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보전 활동소식

제주 여행기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제주….
여행을 다녀 온 지도 오래 됐고 바다를 건넌다는 흥분감(?)에 많은 기대를 하고 제주공항에 도착하였다.
제주의 첫 이미지는 흐린 회색 빛이었다. TV에서 보았던 공항의 열대식물들보다 회색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제주의 첫인상이 되어 버렸고 그로 인해 여행에 대한 걱정의 마음을 안고 숙소를 찾아갔다.

제주에 대한 공부를 하거나 준비해둔 것이 없어 불안한 마음에 친구들과 패키지 여행을 선택하게되었다.
솔직히 패키지 여행을 선택한 것에서부터 여행에 대한 준비가 소홀했다는 죄책감(?)이 들었고,
이 여행을 통해 얻어갈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여행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내가 환경운동연합에서 일한 지 1년이 지난 현재, 나의 관점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여행 중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얻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새로운 환경의
작은 일상에서도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속에 생태적
감수성이 남아 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안겨준 소중한 여행이었다.
우리의 숙소는 제주시에서 차로 30분 정도 들어가야 하는 애월읍이라는 곳이다. 동네 길가에서는
마을 사람들을 찾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고, 바다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곳이었는데
이 곳에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어린아이 같은 장난기가 발동해 우리는 사회적 신분(?)울
잊은 채 유치한 장난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제주바람에 지쳤을 즈음 우리는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로 들어가서 친구가 제일 처음 한일은 방안이
너무 어둡다며 사용하지도 않을 모든 전등을 켜놓는 것이었다. 이래야 사람사는집 같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친구들에게 무엇인가 얻어갈 수 있게 하는 나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쓰지도
않는 불은 왜 다 켜 놓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뭐 많이 먹는다고 군것질 거리를 이렇게 많이
샀어? 거의 다 남기고 갈 것 같아…이거 남기면 다 쓰레기야. 다 못 먹으면 죽어서 남긴
음식들 다 먹어야 되는 거 알아?” 친구들은 스트레스를 풀러 온 것이 아니라 나의 잔소리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였다. 불쌍한 친구들…하지만 나의 이런 잔소리가 다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나같이 좋은 친구 둔걸 행운이라고 생각해~~
다음날 우리는 패키지 여행에 합류해 일정에 따라 관광지를 이동해 나갔다. 제주에 대한 공부를
안해서인지 가이드 분의 얘기가 귀에 쏙쏙 들어왔고 동네언니에게서 느낄 수 있는 정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이드라는 직업이 하나의 서비스 업종인데 서울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들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아무래도 사무적인 서비스에 익숙해서였을까? 사람냄새 나는 가이드 언니의 안내로 제주도는
아직 사람 살만한 곳이구나 하는 느낌을 다시 한번 받았다.

금릉석굴원에서 갖가지 조각품들을 보고 있을 때였다. 조각들 사이에 살아있는 낙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낙타의 얼굴은 우리 나라 소와 흡사하다는 느낌이 받았다. 순진하게 보이는
까만 눈동자와 오물오물 되새김질을 하는 입가에는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지는 몰라도 장난기
어린 웃음이 배어 있었다. 그런데 그 낙타 옆으로 사람들이 줄을 지어서서 한명씩 등에 올라타더니
사진을 찍고서는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야생동식물담당이신 마용운 간사 님이 보시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낙타다. 탈 수 있을 때 기념으로 하나 찍어가자’ 다들 이런 생각만 하는
것 같았다. 가족, 친구가 없는 낯선 곳에 혼자 떨어져 사는 것도 서러운데 이상한 사람들이 내
등에 올라타서 사진을 찍고 옆에서는 돈을 받고 웃는 모습을 보면 나는 어떤 마음이 들까? 이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낙타 등에 올라가지는 않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우리 나라 어린이들의 식생활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구나 하는 현장을(?)
목격하게되었다. 요즘 SBS의 ‘잘먹고 잘사는 법’이라는 특집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채식바람이 붐을
타고 우리 식생활문화에 날카로운 시선들이 고개를 들고 있는 이 시기에 여행 일행중 한 어린이의
반찬을 보고 나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렴한 가격의 뷔페형식의 점심을 먹게되었는데
식단은 나물, 육류, 생선류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TV에서만 보았던 채소를 먹지 않던
아이, TV를 보면서도 ‘저런 아이는 별로 없을 거야, 저 아이 섭외 하느라 좀 힘들었겠다’
하였던 그런 아이가 바로 내 옆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 어린아이와 동생은 그 많은 반찬 중에서
탕수육만 달랑 덜어와 먹다가 한 명은 다 먹지도 않은 상황에서 반찬을 더 가지러 갔었다. (그
아이는 결국 밥과 반찬을 모두 남겨버렸다.) 균형적인 식사 개념과 음식쓰레기에 대한 개념이 서있지
않은 아이들… 그러한 습관을 고쳐주려 하지도 않는 부모를 보고 우리의 생활문화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오후에는 여미지 식물원을 돌아보고 나서 서귀포 항에서 배를 타고 섬유람을 떠났다. 항구에서
멀어질수록 바다는 코발트색으로 짙어져 갔고 아직 오염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줄만큼 너무너무 맑았다.
우리 나라 모든 하천이 제주 바다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그런 날이 올지
알 수는 없지만 제주바다를 보고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서귀포 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날씨가 좋아져 한라산 정상이 보이는 기회를 잡아 사진을 찍으며 다음 제주에 올 때는 한라산등반을
해봐야지 하는 야무진 계획도 세워보았다.
저녁을 먹으면서 친구들에게 오늘 여행한 곳 중에 가장 좋은 곳이 어디였느냐는 질문을 해보았다.
친구 둘은 이구동성으로 여미지 식물원이라고 한다. 내가 만약 환경운동연합에서 생태적 감수성이
키워지지 않았다면 나도 식물원을 꼽았을 텐데.. 식물원에 심어져 있는 식물들은 인공적인 생명으로만
느껴지고 유리 천장에서 닿아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꽃나무를 보면서 식물원은 식물들을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 사람들에게 예쁘게 보이려는 치장된 온실의 화초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우리는 패키지여행에서 벗어나 우도로 향했다. 제주도 여행에서 우도는 꼭 빠져서는 안
된다는 주위 사람들의 조언에 꼭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도로 들어가는 배에서 우리는
운이 좋게도 농협에 쌀을 배달하시는 아저씨의 차에 동승할 수 있었다. 농협에 도착하여 고마운
마음에 쌀을 날라 드렸더니 도리어 고맙다하시며 땅콩이랑 커피를 주시고 우도해안과 쇠머리 오름으로
안내해 주신 단다. 다시 한번 제주도 인심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우도를 여행한 분들은 알겠지만 우도의 바다는 너무나 아름답다. 해심에 따라 바다 빛깔이 달라지는
것이 확연히 나타난다. 또한 해안 가에 하얀 모래는 산호 조각들이란다. 잘게 부서지지 않은 산호조각의
모양은 꼭 강냉이와 모양이 흡사하다. 이효석은 ‘메밀꽃 필 무렵’에서 보름달을 받아 빛나는 메밀꽃을
‘소금을 뿌린 듯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표현했다. 메밀꽃 필 무렵에 버금가는 표현으로
우도의 해안 가를 묘사한 문학작품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할 정도로 우도의 해안은
아름다웠다. 우도에는 며칠이라도 더 있고 싶었지만 서울은 우리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
확실하여 비행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우도를 빠져 나왔다. 다시 아저씨의 차를 타고 나오면서 아저씨는
제주가 변해간다고 하신다. 관광단지 조성을 위한 개발들이 일어난다고… 우도 또한 그 개발을
피해갈 수 없게되어 관광시설이 들어온단다. 그러면서 저절로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인심을 버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우도를 빠져 나오면서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현재, 제주도는 국제자유도시, 한국의 홍콩으로의 발전한다는 명목 하에 난개발에 시달리고 있다.
제주도는 자연 그 자체만으로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광,
쇼핑의 중심지로 자리잡겠다는 대규모 개발 사업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홍콩의 경우는 좁은 땅과
오랜 역사를 통해 무역이 발달한 곳으로 그들만의 특수한 조건으로 현재와 같은 모습을 띤 관광도시가
될 수밖에 없었으나 우리는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8천만불의 야경을 가졌다는 홍콩항
보다도 아름다운 자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알 수 없다. 홍콩은 국제도시이기는 하지만
사람 사는 냄새는 맡을 수 없다. 화려한 야경의 홍콩에는 상인과 소비자라는 관계만이 존재하지만
우리에게는 좀 더 주고 싶고, 하루 밤 더 재워주고 싶은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제주도민이 있다.
개발로 얼룩질 제주도에 우리의 이웃사랑도 남아있을 수 있는지 불안하기만 하는 마음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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