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 활동소식

“나는 집착하지 않으니 해탈할 일도 없을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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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진(林吉鎭)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께서 2004년 2월 9일 오후 8시57분(미국 현지시간) 미국 미시간주 랜싱시티에서 교통사고로 향년 59세를
일기로 타계하셨습니다.

고인은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 도시계획학 석사와 프린스턴대 도시계획학 박사를
거쳐 지난 91년부터 5년간 미시간 주립대 국제대학원장을 맡았으며, 이후 이 대학의 석좌교수로 재직해오며, 2003년 최열,
신인령 대표와 함께 환경연합 공동대표를 맡아 국내 시민사회의 세계화와 환경운동의 큰 나무로 활동하셨습니다.

실천하는 지성으로서의 귀감과 넉넉한 리더쉽을 보여주셨던 임길진 대표님을 기리는 이윤기 님의 글과
함께, 생전 고인의 업적을 미약하게나마 정리해 봅니다.

<고인을 기리며>
















이윤기 소설가·번역가


1991년 6월 6일 오후 1시, 나는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 국제대학의
한국인 학장을 만나게 되어 있었다.
서울대에서 학사, 미국 명문 하버드대에서 석사, 역시 명문인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라고 했다.

한국 여권을 지닌 최초의 미국 주립대학교 학장이라고 했다.

호텔 밖은 몹시 더웠다.

하지만 나는 준비해간 양복, 그것도 두꺼운
춘추복으로 정장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학장 댁으로 갔다.

반바지 차림의 한국 학생 서넛이 뜰에서 고기를
굽고 있었다. 나이가 좀 든 학생도 있었다. 그 학생의 반바지 길이는 거의 수영복 수준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용무를 말하고는, 쏟아지는
땀을 닦으면서 뜰을 지나 거실로 들어섰다.

학장 비슷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서재 문이 열리면서, 나비 넥타이로 정장한,
점잖은 학자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그가 영어로 말을 걸 것인지, 한국어로 말을
걸 것인지 그것도 견딜 수 없이 궁금했다.

영어로 말을 걸면 나는 망한다, 제발 한국어로
말을 걸어주었으면…. 거의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밖에서 고기를 굽던, 반바지 차림의,
예의 그 나이 든 학생이 거실로 들어섰다.

그는 악수를 청하고는 손을 내미는 나를 끌어
덥석 껴안더니 조금도 미국화하지 않은 한국어로 말했다.

“가벼운 차림으로 오실 줄 알았는데, 내가
틀렸네요. 양아치 임길진입니다.”

그 자칭 양아치가 바로 한국인 학장 임길진
박사였다. 당시 내 나이 45세, 그의 나이 46세였다.

소탈하다기보다는 탈속한 듯한 그 모습에 완전히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해 여름부터 5년 동안 나는 배우고 또
익히면서, 완전히 세계화한 이 한국인, 완전히 한국화한 이 세계인 스승의 곁을 맴돌았다.

미국 부통령과 너나들이를 하고, 주지사의
어깨를 중심이 무너지게 칠 수 있을 만큼 미국인들과 가까웠어도, 그는 끝내 한국인이었다. 그는 미국 대학의 행정가일
때는 증오처럼 강경했고, 조선 선비일 때는 오래된 술처럼 순후했다.

그는 도시계획학 학자이기도 했고 한국어로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시를 쓰되 한글로는 물론이고, 한문으로도 쓰고, 영어로도 썼다. 그는 문인화를
습작하는 아마추어 화가이자, 판소리를 애호하는 귀명창이자, 태권도 고단자이기도 한 토종 한국인이었다.

미국의 한국인들에게 하던 그의 공격적인 제안이
귀에 쟁쟁하다.

“…유학생들이나 연구원들로부터, 아들딸에게
영어만 가르쳐야 하느냐, 한국어도 가르쳐야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지요. 다 가르치세요. 왜 한 가지만 가르쳐요?
힘이 남으면 일본어와 중국어도 가르치세요. 프랑스어도 가르치고 독일어도 가르치세요. 미국 와서까지 김치와 고추장
타령 하려거든 다 틀렸으니까 한국으로 돌아가세요. 김치 타령도 하고, 햄버거 타령도 하세요. 그리고 이곳은 미국이니까
무엇보다도 영어로 말하세요. 컴퓨터를 배우세요. 영어와 컴퓨터 모르고는 반미도 안 됩니다. 배우세요, 안 되면
죽어버리세요….”

독신이었던 그는 술과 담배도 즐기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즐기는 것은 조금도 방해하지 않았다. 담배도 더러는 내 것을 빼앗아 피웠다. 중독되면 어쩌게요 하고
내가 걱정했을 때, 그가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집착하지 않으니 해탈할 일도 없을
거요.”

새 세기 들어서는 환경운동연합의 공동대표가
되어, 조국의 환경운동까지 훈수하던 그의 부음(訃音)을 그제 들었다. 우리가 즐겨 다니던 음식점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아, 학장님, 학장님, 우리 학장님.

▲이 글은 조선일보 2월 11일자([문화비전]
학장님, 학장님, 우리 학장님)에 실린 기사입니다.

■ 장례관련 일정

○ 국내 유해 도착 일시= 2월 16일(수) 오후 4시 45분, 인천공항

○ 빈소= 삼성의료원 장례식장 (17호실, 02-3410-3151)

○ 발인= 2005년 2월 18일(금) 08:30

○ 장지= 충남 천안시 광덕면 신덕리 “천안공원묘지”

문상은 2월 16일(수) 19시부터 가능합니다.

○ 연락처
(해외) 미국 미시간 현지 전화: 517-336-0018/ 517-862-7686 김태중
(국내) 김혜정(환경연합 처장 011-413-1260, 김미현국장 011-9069-3487)
이만형(개발연구협의체사무총장 019-9402-2369)

■ 고인의 생전 활동

○ 경력
– 현)환경연합 공동대표. 주거복지연대이사장, 한국부패학회 회장, 부패방지위원회 자문위원

– 생년월일 : 1946년 11월 10일

– 학 력 :
1975. 9 – 1978. 8 Princeton 대학교 계획학 박사 (Ph. D.)
1973. 9 – 1975. 6 Harvard 대학교 도시계획학석사 (M.C.P.)
1971. 9 – 1973. 8 서울대학교 대학원 (공학석사)
1965. 3 – 1969. 2 서울대학교 공과 대학 건축공학과 (공학사)

○ 교수 경력 :

– 1998 KDI 국제정책대학원 원장

– 1995 – 현재 미시건 주립대학교(Michigan State University)

– 세계 속의 아시아 석좌교수 겸 지리학과, 도시계획학과 및 토목 및 환경공학과 교수 인간적 세계화 연구회장

– 1991. 1 – 1995. 10 미시건 주립대학교 국제대학장 겸 지리학과 및 도시계획학과 교수

– 1985. 9 – 1990. 12 일리노이주립 대학교(University of Ill.v.c.)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공공정책연구소 부교수, 정교수, 학부 주임교수

– 1980. 9 – 1985. 8 프린스톤 대학교(Princeton University) 외교행정대 조교수

겸 행정-계획학 석사 과정(MPA -URP) 주임 교수

– 1978. 9 – 1980. 8 노스웨스턴 대학교(Northwestern University) 공과대학 조교수

학술단체 정회원: 미국경제학회
미국정치학회
미국토목공학회
유럽국제교육학회
한국정치학회
한국경제학회
한국경영학회

○ 자문위원 및 사회활동:

세계은행자문위원
아시아개발은행 자문연구원
미국 국방성 자문위원
미국 국제원호처 자문위원
미국-독일위원회 자문위원
미국 교통성 Project 연구원 주임
미시간 주 한국-미시간 국제통상위원회 위원장
미국 중서부대학교 국제사업총연합회(MUCIA) 부이사장
미시간 일본센터 행정위원장 의장
한국 교육부 자문위원
한국 국토연구원 초청연구원
세계청소년 네트워크 회장
한백재단이사
미국 미래재단 고문
한국여성정보원 이사
아름다운재단 (참여연대) 이사
여성정보문화21 자문위원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이사
청년세계탐구단 이사

○ 저술 :

미래를 위한 인간적 계획론 (나남출판사, 1995, 1997)

세계적 대학을 위한 전략(Strategy for Global University), MSU, 1995

사회주의 중국의 주택정책, 나남출판사, 1993,
국가발전 전략계획, 지역개발, 주택, 환경, 국제교육에 관한 다수의 논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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