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정폐기물 매립장에 맞선 천안 동면 주민들의 3년
"처음엔 이 자리(산업폐기물 처리시설 부지)에 하수 슬러지 매립장이 들어온다고 해서 저희가 막아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땅을 이미 사 놓은 상태였고, 오히려 더 큰 지정폐기물 매립장으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3년을 끌어온 싸움의 시작을 묻자, 이성용씨는 잠시 말을 골랐다.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의 경계, 인구가 적은 면이라는 입지조건을 마치 절묘하게 알아보고 찾아온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업자들이 정말 절묘한 자리를 찾은 거죠."
천안에코파크(주)가 동면 수남리 일원에 추진 중인 이 처리시설은 부지는 약 38만6,000㎡, 매립용량은 약 669만㎥ 규모이다. 이는 기존 천안 5산단 지정폐기물 매립장(2만5,800㎡)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규모로, 사업 초기 알려진 것보다도 규모가 확대되어 왔다.
매립장 전체 부지(38만6,000㎡)는 서울 여의도공원(약 23만㎡) 두 개에 조금 못 미치는 크기이고, 그중 실제로 폐기물을 매립하는 면적(20만4,923㎡)만 따로 보면 여의도공원과 엇비슷하다. 천안야구장(면적 11만8,450㎡) 세 개를 합친 것보다 넓다. 총 669만㎥의 폐기물을 매립한다고 계산했을때 평균 약 32m, 11층 아파트 높이의 폐기물이 쌓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늦은 장대비가 내리던 지난 31일 월요일 천안시 동면 주민들은 분주한 아침을 열었다. 주민 100여 명은 버스를 대절해 시청으로 향했다. 11시에 열리는 본회의 때문이었다. 이날 천안시 의회는 수남리 지정폐기물 매립장 설치 반대 결의안을 채택할 예정이었다.
3년 가까이 이어진 싸움에 의미 있는 이정표 하나가 세워지는 날이었다. 이 사안이 불거진 초기부터 역할을 해온 이성용(75) 전 이장단협의회장은 덤덤하게 본회의장을 찾았다고 했다. "머리띠나 피켓은 들지 말자"고 미리 주민들에게 당부해 뒀다. 시의회 결의안 채택이라는 정치권의 응답을 받는 자리인 만큼, 자극적인 모습보다는 차분하게 지켜보자는 판단이었다.
본회의장 앞에서 마주한 낯선 풍경

그런데 정작 본회의장에 도착한 주민들이 마주한 건 예상 밖의 장면이었다. 매립장 유치에 찬성하는 일부 주민들이 회의장 주변에 피켓을 진열해 놓았고, 카메라가 그 모습을 담고 있었다. 머리띠도 피켓도 없이 조용히 올라간 반대 측 주민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머리띠나 피켓은 놓고 갔는데, 정작 찬성하는 일부 주민들이 그걸 세워두었더군요"
이성용 회장은 씁쓸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날 본회의에서 결의안의 처리는 연기되었다. 결의안의 일부 내용(황새 서식지와 매립장 부지 간 거리 표현 등)에 대한 검토가 덜 이뤄졌다는 것이었다. 의원들의 합의에 따라 처리는 나흘 뒤인 9월 4일 금요일로 미뤄졌다.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올라온 주민들에게는 아쉬운 소식이었다. 천안동면 주민들은 왜 3년이 넘게 이 사안을 다투게 되었을까.
기자회견을 마무리하고 오후가 되어서야 주민대책위 관계자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벌써 3년이 넘게 이 문제와 마주하고 있는 이성용(75) 회장과 최병구(87) 공동위원장과 이종현(65)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km 내 90% 찬성" 이라는 숫자
가장 먼저 나온 이야기는 "2km 이내 주민 90% 찬성"이라는 숫자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매립장 사업에 찬성하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천안시 수남리 매립장 유치위원회 측에서 내놓은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이종현 사무국장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2km라는 기준 자체에 법적 근거가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서 "지정폐기물에는 반경 협약 규정 자체가 없고, 생활폐기물 기준을 가져다 쓰는데 정작 이 사업의 공식 환경영향평가 반경은 5km"라고도 설명했다. 동면 전체는 물론 병천 일부, 진천 문백, 오창까지 포함되는 범위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단편적인 보도 행태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2km, 90%라는 숫자만 계속 기사화되고 있어요. 그거 하나 직접 취재해서 확인한 언론은 거의 없을 텐데 말이죠."
그렇다면 반경 2km 라는 기준은 어디서 나온걸까?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제17조 및 시행령 제20조가 규정한 '간접영향권' 기준으로 보인다. 이는 주민지원기금 등 보상·지원 대상 범위를 정하기 위한 참고치에 가깝고, 사업 승인이나 주민 동의의 법적 요건은 아니다. 해당 조문 어디에도 주민 동의 비율로 인허가 여부를 정한다는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동면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해당 규정은 주민들이 사업에 관한 숙의과정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해당 시설에서 2km 이내 범위" 라는 문제해결과는 거리가 있는 지엽적일 수 있는 "자격요건" 논쟁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러한 양상에서 표출하는 주민 간 갈등에 집중하기 쉽고, 당국은 이를 책임회피를 위한 알리바이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원인을 타고 올라가면 불충분한 정보와 부실한 절차로 갈등을 키운 사업 추진 방식에 있었던 게 아닐까 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돈 못지않게 무서운 공동체의 소외
인허가를 받아두면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산업의 특성 상, 이러한 유치전에서 돈 이야기가 안 나올수 없었다. 최병구 위원장은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처음에는 우리 마을도 한 가구만 빼고 다 반대했어요. 그러다 유치 찬성 서명을 받으러 다닌다길래 저도 반대 서명을 받으러 다녔었죠. 그때는 네 가구만 빼고 반대에 동의했어요. 그런데 그다음부터 최종 인허가 나면 4천만 원을 주고, 지금 서명하면 100만원을 준다는 얘기가 돌더니 찬성여론이 조금 늘더라고요. 지금도 우리 동네에서만 열두 가구가 반대하는데, 어떻게 90%라는 숫자가 나오겠어요."
이렇게 찬성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직접 거주하는) 고령의 주민들 뿐 아니라, 타지의 자녀에게까지 연락이 갔다"는 전언도 있었다.
"심지어 우리 형수가 서명을 안 하니까 조카딸한테까지 전화가 가더라고요." 최병구씨는 옆 마을의 사례도 비슷했다고 말했다. "수남2리 얘기를 들어보니, '오늘 저녁에 오시라, 서명하고 돈 받아 가시라'는 식으로 권유했다고 하더라고요."
어쩌면 돈 못지않게 무서운 건 공동체의 소외였다. 이종현 사무국장은 폐단을 이렇게 설명했다.
"동의하지 않는 주민은 마을 공동체 활동에서 자연스레 빠지게 돼요. 마을에서 사업자 쪽 지원으로 나들이를 갈 때 반대하는 사람은 빠지게 되는 거죠. 그게 불편해서 일단 서명하고 보는 경우도 종종 있죠.".
지역주민에게 공개되지 않는 본안
지난 3년의 과정동안 이종현 사무국장이 가장 답답했던 대목은 유치협약서에 담긴 확실한 내용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업자 측은 유해 폐기물 반입을 제한하는 내용이 협약서에 담겨 있다고 주장만 하지, 어느 누구에게도 그걸 공개한 적이 없어요. 환경영향평가 본안 협의 절차 자체가 비공개다 보니 실제로 뭐가 들어가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사업자가 떳떳하다면 지난 기자회견 자리에서 원본을 공개했어야죠."
현행 환경영향평가법 제66조는 평가서를 공개할 수 있도록 원칙을 두었지만 2항에서 예외사유를 두고 있다. 영업비밀 및 사업추진에 현저한 지장을 줄 수 있는 경우 등이다. 정작 주민들은 본안평가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폐기물 처리시설 인허가를 받기위한 관문인 환경영향평가는 크게 초안과 본안 평가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단추인 초안은 사업의 밑그림을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예고편이다. 법적 의무에 따라 주민설명회가 열려 누구나 내용을 확인하고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본편에 해당하는 본안 절차는 해당 시설의 핵심 설계도를 다룬다. 영화에 비유하면 시사회장에서 예고편은 화려하게 공개해 기대평점만 받아놓고, 정작 본편 상영 직전에 관객을 내보내는 구조가 되어버린 셈이다.

주민을 외면해온 답답했던 행정의 기억
"이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왔을때 천안시장이 대행체제였거든요. 그 당시 면장을 하던 분은 '나는 중립'이라고 하고, 담당 부서도 '공무원이라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중립이라는 말이 참 야속했어요."
이성용씨는 행정의 침묵과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서도 회고했다. "우리 입장에 동의해달라는게 아니었어요. 맡은 자리에서 의견을 낼 책임이 있는 건데, 그것마저 안 하니까 저희가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시장이 바뀌면서는 태도가 확실히 달라지더라고요."
인허가의 실질적 열쇠를 쥔 금강유역환경청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았다. 그는 "사실 보전산지 문제 하나만으로도 반려감 아니에요? 그런데 찬반이 있으니 검토해봐야 한다는 태도만 반복하고 있다"며, 유역청의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님비라는 말에 대하여
주민들의 유치반대 활동에는 '님비'라는 단어가 종종 따라오곤 한다. 산업폐기물 처리시설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프레임에 대해 이종현 사무국장은 이렇게 되물었다.
"천안시는 산업단지가 생길 때마다 폐기물처리시설을 단지내에 의무적으로 조성해왔어요. 이 정책대로면 앞으로 30년은 천안시 자체 폐기물 처리에 문제가 없다는게 시의 입장이기도 하죠. 그런데 정작 사업자는 처리시설이 부족하다며 인허가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뭘까요. 사실상 다른 지역의 폐기물을 끌어오려는게 아닌가요?."
이성용 위원장도 말을 보탰다. "좋은 시설이면 서로 유치하려 하겠죠. 다들 기피하는 시설을 우리만 감수하라는 것 자체가 사실 이상한 일 아닙니까. 왜 우리 마을에서 그런 걱정까지 해줘야 할까요?"
인터뷰를 마칠 무렵, 세 사람의 표정에는 피로와 기대가 함께 묻어 있었다. 그렇게 이들의 발걸음은 시의회로, 그리고 다시 금강유역청으로 향하고 있었다.
[인터뷰] 지정폐기물 매립장에 맞선 천안 동면 주민들의 3년
"처음엔 이 자리(산업폐기물 처리시설 부지)에 하수 슬러지 매립장이 들어온다고 해서 저희가 막아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땅을 이미 사 놓은 상태였고, 오히려 더 큰 지정폐기물 매립장으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3년을 끌어온 싸움의 시작을 묻자, 이성용씨는 잠시 말을 골랐다.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의 경계, 인구가 적은 면이라는 입지조건을 마치 절묘하게 알아보고 찾아온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업자들이 정말 절묘한 자리를 찾은 거죠."
천안에코파크(주)가 동면 수남리 일원에 추진 중인 이 처리시설은 부지는 약 38만6,000㎡, 매립용량은 약 669만㎥ 규모이다. 이는 기존 천안 5산단 지정폐기물 매립장(2만5,800㎡)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규모로, 사업 초기 알려진 것보다도 규모가 확대되어 왔다.
매립장 전체 부지(38만6,000㎡)는 서울 여의도공원(약 23만㎡) 두 개에 조금 못 미치는 크기이고, 그중 실제로 폐기물을 매립하는 면적(20만4,923㎡)만 따로 보면 여의도공원과 엇비슷하다. 천안야구장(면적 11만8,450㎡) 세 개를 합친 것보다 넓다. 총 669만㎥의 폐기물을 매립한다고 계산했을때 평균 약 32m, 11층 아파트 높이의 폐기물이 쌓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늦은 장대비가 내리던 지난 31일 월요일 천안시 동면 주민들은 분주한 아침을 열었다. 주민 100여 명은 버스를 대절해 시청으로 향했다. 11시에 열리는 본회의 때문이었다. 이날 천안시 의회는 수남리 지정폐기물 매립장 설치 반대 결의안을 채택할 예정이었다.
3년 가까이 이어진 싸움에 의미 있는 이정표 하나가 세워지는 날이었다. 이 사안이 불거진 초기부터 역할을 해온 이성용(75) 전 이장단협의회장은 덤덤하게 본회의장을 찾았다고 했다. "머리띠나 피켓은 들지 말자"고 미리 주민들에게 당부해 뒀다. 시의회 결의안 채택이라는 정치권의 응답을 받는 자리인 만큼, 자극적인 모습보다는 차분하게 지켜보자는 판단이었다.
본회의장 앞에서 마주한 낯선 풍경
그런데 정작 본회의장에 도착한 주민들이 마주한 건 예상 밖의 장면이었다. 매립장 유치에 찬성하는 일부 주민들이 회의장 주변에 피켓을 진열해 놓았고, 카메라가 그 모습을 담고 있었다. 머리띠도 피켓도 없이 조용히 올라간 반대 측 주민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머리띠나 피켓은 놓고 갔는데, 정작 찬성하는 일부 주민들이 그걸 세워두었더군요"
이성용 회장은 씁쓸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날 본회의에서 결의안의 처리는 연기되었다. 결의안의 일부 내용(황새 서식지와 매립장 부지 간 거리 표현 등)에 대한 검토가 덜 이뤄졌다는 것이었다. 의원들의 합의에 따라 처리는 나흘 뒤인 9월 4일 금요일로 미뤄졌다.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올라온 주민들에게는 아쉬운 소식이었다. 천안동면 주민들은 왜 3년이 넘게 이 사안을 다투게 되었을까.
기자회견을 마무리하고 오후가 되어서야 주민대책위 관계자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벌써 3년이 넘게 이 문제와 마주하고 있는 이성용(75) 회장과 최병구(87) 공동위원장과 이종현(65)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km 내 90% 찬성" 이라는 숫자
가장 먼저 나온 이야기는 "2km 이내 주민 90% 찬성"이라는 숫자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매립장 사업에 찬성하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천안시 수남리 매립장 유치위원회 측에서 내놓은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이종현 사무국장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2km라는 기준 자체에 법적 근거가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서 "지정폐기물에는 반경 협약 규정 자체가 없고, 생활폐기물 기준을 가져다 쓰는데 정작 이 사업의 공식 환경영향평가 반경은 5km"라고도 설명했다. 동면 전체는 물론 병천 일부, 진천 문백, 오창까지 포함되는 범위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단편적인 보도 행태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2km, 90%라는 숫자만 계속 기사화되고 있어요. 그거 하나 직접 취재해서 확인한 언론은 거의 없을 텐데 말이죠."
그렇다면 반경 2km 라는 기준은 어디서 나온걸까?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제17조 및 시행령 제20조가 규정한 '간접영향권' 기준으로 보인다. 이는 주민지원기금 등 보상·지원 대상 범위를 정하기 위한 참고치에 가깝고, 사업 승인이나 주민 동의의 법적 요건은 아니다. 해당 조문 어디에도 주민 동의 비율로 인허가 여부를 정한다는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동면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해당 규정은 주민들이 사업에 관한 숙의과정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해당 시설에서 2km 이내 범위" 라는 문제해결과는 거리가 있는 지엽적일 수 있는 "자격요건" 논쟁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러한 양상에서 표출하는 주민 간 갈등에 집중하기 쉽고, 당국은 이를 책임회피를 위한 알리바이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원인을 타고 올라가면 불충분한 정보와 부실한 절차로 갈등을 키운 사업 추진 방식에 있었던 게 아닐까 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돈 못지않게 무서운 공동체의 소외
인허가를 받아두면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산업의 특성 상, 이러한 유치전에서 돈 이야기가 안 나올수 없었다. 최병구 위원장은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처음에는 우리 마을도 한 가구만 빼고 다 반대했어요. 그러다 유치 찬성 서명을 받으러 다닌다길래 저도 반대 서명을 받으러 다녔었죠. 그때는 네 가구만 빼고 반대에 동의했어요. 그런데 그다음부터 최종 인허가 나면 4천만 원을 주고, 지금 서명하면 100만원을 준다는 얘기가 돌더니 찬성여론이 조금 늘더라고요. 지금도 우리 동네에서만 열두 가구가 반대하는데, 어떻게 90%라는 숫자가 나오겠어요."
이렇게 찬성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직접 거주하는) 고령의 주민들 뿐 아니라, 타지의 자녀에게까지 연락이 갔다"는 전언도 있었다.
"심지어 우리 형수가 서명을 안 하니까 조카딸한테까지 전화가 가더라고요." 최병구씨는 옆 마을의 사례도 비슷했다고 말했다. "수남2리 얘기를 들어보니, '오늘 저녁에 오시라, 서명하고 돈 받아 가시라'는 식으로 권유했다고 하더라고요."
어쩌면 돈 못지않게 무서운 건 공동체의 소외였다. 이종현 사무국장은 폐단을 이렇게 설명했다.
"동의하지 않는 주민은 마을 공동체 활동에서 자연스레 빠지게 돼요. 마을에서 사업자 쪽 지원으로 나들이를 갈 때 반대하는 사람은 빠지게 되는 거죠. 그게 불편해서 일단 서명하고 보는 경우도 종종 있죠.".
지역주민에게 공개되지 않는 본안
지난 3년의 과정동안 이종현 사무국장이 가장 답답했던 대목은 유치협약서에 담긴 확실한 내용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업자 측은 유해 폐기물 반입을 제한하는 내용이 협약서에 담겨 있다고 주장만 하지, 어느 누구에게도 그걸 공개한 적이 없어요. 환경영향평가 본안 협의 절차 자체가 비공개다 보니 실제로 뭐가 들어가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사업자가 떳떳하다면 지난 기자회견 자리에서 원본을 공개했어야죠."
현행 환경영향평가법 제66조는 평가서를 공개할 수 있도록 원칙을 두었지만 2항에서 예외사유를 두고 있다. 영업비밀 및 사업추진에 현저한 지장을 줄 수 있는 경우 등이다. 정작 주민들은 본안평가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폐기물 처리시설 인허가를 받기위한 관문인 환경영향평가는 크게 초안과 본안 평가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단추인 초안은 사업의 밑그림을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예고편이다. 법적 의무에 따라 주민설명회가 열려 누구나 내용을 확인하고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본편에 해당하는 본안 절차는 해당 시설의 핵심 설계도를 다룬다. 영화에 비유하면 시사회장에서 예고편은 화려하게 공개해 기대평점만 받아놓고, 정작 본편 상영 직전에 관객을 내보내는 구조가 되어버린 셈이다.
주민을 외면해온 답답했던 행정의 기억
"이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왔을때 천안시장이 대행체제였거든요. 그 당시 면장을 하던 분은 '나는 중립'이라고 하고, 담당 부서도 '공무원이라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중립이라는 말이 참 야속했어요."
이성용씨는 행정의 침묵과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서도 회고했다. "우리 입장에 동의해달라는게 아니었어요. 맡은 자리에서 의견을 낼 책임이 있는 건데, 그것마저 안 하니까 저희가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시장이 바뀌면서는 태도가 확실히 달라지더라고요."
인허가의 실질적 열쇠를 쥔 금강유역환경청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았다. 그는 "사실 보전산지 문제 하나만으로도 반려감 아니에요? 그런데 찬반이 있으니 검토해봐야 한다는 태도만 반복하고 있다"며, 유역청의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님비라는 말에 대하여
주민들의 유치반대 활동에는 '님비'라는 단어가 종종 따라오곤 한다. 산업폐기물 처리시설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프레임에 대해 이종현 사무국장은 이렇게 되물었다.
"천안시는 산업단지가 생길 때마다 폐기물처리시설을 단지내에 의무적으로 조성해왔어요. 이 정책대로면 앞으로 30년은 천안시 자체 폐기물 처리에 문제가 없다는게 시의 입장이기도 하죠. 그런데 정작 사업자는 처리시설이 부족하다며 인허가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뭘까요. 사실상 다른 지역의 폐기물을 끌어오려는게 아닌가요?."
이성용 위원장도 말을 보탰다. "좋은 시설이면 서로 유치하려 하겠죠. 다들 기피하는 시설을 우리만 감수하라는 것 자체가 사실 이상한 일 아닙니까. 왜 우리 마을에서 그런 걱정까지 해줘야 할까요?"
인터뷰를 마칠 무렵, 세 사람의 표정에는 피로와 기대가 함께 묻어 있었다. 그렇게 이들의 발걸음은 시의회로, 그리고 다시 금강유역청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