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안전


우리는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예방할 수 있을까요?

위험사회를 말한 울리히 벡의 지적처럼, 가슴 아픈 참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우리 사회를 좀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제품 안전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며,

불법행위를 한 기업들의 책임을 묻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위한 제도마련에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화학안전 


우리는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예방할 수 있을까요? 위험사회를 말한 울리히 벡의 지적처럼, 가슴 아픈 참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우리 사회를 좀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제품 안전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며, 불법행위를 한 기업들의 책임을 묻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위한 제도마련에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화학안전[활동기사] 열이 난다고 무조건 해열제만 처방해야 할까요?

홍구 강
2022-09-30
조회수 469

신규화학물질 등록기준 완화요구와 우리사회의 합리성

 

ⓒ환경운동연합(2022)

 

“안전제도가 사실상 변한 게 없는 것 같네요. 기업들의 태도가 바뀌었으면 해요. 더 나은 제도를 만들어주세요.”

 

박준형(15) 군의 팔은 가늘었습니다. 키는 170cm을 넘지만, 몸무게가 41kg에 불과합니다. 콧물과 기침을 달고 산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일상생활의 어려움은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박 군이 3살 즈음 쓴 가습기 살균제가 폐에 큰 악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박 군의 말에 마음이 복잡합니다. 유럽의 화학안전제도(REACH)를 밴치마킹 했고 안전제도를 강화했는데 피해자나, 시민들에게 피부로 와닿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사회 현실에 맞게 작동하고, 안전사회를 위해 더 나은 제도를 어떻게 만들지 어려운 고민이 따라옵니다.

지난 23일 서울시 중구의 한 교육센터에서 화학안전정책포럼의 5번째 공개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 포럼은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지속가능 사회”를 모토로 시민사회와 산업계, 환경부가 함께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2021년에 시범운영을 시작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래 기업들의 편의를 더 고려하고, 규제를 완화하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포럼의 목적과 맞는지 의문이 드는 주제가 추가되었습니다. 공식적인 토론주제는 소량 “신규화학물질 유해성 정보의 실효성 있는 생산·전달·활용 방안”이지만 신규화학물질 등록기준을 조정하자는 산업계의 요구로 시작된 논의입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공론화되며 제도가 강화된 이래 지난 10여년 동안 기업들이 줄기차게 반복해온 주장이기도 합니다.

 

산업계의 거듭되는 규제완화 요구, 흔들리는 NO DATA NO MARKET 원칙

 

NO DATA NO MARKET 원칙은 유럽의 신 화학물질제도 운영의 원칙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투명한 정보공개 없이는 시장에서 판매할 수 없다는 말이죠. 산업계의 주장대로 등록기준 자체를 완화하게 되면 바로 이 원칙을 지킬 수 없게 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후 안전제도 강화를 위해 유럽의 제도를 밴치마킹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현재 화학물질등록평가법에 따르면 신규화학물질을 100kg 이상 취급하게 되면 등록을 해야합니다. 산업계는 이 기준을 1t으로 완화하자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중소기업의 이행 여건상 어려움이 있다. (이것은 돈이 많이 든다는 말입니다.) 또한 반도체, 전자제품의 경쟁력 강화를 언급했습니다. 기업에서 오신 토론자들은 제도개선을 말하며 유독 합리성을 강조했습니다.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1t 수준의 등록기준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의 주장대로 기준을 1t으로 낮추게 된다며 커다란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됩니다. 100kg에서 1t 사이에 있는 물질들이 약 80% 가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원료물질 또한 500kg 수준이었음을 감안할 때, 또 다른 제2의 참사가 벌어지지 않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등록기준에 대한 해외사례 또한 일률적으로 1t이 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고유의 사회적 맥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부도 당초에는 1t수준으로 등록기준을 생각했습니다. 유럽의 기준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공론화되고 국회에서 제도강화를 위해 법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모든 물질을 등록토록 내용이 수정되었습니다. 제2의 참사를 예방하자는 국민여론의 영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산업계의 목소리가 계속 나왔습니다. 그렇게 타협점으로 법안이 추가로 개정되었고, 현재의 기준(100kg)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또한 기업들은 2019년 일본의 반도체 부품들에 대한 수출규제 국면과, 2020년 코로나 확산기 같은 사회적인 위기 국면에서도 일관되게 규제완화를 주장했고 정부는 이를 수용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마다 제도 합리화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이건 누구를 위한 합리화일까요?

 

“환자가 열이 난다고 무조건 해열제만 처방하는 게 답이 될 수 있을까요?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발제자로 참여해 유럽의 CLP제도(화학물질 분류표시포장제도)에 대해 설명을 한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은 위와 같은 말로 현재의 상황을 진단했습니다. 더 나은 안전제도를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산업계의 주장은 얼마나 합리성이 있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법과 제도는 사회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제도개선에는 무엇보다도 신뢰와 합리성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관점과 기준이 산업계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졌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편의를 들어주겠다는 정부의 방침 아래, 안전한 사회를 향한 화학물질 안전관리 원칙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노란리본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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