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의견 청취인가, 정책 홍보인가?
원전 부지, 핵폐기장 쟁점 없는 여론조사로 신규 원전 추가건설 결정할 수 없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오늘(21일) 신규 원전 건설을 포함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관련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지난 토론회에 이어 공론화를 진행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여론조사는 핵심 쟁점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질문을 설계했고, 그 결과를 정책 결정의 근거로 삼고 있다. 이는 시민의 판단을 존중한 공론화가 아니라, 결론을 정해놓고 절차를 동원한 짜맞추기식 과정이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한국갤럽과 리얼미터 조사 모두에서 시민들이 ‘향후 확대가 필요한 에너지원’ 1순위로 재생에너지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시민들은 분명히 재생에너지 확대를 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는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대형 원전 중심의 전력체계가 어떻게 충돌하는지, 이미 심각한 송전망 포화와 재생에너지 접속 제한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동일한 전력망을 놓고 경쟁하며, 원전 중심 구조가 재생에너지 전환의 장애가 된다는 핵심 현실은 의도적으로 가려진 것이다.
여론조사는 시민들이 ‘친환경성’과 ‘미래세대’를 가장 고려한다는 점도 함께 보여준다. 그러나 그렇다면 당연히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처리 방안조차 마련되지 않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과연 미래세대를 위한 선택인지, 수만 년간 관리해야 할 위험을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것이 친환경적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하지만 이번 여론조사에는 핵폐기물의 존재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힌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쟁점이 질문에서 완전히 삭제된 것이다.
이번 여론조사는 시작부터 정부의 입장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불안정’하고, AI·데이터센터·반도체 산업으로 전력수요가 증가하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먼저 제시된다. 그러나 이렇게 구구절절 정책 전제를 설명할 것이라면, 최소한 원전의 안전성과 위험성에 대해서도 같은 수준의 설명이 제공되었어야 한다. 대형 사고의 가능성과 피해 규모, 노후 원전 문제, 사고 발생 시 대피와 보상, 핵폐기물 관리의 현실 등은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은 채, 안전성 판단은 시민 개인의 느낌에 맡겨졌다. 이는 공정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불리한 정보는 지우고 유리한 정보만 제시한 선택적 설명이다.
또한 이번 여론조사는 지역의 문제를 철저히 배제했다. 신규 원전이 실제로 어디에 건설될 수 있는지, 원전 가동으로 발생하는 핵폐기물 처분장이 특정 지역에 들어올 가능성, 그로 인해 누가 위험과 부담을 감당하게 되는지는 질문조차 되지 않았다. 시민들이 마치 원전이 특정 지역과 무관한 추상적 선택인 것처럼 응답하도록 만든 구조다. 만약 “당신이 사는 지역에 원전이 들어온다면 동의하겠는가”, “핵폐기물 처분장이 우리 지역에 들어온다면 찬성하겠는가”라는 질문이 포함되었다면, 과연 같은 결과가 나왔을지 의문이다.
여론조사라는 방식 자체의 한계도 외면할 수 없다. 여론조사는 언제나 시점과 질문 구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조사 결과가 다음 주, 다음 달, 혹은 충분한 정보 제공 이후에도 동일하게 반복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단 한 차례의 여론조사 결과를 마치 확정된 사회적 합의인 것처럼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불안정한 도구를 근거로, 수십 년간 되돌릴 수 없는 원전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책임하다.
국민주권이란 여론조사 숫자를 앞세워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국민주권이란 누가 위험을 감당하는지, 어떤 정보가 배제되었는지,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과정이다. 원전은 특정 지역과 미래세대에 위험을 전가하는 정책이며, 이러한 사안을 질문을 짜맞춘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것은 국민주권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의 뜻을 묻고자 한다면, 결론을 정해놓은 여론조사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전환과 원전 중심 전력체계의 충돌, 원전의 안전성과 핵폐기물의 현실, 지역 주민의 권리와 책임 문제를 모두 드러내는 숙의의 장을 다시 열어야 한다. 국민주권 정부를 자임한다면, 지금의 방식으로 원전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2026. 1. 21
환경운동연합
시민의견 청취인가, 정책 홍보인가?
원전 부지, 핵폐기장 쟁점 없는 여론조사로 신규 원전 추가건설 결정할 수 없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오늘(21일) 신규 원전 건설을 포함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관련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지난 토론회에 이어 공론화를 진행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여론조사는 핵심 쟁점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질문을 설계했고, 그 결과를 정책 결정의 근거로 삼고 있다. 이는 시민의 판단을 존중한 공론화가 아니라, 결론을 정해놓고 절차를 동원한 짜맞추기식 과정이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한국갤럽과 리얼미터 조사 모두에서 시민들이 ‘향후 확대가 필요한 에너지원’ 1순위로 재생에너지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시민들은 분명히 재생에너지 확대를 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는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대형 원전 중심의 전력체계가 어떻게 충돌하는지, 이미 심각한 송전망 포화와 재생에너지 접속 제한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동일한 전력망을 놓고 경쟁하며, 원전 중심 구조가 재생에너지 전환의 장애가 된다는 핵심 현실은 의도적으로 가려진 것이다.
여론조사는 시민들이 ‘친환경성’과 ‘미래세대’를 가장 고려한다는 점도 함께 보여준다. 그러나 그렇다면 당연히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처리 방안조차 마련되지 않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과연 미래세대를 위한 선택인지, 수만 년간 관리해야 할 위험을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것이 친환경적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하지만 이번 여론조사에는 핵폐기물의 존재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힌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쟁점이 질문에서 완전히 삭제된 것이다.
이번 여론조사는 시작부터 정부의 입장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불안정’하고, AI·데이터센터·반도체 산업으로 전력수요가 증가하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먼저 제시된다. 그러나 이렇게 구구절절 정책 전제를 설명할 것이라면, 최소한 원전의 안전성과 위험성에 대해서도 같은 수준의 설명이 제공되었어야 한다. 대형 사고의 가능성과 피해 규모, 노후 원전 문제, 사고 발생 시 대피와 보상, 핵폐기물 관리의 현실 등은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은 채, 안전성 판단은 시민 개인의 느낌에 맡겨졌다. 이는 공정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불리한 정보는 지우고 유리한 정보만 제시한 선택적 설명이다.
또한 이번 여론조사는 지역의 문제를 철저히 배제했다. 신규 원전이 실제로 어디에 건설될 수 있는지, 원전 가동으로 발생하는 핵폐기물 처분장이 특정 지역에 들어올 가능성, 그로 인해 누가 위험과 부담을 감당하게 되는지는 질문조차 되지 않았다. 시민들이 마치 원전이 특정 지역과 무관한 추상적 선택인 것처럼 응답하도록 만든 구조다. 만약 “당신이 사는 지역에 원전이 들어온다면 동의하겠는가”, “핵폐기물 처분장이 우리 지역에 들어온다면 찬성하겠는가”라는 질문이 포함되었다면, 과연 같은 결과가 나왔을지 의문이다.
여론조사라는 방식 자체의 한계도 외면할 수 없다. 여론조사는 언제나 시점과 질문 구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조사 결과가 다음 주, 다음 달, 혹은 충분한 정보 제공 이후에도 동일하게 반복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단 한 차례의 여론조사 결과를 마치 확정된 사회적 합의인 것처럼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불안정한 도구를 근거로, 수십 년간 되돌릴 수 없는 원전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책임하다.
국민주권이란 여론조사 숫자를 앞세워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국민주권이란 누가 위험을 감당하는지, 어떤 정보가 배제되었는지,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과정이다. 원전은 특정 지역과 미래세대에 위험을 전가하는 정책이며, 이러한 사안을 질문을 짜맞춘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것은 국민주권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의 뜻을 묻고자 한다면, 결론을 정해놓은 여론조사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전환과 원전 중심 전력체계의 충돌, 원전의 안전성과 핵폐기물의 현실, 지역 주민의 권리와 책임 문제를 모두 드러내는 숙의의 장을 다시 열어야 한다. 국민주권 정부를 자임한다면, 지금의 방식으로 원전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2026. 1. 21
환경운동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