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 활동소식

위험한 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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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30년도 훨씬 전인 1970년대 초반의 일이다. 당시 한일국교정상화의 붐을 타고 일본으로부터 여러 산업이 한국으로 진출해 왔다. 그 중에는 석면방직공장들이 여럿 있었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 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있었는데 해방되었지만 많은 이들이 돌아오지 못했고 일부는 오사카 부근의 석면마을로 흘러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석면마을은 위험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쉽게 직업을 구할 수 있었던 탓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중 일부는 중소규모의 석면방직공장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는데 70년대 초반 한국의 부산쪽으로 여러공장들이 진출하게 되었다. 친인척이 부산에 많기도 했고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점도 작용했던 듯 하다.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일본정부가 석면의 위험성을 파악하고 서서히 규제를 강화해간 시점이기도 했다. 이는 일본에서 1968년 대기오염방지법(clean air act)이 만들어지고 1972년에는 석면이 포함된 특정화학물질장해방지규칙(toxic chemical regulation)이 제정된 데서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중화학공업을 위주로 경제개발에 열을 올리던 시점으로 공장의 검은연기라고 실컷 마실 수 있는 산업발전을 염원’(울산의 공업탑 문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위험한 화학물질을 안전규제해야 한다는 개념조차도 없던 때였다. 이렇게 국가간 환경규제의 차이를 이용한 공해산업의 이동을 공해수출(pollution export)’이라고 하고 본국에서는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개도국의 공장에는 허술한 규정을 적용하는 것을 이중규제(double standards)’라고 부른다. 


   







부산으로 가장 먼저 진출한 일본계 석면방직공장은 <제일아스베스트>라는 회사인데 일본에서 가장 큰 석면회사인 니치아스(구 일본석면)의 자회사인 다츠타공업이 한국의 제일화학과 합자하여 세운 것으로 석면을 영어로 아스베스토스(asbestos)라고 부르는 데서 따온 이름이다. 다츠타공업이 보내온 석면기계는 여러가지 석면중에서도 가장 독성이 강한 청석면 기계였다. 자신들은 사용을 금하면서 이웃나라에 팔아 넘긴 것이다. 그로부터 20년 후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 1991년 한국에서 직업병유발물질관리허가제도가 도입되었고 1992년 제일화학의 석면기계들이 인도네시아로 수출되었다. 회사이름은 <제일파자르주식회사>(PT JEIL FARJAR). 이 사실을 알게 된 2007년 여름, 필자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2시간 떨어진 공업도시 시비농에서 한국의 합자회사 제일파자르 석면방직공장이 가동중인 현장을 직접 확인했다. 주변 반경 500미터에만 인구 5만명이 넘는 밀집지역이었다.

그 해 가을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 자리에서 이 사실을 공개했다. 일본 오사카 지역에서 석면추방운동을 하는 분이 한국으로 석면기계를 수출한 다츠타공업의 주변에서 5명의 석면중피종암 사망자가 확인되었고 수십명의 노동자 희생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부산 연산동에서 20년간 가동되던 시기에 석면공장 인근에 살다 석면중피종암으로 사망한 2명의 유족은 지금 공장과 한국정부 그리고 일본회사를 상대로 환경소송 중이다. 또 수십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 신청을 받았거나 신청중이다. 그런데석면공장이 열심히 돌아가는 인도네시아는 석면을 규제하는 아무런 제도도 없고 공식적인 피해자도 없다. 전형적인 이중규제 현상이다.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일급 발암물질로 아무리 적은 량이라도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고, 노출되는 과정에서 아무런 자각증상이 없으며 일단 노출되면 수십년의 긴 잠복기를 거쳐 악성중피종암, 폐암, 석면진폐와 같은 치명적인 질환이 나타난다. 일본정부는 2007년부터 한국정부는 2009년부터 석면사용을 전면금지시켰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에서 공해수출한 석면공장들은 이웃나라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 등에서 아무런 안전조치없이 가동 중이다. 노동자와 주민들의 피해가 확대 재생산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유엔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1989년 위해폐기물의 국가간 이동을 금지하는 바젤협약(Basel convention)을 체결한 바 있고, 1992년 리루회의에서 의제로 책정되어 1998년 로테르담에서 채택된 유해화학물질의 수출규제 협약인 로테르담협약(Rotterdam convention)이라는 것도 있다. 최근에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건강피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간 정보를 교환하고 공동의 정책을 개발하는 아시아환경보건장관회의라는 정부간 환경보건모임도 3년마다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규제와 국제적 모임에서 앞서 말한 1급발암물질 석면공장의 국가간이동 즉 공해수출문제는 다루어지지 않는다. 외교적 수사와 함께 의례적인 문구 그리고 최소한의 권고적 수준만이 반복될 뿐이다.


 



 


인도네시아 시비농의 석면방직공장 주변 반경 500미터 안에는 학교가 모두 36개 있다. 유치원 12, 초등학교 12,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각각 7개씩이다. 학생수는 모두 1만명에 이른다. 한국의 부산에서는 석면공장이 가동되는 바로 옆에 초등학교가 들어섰고 작은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8년간이나 공존했다. 그 사이 3,28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일본은 어떠한가? 다츠타공업이 석면공장을 가동했던 1951년부터 2001년까지 50년간 공장인근의 <이카루가 소학교>는 매년 250~3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대표적인 석면질환인 폐암은 일반적으로 흡연 등에 의해 발병한다고 알려져 있다. 2009년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 암은 남녀 공히 폐암이다. 하지만 석면에 의한 폐암사망실태는 조사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그동안 사용한 석면량을 갖고 추정해보면 23,000명이 넘는 한국인 석면폐암피해가 예상된다. 일본 나라의 이카루가 소학교, 한국 부산의 연신 초등학교, 인도네시아 시비농의 학교들을 거쳐갔던 많은 학생들에 나타날 것으로 우려되는 석면피해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공해수출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최예용

시민환경연구소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이 글은 국회보 2009년도 9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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