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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대신할 후보지 검토 웬말이냐”

태백산은
지금 폭격중


















△ 미국이 매향리
사격장을 한국에 돌려주는 대신 대체 사격장 후보지의 하나로 지목한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천평
리 계곡의 한국 공군 필승사격장. 영월/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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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리깎을 준비
    해야겠지요”


  • “매향리 대신할 후보지 검토 웬말이냐”

    태백산이 떨고 있다. 태백산에 기대어 살길을 찾아보려는 강원도 폐광지역 주민사회의 긴장감
    도 따라 높아지고 있다. 일부 주민은 9년 전
    폐광지역지원특별법을 얻어내기 위해 태백산 자락을 뒤흔들었던 ‘투쟁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
    다. 푸른 빛을 더해 가는 태백산 자락에 찬기운을 몰고
    온 것은 폐광지역 주민 이상으로 고통 속에 살아온 서쪽 바닷가 사람들의 승리의 소식이었다. 미
    국이 내년 8월까지 매향리사격장을 한국에 돌려주는
    대신, 대체 사격장으로 태백산 서쪽 사면인 영월군 상동급 천평리 계곡의 한국공군 필승사격장
    을 지목했다고 알려진 것이다.

    태백산 자락 주민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번영회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회의가 소집되고,
    폐광지역지원특별법 투쟁 때 구심점이 됐던
    시·군·읍·면 번영회들의 접촉도 이뤄지고 있다. 번영회와 시민단체 등에서 내놓는 성명에는
    미공군이 태백산으로 오는 것을 반대하는 데서 한발 더
    나가 필승사격장을 폐쇄하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지역발전의 큰 걸림돌을 이참에 뽑아내겠
    다는 것이다. 원기준(43) 태백시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은 “태백산 관광은 새벽에 도착해 등반하고 오후에 떠나는 사람들이 태반이어서 입장객이
    느는 만큼 관광수입이 늘지 않는다”며 “사격장이
    없어지고 천제단 서쪽으로 등반로가 열리면 1박2일의 체류형 관광지로 바뀔 것이라는 게 주민들
    생각”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늘을 찢는듯한 소음
    “누가 관광하러 오겠느냐”


    사실 미공군의 필승사격장 사용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필승사격장은 1981년 설치부터가 한·
    미공군 합동으로 이뤄졌고, 지금도 미공군의
    훈련에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격장이 매향리사격장을 대체한다는 것은 전혀 새로
    운 사격장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 이는 천평계곡에
    퍼부어지는 폭탄과 기관포탄의 양과, 비행과 사격에 따르는 태백산 일대의 소음이 지금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태백산의 자연환경에 돌이킬 수 없는 파괴를 가져오고, 폐광으로 침체된 지
    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추진 중인 태백산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관광레저단지 개발사업의 성공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게 주민들의 우려다. 폭탄을
    가득 실은 폭격기와 전투기가 머리 위로 시끄럽게
    날아다니며 폭격을 해대는 곳 근처로 누가 관광과 휴식을 위해 찾아오겠느냐는 것이다.

    지난 23일 오후 태백시 소도동 유일사 입구 태백산도립공원 주차장에서 승용차 문을 열고 내
    리는 순간 고막을 파고든 공군기들의 비행소음은
    태백산을 떠날 때까지 계속 귀를 괴롭혔다. 공군기들은 태백산과 천평계곡이 어우러진 천혜의 지
    형을 이용해 폭격훈련이라기보다 비행연습을 하는
    듯했다. 멀리서 웅웅 대는 듯하다가 금세 하늘을 찢는 듯한 비행음을 내며 급강하하거나 흰 연기
    의 꼬리를 남기고 급선회하기도 했다.









    △ 천평리
    계곡의 사격장이 내려다보이는 태백산 정상에 주목이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서 있다. 영월/황
    석주
    기자

    “동물 자취 감춘지 오래‥
    토끼
    한마리
    구경못했다”


    등산로 주변에서는 동물의 자취를 찾기 어려웠다.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4시간여의 산
    행에서 만난 짐승은 천제단 주변에서 본 까마귀
    서너마리가 전부였다. 태고적부터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장소인 천제단에서 무속인들이 치성을
    드리고 남겨 놓은 음식을 얻어 먹는 데 길이 든
    놈들이었다.

    동행한 고지선(26) 녹색연합 간사는 “태백산은 식물상의 풍부함에 비하면 동물상은 비슷한
    조건의 다른 산에 비해 매우 빈약하다”며
    “공군기들이 저공 비행으로 지나가는 천제단 주변과 천제단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 사면에서
    동물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라고 말했다. 실제 천제단
    아래 쪽에 동쪽 사면에 있는 사찰인 망경대 주지 석영(55) 스님도 “지난해 6월 태백산에 온 이
    후로 9개월 동안 절 주변에서나 산을
    오르내리면서 본 길짐승이라고는 멧돼지와 다람쥐 몇 마리가 전부”라며 “그 흔한 토끼 한 마
    리 구경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스님은 “날짐승도
    까마귀와 종류를 알 수 없는 새 두어 종류 본 것이 전부”라며 “비행과 사격소음 때문에 어지간
    한 야산보다도 더 야생동물이 없다”고 말했다.

    태백산은 1981년에 필승사격장이 들어서면서 사실상 반쪽이 됐다. 천제단과 주봉인 장군봉의
    서쪽 사면을 포함한 천평계곡 1800만여평이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지역적 제한이 아니
    어도 야생동물을 제대로 품어주지 못한다는 점만으로도
    태백산은 확실히 반쪽의 산이었다.

    비행소음으로 머릿속까지 산란한 등반길을 그나마 위로해 준 것은 등산로 주변의 야생화들이
    었다. 나팔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듯한 모양으로
    무리지어 피어 있는 파란색 현호색꽃들, 긴 대궁 끝에 매달려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연보라색 얼레지꽃들, 잎까지 노랗게 물들인 채
    등반객을 빤히 올려다 보고 있는 괭이눈이 없었다면 천제단 오르는 길은 고행길일 뿐이었을 것이
    다.

    필승사격장이 매향리사격장을 대신하게 될지 모른다는 소식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
    은 천평리 계곡물을 상수원으로 쓰는 영월군 상동읍
    주민들이다. 상동읍번영회는 지난 24일 저녁 긴급회의를 열어 아예 기존의 필승사격장의 폐쇄까
    지 요구하기로 결의했다. 태백산의 나머지 반쪽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정재목(62) 번영회 부회장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지난해 공군에 천제단 쪽
    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개설을 요청했지만 답변조차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폭탄과 탄피 등에 의한 식수원의 중금속 오염위험까지 감수하며 사격
    장을 유지시켜 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산 반대편인 태백시 쪽 분위기도 예사롭지 않다. 번영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사격장
    폐쇄운동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태백환경운동협의회를 비롯한 태백지역 5개 시민단체는 26일 성명을 내어 “매향리에서 못다한
    폭탄공세를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에 퍼붓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태백산의 공군폭격훈련장을 당장 폐쇄하라”고 치고 나왔다.

    천제단에서 만난 등반객들도 태백산이 매향리사격장을 대체하게 된다는 데 매우 부정적이었
    다. 사업차 태백에 왔다 산에 올랐다는
    장호운(39·서울 송파구 오금동)씨는 “매향리를 그렇게 망가뜨려 놓고 다시 태백산까지 파괴하
    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그런 식의 매향리사격장
    반환은 눈가리고 아옹하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서재철(37)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은 “군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훈련을 해야 하겠지만 한국
    의 안보와 직접 관련 없는 해외의 미군기까지
    매향리에서와 마찬가지로 태백산에 몰려와 훈련을 하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주민
    들의 반대운동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태백·영월/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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