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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논쟁]농산물개방 왜 반대하나

프랑스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와의 대담












농산물개방 왜 반대하나

쌀 개방에 반대하며 우리 쌀과 식량주권을 지키자는 농민들의 외침이 거세다. 세계 농민운동
조직 ‘비아 캄페시나’(농민의 길)도 대표단을
지난 8일 한국에 보내 한국 농민들의 투쟁에 힘을 보탰다. 대표단에는 1999년 프랑스 남부 미요
에서 건설 중이던 맥도널드 가게를 트랙터를 몰고
가 해체해 구속됐던 조제 보베(51)도 참가했다. 프랑스농민연맹을 창설한 세계적인 농민운동가
인 보베를 지난 9일 만나 농산물 시장개방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농민들의 투쟁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농민들의 손은 똑같다. 두툼하며 손가락이 굵고 짧다. 조제 보베도 그랬다.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광장에 설치된 ‘우리쌀 지키기
식량주권수호 국민운동본부’의 천막 안에서 점심으로 쌀밥을 맛있게 먹는 그가 식사를 마치기
를 기다렸다 얘기를 시작했다.



홍세화=당신은 1999년 여름 친구들과 함께 프랑스 남부 미요에서 맥도널드 가게를 해
체하는 시위를 주도했고 그 일로 처음
감옥에 갇혔다. 당시 수갑을 찬 팔을 들어올리며 웃던 당신의 모습은 프랑스는 물론 전세계 언
론 지면에 실리기도 했다. 그 일로 더욱 유명해진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은 뉴스가 되고 있다. 당신들은 왜 맥도널드를 공격했나?

조제 보베=처음에 우리는 성장 촉진 호르몬제를 주입시킨 미국 소의 수출을 허가한 세
계무역기구(WTO)에 어떻게 대응할까에 대해
고민했다. 우리는 우리들의 저항운동이 시민사회의 동의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결국 우리
는 맥도널드가 가장 강력한 상징물이 된다고 생각해
공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홍=당신이 바라고 주장하는 ‘농민의 농업’이 아닌, 기업에 의한 생산주의 농업의 산
물이며, 농장의 공장화, 규격화, 획일화의
상징이기 때문인가?

보베=그렇다. 맥도널드는 문화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농업의 산업화, 규격화, 획일화의 상징
이다.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이 똑같은 음식을 먹고
있다. 그리고 맥도널드 기업에서 인간은 존재하지 않고 창의성을 찾을 수 없다. 부엌에서 인간
의 창의성이 발휘되는 것과 전혀 다르다. 맥도널드에선
오직 반복적인 움직임이 있을 뿐이다. 사람은 다만 로봇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광고의 공격성
까지 모든 상징성이 맥도널드에 담겨 있다. 그래서
맥도널드를 선택했고 그 선택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 대단한 반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홍세화 “당신은 맥도널드 가게를
왜 공격했나“


홍=최근에 한국에선 만두 파동이 있었다. 학교 급식에서도 식중독 사건이 빈번히 일어
나고 있다. 당신은 ‘저질
먹거리(malbouffe)’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보베=‘저질 먹거리’라는 말은 70년대 프랑스의 한 연구자가 낸 책의 이름이었다. 세
계에 퍼져 있는, 균형을 잃고 영양실조를
일으키는 음식에 관한 책이다. 내가 그의 말을 차용한 것은 저질 먹거리가 사람의 잘못이거나 사
람이 잘못 선택하는 게 아니라 경제논리에 의해
강요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령 유럽에서 호르몬 사용은 금지되고 있는데
세계무역기구는 호르몬을 주입시킨 미국산 소고기를
먹도록 강요하고 있다. 유전자조작식품도 마찬가지다. 식생활에서도 경제논리가 정치와 일상생활
을 규정하고 있다.

홍=당신은 줄기차게 유전자조작식품에 반대하고 있다. 실험용 재배까지도 유전자조작
산물이면 파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유전자조작식품 없이 어떻게 지구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홍/유전자 조작식품 없이 지구 전체를 먹여살릴 수 있나
보베/세계의 식량 문제는 양
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다


보베=유전자조작식품은 결코 생산량을 늘리지 않는다. 생산성의 증가가 없다는 것이
다. 그리고 세계의 식량문제는 양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다. 세계를 모두 먹일 충분한 식량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많은 지역에
서 사람들이 직접 생산하는 농산물을 섭취할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다는 데 있다. 경제논리와 덤핑으로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유럽 등 부국의 잉여농산
물을 아주 싸게 제3세계에 내다 팔고 그 결과로
제3세계의 농업이 파괴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현재 세계에선 8억 인구가 굶주리고 있다.
그 중 60%가 농민이다. 즉 제3세계에서 제일
많이 굶주리는 사람들이 바로 농민이다. 경제논리에 의한 국제무역규칙에 따른 결과다. 유전자조
작식품은 절대로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환경문제, 공공보건 문제 등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특히 씨앗의 사유화 문제는 심각하
다. 다국적 기업이 약품과 마찬가지로 씨앗에
특허권을 행사하기 때문인데, 그렇게 되면 농민은 매년 씨앗을 사야 한다. 그야말로 농업과 식량
에 대한 완전 통제를 꾀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전자조작식품은 오직 기업화된 농업하고만 연관돼 있다. 전 세계에는 14억 내지 15억명의 농업
인구가 있는데, 이들 중 트랙터를 사용하는 농민은
3천만명에 불과하다. 그 외는 모두 가축이나 손을 이용하고 있다. 유전자조작식품은 이런 농민들
과는 전혀 무관하다. 유전자조작식품은 오직 씨앗을
통제하려는 네댓 초국적 자본의 돈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홍=그렇다면 지구를 모두 먹일 수 있는 식량 생산이 가능한데 왜 수많은 사람들이 기
아 상태에 있는가?








보베 “맥도널드는 획일화 상징‥
농업포기는
주권포기다”


보베=그야말로 모순이다. 이 모순을 나는 농업을 일반 산업과 똑같이 규정하는 이데올
로기의 산물로 본다. 산업은 가령 자동차
산업이 그렇듯이 비교우위가 있을 수 있고 다른 나라보다 값싸게 제조할 수 있다. 농업을 이런
모델에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농업은 무엇보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어야 한다. 시장 논리
로 취급되어서는 안 되거니와 비교우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기후 조건 등의 차이로 지구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것을 섭취한다. 생산도 다르고 섭취도
다르다. 그런데 현실은 잘못된 규칙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몇몇 나라들이 낮은 가격으로 생산품을 수출할 수 있고, 그래서 비교우위가 있다
고 말하지만, 값싸게 수출한다는 것은 대개 보조금을
받은 것으로 실제 생산가격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그 수출 농산물이 도착하는 나라에선 균형
이 완전이 깨진다. 농민이 더 이상 생산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가령 아프리카에서 올해 우리는 극적인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유럽에서 냉동수출
되는 닭 다리나 날개의 값이 서아프리카의 그것들에
비해 4분의1밖에 되지 않아 서아프리카의 닭 생산은 완전히 파괴됐다. 세계무역기구의 국제무역
규정이 생산능력을 망가뜨린 것이다. 내가 보기엔
21세기에 이농현상은 더욱 박차가 가해져 지구상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중국에서 3
억5천만 내지 4억명의 농민이 땅을 떠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인도와 아프리카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더 이상 도시를 증가시킬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일 자리도 없다. 산업화의 한계에 와 있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은 산업화로 도시를 형성할 수
도 있고 농촌을 떠난 농민들이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산업에 수용될 수도 있지만 앞으로 산업은 점차 자동화와 기계화로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앞으로 지구상에서는 일 없는
사람들이 수없이 떠다닐 것이며 사회문제, 정치문제, 그리고 환경문제로 비화할 것임이 명약관화
하다. 또한 도시화에 의해 농촌이 잠식되고 식량
생산은 더욱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런 심각한 전망 앞에서 더욱 심각한 일은 국제적으로 아무
도 우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구는 지금
곤두박질치고 있다. 세계 농업이 기업농이 아닌 ‘농민의 농업’으로 바로 서지 않는 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조제 보베는 식량과 농업은 시장 논리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농업 문제
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동전화를 많이 팔기 위해서 농산물 시장개방은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직접적으
로 비판하며 농업과 다른 산업을 같은 선상에 놓지
말라고 했다.


홍=중국의 한 경제학자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들어가면 10년 안에 세계에서 2억5천
만명의 농민이 없어질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중국은 이제 세계무역기구의 일원이 되었고 그 영향이 이미 한국을 강타해 중국에서 생산
된 농산물이 한국에서 범람하고 있다. 한국 농촌은
고령화와 부채 증가로 이미 갈 길을 잃고 있는데 정부의 농업정책이란 게 있기나 한 것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농업을 희생하더라도 공산품을 팔면
된다는 생각이 주를 이루어, 농업은 2차적 관심에 머물고 땜질식 정책으로만 대처하고 있다. 그
런 기조 속에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에 서명했다.

보베=식량주권이 없는 나라는 진정한 주권국이 되기 어렵다. 한국은 27~28%의 식량자
급률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어느 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거나 상황이 바뀔 때 어쩌려는가. 진정한 농업정책 없이
는 재건이 불가능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농업은 자유무역협정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나라를 위해서도 국민을 위해서도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홍=한국은 산업화와 함께 어느 나라보다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우리들의 할머니, 할
아버지들은 대부분이 농민이었다.
70~80%를 차지하던 농업 인구는 단 두 세대만인 오늘날 7.5% 정도만 남아 있을 정도가 됐다. 하
지만 지금 한국인들은 과거보다 더 잘 먹고
있고, 고기도 많이 섭취하고 있다. 평균수명도 많이 늘어났다. 산업화의 효과이며, 자원도 땅도
부족한 우리에게 수출을 가능하게 한 세계무역기구
체제의 덕이라는 점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동의하고 있다.


홍/지구를 먹일 식량생산 가능한데 왜 사람들이 기아상태에 있나
보베/유럽서 수출되
는 닭다리때문에 서아프리카 닭생산이
파괴됐다








보베=자동차와 휴대전화를 수출한다고 식량을
생산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것은 정치적 선택의 문제다. 한 나라의 농업정책은 농업을 지원할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에 달려 있다. 농민을 지원하고 농산물 가격과
농가소득을 보장하지 않는 한 농정은 없는 것이다. 즉 농민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생산가를 담
보하는 가격에 팔 수 있게 함으로써 농민으로 살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주장 아닌가.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의 경제논리
에 의하면 생산가격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국이나 기타
나라에서 들어오는 농산물의 가격은 생산가 이하다. 타이산이나 미국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농
산물 수입에 맞선 보호 의지가 필수적이다. 정부에게
그런 의지가 없다면 식량 자주와 환경 문제에서 큰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 된다. 특히 한국과 같
은 곳에서는 논이 갖는 물 조정 능력을 중시해야
한다. 만약 이 논의 구조가 망가지고 홍수와 같은 사태가 일어날 때 그 비용은 농업을 지원하는
비용보다 열 배 이상 될 수 있다. 항상
정치인들의 단견이 경제협력을 서둘러 체결하여 자동차와 이동전화 등을 많이 팔고자 하고, 농업
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포기한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농업과 기타 산업을 동일한 선상에 놓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농업을 다른 산업으
로 대신할 수 없다. 농업은 자주국가의 일차적
요건이다. 농업을 포기하는 정부는 나라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며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홍=한국이 지금 27% 정도의 식량자급률을 갖는 것도 쌀 덕이다. 쌀 없이는 자급률이
5%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지금
한국은 쌀 개방 압력을 받고 있다. 한국 농민들이 이경해씨 자결 1주년을 기해 집회에 대거 참여
하는 것은 쌀 개방에 대한 절대절명의 위기의식의
표현으로서 쌀 재협상에서 정부가 의무수입량을 최소화하고 관세화 유예기간을 장기간 획득하도
록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다.


보베“한국 식량자급률 27%라니‥
농업은 자유무역협정 안돼”


보베=1994년부터 세계무역기구에 의해 규정된 규칙에서 가장 나쁜 조항의 하나가 개발
도상국은 모든 생산품의 4%를 수입해야
하고 산업국가는 5%를 수입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이 조항이 적용된 10년 동안 한국정부는 손놓
고 있다가 이제 만기에 목에 찬 것이다.
한국정부는 쌀 개방은 물론 이 조항의 적용을 과감히 거부해야 한다. 이 규정에 과감히 맞서지
않으면 나라의 농업이 파괴 과정으로 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비극적 상황이다. 우리가 국제적 차원에서 세계무역기구가 농업 부문
에서 손을 떼도록 싸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파울로에서 유엔 개발위원회(CNUCED)에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만나 토론을 벌였을 때에
도 나는 나라의 식량주권을 기본권으로 인정해야
하며 기본 인권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식량주권을 기본권으로 인정해야 한다. 각 나라가
무슨 식량을 생산할지, 식량자급률을 어떤 선에
유지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무역을 통해 식량을 사들이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문제인 것은 각
나라가 식량주권을 갖는 것을 세계무역기구가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체제가 거꾸로
돼 있다. 즉 각 나라가 자신의 정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규정을 받고 있다. 한국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만약에 개방할 수 없다고 말하면 자동
차, 휴대전화 등의 수출에 강력한 압력이 들어올
것이다. 정부는 자동차를 팔기를 원한다고 말할 테고 그러면 국민과 주권, 그리고 문화를 희생시
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쌀은 한국에서
식량으로서뿐만 아니라 자연 경관과 전통으로서 문화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홍=실제로 한국정부의 협상 책임자는 쌀 관세화 유예를 기본 입장으로 삼는다면서 상
대국 요구 조건에 따라 실리 차원에서 입장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말해 쌀 관세화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한국정부의 식량
주권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고 시민사회 또한 인식이
부족하다. 그것이 문제다. ‘당신 나라의 농업에 대해 말해 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회에 살
고 있는지 말해주겠다.’ 당신 친구의 말을
되새기게 된다.

보베=지금 다국적 기업의 과녁이 쌀이라는 점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한국에서 농촌
이 망가지고 농민이 땅을 떠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농민들은 물론 한국의 시민사회는 쌀 개방 문제에 배수진을 쳐야 한다.


대담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농민들의 투쟁으로 옮겨왔다. 조제 보베는 세상을 바
꾸기 위한 노력과 저항이 중요하다면서 여러
대안세계‘들’이 가능하다고 했다.



홍=당신이 속한 프랑스 농민연맹은 전세계적인 조직인 비아 캄페시나의 회원이기도 하
다.

보베=비아 캄페시나는 벨기에에서 1992년에 창설됐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농민연
합으로서 90개 나라의 농민조직이 참여하고
있고 2억명의 농민이 여기에 포함된다. 세계에서 직업조직으로선 가장 큰 조직이다. 비아 캄페시
나는 1992년 가트 협의 때 이미 그 위험을
내다보고 만들어진 것이다. 식량주권, 농지개혁, 농민의 토지 접근, 그리고 농민의 권리 등에 관
해 함께 문제를 극복하고 모든 지역에서 농민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조직됐다. 지난 6월엔 브라질의 상파울로 근처에서 제4차 회의가 열렸
고 사무처를 온두라스에서 인도네시아로 옮겼다. 앞으로
몇 년 동안 비아 캄페시나의 비서국이 아시아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홍=비아 캄페시나를 통해 세계 농민 사이의 연대틀을 형성하려는 것인가?

보베=그렇다. 함께 대안을 건설하기 위해서다. 식량주권을 우리 투쟁의 근간에 놓고
싸우고 있다. 먼저 제3세계에선 수입을 막기
위해 싸우고, 유럽에서는 유럽농업정책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유럽농업정책은 수출에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계속 속이고 있다. 처음에 유럽인들은
우리가 이 정책에 맞서 싸우는 이유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유럽농업정책이
오직 소수에 지나지 않는 수출농업만을 지원할 뿐이며
유럽의 중소농들이 정책에 의한 피해자들임을 알게 됐다. 국민과 위정자들 사이에 격차가 있다.
한국에서도 정부는 농민과 농업에 대해 한국인들이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홍/한국농업인구 7.5%만 남았지만 지금 과걱보다 더 잘먹고 있는데‥
보베/휴대전화 수
출한다고 식량을 생산하지 말란 법은
없다


홍=권력을 유지하려는 정치인들은 오늘이나 가까운 장래의 경제적 실리에만 관심을 갖
는다. 그러나 농업정책은 그야말로 중장기적
비전과 철학을 필요로 한다. 이 점에서 격심한 거리가 있다. 쌀 개방과 관련해 우리 농민들은 국
민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보베=우리도 유럽에서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해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
민 다수가 이에 반대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국민투표에 반대하고 있다.

홍=당신은 줄기차게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다른 세계
는 과연 가능하다고 보는가?

보베=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저항해야 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오직 하나의
대안세계를 꿈꾸어선 안된다. 여러 대안세계가 가능하다고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나
는 포르투 알레그레의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구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른 세계‘들’이 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세
계에 가능한 다른 세계가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중요하다. 그것은 문제에 대한 인식
과 일상에 대한 운동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홍=당신은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보베=모든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데올로기는 도처에 있다. 다만 나
는 현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모델에 현실을 맞추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 좌든 우든 전체주의가 무엇을 남
겼는지 잘 알고 있다. 사람의 발에 구두를
맞추어야지 어떻게 구두에 사람의 발을 맞추겠는가. 논리를 뒤집어야 한다. 그리고 권력 앞에서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시민불복종이 요구된다.
이 체제에 협력하기를 그만두고 개인이 책임을 가져야 한다. ‘나무는 씨앗 안에 깃들어 있다,
마치 목적이 수단 안에 있듯이.’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인용해 본다. 목적이 수단 안에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방식에 관해 성찰해야 하
며 그 방식은 바로 우리가 찾는 것과 일치해야
한다.


홍세화 “한국정부 식량자급 의지부족
쌀 없이는 자급률 불과 5%”


홍=그러나 한국에서 시민불복종 운동은 대단히 어려운 주문이다. 시민의식, 즉 우리
가 바라는 사회를 누군가 대신 마련해주지
않는다는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령 한국 노동자들의 대부분에겐 파업권도 주어지고 않은
실정이고, ‘자발적 복종’이란 말 없이 자발적 복종이
관철되고 있다.

보베=몽테뉴의 친구였던 에티엔느 라 보에티는 <자발적 복종>이란 소책자를
1548년에 낸 바 있다. 왕이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복속하기 때문이라는 요지의 글이다. 사람이 복종하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며 권력이 유지되는 것 또한 우리
스스로 복속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성찰이 바로 지금 대안 세계를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필요
한 것이다. 어린이들을 착취해 만든 옷이나 사회권을
인정치 않는 공장제품을 거부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홍=농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곧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농업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
은 자연을 존중할 줄 알고 자연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농업의 중요성을 안다. 농민운동은 당연히 환경운동, 생태계 보존운동과 만날 수밖
에 없다.

보베=비아 캄페시나에서도 생태운동과 많은 관련을 맺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전통적,
원주민식, 공동체적인 농업방식이 기술적인
면뿐만 아니라 문화적 관계, 그리고 정신적 관계까지 주위 환경과 연결된다는 인식이다. 이것은
바로 세계를 보는 비전과 직결된다. 모든 문화와
민중의 땅과의 관계는 기술적이거나 상업적 관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훨씬 정신적인
관계이며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이 땅은
내 소유가 아니다. 내 후손의 것이다.’ 어느 인디언의 말에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있다. 모든
인간은 잠시 지나갈 뿐이다.


홍/당신은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에 대해 말한 적 있다
보베/사람 발에 구두를 맞춰야지
구두에 발을 맞추겠는가


홍=이번에 한국 땅을 처음 밟았는데, 세계무역기구가 농민을 죽인다고 외쳤던 이경해
씨와 만난 적이 있나?

보베=이경해씨를 1999년에 시애틀에서 처음 만났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작년 3월 제
네바에서였다. 그는 제네바 세계무역기구
본부 앞에서 단식투쟁을 벌였고 우리는 함께 시위를 했다. 나는 지난해 9월엔 프랑스 정부의 출
국 금지조치로 멕시코 칸쿤에 갈 수 없어 그의
마지막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홍=우리에겐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선언적 의미로만 남아 있다
고 봐야 하지만 ‘오래된 미래’처럼 지혜가
담긴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농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농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
가?

보베=무엇보다 농민으로서 긍지를 가져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18세기에 미국 보스턴
시민들이 영국에서 온 수입품들을 바다에
밀어넣었듯이 한국에 수입되는 쌀을 바다에 밀어넣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쌀을 지키기 위한
당(Korean Rice Party)’를 결성해야
하지 않을까?


조용한 곳에서 대담을 하려고 찻집에 갔었다.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말에 파이프 담배를
즐기는 조제 보베는 “이건 미국식인데…” 라며
말을 흐렸다. 그러면서 한국은 왜 그렇게 미국식 삶의 방식을 따라 가느냐고 했다.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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