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낭소리라는 영화가 있다. 다큐멘타리 같은 영화다. 영화의 내용은 70대 할아버지가 40년간 소와 살아가는 이야기다. 위험소통이란 말이 있다. 현대인의 삶을 위협하는 다양한 위해요소들에 대해 일반 시민, 소비자들과 정확하고 진솔하게 문제점을 공유하고 이를 같이 해결해 나가자는 취지의 개념이다. 정책결정자나 전문가 그리고 언론인과 시민단체 활동가들 사이에서 점점 중요도가 더해가는 용어다. 석면문제를 잘 아는 한 위험소통 전문가는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와 소가 나누는 소통이야말로 쌍방향 소통의 진수라고 말한다. <소>와도 <통>할 수 있어야 <소통>이라고 하면서.
이번 베이비파우더 석면문제는 사회적 쇼크였다. 사람들은 석면이 발암물질이라는 것과 흔히 보는 슬레이트에 석면이 들어있다는 정도는 대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일급이라는 머리말이 따라다니는 발암물질 석면이 아기들이 쓰는 물건에 들어있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조사발표와 회수결정은 식약청이 했지만 사실상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 의해 문제를 알게 되었고 며칠 만에 부랴부랴 조사를 해서 그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발표를 했다는 사실에 소비자들은 기가 막혀 했다. 언론은 식약청에 뭇매를 가했다. 환경단체들은 식약청과 노동청 그리고 제조사와 원료공급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화난 엄마들은 집단 소송을 준비중이다. 문제는 화장품과 제약품 및 생활용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가히 한국사회는 ‘석면쇼크’에 빠져있다. 이 와중에 실제 석면의 피해가 어느 정도나 되는가라는 문제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석면활석을 사용한 제품사용자가 암에 걸린 사례가 보고되지 않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측과 활석을 다루는 사업장에서 암발생 보고가 있고 발암을 일으키는 최소량(역치)이 없으므로 충분한 주의를 요한다는 의견이 맞선다. 일부 전문가들은 식약청이 과학적 근거도 없이 단순히 대중의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해 성급히 회수명령을 내렸다며 비판한다. 과연 그럴까?
사전예방원칙 이라는 것이 있다. 다수 시민에게 건강상의 위해를 줄 수 있는 문제인데 과학적으로 충분한 연구가 되지 않아 찬반양론이 존재하는 경우 사전예방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믿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암과 같은 건강피해가 발생하면 아무도 책임질 수 없고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라며 누구나 상식적으로 받아들 일 수 있는 논리다. 인구 다수의 건강문제를 연구하는 보건학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번 식약청의 제품 회수결정은 바로 이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한 좋은 사례로 평가된다. 식약청이 일찌감치 석면활석에 대해 조치를 취하여 이런 제품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뒤늦게라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후 취한 조치는 나름 과감했다. 사전예방원칙을 미리미리 적용하지 못한 잘못이 있지만 늦었더라고 포기하지 않고 적용한 것은 잘못한 일이 아니다. 제조사와 제약사의 반발을 염두에 두지 않고 소비자 즉 시민의 건강과 위험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조치가 아니었는가. 수 차례의 식품오염 사건을 경험한 식약청이기에 가능했던 조치라는 평가도 나온다. 만일 식약청이 정확한 조사를 해야 한다며 시간을 계속 끌면서 조사결과나 대책을 내놓지 않았더라면 소비자의 혼란과 여론은 더욱 악화됐을 것이다. 부족하지만 일단 급히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고 제품회수라는 전격적인 결정을 내린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수 십 만 명의 아기와 시민이 매일 사용하는 제품이요 약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1천 가지가 넘는 제품 중 일부 품목에 대한 부정확한 판단은 양해될 수 있는 문제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 필요한 것이 사전예방원칙이요 위험소통 개념이다. 교과서에 흔히 나오는 이 개념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여 판단을 내리는 것은 외롭고 힘든 일이다. 이러한 때 판단의 중심은 다수 소비자, 시민이고 특히 사회적, 신체적 약자여야 한다. 필자는 수많은 소비자를 대신해 식약청을 고발한 당사자다. 하지만 석면활석을 사용한 제품에 대한 조사결과를 모두 공개하고 전격적인 회수결정을 내린 판단을 잘못 한 일이라고 비판한다면 사전예방원칙과 위험소통의 관점에서 반박하고자 한다.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최예용
* 이글은 2009년 4월21일자 중앙일보에 7매로 줄여 실렸습니다.
워낭소리라는 영화가 있다. 다큐멘타리 같은 영화다. 영화의 내용은 70대 할아버지가 40년간 소와 살아가는 이야기다. 위험소통이란 말이 있다. 현대인의 삶을 위협하는 다양한 위해요소들에 대해 일반 시민, 소비자들과 정확하고 진솔하게 문제점을 공유하고 이를 같이 해결해 나가자는 취지의 개념이다. 정책결정자나 전문가 그리고 언론인과 시민단체 활동가들 사이에서 점점 중요도가 더해가는 용어다. 석면문제를 잘 아는 한 위험소통 전문가는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와 소가 나누는 소통이야말로 쌍방향 소통의 진수라고 말한다. <소>와도 <통>할 수 있어야 <소통>이라고 하면서.
이번 베이비파우더 석면문제는 사회적 쇼크였다. 사람들은 석면이 발암물질이라는 것과 흔히 보는 슬레이트에 석면이 들어있다는 정도는 대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일급이라는 머리말이 따라다니는 발암물질 석면이 아기들이 쓰는 물건에 들어있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조사발표와 회수결정은 식약청이 했지만 사실상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 의해 문제를 알게 되었고 며칠 만에 부랴부랴 조사를 해서 그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발표를 했다는 사실에 소비자들은 기가 막혀 했다. 언론은 식약청에 뭇매를 가했다. 환경단체들은 식약청과 노동청 그리고 제조사와 원료공급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화난 엄마들은 집단 소송을 준비중이다. 문제는 화장품과 제약품 및 생활용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가히 한국사회는 ‘석면쇼크’에 빠져있다. 이 와중에 실제 석면의 피해가 어느 정도나 되는가라는 문제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석면활석을 사용한 제품사용자가 암에 걸린 사례가 보고되지 않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측과 활석을 다루는 사업장에서 암발생 보고가 있고 발암을 일으키는 최소량(역치)이 없으므로 충분한 주의를 요한다는 의견이 맞선다. 일부 전문가들은 식약청이 과학적 근거도 없이 단순히 대중의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해 성급히 회수명령을 내렸다며 비판한다. 과연 그럴까?
사전예방원칙 이라는 것이 있다. 다수 시민에게 건강상의 위해를 줄 수 있는 문제인데 과학적으로 충분한 연구가 되지 않아 찬반양론이 존재하는 경우 사전예방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믿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암과 같은 건강피해가 발생하면 아무도 책임질 수 없고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라며 누구나 상식적으로 받아들 일 수 있는 논리다. 인구 다수의 건강문제를 연구하는 보건학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번 식약청의 제품 회수결정은 바로 이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한 좋은 사례로 평가된다. 식약청이 일찌감치 석면활석에 대해 조치를 취하여 이런 제품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뒤늦게라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후 취한 조치는 나름 과감했다. 사전예방원칙을 미리미리 적용하지 못한 잘못이 있지만 늦었더라고 포기하지 않고 적용한 것은 잘못한 일이 아니다. 제조사와 제약사의 반발을 염두에 두지 않고 소비자 즉 시민의 건강과 위험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조치가 아니었는가. 수 차례의 식품오염 사건을 경험한 식약청이기에 가능했던 조치라는 평가도 나온다. 만일 식약청이 정확한 조사를 해야 한다며 시간을 계속 끌면서 조사결과나 대책을 내놓지 않았더라면 소비자의 혼란과 여론은 더욱 악화됐을 것이다. 부족하지만 일단 급히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고 제품회수라는 전격적인 결정을 내린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수 십 만 명의 아기와 시민이 매일 사용하는 제품이요 약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1천 가지가 넘는 제품 중 일부 품목에 대한 부정확한 판단은 양해될 수 있는 문제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 필요한 것이 사전예방원칙이요 위험소통 개념이다. 교과서에 흔히 나오는 이 개념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여 판단을 내리는 것은 외롭고 힘든 일이다. 이러한 때 판단의 중심은 다수 소비자, 시민이고 특히 사회적, 신체적 약자여야 한다. 필자는 수많은 소비자를 대신해 식약청을 고발한 당사자다. 하지만 석면활석을 사용한 제품에 대한 조사결과를 모두 공개하고 전격적인 회수결정을 내린 판단을 잘못 한 일이라고 비판한다면 사전예방원칙과 위험소통의 관점에서 반박하고자 한다.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최예용
* 이글은 2009년 4월21일자 중앙일보에 7매로 줄여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