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토론회, “과학은 진보했는데 법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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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재판에서 법적인 인과관계가 언제나 자연과학적으로 100% 명백하게 증명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법원이 요구하는 일반원칙(‘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이 과학적 불확실성 뒤에 숨은 가해 기업들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11일 국회에서 사회적 참사인 가습기살균제의 피해 해결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서왕진 국회의원과 6개의 환경전문학회가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사법부를 향한 학자들의 쓴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 2024년 12월 대법원이 CMIT/MIT성분의 가습기 살균제 형사사건을 파기환송하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앞서 2024년 1월 서울고등법원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 등 임직원들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종원 교수(부경대 법학과)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으로 ‘과학적 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언급했다.
“지금 밝혀진 과학적 진실, 왜 재판에는 반영 안 하나”
핵심은 ‘재판 시점의 과학’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위법 여부는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더라도, 인과관계 판단은 ‘사건 전후의 모든 사정’을 종합해야 한다”며 “즉, 재판 시점에 이용 가능한 ‘최신의 과학 지식’을 기준으로 인과관계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가습기살균제 판매 당시에는 몰랐던 사실이라도, 현재 과학이 유해성을 입증했다면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다. 박 교수는 “과거에 몰랐다고 해서 인과관계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과학의 한계로 밝혀지지 않았던 것일 뿐”이라며 “뒤늦게 드러난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라고 꼬집었다.
특히 CMIT/MIT 성분 제조사들에 대한 무죄 논란과 관련해 박 교수는 “대법원이 제조사 간의 ‘공동정범(공모)’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더라도, 각 기업을 ‘단독정범’으로 처벌할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등법원에서도 단독 사용자에 대한 인과관계는 인정했다”며 파기환송심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져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사람 죽고 나서 원인 밝혀지는데… 공소시효, ‘과학적 규명’ 시점부터 시작해야”
박 교수는 이날 가장 현실적이고 시급한 대안으로 ‘공소시효’을 언급했다. 현행법상 과실치사 공소시효는 사망 시점이나 행위 종료 시점부터 계산되는데, 가습기살균제처럼 잠복기가 길고 원인 규명에 수십 년이 걸리는 환경 범죄에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미성년자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가 성인이 된 시점부터 시작되듯, 환경 범죄도 특례가 필요하다”며 “범죄 행위 종료 시점이 아니라, ‘과학적 상관성이 인정된 시점’ 혹은 ‘수사기관이 이를 인지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 공소시효를 기산해야 한다”고 강력히 제안했다.
이는 기업들이 “시간이 너무 흘렀다”며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공소시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법리적 해법으로 주목받았다.
“PHMG 발암성·CMIT 독성에 대한 공감대 확인”
기조 발제를 맡은 정해관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지난 14년의 연구 끝에 천식, 폐렴, 간질성 폐질환 등 8개 질환과 가습기살균제의 인과관계가 역학적으로 규명됐다”고 밝혔다. 특히 정 교수는 “PHMG는 향후 4~5년 내 국제암연구소(IARC) 1급 발암물질 등재가 확실시되는, 21세기 최악의 독성 물질”이라며 법원이 판단해야 할 ‘최신의 과학적 근거’가 충분함을 시사했다.
이어서 정경숙 연세대 교수는(역학) 역시 “CMIT/MIT 단독 사용자 380명을 분석한 결과, 간질성 폐질환 위험도가 일반인보다 3~10배 높았다”며 박종원 교수가 주장한 ‘단독정범 인과관계’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했다. 정 교수는 “직업병 인정 기준인 1.5배를 훨씬 넘는 수치로, 소수 사용자라는 이유로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종현 박사(EH R&C 대표)는 "과거의 제도가 가습기살균제라는 새로운 형태의 위험을 걸러내지 못했다"며, 현재에도 물질 중심의 관리 외에 여러 물질이 혼합된 '제품' 단위의 안전 관리는 미흡함을 강조했다. 또한 "시장에 출시할 경우 실제 사용자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남용하거나 여러 제품을 동시에 사용"하므로, "실제 환경을 고려한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내 몸이 증거다”… 법의 지체 속에 죽어가는 피해자들
CMIT/MIT 피해자 손수현 씨는 “가습기메이트를 딱 한 통 썼을 뿐인데 아이는 호흡기 질환과 틱 장애 등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마와 싸우고 있다”며 “성장기에 나타나는 새로운 질병들이 이 참사 때문인지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최경호 한국환경보건학회장은 “1994년 제품 시판 후 30년이 지났지만, 이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며 “학계가 끝까지 감시하고 기록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지금 눈앞에 놓인 ‘과학적 진실’과 ‘피해자의 고통’을 직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회 토론회, “과학은 진보했는데 법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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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재판에서 법적인 인과관계가 언제나 자연과학적으로 100% 명백하게 증명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법원이 요구하는 일반원칙(‘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이 과학적 불확실성 뒤에 숨은 가해 기업들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11일 국회에서 사회적 참사인 가습기살균제의 피해 해결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서왕진 국회의원과 6개의 환경전문학회가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사법부를 향한 학자들의 쓴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 2024년 12월 대법원이 CMIT/MIT성분의 가습기 살균제 형사사건을 파기환송하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앞서 2024년 1월 서울고등법원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 등 임직원들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종원 교수(부경대 법학과)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으로 ‘과학적 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언급했다.
“지금 밝혀진 과학적 진실, 왜 재판에는 반영 안 하나”
핵심은 ‘재판 시점의 과학’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위법 여부는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더라도, 인과관계 판단은 ‘사건 전후의 모든 사정’을 종합해야 한다”며 “즉, 재판 시점에 이용 가능한 ‘최신의 과학 지식’을 기준으로 인과관계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가습기살균제 판매 당시에는 몰랐던 사실이라도, 현재 과학이 유해성을 입증했다면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다. 박 교수는 “과거에 몰랐다고 해서 인과관계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과학의 한계로 밝혀지지 않았던 것일 뿐”이라며 “뒤늦게 드러난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라고 꼬집었다.
특히 CMIT/MIT 성분 제조사들에 대한 무죄 논란과 관련해 박 교수는 “대법원이 제조사 간의 ‘공동정범(공모)’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더라도, 각 기업을 ‘단독정범’으로 처벌할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등법원에서도 단독 사용자에 대한 인과관계는 인정했다”며 파기환송심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져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사람 죽고 나서 원인 밝혀지는데… 공소시효, ‘과학적 규명’ 시점부터 시작해야”
박 교수는 이날 가장 현실적이고 시급한 대안으로 ‘공소시효’을 언급했다. 현행법상 과실치사 공소시효는 사망 시점이나 행위 종료 시점부터 계산되는데, 가습기살균제처럼 잠복기가 길고 원인 규명에 수십 년이 걸리는 환경 범죄에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미성년자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가 성인이 된 시점부터 시작되듯, 환경 범죄도 특례가 필요하다”며 “범죄 행위 종료 시점이 아니라, ‘과학적 상관성이 인정된 시점’ 혹은 ‘수사기관이 이를 인지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 공소시효를 기산해야 한다”고 강력히 제안했다.
이는 기업들이 “시간이 너무 흘렀다”며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공소시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법리적 해법으로 주목받았다.
“PHMG 발암성·CMIT 독성에 대한 공감대 확인”
기조 발제를 맡은 정해관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지난 14년의 연구 끝에 천식, 폐렴, 간질성 폐질환 등 8개 질환과 가습기살균제의 인과관계가 역학적으로 규명됐다”고 밝혔다. 특히 정 교수는 “PHMG는 향후 4~5년 내 국제암연구소(IARC) 1급 발암물질 등재가 확실시되는, 21세기 최악의 독성 물질”이라며 법원이 판단해야 할 ‘최신의 과학적 근거’가 충분함을 시사했다.
이어서 정경숙 연세대 교수는(역학) 역시 “CMIT/MIT 단독 사용자 380명을 분석한 결과, 간질성 폐질환 위험도가 일반인보다 3~10배 높았다”며 박종원 교수가 주장한 ‘단독정범 인과관계’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했다. 정 교수는 “직업병 인정 기준인 1.5배를 훨씬 넘는 수치로, 소수 사용자라는 이유로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종현 박사(EH R&C 대표)는 "과거의 제도가 가습기살균제라는 새로운 형태의 위험을 걸러내지 못했다"며, 현재에도 물질 중심의 관리 외에 여러 물질이 혼합된 '제품' 단위의 안전 관리는 미흡함을 강조했다. 또한 "시장에 출시할 경우 실제 사용자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남용하거나 여러 제품을 동시에 사용"하므로, "실제 환경을 고려한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내 몸이 증거다”… 법의 지체 속에 죽어가는 피해자들
CMIT/MIT 피해자 손수현 씨는 “가습기메이트를 딱 한 통 썼을 뿐인데 아이는 호흡기 질환과 틱 장애 등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마와 싸우고 있다”며 “성장기에 나타나는 새로운 질병들이 이 참사 때문인지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최경호 한국환경보건학회장은 “1994년 제품 시판 후 30년이 지났지만, 이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며 “학계가 끝까지 감시하고 기록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지금 눈앞에 놓인 ‘과학적 진실’과 ‘피해자의 고통’을 직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