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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교과서’ 매도 공세를 보자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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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부가 개발한 초등학교 환경 교과서. ⓒ프레시안
▲ 환경부가 개발한 초등학교 환경 교과서. ⓒ프레시안

최근 환경부가 서울시 검인정 초등학교 환경 교과서를 펴냈다. 공교육 과정에서 이용될 수 있는 제대로 된 환경 교과서가 없던 터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환경이 큰 사회적 의제로 부각돼 왔지만, 정작 나라의 백년대계라 할 공교육에서는 환경 교육이 부실했던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 교과서 발간은 환경교육을 공교육에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는 데서 의미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최근 한선교 의원(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이 이 환경 교과서가 반기업적, 반시장적, 반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같은 주장은 객관적 진실을 감추고 환경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는 심각한 편견에서 나온 것이다. 환경문제와 기업의 역관계를 역사적 사실을 통해 짚어본다.

반환경 기업 퇴출은 건강한 시장경제의 출발

미국에서는 1980년대 카터 행정부 시절에 수퍼펀드법을 제정하고 그동안 기업들이 저지른 전국 각지의 환경오염을 복원하기 위해 300억 달러에 가까운 기금을 마련하였다. 이 법은 후버케미컬이라는 기업으로 인해 나이애가라 폭포 인근 마을이 유해한 화학물질로 오염된 것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자 이 마을이 미국에서 최초로 환경재난 지역으로 선포된 이른바 러브커넬 사건이 계기가 되어 제정됐다.

이 법은 환경오염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그 오염 제거를 위한 재원의 대부분을 기업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유니언 카바이드에 의한 보팔참사, 신일본제철로 인한 미나마타병 발병 사건, 낙동강의 페놀사건 등 세계사의 굵직굵직한 환경오염 사고는 모두 기업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었나. 기업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정화시설을 설치하지 않거나 설치해 놓은 정화시설의 가동을 멈추어 공기, 하천, 땅을 오염시킨 결과 오늘날과 같은 심각한 환경오염이 초래된 것이다.

이제 많은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하여, 그리고 환경보전을 위하여 앞다투어 노력하고 있다. 화석연료를 이용해 이윤을 내 온 석유회사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 보급에 앞장서고 있고, 자동차회사는 저공해 차량이나 폐기물 배출 저감을 위한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그 결과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가 확대되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환경보전을 위한 노력이 시장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환경보전을 위한 투자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시장경제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금융회사, 투자회사들은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회피하고 새로운 환경투자를 권장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환경보전을 위한 노력은 반시장적인 것이 아니라 건강한 시장경제를 촉진하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미국의 책임

요즈음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코카콜라, 그리고 엑손모빌과 같은 석유회사나 카길 등 메이저 곡물회사를 포함한 미국 기업들이 반환경적이고 인간의 건강을 해치는 기업으로 지목되어 유럽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조차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도덕적이지 않고 반환경적인 기업은 시장으로부터도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반기업 정서의 표출이 아니라 더 건강한 시장과 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시대적인 흐름인 것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는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전 세계 국가들이 기울인 노력의 결과물인 교토의정서의 비준을 기업의 이익에 반한다 하여 거부하고 있다. 그동안의 역사 속에서 세계 환경문제의 최소한 4분의 1 이상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는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 미국이 환경보전을 위한 노력에는 너무도 소홀하고 무책임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미국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 ‘반미’ 정서를 부채질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미국과 관련되는 경우에는 반환경적인 행동에 대해 아무런 비판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된다. 황당한 억지논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문제제기에 대처하는 환경부도 가관이다. 환경부는 일부 언론의 잘못된 비판에 영합하여 ‘기업’이 아닌 ‘공장’이 환경오염의 주체라고 하는 둥 본질을 회피하고 비껴가려고만 하고 있다. 공장의 운영주체인 기업에 환경오염의 궁극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며, 환경오염을 사전에 방지하고 친환경적인 경영을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 산업을 발전시키고 건강한 시장경제를 만드는 길이다. 또한 환경오염에 대한 미국의 역사적 책임을 묻고 지구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구 시민사회는 물론 미국 같은 선진국과 강대국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구 환경문제의 심각성 인식과 그 해결을 위해 세계 각국에서 환경 교육을 한층 강화하는 추세다. 2000년에 작성된 환경부의 ‘새천년 국가환경비전’은 녹색독재와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이념의 산물이 아니라 지구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정책의 원칙을 말한 것일 뿐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한국의 언론은 노동3권 주장과 민주화운동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친북, 좌익적 주장이라고 왜곡했고, 민주시민 교육과 인권 교육을 좌경의식화라고 매도했다. 그런데 그런 언론들이 이제는 지구환경을 보전하려는 전세계적인 노력을 좌우익이라는 냉전적 사고에서 바라보고 있다. 단 한치도 발전하지 못한 허접한 이념의 잣대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보전을 위한 전 세계의 환경교육을 신좌경의식화라는 허무맹랑한 억지논리로.

* 이 글은 12월 14일자 프레시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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