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사] 울진-삼척 산불 현장 답사 : 7번 국도의 위험한 에너지 벨트를 따라서
지난 3월 21일부터 22일까지 이틀간 울진과 삼척의 산불 피해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산불이 번졌던 곳에는 원자력발전소, 석탄발전소, 그리고 LNG 생산기지까지 우리나라의 주요한 에너지 설비가 가까이 위치해있는데요. 산불로 인해 송전선로 8개 중 2개가 불에 타 한울원전 6호기의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재난 앞에서 위태로웠던 ‘7번 국도의 위험한 에너지벨트’를 따라, 현장 곳곳을 살펴보았습니다.
삼척 신규석탄발전소 건설로 파괴되는 맹방해변
삼척시청에서 내려다 본 시내 전경과 석탄발전소 굴뚝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강원도 삼척이었습니다. 현재 포스코가 삼척에 신규 석탄발전소인 ‘삼척블루파워’를 건설하고 있는데요. 삼척 시내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삼척시청 앞에서 석탄발전소의 굴뚝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석탄발전소가 삼척 주민들과 얼마나 가까이에 지어지고 있는지 실감이 났습니다.
맹방해변은 삼척에서도 명사십리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해변입니다. 하지만 석탄 항만 공사로 인해 맹방해변은 망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맹방해변 앞바다에는 석탄 이송을 위한 컨베이어 벨트 기둥까지 지어지고 있었는데요. 항만 공사로 인해 바다는 파도치지 못한채 잠겨 있었고, 해변은 온갖 공사장비로 뒤덮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변가에는 고운 모래 대신 오니, 뻘과 같은 악취 나는 모래로 가득했습니다.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해 쌓는 양빈용 모래를 오니와 같은 불량 양빈모래로 대신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망가진 맹방해변을 보며, 석탄발전소 건설로 파괴된 삼척의 아름다운 자연이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섬이 사라진 곳
이번 산불은 삼척의 LNG 생산기지까지 위협했습니다. 근방 2km 앞까지 불길이 번졌기 때문인데요. 삼척의 LNG 생산기지에서 생산된 가스는 주로 대도시의 도시가스 공급을 위해 활용된다고 합니다.
LNG 생산기지가 만들어지기 전에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에는 사구가 아름다운 ‘솔섬’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사로 인해 방파제가 생기고 LNG 생산기지가 들어서면서 솔섬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대도시에 가스를 공급하기 위해 사라진 솔섬을 보며, 석탄발전소 건설로 인해 망가진 맹방해변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의 욕심때문에 처참하게 훼손된 자연을 직접 보니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무너진 집들과 까맣게 타버린 산
삼척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바로 울진으로 이동했습니다. 가는 길 내내 까맣게 그을린 산과 나무들이 보였고, 아직도 가시지 않은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산불의 직격탄을 맞은 마을에 가보니 거의 모든 집들이 무너져 내린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울진군 의원에 따르면, 산불이 났을 당시 마을의 불을 진화할 소방 대원이나 헬기의 수가 매우 부족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소방차들이 원전 앞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는데요. 원전의 사고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지만, 정작 원전 인근 주민들의 안전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기후위기 시대, 원전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한울 원전은 이번 산불로 인해 큰 위협을 받았던 곳입니다. 산불이 발생했을 당시 송전선로가 고장나 한울 원전 6호기의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었습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원전 단지 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산불 발생 지점과 매우 가까이 맞닿아 있었는데요. 다행히 이번에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재난 앞에서 원전이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함께 동행한 에너지전환포럼의 석광훈 박사는 송전선로가 끊기는 이번 사고가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자포리자 원전 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자포리자 원전의 경우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인해 송전선로 하나가 끊겨 사용후핵연료저장조의 냉각 기능이 손상되었지요. 자포리자 원전은 가동 중인 원전이기 때문에 몇 시간만 냉각 기능이 멈춰도 수소 폭발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자연 재해가 빈번해질수록 원전 사고의 위험성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원전이 기후위기와 탈탄소의 대안이 결코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울진 현종산에 부는 바람
둘째 날인 22일 화요일, 우리는 울진 현종산의 풍력발전단지로 향했습니다. 현종산 풍력발전단지는 2007년 대형 산불이 발생했던 지역에 만들어졌으며, 현재 53.4MW 용량으로 약 30,0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합니다.
풍력발전기 바로 아래에 서보니 날개가 돌아가는 소리는 바람소리보다 더 작게 들렸습니다. 풍력단지는 관광단지로도 활용되기 때문에 이곳저곳에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또, 산불이 지나간 자리에는 새로 심은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산불이 발생하고 10여 년이 넘게 지나서야 산불의 흔적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며, 한 번의 재난이 얼마나 큰 후유증을 남기는지 느껴졌습니다.
울진과 삼척의 피해 현장들도 하루 빨리 복구되어 까맣게 타버린 산은 푸르게,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집은 다시 따뜻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현장기사] 울진-삼척 산불 현장 답사 : 7번 국도의 위험한 에너지 벨트를 따라서
지난 3월 21일부터 22일까지 이틀간 울진과 삼척의 산불 피해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산불이 번졌던 곳에는 원자력발전소, 석탄발전소, 그리고 LNG 생산기지까지 우리나라의 주요한 에너지 설비가 가까이 위치해있는데요. 산불로 인해 송전선로 8개 중 2개가 불에 타 한울원전 6호기의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재난 앞에서 위태로웠던 ‘7번 국도의 위험한 에너지벨트’를 따라, 현장 곳곳을 살펴보았습니다.
삼척 신규석탄발전소 건설로 파괴되는 맹방해변
삼척시청에서 내려다 본 시내 전경과 석탄발전소 굴뚝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강원도 삼척이었습니다. 현재 포스코가 삼척에 신규 석탄발전소인 ‘삼척블루파워’를 건설하고 있는데요. 삼척 시내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삼척시청 앞에서 석탄발전소의 굴뚝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석탄발전소가 삼척 주민들과 얼마나 가까이에 지어지고 있는지 실감이 났습니다.
맹방해변은 삼척에서도 명사십리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해변입니다. 하지만 석탄 항만 공사로 인해 맹방해변은 망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맹방해변 앞바다에는 석탄 이송을 위한 컨베이어 벨트 기둥까지 지어지고 있었는데요. 항만 공사로 인해 바다는 파도치지 못한채 잠겨 있었고, 해변은 온갖 공사장비로 뒤덮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변가에는 고운 모래 대신 오니, 뻘과 같은 악취 나는 모래로 가득했습니다.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해 쌓는 양빈용 모래를 오니와 같은 불량 양빈모래로 대신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망가진 맹방해변을 보며, 석탄발전소 건설로 파괴된 삼척의 아름다운 자연이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섬이 사라진 곳
이번 산불은 삼척의 LNG 생산기지까지 위협했습니다. 근방 2km 앞까지 불길이 번졌기 때문인데요. 삼척의 LNG 생산기지에서 생산된 가스는 주로 대도시의 도시가스 공급을 위해 활용된다고 합니다.
LNG 생산기지가 만들어지기 전에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에는 사구가 아름다운 ‘솔섬’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사로 인해 방파제가 생기고 LNG 생산기지가 들어서면서 솔섬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대도시에 가스를 공급하기 위해 사라진 솔섬을 보며, 석탄발전소 건설로 인해 망가진 맹방해변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의 욕심때문에 처참하게 훼손된 자연을 직접 보니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무너진 집들과 까맣게 타버린 산
삼척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바로 울진으로 이동했습니다. 가는 길 내내 까맣게 그을린 산과 나무들이 보였고, 아직도 가시지 않은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산불의 직격탄을 맞은 마을에 가보니 거의 모든 집들이 무너져 내린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울진군 의원에 따르면, 산불이 났을 당시 마을의 불을 진화할 소방 대원이나 헬기의 수가 매우 부족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소방차들이 원전 앞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는데요. 원전의 사고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지만, 정작 원전 인근 주민들의 안전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기후위기 시대, 원전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한울 원전은 이번 산불로 인해 큰 위협을 받았던 곳입니다. 산불이 발생했을 당시 송전선로가 고장나 한울 원전 6호기의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었습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원전 단지 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산불 발생 지점과 매우 가까이 맞닿아 있었는데요. 다행히 이번에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재난 앞에서 원전이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함께 동행한 에너지전환포럼의 석광훈 박사는 송전선로가 끊기는 이번 사고가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자포리자 원전 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자포리자 원전의 경우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인해 송전선로 하나가 끊겨 사용후핵연료저장조의 냉각 기능이 손상되었지요. 자포리자 원전은 가동 중인 원전이기 때문에 몇 시간만 냉각 기능이 멈춰도 수소 폭발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자연 재해가 빈번해질수록 원전 사고의 위험성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원전이 기후위기와 탈탄소의 대안이 결코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울진 현종산에 부는 바람
둘째 날인 22일 화요일, 우리는 울진 현종산의 풍력발전단지로 향했습니다. 현종산 풍력발전단지는 2007년 대형 산불이 발생했던 지역에 만들어졌으며, 현재 53.4MW 용량으로 약 30,0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합니다.
풍력발전기 바로 아래에 서보니 날개가 돌아가는 소리는 바람소리보다 더 작게 들렸습니다. 풍력단지는 관광단지로도 활용되기 때문에 이곳저곳에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또, 산불이 지나간 자리에는 새로 심은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산불이 발생하고 10여 년이 넘게 지나서야 산불의 흔적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며, 한 번의 재난이 얼마나 큰 후유증을 남기는지 느껴졌습니다.
울진과 삼척의 피해 현장들도 하루 빨리 복구되어 까맣게 타버린 산은 푸르게,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집은 다시 따뜻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