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우 옥시 전대표 ⓒ환경운동연합
2016년 구의역 김 군 사망사고, 2017년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 이민호 군 사망사고, 2018년 서부발전의 김용균 씨 사망사고, 그리고 최근 평택항의 이선호 씨까지 전국 곳곳에서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졌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 죽음을 방치하면 큰일 난다”는 전 국민적 분노와 위기 속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발의됐고, 올해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단순히 기업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기업의 안전보건 조치를 강화하고, 안전 투자를 늘려 중대한 재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의무와 책임을 규정하는 법률이다.
지금까지 중대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꼬리자르기식’의 책임 전가로 기업의 총수들은 법망을 교묘히 피해갔다. 만약 해당 법안이 본래의 취지와 원칙대로 적용된다면, 위험 및 안전 관리 소홀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최종 책임자에게 징역형 이상의 강력한 처벌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크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현장의 중대산업재해 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같은 중대시민재해도 포괄해서 적용한다. 중대산업재해는 산업 현장이 적용 대상이지만, 중대시민재해는 시민들이 일상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이 화학물질과 제품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경우, 또 공중이용시설, 공중교통수단의 관리 결함으로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까지 포괄하고 있다.
지난 7월 12일 국민 10만 명이 발의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입법 예고됐다. 시행령안이 나오자마자 전문가, 노동계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각층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죄 받은 가습기 살균제 대표 중대재해처벌법이라면?
2011년 8월 31일 정부의 역학조사 결과 발표로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현재까지 7,500여 명의 피해자가 접수되었고, 그 가운데 사망자 수가 1,700여 명에 이른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알려진 10년,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으며,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판매한 기업 대표와 책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중대재해처벌법 제 9조에 따르면 경영자에게 ’원료나 제조물의 설계, 제조, 관리상의 결함으로 인한 그 이용자 또는 그 밖의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 예산, 점검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이행하도록 하고 있다. 즉, 원료 또는 제조물에 대한 유해·위험요인을 확인, 점검하지 않다가 소비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처벌된다는 뜻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위험을 확인하지 않은 화학물질을 함유한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되어 다수의 사망자, 폐 섬유화, 폐 손상 등 피해자를 발생시킨 참사다. 이는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한다. 가습기 살균제로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므로, 중대시민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최소 30~50년의 징역형과 10억원의 벌금 선고가 가능하다. 지금까지 형사재판에서 옥시 등 관련자들이 받은 5년 이하의 금고형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력한 형벌 규정이 가능해진다. 이처럼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 책임자에 대한 처벌 등 형벌 책임을 강화하고 있어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유사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법 취지 왜곡한 시행령
그에 반해, 이번에 입법 예고된 시행령은 본래 법령보다 규제 대상 범위와 보호 범위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 적용 대상을 아주 협소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에서는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하는 원료·제조물의 범위에 대하여 달리 정한 바가 없다.
그런데도 이번 입법 예고된 시행령에서는 ‘별표5’를 두어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종류(11가지)를 한정하고 있다. 법의 적용 범위를 대폭 축소됐다. ‘별표5’에서 정하지 않은 생활용품이나 공산품 등에서 시민재해가 발생하면 책임자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입법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법에서 위임 사항이 아닌데도 시행령에서 중대시민재해 관련한 원료 또는 제조물의 종류와 범위를 임의로 제한해 비판을 받는 별표5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는 별표5의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생활화학제품법)’에서 관리하는 살생물 제품에 해당한다. 하지만, ‘별표5’에 해당하지 않는 수많은 사각지대의 제품에 대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셈이다. 지금도 시장에는 수많은 다종다양한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는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시민사회는 규제 대상 범위를 특정 제조물로 한정할 게 아니라, 모든 제조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별표 5’에 한정한 원료 물질도 마찬가지다. 화학물질로 인한 시민재해가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별표 5’에서 규정하는 특정 물질 목록은 이미 각 법에서 규제하는 원료물이다. 물론, 정부가 관리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사고 예방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겪었던 가습기 살균제를 비롯해 라돈 침대, 생리대 사태 등 관리 사각지대의 원료물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이처럼 중대재해처벌법도 결국 거대한 구멍을 막지 못하고 있다.
또한, 시행령에는 소상공인의 경우에 의무를 면제하고 있어 경영책임자의 대상 역시 좁히고 있다. 지난해 1월,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중소기업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은 과잉 입법이라며, 법 제정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국회는 이러한 기업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이번 시행령안에는 소상공인에 해당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되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시행에서 유예되었다.
백번 양보해서 소상공인의 경우 법안을 이행할 역량이나 여건 등을 우려한 취지라고 하더라도, 전면적으로 대상을 제외한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이 법으로 재해를 예방하자는 것인지, 방기하자는 것인지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기업의 규모와 재해의 크기가 무관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국내 화학산업의 약 70퍼센트가 영세·중소기업이다. 이처럼 소상공인에 해당하는 업체 비중이 높고, 부실한 안전사고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책임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되면 이 법의 취지를 살리기 어려워진다.
▲ 지난 9일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철거 건물 붕괴사고(출처: 연합뉴스)
한편, 중대시민재해는 모든 시민이 이용하는 공중이용시설에서 발생하는 사고도 포함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재해 발생 시 생명, 신체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큰 장소들로 폭넓게 제시되어야 했다. 그러나 정작 시행령안은 어떤 근거와 기준 없이 도로, 교량, 철도교량, 철도터널, 주유소 등 여섯 종류의 공중이용시설로만 한정하고 있으며, 준공 후 10년이 지난 시설로 못 박고 있다. 판교 야외공연장 환풍기 붕괴 추락 사고나, 철거 공사 중 버스를 덮쳐서 시민들이 사망한 광주 붕괴 참사 등의 경우 이 법이 시행한다 하더라도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원료 또는 제조물의 종류와 범위를 임의로 축소한 ‘별표 5’와 소상공인 의무 부담 제외 조항을 삭제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 대안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화학물질 사용에 있어 근원적 안전장치인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을 준용해 국내에 등록된 모든 화학물질을 대상으로 적용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화평법에 따라 위험을 확인하지 않거나 확인하지 않은 용도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행위를 한 경우 사업주에 대해 강력하게 처벌토록 요구하고 있다. 이래야 모든 제조물과 원료물에 대한 사전 예방 차원의 구조적 틀을 갖출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중대시민재해의 공중이용시설 범위도 구체적인 법률이 열거하는 시설이 아니라, 재해 발생 시 생명·신체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장소 등을 포괄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기업 면죄부 주는 시행령 안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안이 예고된 후 시민사회와 기업계의 갈등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경제단체와 기업들은 “정상적인 기업 경영을 어렵게 만든다”거나,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중대한 재해”라며, 경영책임자의 의무내용을 구체화하고 범위도 특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시민사회노동단체는 “재해방지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경영책임자 면죄부를 주는 시행령”이라며 강력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 1월부터 시행한다. 지금도 불안한 작업장에서, 일상에서 수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사망하고, 다치고 있다. ‘안전 사회’라는 기치로 중대 재해를 근원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국민 염원으로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은 제발 이번만큼은 ‘누더기’ 혹은 ‘반쪽짜리’ 오명 없이 온전히 만들어질 수 있도록 기원해본다.
※ 해당 기사는 함께 사는 길 2021년 10월 호에 게재되었습니다.
※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 캠페인은 노란리본기금의 후원으로 진행됩니다.
▲신현우 옥시 전대표 ⓒ환경운동연합
2016년 구의역 김 군 사망사고, 2017년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 이민호 군 사망사고, 2018년 서부발전의 김용균 씨 사망사고, 그리고 최근 평택항의 이선호 씨까지 전국 곳곳에서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졌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 죽음을 방치하면 큰일 난다”는 전 국민적 분노와 위기 속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발의됐고, 올해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단순히 기업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기업의 안전보건 조치를 강화하고, 안전 투자를 늘려 중대한 재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의무와 책임을 규정하는 법률이다.
지금까지 중대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꼬리자르기식’의 책임 전가로 기업의 총수들은 법망을 교묘히 피해갔다. 만약 해당 법안이 본래의 취지와 원칙대로 적용된다면, 위험 및 안전 관리 소홀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최종 책임자에게 징역형 이상의 강력한 처벌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크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현장의 중대산업재해 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같은 중대시민재해도 포괄해서 적용한다. 중대산업재해는 산업 현장이 적용 대상이지만, 중대시민재해는 시민들이 일상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이 화학물질과 제품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경우, 또 공중이용시설, 공중교통수단의 관리 결함으로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까지 포괄하고 있다.
지난 7월 12일 국민 10만 명이 발의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입법 예고됐다. 시행령안이 나오자마자 전문가, 노동계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각층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죄 받은 가습기 살균제 대표 중대재해처벌법이라면?
2011년 8월 31일 정부의 역학조사 결과 발표로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현재까지 7,500여 명의 피해자가 접수되었고, 그 가운데 사망자 수가 1,700여 명에 이른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알려진 10년,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으며,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판매한 기업 대표와 책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중대재해처벌법 제 9조에 따르면 경영자에게 ’원료나 제조물의 설계, 제조, 관리상의 결함으로 인한 그 이용자 또는 그 밖의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 예산, 점검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이행하도록 하고 있다. 즉, 원료 또는 제조물에 대한 유해·위험요인을 확인, 점검하지 않다가 소비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처벌된다는 뜻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위험을 확인하지 않은 화학물질을 함유한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되어 다수의 사망자, 폐 섬유화, 폐 손상 등 피해자를 발생시킨 참사다. 이는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한다. 가습기 살균제로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므로, 중대시민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최소 30~50년의 징역형과 10억원의 벌금 선고가 가능하다. 지금까지 형사재판에서 옥시 등 관련자들이 받은 5년 이하의 금고형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력한 형벌 규정이 가능해진다. 이처럼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 책임자에 대한 처벌 등 형벌 책임을 강화하고 있어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유사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법 취지 왜곡한 시행령
그에 반해, 이번에 입법 예고된 시행령은 본래 법령보다 규제 대상 범위와 보호 범위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 적용 대상을 아주 협소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에서는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하는 원료·제조물의 범위에 대하여 달리 정한 바가 없다.
그런데도 이번 입법 예고된 시행령에서는 ‘별표5’를 두어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종류(11가지)를 한정하고 있다. 법의 적용 범위를 대폭 축소됐다. ‘별표5’에서 정하지 않은 생활용품이나 공산품 등에서 시민재해가 발생하면 책임자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입법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법에서 위임 사항이 아닌데도 시행령에서 중대시민재해 관련한 원료 또는 제조물의 종류와 범위를 임의로 제한해 비판을 받는 별표5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는 별표5의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생활화학제품법)’에서 관리하는 살생물 제품에 해당한다. 하지만, ‘별표5’에 해당하지 않는 수많은 사각지대의 제품에 대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셈이다. 지금도 시장에는 수많은 다종다양한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는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시민사회는 규제 대상 범위를 특정 제조물로 한정할 게 아니라, 모든 제조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별표 5’에 한정한 원료 물질도 마찬가지다. 화학물질로 인한 시민재해가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별표 5’에서 규정하는 특정 물질 목록은 이미 각 법에서 규제하는 원료물이다. 물론, 정부가 관리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사고 예방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겪었던 가습기 살균제를 비롯해 라돈 침대, 생리대 사태 등 관리 사각지대의 원료물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이처럼 중대재해처벌법도 결국 거대한 구멍을 막지 못하고 있다.
또한, 시행령에는 소상공인의 경우에 의무를 면제하고 있어 경영책임자의 대상 역시 좁히고 있다. 지난해 1월,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중소기업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은 과잉 입법이라며, 법 제정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국회는 이러한 기업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이번 시행령안에는 소상공인에 해당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되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시행에서 유예되었다.
백번 양보해서 소상공인의 경우 법안을 이행할 역량이나 여건 등을 우려한 취지라고 하더라도, 전면적으로 대상을 제외한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이 법으로 재해를 예방하자는 것인지, 방기하자는 것인지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기업의 규모와 재해의 크기가 무관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국내 화학산업의 약 70퍼센트가 영세·중소기업이다. 이처럼 소상공인에 해당하는 업체 비중이 높고, 부실한 안전사고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책임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되면 이 법의 취지를 살리기 어려워진다.
▲ 지난 9일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철거 건물 붕괴사고(출처: 연합뉴스)
한편, 중대시민재해는 모든 시민이 이용하는 공중이용시설에서 발생하는 사고도 포함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재해 발생 시 생명, 신체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큰 장소들로 폭넓게 제시되어야 했다. 그러나 정작 시행령안은 어떤 근거와 기준 없이 도로, 교량, 철도교량, 철도터널, 주유소 등 여섯 종류의 공중이용시설로만 한정하고 있으며, 준공 후 10년이 지난 시설로 못 박고 있다. 판교 야외공연장 환풍기 붕괴 추락 사고나, 철거 공사 중 버스를 덮쳐서 시민들이 사망한 광주 붕괴 참사 등의 경우 이 법이 시행한다 하더라도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원료 또는 제조물의 종류와 범위를 임의로 축소한 ‘별표 5’와 소상공인 의무 부담 제외 조항을 삭제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 대안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화학물질 사용에 있어 근원적 안전장치인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을 준용해 국내에 등록된 모든 화학물질을 대상으로 적용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화평법에 따라 위험을 확인하지 않거나 확인하지 않은 용도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행위를 한 경우 사업주에 대해 강력하게 처벌토록 요구하고 있다. 이래야 모든 제조물과 원료물에 대한 사전 예방 차원의 구조적 틀을 갖출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중대시민재해의 공중이용시설 범위도 구체적인 법률이 열거하는 시설이 아니라, 재해 발생 시 생명·신체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장소 등을 포괄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기업 면죄부 주는 시행령 안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안이 예고된 후 시민사회와 기업계의 갈등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경제단체와 기업들은 “정상적인 기업 경영을 어렵게 만든다”거나,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중대한 재해”라며, 경영책임자의 의무내용을 구체화하고 범위도 특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시민사회노동단체는 “재해방지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경영책임자 면죄부를 주는 시행령”이라며 강력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 1월부터 시행한다. 지금도 불안한 작업장에서, 일상에서 수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사망하고, 다치고 있다. ‘안전 사회’라는 기치로 중대 재해를 근원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국민 염원으로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은 제발 이번만큼은 ‘누더기’ 혹은 ‘반쪽짜리’ 오명 없이 온전히 만들어질 수 있도록 기원해본다.
※ 해당 기사는 함께 사는 길 2021년 10월 호에 게재되었습니다.
※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 캠페인은 노란리본기금의 후원으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