송전망 확대가 아니라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분산형 에너지 체계라는 주장도 실렸다. 대규모 산업단지 개발과 중앙집중형 전력망 확대는 또 다른 환경 갈등과 지역 희생을 낳을 뿐이며,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은 시민 참여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대전에서 충남으로 바통을 넘기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김재용 대전송전탑백지화주민대책위원장이 유종준 충남대책위 집행위원장에게 대형 현수막을 전달했다. 참가자들은 다시 한 번 "해남에서 용인까지, 그리고 청와대까지 이재명 대통령은 응답하라"고 외쳤다.
대전에서의 이틀은 폭염과의 싸움이었다. 참가자들은 탈진했고, 일부는 끝내 집회에 함께하지 못했다. 그러나 누구도 행진의 의미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폭염은 사람들을 잠시 멈춰 세울 수는 있었지만 걸음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해남에서 시작된 전국대행진은 이제 충남 예산을 향한다. 기후위기 시대에도 개발을 위해 지역을 희생시키는 국가 에너지 정책은, 누가 바꾸는가. 해남에서 대전까지 반복된 이 질문에 이재명 대통령은 언제 답하는가.
글쓴이 :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