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혁신' 아닌, 안전규제 해제
- SMR 속도전에 안전 브레이크 풀어주는 원자력안전법 개정을 멈춰라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어제(1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원자력안전법」 개정이 “소형모듈원자로(SMR)·핵연료물질 안전 규제 혁신”이며, SMR 등 신규 원자로에 대한 선제적 인허가 준비와 핵연료물질 사용 현장의 안전규제 합리화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원안위는 이번 개정의 핵심으로 신규 원자로에 대한 ‘사전검토 제도’ 법제화를 내세웠다. 원안위 스스로도 이 제도가 SMR 개발자들이 “규제 불확실성 해소”와 “속도감 있는 인허가 추진”을 위해 희망해온 제도라고 설명했다. 안전규제 법안의 필요성을 국민 안전이 아니라 사업자의 인허가 불확실성 해소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미 SMR 개발과 산업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된 상황에서, 이제 원자력안전법까지 인허가 절차를 앞당기는 방향으로 개정되고 있다. SMR 특별법이 산업 육성의 가속페달이라면, 이번 원자력안전법 개정은 안전검증의 브레이크를 느슨하게 만드는 조치다. 우리는 이번 개정이 “안전규제 혁신”이 아니라 SMR 속도전에 맞춘 안전규제 후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원자력 안전규제의 목적은 사업자의 불확실성을 줄이거나 인허가 속도를 높이는 데 있지 않다. 원안위의 존재 이유는 원자력 산업의 성장을 돕는 것이 아니라, 방사선 재해와 중대사고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며 안전을 낡은 규제로 취급했던 것과 이번 개정의 방향은 무엇이 다른가. 안안전은 버려야 할 관료주의가 아니라 원자력 규제의 존재 이유이며, 원전 산업계의 개발 일정에 밀릴 수 없는 기본 원칙이다.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신설되는 제100조의2, ‘원자로 등의 설계에 대한 사전검토’ 조항이다. 개정안은 건설허가, 연구용원자로 허가, 표준설계인가를 신청하려는 자가 인허가 신청 전에 원자로 및 관계시설 설계에 대해 원안위에 사전검토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 원안위는 사전검토 결과를 신청인에게 서면으로 알리고, 이후 본심사에서 그 결과를 “고려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 조항에는 사전검토 결과가 허가·인가·승인 또는 안전성 인증이 아니라는 점, 본심사 판단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점, 새로운 자료·기준 변경·주민 의견·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따라 달리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 전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정부는 미국·캐나다 사례를 말하지만, 정작 그 제도의 핵심 안전장치는 빼놓았다. 캐나다 원자력안전위원회(CNSC)의 공급자 설계 사전검토(Vendor Design Review)는 선택적 사전검토 제도이지만, 그 검토가 설계 인증도 아니고, 인허가도 아니며, 원자력안전통제법상 면허 발급도 아니고, 장래 위원회의 인허가 결정을 구속하거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미국 NRC는 선진원자로와 SMR에 대해 단순히 사전신청 논의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경수로 중심 규제체계가 다양한 선진원자로 기술을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10 CFR Part 53이라는 위험정보 기반·기술포괄적 규제체계 정비를 추진해왔다. 또한 미국 NRC는 사전신청 절차를 사업자와 규제기관 사이의 비공개 협의로만 두지 않고, 적어도 공개기록 제도, 공개회의, 이해관계자 논의와 결합되어 운영된다. 반면 한국 개정안은 이러한 공개성과 시민참여 장치 없이 ‘사전검토’ 절차만 도입한다. 이는 미국식 규제혁신이 아니다. 미국이 병행하는 안전기준 정비, 강한 원자력 안전정보공개는 빼고, 사업자에게 유리한 조기협의 절차만 선택적으로 가져온 인허가 조기화 제도다.
이번 개정안은 SMR을 독자적 규제대상으로 정의하지도 않고, SMR 특유의 위험을 법률상 필수 검토항목으로 두지도 않는다. 제100조의2라는 단일 사전검토 조항을 신설할 뿐, 다수모듈 집적 배치에 따른 누적위험, 부지 전체의 총방사선원항, 공통원인고장과 연쇄사고 가능성, 비상계획구역 축소 문제, 통합운전실과 운전인력 감축, 공장제작·현장조립 품질보증, 사이버보안, 핵안보, 사용후핵연료와 폐기물, 해체까지의 전주기 안전성 검토를 법률에 명시하지 않는다. SMR은 단순히 “작은 원전”이 아니다. 다수모듈을 한 부지에 집적할 경우 부지 전체의 총 출력, 총 핵연료량, 총 방사성물질 재고량은 결코 작지 않다. 또한 SMR은 기존 대형원전 규제체계만으로는 충분히 다루기 어려운 새로운 규제 쟁점을 낳는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원자로 및 관계시설의 설계”라는 포괄적 표현만 두고, 구체적 안전검토 기준은 하위법령으로 넘기고 있다.
원자력 안전정보 공개성과 국민참여의 부재도 심각하다. 개정안은 사전검토 계획과 결과를 신청인에게 서면으로 알려야 한다고만 규정한다. 국민에게 공개한다는 조항도, 지역주민·지자체·시민사회·노동자·독립전문가가 의견을 제출할 절차도 없다. 사업자는 인허가 전에 규제기관과 공식적으로 협의할 수 있지만, 정작 사고와 방사선 재해의 영향을 감당해야 할 시민과 주민은 그 과정에서 배제된다. 이는 공식 규제활동이 시작되기 전, 초기 검토단계에서부터 시민이 참여해야한다는 IAEA의 규제기관 소통·협의 기준과도 어긋난다. 원자력안전법은 사업자의 사전검토 신청권만 보장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 사전검토 단계에서 지역주민의 참여권, 독립적 전문가 검토, 안전성 불확실성에 대한 보수적 판단 원칙을 함께 규정해야 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원안위가 이미 i-SMR 개발 과정에서 법적 근거 없이 과기부와 산업부, 현 기후부와 업무협약을 맺고 사전설계검토를 추진해왔다는 점이다. 과기부와 기후부는 원자력 연구개발과 산업·에너지정책을 담당하는 진흥부처다. 규제기관이 진흥부처와 함께 특정 SMR 개발의 설계검토를 진행하는 구조는 원안위의 독립성을 약화시키고, 규제기관을 독립적 검증자가 아니라 개발 과정의 파트너로 만들 위험이 있다. 원안위 보도자료 역시 i-SMR 사전설계검토가 법적 근거 부재로 원안위-과기부-기후부 간 업무협약을 체결해 추진되었고, 2023년 10월부터 2026년 2월까지 안전현안 21종과 기술기준 적용 격차 등을 검토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원안위는 SMR 규제 로드맵에서 “규제-설계 병행 개발”을 기본 전략으로 제시해왔다. 사전설계검토, 규제연구, 규제기준화, 사업자와의 현안 공유가 하나의 연속선 위에 놓일 때, 규제기관은 독립적 심사자가 아니라 개발 일정에 맞춰 기준을 조정하는 기관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핵연료물질 분야의 정기검사 면제 조항도 문제다. 개정안은 핵연료물질사용자의 안전관리능력이 우수하다고 원안위가 인정하는 경우 검사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정기검사는 사업자에게 주어지는 행정 부담이 아니라, 서류상 안전관리와 현장 실제 사이의 간극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원자력 안전은 인센티브로 보상할 대상이 아니라, 문제가 없어 보여도 반복해서 검증해야 할 대상이다.
이번 개정은 결국 “SMR 안전규제”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SMR 인허가 조기화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전검토 제도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사업자에게 조기 피드백을 제공하는 비공개 컨설팅이 아니라 새로운 원자로 기술의 위험과 규제 공백을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절차여야 한다.
이에 우리는 원안위와 정부, 국회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사전검토 결과의 비구속성을 법률에 명시하라. 사전검토는 허가, 승인, 인가, 안전성 인증이 아니며 본심사를 구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 원안위와 사업자, 진흥부처 사이의 비공개 사전협의 구조를 금지하고, 사전검토의 전 과정을 공개하라. 신청서, 검토계획, 주요 쟁점목록, 회의록, 보완요구, 중간검토 결과, 최종검토 결과는 국가안보상 필요한 최소한의 예외를 제외하고 공개되어야 한다.
- 시민사회와 지역주민, 지자체, 독립전문가의 참여를 제도화하라. 사업자에게만 사전검토 접근권을 주는 것은 원자력 안전규제의 민주성을 훼손한다.
- SMR 특수 안전쟁점을 법정 필수 검토항목으로 명시하라. 다수모듈 누적위험, 총방사선원항, 비상계획구역, 통합운전과 최소운전인력, 공장제작·현장조립 품질보증, 핵연료와 사용후핵연료, 방사성폐기물, 해체, 핵안보와 사이버보안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 정기검사 면제 조항을 전면 재검토하라. 원자력 안전에서 검사 축소는 보상이 될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교훈은 분명하다. 규제기관이 산업 진흥의 논리에 가까워질수록 안전은 약해지고, 사고의 책임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원안위는 “규제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안전규제의 브레이크를 풀어서는 안 된다. 준비되지 않은 기술은 허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허가하기 위해 규제를 기술에 맞춰 낮추는 것은 안전규제가 아니라 규제 포기다. 지금 필요한 것은 SMR 인허가 고속도로가 아니라, 규제독립성, 정보공개, 시민참여, 최신 안전기준, 전주기 책임을 갖춘 SMR 안전규제의 전면 재설계다.
2026. 5. 13
환경운동연합
'규제혁신' 아닌, 안전규제 해제
- SMR 속도전에 안전 브레이크 풀어주는 원자력안전법 개정을 멈춰라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어제(1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원자력안전법」 개정이 “소형모듈원자로(SMR)·핵연료물질 안전 규제 혁신”이며, SMR 등 신규 원자로에 대한 선제적 인허가 준비와 핵연료물질 사용 현장의 안전규제 합리화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원안위는 이번 개정의 핵심으로 신규 원자로에 대한 ‘사전검토 제도’ 법제화를 내세웠다. 원안위 스스로도 이 제도가 SMR 개발자들이 “규제 불확실성 해소”와 “속도감 있는 인허가 추진”을 위해 희망해온 제도라고 설명했다. 안전규제 법안의 필요성을 국민 안전이 아니라 사업자의 인허가 불확실성 해소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미 SMR 개발과 산업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된 상황에서, 이제 원자력안전법까지 인허가 절차를 앞당기는 방향으로 개정되고 있다. SMR 특별법이 산업 육성의 가속페달이라면, 이번 원자력안전법 개정은 안전검증의 브레이크를 느슨하게 만드는 조치다. 우리는 이번 개정이 “안전규제 혁신”이 아니라 SMR 속도전에 맞춘 안전규제 후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원자력 안전규제의 목적은 사업자의 불확실성을 줄이거나 인허가 속도를 높이는 데 있지 않다. 원안위의 존재 이유는 원자력 산업의 성장을 돕는 것이 아니라, 방사선 재해와 중대사고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며 안전을 낡은 규제로 취급했던 것과 이번 개정의 방향은 무엇이 다른가. 안안전은 버려야 할 관료주의가 아니라 원자력 규제의 존재 이유이며, 원전 산업계의 개발 일정에 밀릴 수 없는 기본 원칙이다.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신설되는 제100조의2, ‘원자로 등의 설계에 대한 사전검토’ 조항이다. 개정안은 건설허가, 연구용원자로 허가, 표준설계인가를 신청하려는 자가 인허가 신청 전에 원자로 및 관계시설 설계에 대해 원안위에 사전검토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 원안위는 사전검토 결과를 신청인에게 서면으로 알리고, 이후 본심사에서 그 결과를 “고려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 조항에는 사전검토 결과가 허가·인가·승인 또는 안전성 인증이 아니라는 점, 본심사 판단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점, 새로운 자료·기준 변경·주민 의견·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따라 달리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 전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정부는 미국·캐나다 사례를 말하지만, 정작 그 제도의 핵심 안전장치는 빼놓았다. 캐나다 원자력안전위원회(CNSC)의 공급자 설계 사전검토(Vendor Design Review)는 선택적 사전검토 제도이지만, 그 검토가 설계 인증도 아니고, 인허가도 아니며, 원자력안전통제법상 면허 발급도 아니고, 장래 위원회의 인허가 결정을 구속하거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미국 NRC는 선진원자로와 SMR에 대해 단순히 사전신청 논의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경수로 중심 규제체계가 다양한 선진원자로 기술을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10 CFR Part 53이라는 위험정보 기반·기술포괄적 규제체계 정비를 추진해왔다. 또한 미국 NRC는 사전신청 절차를 사업자와 규제기관 사이의 비공개 협의로만 두지 않고, 적어도 공개기록 제도, 공개회의, 이해관계자 논의와 결합되어 운영된다. 반면 한국 개정안은 이러한 공개성과 시민참여 장치 없이 ‘사전검토’ 절차만 도입한다. 이는 미국식 규제혁신이 아니다. 미국이 병행하는 안전기준 정비, 강한 원자력 안전정보공개는 빼고, 사업자에게 유리한 조기협의 절차만 선택적으로 가져온 인허가 조기화 제도다.
이번 개정안은 SMR을 독자적 규제대상으로 정의하지도 않고, SMR 특유의 위험을 법률상 필수 검토항목으로 두지도 않는다. 제100조의2라는 단일 사전검토 조항을 신설할 뿐, 다수모듈 집적 배치에 따른 누적위험, 부지 전체의 총방사선원항, 공통원인고장과 연쇄사고 가능성, 비상계획구역 축소 문제, 통합운전실과 운전인력 감축, 공장제작·현장조립 품질보증, 사이버보안, 핵안보, 사용후핵연료와 폐기물, 해체까지의 전주기 안전성 검토를 법률에 명시하지 않는다. SMR은 단순히 “작은 원전”이 아니다. 다수모듈을 한 부지에 집적할 경우 부지 전체의 총 출력, 총 핵연료량, 총 방사성물질 재고량은 결코 작지 않다. 또한 SMR은 기존 대형원전 규제체계만으로는 충분히 다루기 어려운 새로운 규제 쟁점을 낳는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원자로 및 관계시설의 설계”라는 포괄적 표현만 두고, 구체적 안전검토 기준은 하위법령으로 넘기고 있다.
원자력 안전정보 공개성과 국민참여의 부재도 심각하다. 개정안은 사전검토 계획과 결과를 신청인에게 서면으로 알려야 한다고만 규정한다. 국민에게 공개한다는 조항도, 지역주민·지자체·시민사회·노동자·독립전문가가 의견을 제출할 절차도 없다. 사업자는 인허가 전에 규제기관과 공식적으로 협의할 수 있지만, 정작 사고와 방사선 재해의 영향을 감당해야 할 시민과 주민은 그 과정에서 배제된다. 이는 공식 규제활동이 시작되기 전, 초기 검토단계에서부터 시민이 참여해야한다는 IAEA의 규제기관 소통·협의 기준과도 어긋난다. 원자력안전법은 사업자의 사전검토 신청권만 보장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 사전검토 단계에서 지역주민의 참여권, 독립적 전문가 검토, 안전성 불확실성에 대한 보수적 판단 원칙을 함께 규정해야 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원안위가 이미 i-SMR 개발 과정에서 법적 근거 없이 과기부와 산업부, 현 기후부와 업무협약을 맺고 사전설계검토를 추진해왔다는 점이다. 과기부와 기후부는 원자력 연구개발과 산업·에너지정책을 담당하는 진흥부처다. 규제기관이 진흥부처와 함께 특정 SMR 개발의 설계검토를 진행하는 구조는 원안위의 독립성을 약화시키고, 규제기관을 독립적 검증자가 아니라 개발 과정의 파트너로 만들 위험이 있다. 원안위 보도자료 역시 i-SMR 사전설계검토가 법적 근거 부재로 원안위-과기부-기후부 간 업무협약을 체결해 추진되었고, 2023년 10월부터 2026년 2월까지 안전현안 21종과 기술기준 적용 격차 등을 검토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원안위는 SMR 규제 로드맵에서 “규제-설계 병행 개발”을 기본 전략으로 제시해왔다. 사전설계검토, 규제연구, 규제기준화, 사업자와의 현안 공유가 하나의 연속선 위에 놓일 때, 규제기관은 독립적 심사자가 아니라 개발 일정에 맞춰 기준을 조정하는 기관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핵연료물질 분야의 정기검사 면제 조항도 문제다. 개정안은 핵연료물질사용자의 안전관리능력이 우수하다고 원안위가 인정하는 경우 검사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정기검사는 사업자에게 주어지는 행정 부담이 아니라, 서류상 안전관리와 현장 실제 사이의 간극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원자력 안전은 인센티브로 보상할 대상이 아니라, 문제가 없어 보여도 반복해서 검증해야 할 대상이다.
이번 개정은 결국 “SMR 안전규제”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SMR 인허가 조기화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전검토 제도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사업자에게 조기 피드백을 제공하는 비공개 컨설팅이 아니라 새로운 원자로 기술의 위험과 규제 공백을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절차여야 한다.
이에 우리는 원안위와 정부, 국회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교훈은 분명하다. 규제기관이 산업 진흥의 논리에 가까워질수록 안전은 약해지고, 사고의 책임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원안위는 “규제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안전규제의 브레이크를 풀어서는 안 된다. 준비되지 않은 기술은 허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허가하기 위해 규제를 기술에 맞춰 낮추는 것은 안전규제가 아니라 규제 포기다. 지금 필요한 것은 SMR 인허가 고속도로가 아니라, 규제독립성, 정보공개, 시민참여, 최신 안전기준, 전주기 책임을 갖춘 SMR 안전규제의 전면 재설계다.
2026. 5. 13
환경운동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