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 활동소식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스리랑카를 보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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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연합은
지난 7월 5일부터 7월 14일까지 10일 동안 스리랑카에서 아시아 지진해일로 인한 환경영향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국제인구행동기금 아태지역본부(Asia Pacific Alliance, International
Council on Population and Development의) 후원으로 이루어졌고 환경연합부설 시민환경연구소
안병옥 부소장, 거제통영환경연합 윤미숙 정책실장 등 4명이 참여하였고 스리랑카 현지 환경단체인 환경정의센터(Center
for Environmental Justice)가 함께 했습니다.


* 이 참가기는 총 3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입니다.

난민캠프와 각국의 NGO들

피해지역마다
난민캠프는 각 피해지역의 마을마다 형성돼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구호단체와 NGO들의 활동도 곳곳에서 값진 땀방울과
함께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남해안과 동해안의 피해지역 여러 곳을 조사하는 가운데 스리랑카의 환경단체가 운영하는 난민캠프 지원센터를 두 군데 방문했습니다.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적은 인원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지역 풀뿌리 주민조직과 연대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로 판 우물의 수질오염도 조사, 막힌 하수구 복구, 무료 탁아소 운영, 난민 캠프 방문으로 빡빡한 일정표를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난민촌은 천막촌과 나무판대기로 지어진 축사 비슷한 형식의 두 가지 형태였습니다. 임시로 지어진
한 칸짜리 숙소에서, 또는 학교를 통째로 이용한 임시 사회보호시설에서의 생활은 파리들이 들끓었고, 공동 식수터와 목욕장은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여기저기 우물가에 서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더운 몸을 식히며 목욕을 하는 주민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남자도 여자도 다 옷을 입은 채 서서 목욕을 합니다. 어린이들도 두레박으로 연신 물을 퍼올려 머리통에 붙습니다.

학교를
임시숙소로 활용한 꽤 큰 난민촌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여섯 가구가 교실 한 칸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한 칸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자, 복도에 모여서 놀던 아이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둘 모여든 아이들은 순식간에 열명이 넘어 적게는
대 여섯살, 많아야 열 살 정도인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즐겁게 춤을 추는 것이었습니다.
음악은 경쾌하고 빨랐으며, 아이들의 선험적인 춤 동작은 우리네 청소년들이 그리도 배우고 즐기는 랩과 힙합을 한데 섞어놓은 몸짓으로
몹시 아름답고 활기찼습니다. 그 중 한 아이의 손에 이끌려 못추는 춤이지만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왠 구경거리냐며 모여든 난민들이
한차례의 춤이 끝나자 박수를 보냈습니다.

어딜가나 아이들의 얼굴은 천진스레 해맑아서 그들의 웃음은 해바라기 꽃처럼 우울한 난민촌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스리랑칸들은 선천적으로 춤과 노래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느리지만 복구는 현재진행 중이었으며, 무척이나 다행한 것은 6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지역 주민들에게
집단 수인성전염병 등이 창궐한 예는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일부 아이들의 다리에는 모기나 진드기에 물려 긁어서 곪은 상처가
많은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자원봉사차 나와 있는 Koica 팀들을 두 차례 만나서 오지게 반가웠습니다. 우리는 아껴먹던
김치와 라면을 두말없이 내주고, 대신 맛있는 점심을 얻어먹으며 한국의 소식들을 나누었습니다.


번째로 들린 난민촌은 푸른 천막으로 지어졌습니다. 시퍼런 천막을 들치고 들어서자 더운 열기에 숨이 턱턱 막힙니다. 실내는 옷가지들을
담은 종이박스 몇 개가 전부였고, 바깥에서 마른 야자수 나무를 주워와 불을 피워 조그맣고 둥근 솥단지에 음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야자수나무는 불땀이 좋고 연기가 많이 나지 않아 이곳 주민들이 즐겨 사용하는 땔나무입니다. 그러고 보면 야자수는 버릴 것이 없는
고마운 나무입니다. 야자수 나무 열매인 코코넛은 더위로 인한 갈증을 해소시켜주고, 껍질을 부수면 속껍질이 보드랍고 두터운데 마치
계란 프라이 흰자위와 같이 생겼습니다. 먹어보면 달착지근하고 맛이 좋습니다.

자그만
솥단지에 주식인 커리를 끓이던 시티카(Citica) 할머니는 올해 79세라는데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77세 인데 놀랄만큼 젊어
보입니다.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느냐는 손짓에 그러라고 손짓으로 답한 할머니는 내 노트에다 자신의 이름을 싱할라어로 꾹꾹
눌러서 적어줍니다. 참, 스리랑카의 문맹율은 6% 정도로 매우 낮습니다.

일부 난민촌의 경우, 바닥이 아예 모래인 곳도 있었습니다. 임시 거처인 숙소에는 더워서 아무도
들어가지 않고 모두 바깥에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숙소가 못되는 숙소인 셈입니다. 방역과 최소한의 음식, 식수공급은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그것도 지역마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난민촌 주민들과 함께 스나미 이전에 살던 마을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해안수림대가
전혀 없었던 이 마을은 꽤 큰 마을인데도 흔적도 없이 쓸려나가 남아있는 우물터 만이 이곳이 마을이었음을 짐작하게 하였습니다.

스리랑카 정부는 스나미 이후, 새로 짓는 가옥들은 해안선에서 모두 100m 이상 뒤로 물릴 것을 법으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해안선에서
100m 이격거리는 충분치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스리랑카 해안 지역들이 대부분 산이 없고 평지인 점을 감안할 때, 최소 300~500m의
거리는 두는 것이 적절할 것 같았습니다.
그나마 고층건물들이 적어서 건물붕괴로 인한 인명피해가 적었다는 평가였습니다.

구호품이 낳은 신종 쓰레기

태풍이나 지진해일 이후 어느 곳에서나 쓰레기가 문제입니다.
스리랑카 곳곳의 해변에는 아직도 다 치우지 못한 건물들의 잔재가 쓰러진 나무더미와 섞여 쌓여있었습니다. 쓰레기 자체가 거의 발생되지
않았던 우리네 고유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처럼 이곳 시골의 삶은 그야말로 친환경적인 삶을 유지해왔습니다. 구운 흙 벽돌과 코코넛
나무로 지어진 집과, 냉장고가 없는 생활은 불필요한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대도시 몇 곳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쓰레기 수거 체계 자체가 아예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나미 이후, 피해 지역마다 새로운 쓰레기 문제가 대두되었다고 합니다. 신종 쓰레기들은
대부분이 구호물자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것에서 발생되었습니다.선진국들이 보낸 구호물품들은 모두가 썩지 않는 쓰레기들로 물병을 비롯한
각종 음료수병, 스티로폼과 여러종류의 비닐봉투, 여러 겹의 플라스틱 포장지들, 심지어 사용하지도 않는 생리대까지 들어와서 새로운
‘환경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야생코끼리가 쓰레기 매립장을 파헤치며 먹이를 찾고 있다. 쓰레기의 대부분은
구호물품 포장재이다.

스나미 충격 이후,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구호단체들의 선심성 재난구호는 그 선의의 목적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지역문화를 무시한 채, 합리적이라는 명분아래 각국의 취향대로 진행되고 있어 새로운 문화충격이 가해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불법소각이 만연할 수 밖에 없어 환경적 충격까지 보태진 셈이었습니다.

바다가 무서운 사람들

스나미가
남긴 상처는 물질적인 피해나 인명피해가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을 잃은 상처는 당장의 놀람이 잦아들자 우물처럼
깊어갔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는 몇몇 사람들을 장애우로 만들었는가 하면 충격과 놀람으로 말문을 닫게 만들었고, 눈을
감으면 바닷물에 머리꼭대기까지 잠기는 피해망상을 보이며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주민들도 있었습니다.
어느 난민촌에서 만난 분열증 환자인 젊은 남성는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고 자신만 살아남았지만 그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은지
오래라고 합니다.
대부분이 어부였던 주민들은 나무로 만든 작은 배들이 남김없이 부서지기도 했지만 배가 남은 어부들도 선뜻 바다로 나가지 못했고,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배를 띄우지 않는가하면 바다를 몹시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공포의 기억은 때때로 현실을 장악한다고 합니다. 그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정답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한가지의 위안이
있다면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결국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꾸 생각하고 이미 진행된 방법의 잔혹에 대해 너무 깊이 천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더 끔찍한 상황에서 더 험악한 주검으로 떠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것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험악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고사는 그보다는 낫습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상처를 받았을 때, 자신이 처한 상처보다 깊은 상처를 생각하며 자신의 처지를 낫게 생각하는 것,
우울하긴 하지만 그것도 견디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 것은 분명합니다.
영어가 너무 짧아서 마음속의 말들은 하나도 전하지 못하고 그저 마주 잡은 손에 힘만 꾹꾹 들어갑니다.

맹그로브숲과 그린벨트

일인당 국민소득이 900불도 채 안되는 가난한 나라(우리나라 12,000불 수준)에서 시민단체라니!

처음에 이 가난한 나라에 환경단체가 여럿 있다는 것이 우리는 좀 놀라웠습니다.
우리네 70년대와 비슷한 생활상을 가진 나라에서 친환경적인 의식과 환경중심의 개발의지가 곳곳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스리랑카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았고 지속가능한 계획이 수립될 것임을 조사기간 내내 충분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발전과 보전이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현지 환경단체인 Center for Environmental Justice 활동가. 숲가꾸기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저 60~70년대는 오로지 경제발전 외에는 아무런 구호나 주장이 끼어들 수가 없는 그야말로
정부계획은 무조건 옳다는 일방통행이었습니다. 국가정책에 반하거나 비판하면 간첩으로 몰렸던 군사문화가 장악하던 시대였으므로 우리는
시커멓게 죽어가는 강을 보고도 저래서는 안된다는 비판 의식조차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국가정책에 반하는 언동이었으니까요.

우리는 이제 와서 일방적인 개발계획의 부조리와 부당성을 조금은 압니다. 그래서 이미 죽거나 망가진 그것들을 되살린답시고 빠른
경제발전에 따른 보상금처럼 더 많은 돈을 국토 곳곳에 들이부어야 했고, 지금도 그 폐해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급하게
먹은 밥은 곳곳에서 체했고, 우리는 앞으로도 맑은 물을 위해서 깨끗한 공기를 회복하기 위해서 비싼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일들을
반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 스리랑카의 발전방향이나 개발계획은 이미 발생한 시민 사회단체들의 관심과 비판,
간섭과 제안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진중하게 실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이미 세계의 여러 시민 환경단체와
교류하고 있었고, 선진 NGO들은 친환경적이고 지탱가능한 개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활동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었습니다.
비록 스리랑카는 오랜 식민에서 벗어나 늦게야 경제 개발을 시작하지만 선진국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우리는
못내 그것이 부러웠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환경단체 없는 세상, 환경단체가 필요하지 않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으니까요.

조국 근대화란 미명하에 군사문화는 지역의 고유한 삶의 문화를 모조리 말살하고, 천편일률적인 시멘트화,
전국 어디서나 똑 같은 스레트지붕화, 조악한 블록 담벼락과 획일적인 건물의 모습을 낳아, 전통도 유래도 없는 조악한 주거환경
형태로 전락시키고 말았던 우리네 경험담을 씁쓸하게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글/ 거제통영환경연합 윤미숙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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