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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말있습니다]수돗물 신뢰 회복의 길

1990년대 초,10여년 살던 서울 강북의 단독주택에서 강남 초입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편리하기
그지없다는 아파트에 입성한 다음 날 아침,쌀을 씻기 위해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붉은 녹물이 나
오는 것 아닌가. 20년 된 아파트라지만 너무 한다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영문을 알아보았다.

결론인 즉,아파트가 지어진 70년대 초반에는 녹을 방지할 수도관이 사용되지 않아 녹물이 섞여
나오는 것이고 아파트에 공급되는 물은 적어도 24시간∼수일간 아파트 내 물탱크에 고여 있는 것
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면 물탱크를 정기적으로 청소하면 되겠다는 나의 말에 이웃 주부들은 대
뜸 “수돗물을 어떻게 믿나”고 반문했다. 내 불쾌한 경험에 대한 답변은 물탱크 청소나 노후한
옥내 수도관 교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이웃 선배들의 말처럼 ‘믿을 수 없는 수돗물’에 노력을 쏟느니 가족 건강을 위한 최
상의 선택이라고 자위하면서 생수를 주문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 후 상수원 오염 보도와
매일 아침 쏟아지는 녹물을 보며 막연히 ‘수돗물은 마실 만한 물이 아니다’는 사실에 동조하
고 지냈다. 정부가 발표하는 수질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그들 스스로의 평가를 어떻게 믿겠느냐
며 정수기 설치라는 유행까지 철저히 따라갔다. 공동 주택의 문제였던 옥내 수도관과 물탱크 문
제도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수돗물 불신에다 쓸어 넣어 버렸다.

그러나 최근 ‘수돗물 품질관리제’ 같은 종합관리서비스를 도입해 시민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
해 행정당국이 발로 뛰고 있다는 보도와 생수·정수기가 잘 관리되지 않으면 오히려 건강에 해로
울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접하면서 수돗물에 대한 근본적인 의식 변화가 있어야겠다는 생각
을 갖게 됐다. 신뢰란 한 번 상실하면 장기간의 노력이 있어야 간신히 회복되는 것이긴 하지만
당국의 의지가 분명하고 시민들 또한 더 마음을 열고 이해하려는 유연성을 가진다면 공동의 노력
으로 회복할 수 있는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사항들이 개선되어야 할 것 같다.

우선 수돗물을 생산·관리하는 기관은 과학적이고 정확한 정보 공개와 시민에게 친근감을 주는
서비스를 제공해 신뢰를 높여야 한다. 수도관망(網) 교체 현황이나 관리 방안 혹은 취약성,문제
해결의 과학적 방안 제시 등에 대한 정보 공개는 충분히 신뢰감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언론은 수돗물 오염이나 관련 보도를 할 때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정확한 정보를 독자
에게 전달하도록 조금 더 차분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실제 내용과 달리 제목만 보고
전혀 다른 선입견을 갖게 한다면 정확한 정보의 나눔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공동 주택의 물탱크,혹은 개인 주택의 낡은 수도관 등의 문제는 정부에서 직접 접근할 수 없지
만 관 교체에 필요한 비용 대출 등을 고려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어차피 가정에서는 수도관의 끝
에서 물을 받으므로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역시 총체적 불신으로 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점은 상수원 보호 문제인데 마시는 물에 대한 법규가 더욱 엄격해야 된다고 본
다. 인원 부족 문제도 있지만 적발된들 그다지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기
떄문이다. 수돗물의 소독약 냄새나 맛이 싫어 개인 취향에 따라 생수나 정수기를 사용할 수도 있
으나 수돗물에 대한 불신으로 전국민이 생수나 수돗물을 선호한다면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잘 관
리되지 않을 경우 건강상 문제까지 겹쳐 심각한 국가 경제의 낭비를 초래할 것이다.

심산유곡의 약수나 지하수가 한없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정수기 생산시설을 무한정 늘리는 것이
최상이 아닌 바에야 우리 나라 최고의 물 전문가들이 주야로 뛰면서 생산·관리하는 수돗물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공동 대처하는 것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방법의 하나가 아닐는지.

백현욱 (분당제생병원 소화기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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