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화 된 SK·애경·이마트 관련 항소심… 피해자 몰아세운 변호인들
©환경운동연합(2021)
“내가 산 증인인데, 근거가 부족하다니요. 억울하지 이게. 배상이 문제가 아니고… 저는 분명 피해를 당했는데, 가해자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요. 판사가 특정 피해자나 가해자 편에 서길 원하지 않아요. 냉정하게 사실 그대로 판단해주길 기대하는 거예요. 누구에게 어떤 책임이 있나를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선 진실이 밝혀지길 원해요.”
1인 시위에 참여한 피해자 김창호(70)씨의 바람이다. 그는 젊은시절 암벽등반도 하고 등산을 즐길 정도로 건강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믿음이 무너지는 건 순간이었다. 간 이식 수술을 받게 된 이후, 가습기와 살균제품을 썼던 게 화근이었다. 습기 때문에 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썼다. 건강에 좋은 걸로만 생각했다. 몸이 아프다보니 지금은 그저 가족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누구도 피해자 마음을 달래지 못했다
지난 2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법원을 찾았다. 이들은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법원삼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같은 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가습기살균제 항소심 재판일정을 맞아, 가해기업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으며 방청에도 참여했다.
이날의 캠페인은 가습기살균제 10주기 비상행동(준)이 주최했다. 2011년 산모들의 원인 모를 죽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이 참사가, 지난 8월 공론화 10주기를 맞이한 바 있다. 하지만 진상규명과 기업의 책임 이행이 더딘 상황에서 시민사회와 피해자들이 힘을 모은 것이다. 10개의 피해자 단체들과 시민사회의 연대체인 가습기살균제참사 전국네트워크가 함께했다.
©환경운동연합(2021)
지난 5월 18일 공판준비기일이 시작되고 다섯 달이 흘렀다. 세 번의 준비기일이 있었다. 공판준비 절차는 본격적인 재판 시작 전에 사건의 쟁점들과 절차를 정리하는 단계이다. 하지만 과정이 매끄럽지는 않았다. 검찰은 입증의 어려움을 겪었고, 재판부를 효과적으로 설득하지 못했다. 가해 기업 측 변호인들은 오히려 공세적이었다. 누구도 피해자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 없었다.
공판이 진행되는 417호 대법정 앞은 시끌벅적했다. 가해기업 측 피고인이 13명이나 되다 보니 피고 측 변호인들을 포함한 사람들만 30명 가까이 되었다. 태평양, 광장, 대륙아주 등 대형로펌들도 보였다. 취재진들과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준비기일 이후 본격적인 첫 번째 재판이기도 한 이날은 피해자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전문가 증인들에 비해 내용이 간단하겠다는 판단에 따라 순서가 조정되었다. 피해자 김아무개(72), 이아무개(58)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형사재판에서의 심문과정은 피고인들의 혐의를 입증해야 하는 검사의 주심문과 가해기업 측 변호인들의 반대심문으로, 그리고 보충하는 방식(재 주심문과 재 반대심문)순으로 진행된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형사사법의 대원칙에 따라 검사에게 엄격한 입증책임을 부여하고, 대등한 반박기회를 줌으로써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지극히 상식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이날 재판의 진행 양상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구체적인 입증에 어려움을 겪는 검찰과 적극적인 공세를 펴는 가해기업 측 변호인들의 공세차원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기업들이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화학제품을 판매했다. 이 때문에 건강을 잃고, 재산과 정신적인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변호인들의 과도하고 집요한 반대심문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재판을 보면서 형사사법의 원칙을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적용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변호인들은 마치 피해자 진술의 빈틈을 찾아내,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우려는 것 같았다.
날세우는 가해기업 측 변호인, 억울한 피해자들
©환경운동연합(2021)
첫 번째 증인으로 나온 김아무개씨는 간암 말기다. 천식을 비롯해 폐렴과 심혈관질환, 고혈압‧당뇨 합병증도 있다고 했다. 우울증에 기억력도 좋지 않았다. 검찰의 답변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논리적이고 깔끔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가해기업들의 형사처벌을 원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도, “형사처벌은 원치 않고… 그렇게까진 원하지 않고 보상을 원한다. 제가 자식들도 있고 간암으로 죽을 날이 얼마 남은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답하는 식이다.
기업측 변호인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신청을 위한 환경노출조사 당시와 검찰에 출석해 진술했던 내용이 맞지 않음을 끊임없이 지적했다. 제품을 구입한 시기가 1999년부터 2000년 경이라는 김씨의 진술을 언급하며 그 당시에는 해당 제품이 출시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씨는 막내아들이 유치원 다닐 시기로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초등학교 1~2학년에 재학중인 시기었다며 단순 기억의 착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 기억해보니 그 시기는 2002년 연말 즈음이라고 정정했다.
총 6병을 구매한 가습기살균제의 실제 사용량에 관한 설명도 깔끔하지 않았다. 환경노출조사와 검찰조사, 그리고 법정에서의 진술이 미묘하게 달랐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대부분 20년 전의 일이라 그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왜 그렇게 묻느냐. 왜 내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느냐는 억울함과 감정이 뭍어나는 표현들이었다.
©환경운동연합(2021)
또한 변호인은 천식의 발병 원인에 대해서도 집 주변의 산업단지가 영향을 끼친 것 아닌지, 2014년 당시 노루페인트 공장 화재로 인한 영향은 없었는지를 물었다. 이러한 질문은 1심 재판부가 내렸던 판단과 연관되어 있었다. 해당 판결문에는 ‘공장 화재현장에서 40~50분간 유독가스를 맡은 적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씨의 오락가락했던 진술들과 비특이성 질환이라는 천식의 특성들은 무죄판결을 내리는 근거로 일정 부분 작용하고 말았다.
“정말 얼토당토않은 거지 내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판결을 이렇게 했나, 이런 거죠.”
그래서 그는 더욱 억울해했다. 자신이 노루페인트 화재 현장에 있던 것이 아니고, 거주하던 아파트가 공장에서 2.5km 이상 떨어져 있어 사고 당시 바람을 타고 윤활류 냄새가 날아와 몸이 안 좋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천식 발병원인에 대한) 변호인의 지적이 맞다면 1500세대 아파트 주민들에게도 심각한 증상들이 나타나야 하지 않느냐고도 반문했다.
“이런 걸 문제 삼을 게 아니란 얘기예요. 노루페인트 냄새 맡은 거… 이런 걸 아픈사람한테 고통받는 사람한테 왜 이런 말을 하냐고 하소연하러 왔습니다. 검사님한테도… 제가 간암말기라 손도 못 대요. 절망 상태 있는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하고 판결문에 적어놓으니까 열불이 나더라고. 정말 너 죽고 나 죽자 따지고 싶어요. 검사님한테 말씀드린 대로… 나 죽는다니까. 8년이나 됐는데… 더 이상 항암제를 쓸 수도 없대요…”
“기억에만 의존하신 거죠?”
©환경운동연합(2021)
두 번째 증인심문 또한 진행 양상은 비슷했다. 가해기업 변호인들은 이아무개씨가 피해구제 신청 당시 받은 환경노출조사 내용과 검찰에 출석했던 당시 진술의 차이를 지적했다. 옥시와 이마트 제품을 지목했지만 애경제품을 기재하지 않은 점에 대해 끊임없이 물었다.
또한 이씨가 2006년부터 가습기를 사용했고 가습기살균제는 2010년 이후 6개월간 이용한 점을 언급하며, 물로만 세척을 하다보니 가습기 내부 곰팡이 등이 천식 발병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게다가 이씨의 20대 시절 폐렴발병과 10여 년 간의 흡연이력과 기관지가 약했다는 아버지의 가족력 등을 문제삼기도 했다. 한 변호인은 이렇게 묻기도 했다.
“소지하던 제품구매 영수증, 사용했던 제품사진, 제품용기도 없고 기억에만 의존하신 거죠?”
말 그대로 무슨 증거가 있냐는 말이었다. 가습기살균제 말고 다른 원인에 대한 추궁의 연속이었다. 온갖 질문들에 시달리던 이씨는 마지막으로 재판부에 호소했다.
“제가 아직 60이 안 됐는데 3층짜리 건물을 쉽게 못 올라가요. 숨이 찹니다. 약 중에 스테로이드제가 있는데 너무 먹다보니까 몸에 계속 무리가 와요. 그 약물을 장기복용하며 뼈도 약해졌고 당뇨도 생겼고요. 약물 부작용 같아요. 그런 것 좀 감안하셔서 살펴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피해자 증인들의 아우성과 가해기업 임직원 13명의 침묵이 미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환경운동연합(2021)
지난 1월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3부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을 받아온 가해기업 관계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원심 재판부는 동물실험 등이 없었음을 비롯해 제품사용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 입증이 부족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결과는 피해자들과 학계 전문가들에게 비판받았다. 과학적 방법론상 연구의 불가피한 한계점을 잘못 이해한 면이 있고, 10여개의 다양한 연구들을 종합해 판단하기보다는 개별 연구의 미비점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다음 재판은 해를 넘긴 2022년 2월 22일 오후 2시, 형사법정 302호에서 계속된다. 전문가 증인에 대한 심문이 예정되어 있다. 재판부가 실체적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지, 피해자들의 한숨이 깊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환경산업기술원이 운영하는 피해구제 포털에 따르면, 9월 30일 기준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신청자는 7576명이고, 이 중 1717명이 사망했다. 정부의 지원대상자는 4318명이다.
※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 캠페인은 노란리본기금의 후원으로 진행됩니다.
본격화 된 SK·애경·이마트 관련 항소심… 피해자 몰아세운 변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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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 증인인데, 근거가 부족하다니요. 억울하지 이게. 배상이 문제가 아니고… 저는 분명 피해를 당했는데, 가해자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요. 판사가 특정 피해자나 가해자 편에 서길 원하지 않아요. 냉정하게 사실 그대로 판단해주길 기대하는 거예요. 누구에게 어떤 책임이 있나를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선 진실이 밝혀지길 원해요.”
1인 시위에 참여한 피해자 김창호(70)씨의 바람이다. 그는 젊은시절 암벽등반도 하고 등산을 즐길 정도로 건강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믿음이 무너지는 건 순간이었다. 간 이식 수술을 받게 된 이후, 가습기와 살균제품을 썼던 게 화근이었다. 습기 때문에 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썼다. 건강에 좋은 걸로만 생각했다. 몸이 아프다보니 지금은 그저 가족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누구도 피해자 마음을 달래지 못했다
지난 2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법원을 찾았다. 이들은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법원삼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같은 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가습기살균제 항소심 재판일정을 맞아, 가해기업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으며 방청에도 참여했다.
이날의 캠페인은 가습기살균제 10주기 비상행동(준)이 주최했다. 2011년 산모들의 원인 모를 죽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이 참사가, 지난 8월 공론화 10주기를 맞이한 바 있다. 하지만 진상규명과 기업의 책임 이행이 더딘 상황에서 시민사회와 피해자들이 힘을 모은 것이다. 10개의 피해자 단체들과 시민사회의 연대체인 가습기살균제참사 전국네트워크가 함께했다.
©환경운동연합(2021)
지난 5월 18일 공판준비기일이 시작되고 다섯 달이 흘렀다. 세 번의 준비기일이 있었다. 공판준비 절차는 본격적인 재판 시작 전에 사건의 쟁점들과 절차를 정리하는 단계이다. 하지만 과정이 매끄럽지는 않았다. 검찰은 입증의 어려움을 겪었고, 재판부를 효과적으로 설득하지 못했다. 가해 기업 측 변호인들은 오히려 공세적이었다. 누구도 피해자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 없었다.
공판이 진행되는 417호 대법정 앞은 시끌벅적했다. 가해기업 측 피고인이 13명이나 되다 보니 피고 측 변호인들을 포함한 사람들만 30명 가까이 되었다. 태평양, 광장, 대륙아주 등 대형로펌들도 보였다. 취재진들과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준비기일 이후 본격적인 첫 번째 재판이기도 한 이날은 피해자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전문가 증인들에 비해 내용이 간단하겠다는 판단에 따라 순서가 조정되었다. 피해자 김아무개(72), 이아무개(58)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형사재판에서의 심문과정은 피고인들의 혐의를 입증해야 하는 검사의 주심문과 가해기업 측 변호인들의 반대심문으로, 그리고 보충하는 방식(재 주심문과 재 반대심문)순으로 진행된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형사사법의 대원칙에 따라 검사에게 엄격한 입증책임을 부여하고, 대등한 반박기회를 줌으로써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지극히 상식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이날 재판의 진행 양상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구체적인 입증에 어려움을 겪는 검찰과 적극적인 공세를 펴는 가해기업 측 변호인들의 공세차원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기업들이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화학제품을 판매했다. 이 때문에 건강을 잃고, 재산과 정신적인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변호인들의 과도하고 집요한 반대심문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재판을 보면서 형사사법의 원칙을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적용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변호인들은 마치 피해자 진술의 빈틈을 찾아내,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우려는 것 같았다.
날세우는 가해기업 측 변호인, 억울한 피해자들
©환경운동연합(2021)
첫 번째 증인으로 나온 김아무개씨는 간암 말기다. 천식을 비롯해 폐렴과 심혈관질환, 고혈압‧당뇨 합병증도 있다고 했다. 우울증에 기억력도 좋지 않았다. 검찰의 답변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논리적이고 깔끔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가해기업들의 형사처벌을 원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도, “형사처벌은 원치 않고… 그렇게까진 원하지 않고 보상을 원한다. 제가 자식들도 있고 간암으로 죽을 날이 얼마 남은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답하는 식이다.
기업측 변호인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신청을 위한 환경노출조사 당시와 검찰에 출석해 진술했던 내용이 맞지 않음을 끊임없이 지적했다. 제품을 구입한 시기가 1999년부터 2000년 경이라는 김씨의 진술을 언급하며 그 당시에는 해당 제품이 출시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씨는 막내아들이 유치원 다닐 시기로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초등학교 1~2학년에 재학중인 시기었다며 단순 기억의 착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 기억해보니 그 시기는 2002년 연말 즈음이라고 정정했다.
총 6병을 구매한 가습기살균제의 실제 사용량에 관한 설명도 깔끔하지 않았다. 환경노출조사와 검찰조사, 그리고 법정에서의 진술이 미묘하게 달랐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대부분 20년 전의 일이라 그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왜 그렇게 묻느냐. 왜 내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느냐는 억울함과 감정이 뭍어나는 표현들이었다.
©환경운동연합(2021)
또한 변호인은 천식의 발병 원인에 대해서도 집 주변의 산업단지가 영향을 끼친 것 아닌지, 2014년 당시 노루페인트 공장 화재로 인한 영향은 없었는지를 물었다. 이러한 질문은 1심 재판부가 내렸던 판단과 연관되어 있었다. 해당 판결문에는 ‘공장 화재현장에서 40~50분간 유독가스를 맡은 적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씨의 오락가락했던 진술들과 비특이성 질환이라는 천식의 특성들은 무죄판결을 내리는 근거로 일정 부분 작용하고 말았다.
“정말 얼토당토않은 거지 내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판결을 이렇게 했나, 이런 거죠.”
그래서 그는 더욱 억울해했다. 자신이 노루페인트 화재 현장에 있던 것이 아니고, 거주하던 아파트가 공장에서 2.5km 이상 떨어져 있어 사고 당시 바람을 타고 윤활류 냄새가 날아와 몸이 안 좋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천식 발병원인에 대한) 변호인의 지적이 맞다면 1500세대 아파트 주민들에게도 심각한 증상들이 나타나야 하지 않느냐고도 반문했다.
“이런 걸 문제 삼을 게 아니란 얘기예요. 노루페인트 냄새 맡은 거… 이런 걸 아픈사람한테 고통받는 사람한테 왜 이런 말을 하냐고 하소연하러 왔습니다. 검사님한테도… 제가 간암말기라 손도 못 대요. 절망 상태 있는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하고 판결문에 적어놓으니까 열불이 나더라고. 정말 너 죽고 나 죽자 따지고 싶어요. 검사님한테 말씀드린 대로… 나 죽는다니까. 8년이나 됐는데… 더 이상 항암제를 쓸 수도 없대요…”
“기억에만 의존하신 거죠?”
©환경운동연합(2021)
두 번째 증인심문 또한 진행 양상은 비슷했다. 가해기업 변호인들은 이아무개씨가 피해구제 신청 당시 받은 환경노출조사 내용과 검찰에 출석했던 당시 진술의 차이를 지적했다. 옥시와 이마트 제품을 지목했지만 애경제품을 기재하지 않은 점에 대해 끊임없이 물었다.
또한 이씨가 2006년부터 가습기를 사용했고 가습기살균제는 2010년 이후 6개월간 이용한 점을 언급하며, 물로만 세척을 하다보니 가습기 내부 곰팡이 등이 천식 발병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게다가 이씨의 20대 시절 폐렴발병과 10여 년 간의 흡연이력과 기관지가 약했다는 아버지의 가족력 등을 문제삼기도 했다. 한 변호인은 이렇게 묻기도 했다.
“소지하던 제품구매 영수증, 사용했던 제품사진, 제품용기도 없고 기억에만 의존하신 거죠?”
말 그대로 무슨 증거가 있냐는 말이었다. 가습기살균제 말고 다른 원인에 대한 추궁의 연속이었다. 온갖 질문들에 시달리던 이씨는 마지막으로 재판부에 호소했다.
“제가 아직 60이 안 됐는데 3층짜리 건물을 쉽게 못 올라가요. 숨이 찹니다. 약 중에 스테로이드제가 있는데 너무 먹다보니까 몸에 계속 무리가 와요. 그 약물을 장기복용하며 뼈도 약해졌고 당뇨도 생겼고요. 약물 부작용 같아요. 그런 것 좀 감안하셔서 살펴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피해자 증인들의 아우성과 가해기업 임직원 13명의 침묵이 미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환경운동연합(2021)
지난 1월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3부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을 받아온 가해기업 관계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원심 재판부는 동물실험 등이 없었음을 비롯해 제품사용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 입증이 부족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결과는 피해자들과 학계 전문가들에게 비판받았다. 과학적 방법론상 연구의 불가피한 한계점을 잘못 이해한 면이 있고, 10여개의 다양한 연구들을 종합해 판단하기보다는 개별 연구의 미비점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다음 재판은 해를 넘긴 2022년 2월 22일 오후 2시, 형사법정 302호에서 계속된다. 전문가 증인에 대한 심문이 예정되어 있다. 재판부가 실체적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지, 피해자들의 한숨이 깊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환경산업기술원이 운영하는 피해구제 포털에 따르면, 9월 30일 기준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신청자는 7576명이고, 이 중 1717명이 사망했다. 정부의 지원대상자는 4318명이다.
※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 캠페인은 노란리본기금의 후원으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