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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대한상의 회장의 ‘지속 가능한 발전’ 오해와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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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에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 만큼 전문용어이면서 일반에 많이 회자되는 말도 없을 것이다. 요즘은 사회 각 분야에서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지속가능한 도시전략, 지속가능한 자원관리, 지속가능한 관광, 지속가능한 교통정책, 지속가능한
산업정책, 지속가능한 에너지정책 등은 물론, 여기서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사회와 지속가능한 미래세대에 대한 논의에 이르기까지
지속가능성의 붐이 일고 있은 듯하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위기를 느낀 때문인지, 최근 산업계 일각에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원래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외국에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몇 가지 측면 가운데 ‘경제성장’을 상위의 개념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왜곡된 주장을 퍼뜨리기까지 한다. 특히 우리나라 산업계를 대표하는 공인이라 할 수 있는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몇 몇
일간지와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러한 왜곡된 주장을 여과없이 무책임하게 파급시키고 있어 사뭇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주:
http://www.yspark.com 및 중앙일보 중앙시평 등)


지난 4월 7일 중앙일보 31면에 실린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글(▶바로가기)
은 기업가 입장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해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오역, 오해 등 왜곡된 부분이 있어 이를 바로 잡고자 한다.

우선 박회장은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BCSD)’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경제성장과 생태와의 조화, 그리고 사회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경제 성장을 가장 상위 개념으로 친다고 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WBCSD에서 발간한 보고서나 홈페이지(www.wbcsd.org)를 보더라도 ‘sustainable development
via the three pillars of economic growth, ecological balance and social
progress’ 라고 되어 있어, ‘경제성장과 생태적 균형, 그리고 사회진보의 세 가지 기둥(pillars)을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번역되는 내용으로, 경제성장을 가장 상위 개념으로 친다고 하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 기둥이라는
것의 의미는 어느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요소로서 동시적 중요성을 말하는 것으로 경제성장이 상위라는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박 회장은 또 새만금간척사업과 천성산 터널 등 대형 국책사업을 예로 들며, ‘국가 발전을 위한 사업이 지연되면 대가는 누가
치르나’라고 말했지만, 이들 사업들이 과연 진정으로 국가발전을 위한 것인지 우리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오염된 시화호 사례나 각종 개발 사업의 후유증을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60년대
경제개발계획 이후 대부분의 사업들은 ‘개발 및 성장 일변도 정책’ 아래 추진되어 왔는데, 이 정책들 대부분은 바로 박 회장의
말대로 ‘경제성장을 상위개념으로 보던’ 시대의 시각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전 세계는 공히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박 회장은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
적어도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에서나 가능하다고 하는데, 이 주장 또한 원래 개념을 왜곡한 발언이다.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은 선진국, 개발도상국, 후진국을 망라하는 발전 전략이다.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회의 당시, 선?후진국을
망라한 150여 개국의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여기에 서명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은 각 나라의 경제적 수준에 맞게 추진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선진국은 선진국의 처지와
수준에 맞게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을 세워야 하는 것이며, 후진국은 또한 후진국의 사정과 처지에 맞게 추진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세계적 차원에서 각 나라의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이 종합되고 조정되어야 하는 것이 그 절차이다. 박 회장의 주장대로,
경제수준이 낮을 때는 ‘개발’과 ‘성장’을 해야 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은 선진국이 된 다음에 하자는 논리는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을 정확히 모르고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 산업계 대표격인 박 회장조차 그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 만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개념은 복잡다단하다. 그래서 어느 학자는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 바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몇 몇 환경윤리학자들은 ‘지속가능성’을 윤리적 측면, 문화적 측면, 사회적 측면, 경제적 측면, 환경적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윤리적으로 생명과 평화를 구현하며, 문화적으로 다양성을 인정하며 상호존중하고, 사회적으로 인권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며, 경제적으로
맹목적으로 최고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최적 이윤을 추구하고, 환경적으로 생태효율을 높이고
환경보전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글의 끝부분에서 ‘후손에게 깨끗한 환경,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남겨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우리는 개발도 하지 말고 자원도 쓰지 말자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라고 쓰고 있는데, 환경단체들은 ‘개발도 하지 말고
자원도 쓰지 말자’고 주장한 적은 한번도 없다. 단지 ‘지속가능한 발전’ 원칙에 따라서 개발도 하고, 이 원칙에 따라 자원도
사용하자고 주장할 뿐이다.

우리사회가 ‘지속가능한 발전’ 이라는 화두로 첨예하게 논쟁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한 ‘생산적인 과정’이자,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사회적 산고(産苦)’의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이나 후진국의 입장을 포함하여 지금 우리
세계시민이 견지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은 다소 추상적이지만, 아주 쉬운 표현을 빌어 정곡을 찌르는 개념으로
정의되어 있다.
즉,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Development
that meets the needs of the present without compromising the ability
of future generations to meet their own needs)이라는 개념. 우리가 가끔씩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이 모호할 때는, 가끔씩 이 말을 떠 올려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 보자.

글/ 기업사회책임위원회 황상규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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