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보전


생물다양성 위기의 시대, 생태계 보전을 위한 활동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입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숲, 산림, 습지 등 수많은 생명의 터전이 되는 환경보전을 위해

무분별한 개발 정책을 감시하고 육상 보호구역 확대를 통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태보전 


생물다양성 위기의 시대, 생태계 보전을 위한 활동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입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숲, 산림, 습지 등 수많은 생명의 터전이 되는 환경보전을 위해 무분별한 개발 정책을 감시하고 육상 보호구역 확대를 통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태보전초원의 바람과 마주한 사람들

admin
2007-01-23
조회수 183

1월 23일자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앞으로 5년간 황사를 비롯한 중국의 대기오염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한다. 겨우내 건조한 날씨가 계속돼 올 봄 황사가 예년보다 심해질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베이징시 기상대와 환경보호감시센터가 최근 공동 작성한 보고서에서는 황사를 포함한 베이징 인근의 대기오염 현상은 앞으로 5년간 더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렇듯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바람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황사바람 뿐만 아니라 그 바람을 타고 오는 오염물질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토지의 과다한 개간, 과대방목 등 자연의 무조건적인 이용이 피해의 결과로 돌아오고 있다. 실제로 내몽고 지역의 사막화는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당국이 나무를 심고, 토지개발방지 등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하지만 이로써는 근본적으로 사막화나 황사피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은 사막화가 더 진전되지 않도록 중국 NGO, 현지주민들과 함께 사막화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 내몽고의 마지막 초원인 우주무친초원과 후룬베얼초원을 보호하고 초원의 문화를 지킬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마침 중국 내몽고 초원을 배경으로 한 소설책이 지난해 번역돼 한국에서 출판되었다. 장룽의 장편소설 <랑토템>은 내몽고초원에서 유럽까지 펼쳐진 대초원에 대해 그리고 그 땅에서 살던 사람들과 늑대에 대한 대서사시적 이야기다.중국에서는 이미 베스트셀러로 알만한 사람은 다 읽어볼 만큼 유명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광활한 대자연, 내몽고 초원과 마주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곳을 지키고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슴속에서부터 일어나길 기대하며,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싣는다. 서평은 중국 일간지 신경보(新京報)에 소개되었다. <편집자주>

ⓒ쩡바이위
ⓒ쩡바이위

늑대를 통해 바라본 유목민족의 생존철학

서평: 청이션(程一身)

번역: 환경운동연합 인턴생 최하영(연세대)

장룽의 《랑 토템》(狼图腾) (한국에서는 <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음)은 일반 소설이 아니다. 평범한 문화소설이라는 말로도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데 이는 작품 속에 짙은 생태의식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나는 잠시 이 소설을 ‘생태문화소설’이라 칭하기로 한다.

《狼图腾》 이 소설이 평범성을 뛰어넘는 이유는 작가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대상이 이중 신분을 가진 늑대이기 때문이다. 우선 살아있는 동물이며, 동시에 초원 사람들의 토템(totem)이다. 이러한 이중 신분은 늑대와 초원사람 사이의 적대적 관계, 동시에 공존적인 관계를 결정한다. 먼저 늑대는 양을 먹고, 토끼를 먹고, 말을 먹고 심지어는 사람까지도 잡아먹는데 이는 사람과 늑대의 상호 적대관계의 일면을 보여준다. 망망한 대초원에서 늑대를 유일하게 늑대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이지만 동시에 사람은 늑대를 떠날 수가 없다. 늑대는 ‘초원의 네가지 해악(草原四害)’ 의 천적이기 때문에 만약 늑대가 없으면 초원은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양과 쥐에 의해 파괴에 직면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초원사람은 생활의 기지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과 늑대의 상호 의존적인 일면이다.

이러한 복잡한 먹이사슬 속에서 인간은 생태계 평형을 조절하는 결정적 요소이다. 사람은 적당량의 늑대를 포획하고, 늑대는 다른 동물을 잡아 먹으며, 그 다른 동물들은 풀을 먹으며 산다. 인간과 늑대의 공존은 숙명이다. 인간들은 사는 동안에 늑대와 부단히 투쟁을 하고, 죽은 뒤에는 늑대로 하여금 자신들을 먹게 한다. 여기에 이미 생존의 잔혹함이 있다. 늑대의 다른 동물에 대한 상해와 인간에 대한 위협이 그것이다.

또한 늑대에게는 막중한 책임도 있다. 풀이나 초지는 초원사람들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풀은 동물처럼 생명이 있는 것이어서 생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인간은 늑대를 막무가내로 죽여 멸종시켜서는 안 된다. 그로 인해 다른 동물들이 무절제하게 번식 성장하게 놔둔다면 모든 초원은 전체가 멸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늑대에게는 영원한 의탁의 기능도 있다. 수천년 동안 목축민들은 죽으면 시체를 모포로 싸서 소가 끄는 차로 천장장(天葬场)에 보내야 했다. 만약 삼 일 내에 죽은 자가 늑대에게 먹히지 않으면, 그의 영혼은 텅거리(腾格里 – 몽골어로 ‘하늘’의 의미)로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 죽은 자는 이미 늑대의 것이며 신의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산 자는 초원의 생태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늑대가 필요하고, 죽은 자는 이미 서거한 영혼을 맡기기 위해 늑대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늑대가 초원사람들의 토템이 되는 이중적 의미이다.

ⓒ쩡바이위
ⓒ쩡바이위

이러한 인간과 늑대의 적대적이고도 의존적인 관계는 초원사람들의 생활을 비극적 경험으로 가득찰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한편으로는 가축들이 늑대이게 도살되는 것을 보고도 참을 수 밖에 없는 비애, 또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늑대를 죽여야만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경험이다.” 이 부분은 작품 내에서 가장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았을 때, 작가가 표면적으로 드러낸 것은 늑대나 실질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과 늑대의 투쟁 중에서도 의존하는 관계였던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작가가 좀 더 심도 있게 논의하고자 했던 것은 다른 동물과 초원에서 공존하며 인간이 응당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인간과 늑대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서 작가는 부득불 작품 속에 적지 않은 생태 지식을 집어넣어야 했는데 이것이 바로 작품에 비소설적인 요소가 풍부하게 된 이유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떻게 이러한 생태적 소재와 취지를 소설 중의 유기적 부분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작가의 교묘한 시각 구성과 우수한 구성 능력에 힘입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초원사람이었는데, 이러한 표현은 초원사람을 무대에 올려놓고 그들로 하여금 자작자연하게 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지식청년들이 상산하향(上山下乡)하는 특정한 시기에 맞춰 놓고 북경에서 온 학생들의 시각을 빌려 완성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하나의 생태과학 같은 소책자를 소설화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양 민족 간의 다른 관념의 충돌과 이에 대한 동의의 역동적 과정이며 주제는 결국 초원사람의 생활관념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전 작품의 가장 주요한 핵심은 초원의 토템인 이 늑대에 대한 문화적 재고찰이다.

ⓒ쩡바이위
ⓒ쩡바이위

늑대는 한문화 속에서 계속 흉악하고 교활한 부정적인 배역이었다. 이의 주요 원인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늑대가 사람의 생활을 위협하는 하나의 이질적인 요소였기 때문이다.

사자나 호랑이는 항상 용맹한 왕자 자태를 차지해 왔으나, 늑대는 사람들의 지지를 획득한 적이 거의 없으며 중국어에서 늑대와 관계 있는 성어는 거의 모두 다 나쁜 뜻을 담고 있다. 狼心狗肺(흉악하고 잔인한 마음을 지닌 사람), 狼子野心 (흉폭한 야심을 가진 사람) 등등. 강해(康海)의 문장 속에서 중산랑(中山狼)은 은혜를 저버리는 동물이고, 포송령(蒲松龄) 문장에서의 늑대는 교활하고 간교하다.

그러나 《랑 토템》(狼图腾)에서는 오히려 한문화권 안의 늑대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바로잡는 시도를 하였다. 작품에서는 섬세한 묘사로 독자들에게 표명한다: 늑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옳은 데가 하나도 없는’ 나쁜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에 늑대가 사람에게 위협을 조성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용맹성을 가지려 하거나 인간이 어떻게 늑대와 같은 용맹무쌍함을 상상하지 않을 수 있으랴), 심지어는 그의 간교한 계괘나 모략(객관적으로 말해, 늑대에게 있어서 그것은 어디나 생존의 지혜일 뿐이다.)을 가지고 싶어 할 것이다. 또한, 작가는 저작을 통해 늑대의 조직성, 전술책략, 집단정신 및 자아희생정신을 발굴해냈고, 심지어는 인성과 상통하는 랑성(狼性)까지 나타내었다. 이러한 요소들은 사람들의 늑대에 대한 인식을 쇄신하는데 기여한다. 최소한 다시는 단편적으로, 너무 쉽게, 편견을 가지고 늑대를 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랑 토템》(狼图腾)의 가장 큰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에 작가가 단지 늑대의 명분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이 소설을 쓴 것이라면 곧 이 작품의 의미를 폄하하는 것이다. 삐리거(毕利格) 노인이 늑대를 잡기도 하고 보호하기도 했던 대책이 후에 모든 늑대를 전부 멸절 시키는 정책으로 대치되어 버리자, 늑대무리는 역사가 되어버리고, 초원은 추억이 되어버렸으며, 인류의 생태환경은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작가는 이 작품의 세 번째 탈고를 할 당시 ‘북경 앞에 특별히 ‘강한 황사 아래’라는 몇 글자를 상세히 강조하면서 그 절박한 현실의 의미를 글 속에 생생하게 담았다.

이는 생태적 측면 상의 이야기이고, 작가는 또한 빈번히 역사문화의 더 깊숙한 단계도 언급하였다. 예를 들어 소설에서 츤쩐(陈阵)은 늑대의 무리가 황양(黄羊)을 포위사냥 것을 보며 초원 위주의 북방소수민족의 지혜가 모두 늑대에게서 온 것임을 감탄한다. 이는 작가가 늑대를 하나의 ‘위대하고 탁월한 군사교관’으로 간주함으로써 세계 역사의 가장 큰 판도의 초원제국을 창조하여 중국을 정복하고, 유럽을 휩쓴 군사적 재능의 근원이 늑대의 지도에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늑대토템의 정신은 한족의 유가정신보다 더 오래되었고, 더욱 자연적 연속성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라고 여긴다. 동시에 중화민족의 “용 토템은 늑대토템의 변화 형식일 뿐” 이라는 견해를 내세우며 따라서 “담황늑대(炎黄狼)” 를 “중국양(华夏羊)”으로 만들어냄으로써 “현대문명의 늑대”에 대한 소망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계통적 설명은 조금 지나쳐서 어쩌면 진일보한 실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한 것은 이 시대 모든 중국인들이 심각하게 재고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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