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 활동소식

‘세상에 이상적인 생태공동체가 존재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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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핀드혼 공동체는 세계 생태공동체 네트워크(Global Ecovillage Network)의 창립 멤버이자 유엔의
지속가능한 지구촌 만들기 운동의 파트너로서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마을.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던 영국
최북단고지대의 모래땅에 창립자 아일린과 폴 부부가 처음 캠핑카를 세우고 40년, 그동안 핀드혼 공동체는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정원에 둘러싸인 태양열 주택에서 2백50여 명의 멤버가 부딪기며 살아가는 생생한 생태적 삶의 현장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기적의 원동력이 ‘자연 속에 존재하는 영적인 존재와의 교류’에 있다고 믿는 이곳 사람들은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거부하며 영적인 잠재력을 증폭시키는 춤과 노래, 미술과 옛날이야기를 첨단 대체에너지 기술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주일부터 3개월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연중 계속된다. www.findhorn.org


[잠깐! TIP] 핀드혼 공동체의 ‘생태마을 만들기’(Eco-Village
Training) 프로그램

생태마을을 이루는 요소를 8개 분야로 나누어 4주간 집중 훈련하는 프로그램. 강의와 토론, 실습과 견학이 일주일에
엿새,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이루어진다.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세계 모든 대륙에서 날아온 올해 서른 명 가량의
참가자 가운데는 건축가와 생태마을 지도자, 시민단체 간사 등 전문적인 경험을 가진 이들부터 생태적인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비전을 꿈꾸는 보통사람들까지 포함되었다. 교육내용은 ①살아남은 생태공동체의 공통점와 그 역사
②그룹 소속감과 효율적인 의사결정 ③퍼머컬처 ④농산물 생산과 자급자족 공동체 ⑤생태건축과 대체에너지 ⑥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지역 경제 ⑦‘깊이 있는 생태학’(Deep Ecology)과 야생자연복구 ⑧치유하는 예술. 영어가 공통어이지만
일상대화가 많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하다. 원하는 과정만을 단기 수료할 수 있으며, 전과정 참가비는
약 2백40만 원. 매년 2월경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전해 8월경에 최대 40%까지 참가비 감면을 신청할 수 있다.

트레버, ‘미국 중산층 백인 남자
대학생’의 꿈

“돌이켜보면 이번 프로그램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팀의 막둥이 스무살 트레버가 먼저 입을 열었다. 4주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으로 둘러앉아 소감을 나누는 자리. 핀드혼에서
사람들에게 ‘소감’을 말한다는 것은 곧 자기 마음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진실한 내면의 소리를 꺼내놓는다는 뜻이다. 트레버의 처음
계획은 ‘생태마을에 관한 가능한 한 많은 지식을 산더미같이 머릿속에 쑤셔넣은 다음, 지금까지의 고민을 단방에 끝내줄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다른 참가자들한테 우려내는 것’이었다고 했다. 믿을 만한 전문가들의 안내를 받으며 전세계에서 모인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건축과 경제, 예술에 이르기까지 생태마을의 모든 것을 훑어보는 야심만만한 프로그램이었던 만큼 그런 기대도 지나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오전과 오후 두 번의 휴식시간과 식사시간을 제외하곤 하루종일 쉬지 않고 이어졌던 강의와
실습, 견학, 게임과 토론의 시간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서,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에 참여했던 트레버가 얻은 것이 ‘자기 자신의
발견’이라니 어쩐지 생뚱맞게 들렸다. 하지만 촛불을 가운데 놓고 둥글게 둘러앉은 서른 명의 멤버들은 그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헝가리에서 성공적으로 생태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카티 할머니도, 브라질 열대림 속에 자리잡은 작은 생태마을을 돕고 있는 멋진 청년
두두도, 미얀마에서 농촌자강운동을 펼치는 굼샤와 노자 아저씨도 끄덕끄덕 깊은 눈빛을 보냈다.

트레버가 내게 처음 남긴 인상은 ‘헐리웃 발음을 가진 발랄기발한 20대 남자애’였다. <섹스북>을 들고다니며 랩을
흥얼거리고 말끝마다 ‘f××ing’을 발음하는 파란 눈의 그에게서 미국 청춘영화에 등장하는 세상걱정 없는 지루한 젊음의 표본이
저절로 연상되었다. 그래서 첫 번째 ‘참가자 발표’ 시간에 그애가 자기 마을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시건에 있는 우리 지역은 사정이 좀 복잡해요. 북쪽에는 돈 좀 있는 백인들이 사는 열라 깨끗한 동네, 동쪽에는 얼굴은 하얀데
돈은 없는 사람들 사는 후진 동네가 있고 제일 남쪽에는 돈도 없고 태어나기를 ×같이 태어난 흑인들이 살거든요? 마약 좀 하는
건 그 동네 기본이에요. 도대체 별로 넓지도 않은 지역인데 이렇게 동네가 나눠져 있으니까 사람들이 길에서 마주쳐도 아는 체도
안 하고 괜히 불안하고 사는 게 신이 안 나는 거죠.”
그래서? 그래서 트레버는 피부색과 경제조건으로 조각조각 나뉜 사람들을 한 군데 모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지역 내에 작은 공동체 농장(Community Garden)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학에서 환경개발학을 전공하면서 접한
새로운 세계관도 한 계기가 되었다. 트레버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작은 공동 농장을 만들어 지역사람들이 함께 돌보자는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잘사는 백인 지역에서 온 스무살 어린 청년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게 들렸을 법도 한데, 의외로 사람들의 반응이
호의적이었다.

일단 자기 집 근처에 과일을 따먹고 야채를 거둬 먹을 수 있는 정원이 생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유기농 채소를 직접
가꿔 먹을 수 있다니 대찬성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삭막한 지역 분위기가 싫었는데 생각 참 잘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주민 두 사람과 함께 중심그룹을 만든 트레버는 적절한 정원 부지를 알아보는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 도화선에
불이 붙자 그 다음부터는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토질분석과 작물 선정 같은 농업적인 문제부터
주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정책적인 문제, 지역민들과 모여 의견을 조율하는 의사결정 문제까지. 이런 문제들과 씨름하며 분주하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한편에서는 이번 프로젝트가 전적으로 트레버 자신의 양어깨에 달려있다는 부담감도 은근히 자라기 시작했다. 그의
목표는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결실을 맺는 단계가 되면 중심그룹의 역할을 지역 사람들에게로 완전히 넘기는 것이다.
스무살의 대학생으로서 아직은 혼자서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해보고 싶은 일도 많기 때문이다. 이날 트레버의 발표가 끝나자 사람들은
자기 전문분야를 살려서 작물을 선정하고 비닐하우스 만들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지역정부를 설득하는 노하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진 한 달간의 프로그램 내내 트레버는 눈을 빛내며 농업과 건축, 기업컨설팅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고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다.

“궁금했던 모든 질문에 답을 내리기에 한 달은 턱없이 짧은 기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총정리를 기대하면서 왔는데
실제로 얻은 것은, 웃긴 말이지만, 새로운 출발점이에요. 생태마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려고 기를 썼던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게 뭔
줄 아세요. 나는 누구인가, 영혼을 울리는 공동체적인 삶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들이에요.”

그 순간 나는 건축가 그레이엄을 떠올렸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멤버들이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꼽았던 생태건축 파트. 그 중에서도
그레이엄의 이야기는 공동체의 ‘영혼’이 무엇인지를 강력하게 암시하는 것이었다.

그레이엄의
‘영혼이 깃든 집’

생태건축 파트는 다분히 현실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예를 들면 건축자재를 장거리 운송하는 데 드는 화석연료(대표적으로
석유) 때문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량이 증가하고, 결국은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알루미늄을 생산·가공하는
데 드는 석유량이 어마어마하다는 설명도 듣고, 결과적으로 지역 내에서 한 번 사용된 건축자재를 재활용하는 것이 가장 생태적인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그런 다음 드디어 공동체 근처 바닷가에 자리잡은 그레이엄의 공사현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 유럽에서 가장 야생에 가까운 지역으로 남아있는 스코틀랜드 최북단, 핀드혼 만의 모습. ⓒ 미루

잉글랜드가 구름 잔뜩 낀 우울한 날씨로 유명하다면 하루에도
수십 번 얼굴을 바꾸는 변화무쌍하고 웅장한 기후야말로 스코틀랜드의 자랑이다.
얼마나 변덕스러우냐 하면 ‘날씨가 마음에 안 들면 5분만 기다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 날은 웬일인지 부드러운 뭉게
구름 사이로 황금빛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온화한 날씨가 오전 내내 평화롭게 계속되었다. 거의 공사 마무리 단계에 있는 그레이엄의
원통형 2층집 발코니에 올라가서 바라다보니 소나무 방풍림 너머로 핀드혼 만(Findhorn Bay)의 수면이 일부러 정성들여
닦아놓은 것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집 내부는 나선형의 특이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1·2층을 연결하는 나선형 계단은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조금씩 어두워지고
폭도 좁아지는데 그레이엄은 그 이유를 ‘명상을 위한 방이 있는 아래층은 좀더 비밀스럽고 개인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재미있는 건 거실(집의 중앙을 넓게 차지한 공간)에서 시작해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차례대로 주방→화장실→방 1·2→발코니→다시
거실로 이어지게끔 벽과 문이 이어져 있으며, 그 구조 또한 나선형이라는 점이었다. 그레이엄은 나선형을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조금 늦게 도착하더라도 여유있게 돌아가면서 전체 공간을 껴안는 나선형의 넉넉함을 사랑한다고 그는 나중에 이야기했다. 넉넉한 나선형을
품은 집에 살면서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스스로와 가족들에게 상기시킬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겠느냐고.


▲ 지역공동체 내 자체 하수처리 시스템 ‘리빙머신’. 박테리아 분해 작용을 거쳐, 주방과 욕실의 하수가
새로운 생활용수로 90% 이상 재활용된다. ⓒ 미루

생태건축 분야에서 쌓아온 수십 년의 경험이 아깝지 않게,
에너지 효율 면에서도 그레이엄의 집은 훌륭한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다. 일단 그 큰 집에 라디에이터(영국의 대표적인 난방 장치)
하나 없었다.
슬로바키아에서 들여온 보일러는 가스나 기름 대신 장작을 연료로 쓰는 것으로, 여기서 발생되는 열로 온수를 공급하고 그 온수 파이프가
시멘트 바닥 아래를 통과하면서 바닥 온도를 17~18도씨 상온으로 유지, 실내 온도를 적절하게 지켜준다. 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라디에이터로 뜨거운 공기를 뿜어내는 것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했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가스나 기름으로 바닥을 데우면 어마어마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방출돼서 오히려 환경을 해치게 되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나무 땔감을 쓰는 온돌 난방은 훌륭한 친환경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로바키아산 장작 보일러의 가격은 1천7백 파운드,
우리 돈으로 3백40만 원 정도. 주변 숲에서 쉽게 장작을 구할 수 있는 여건을 생각한다면 초기 투자비용으로 괜찮은 가격이 아닌가.

신기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창문이 없는 1층(실제로는 반지하) 천장에 직경 40cm 가량의 원형 창을 내고 볼록렌즈가 달린
투명 플라스틱 판을 댄 것이 눈에 띄어 물어보니, 호주에서 들여온 ‘태양광 튜브’(Solar Tube)로서 약한 태양빛이라도
렌즈를 통과하면서 수만 번의 반사를 거쳐 환한 자연광 효과를 낸다는 것이었다. 둘러보니 창문 하나, 작은 전구 하나 없는 아래층
복도가 과연 은은한 자연광으로 빛나고 있었다.


▲ 태양열 전지로 온수를 공급하는 공동주택. 사진 속 공동부엌과
라운지를 갖춘 공간에 여섯 사람의 독신자가 살고 있으며, 획기적인 에너지 절약 효과를 거두고 있다.
ⓒ 미루

집안 구경을 마친 뒤 그레이엄은 천장의 유리창 너머로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2층 거실에
우리를 불러모았다. 둥근 유리창 주변에는 굵은 나무 기둥 십여 개가 원을 그리며 천장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 이 집을
구상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몇 년 전 한 남자가 찾아와서 자기 스튜디오를 설계해달라고 했습니다. 작가인 그 남자는 굳이 내가 그 일을 맡아야만 한다고
고집하면서, 별 관심이 없던 나를 몇 번이나 찾아와서 졸랐어요. 그의 바램은 답답한 육각형의 콘크리트 상자 대신 자연의 미묘한
균형감을 간직한 유기적 공간 안에 앉아,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성을 성찰하는 글을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도 끈질긴 그의 설득에,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일단 ‘완벽한 균형의 유기적 공간’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보는 대로(50cm
길이의 잘 다듬어진 얇은 나무 막대 아홉 개를 꺼내놓으며) 막대 몇 개를 가지고 새로운 건물 틀을 만드는 장난을 시작했습니다.
자, 이렇게 막대를 하나 바닥에 놓고, 그 위에 머리 부분이 겹쳐지도록 다른 막대를 비스듬하게 올려놓고 그 위에 다시 다른 막대를
비스듬히 얹고… 그러면 나선을 그리면서 무한히 많은 막대를 쌓을 수 있습니다. 8번 막대 위에 9번을 얹을 수 있는 것처럼 2만3천4백70번
막대 위에 2만3천4백71번을 올릴 수가 있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나선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영원히 열린 공간으로는
건물을 완성할 수가 없어요. 건물을 완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마지막 9번 막대의 머리를 처음 1번 막대의 머리 아래로 밀어넣는
겁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마지막 막대가 처음 막대 아래에 놓이는 순간, 아홉 개의 막대가 완전히 맞물리며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힘의 균형이 생겨납니다. 막대들의 겹쳐진 머리 부분은 저절로 바닥에서 들어올려져서 천장이 생기고 그 아래 공간이
생기면서 우리가 살 방이 만들어집니다. 실제로 건물을 지을 때는 1번 막대를 적절한 높이로 유지시켜주는 강력하고 안정된 받침대가
필요해요. 하지만 마지막 막대를 그 아래 밀어넣는 순간, 놀랍게도 더 이상 받침대가 필요 없는 스스로 완전한 건물이 완성되는
겁니다.”

그는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이 거실의 천장도 똑같은 방법으로 완성되었다고 말하더니 돌연 아홉 개 막대기로 즉석에서 만든 작은
구조물 위에 번쩍 올라섰다! 1백80cm 장신의 남자가 올라탔는데도, 장난감 막대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더 이상 그것은 장난이
아니었고, 장난감 막대도 더 이상 우스워 보이지 않았다. 막대들이 만들어낸 것은 아름다운 균형만이 아니라 내재된 강력한 힘이었다.
주위에 둘러앉아 있던 우리들은 아연실색, 충격과 감동으로 멍한 상태에 빠졌다. 공동체의 시작과 완성, 그 완전한 균형와 힘이
미니어처로 우리 앞에 재현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 공동체의 풍력 에너지 비율을 현재 9%에서 2007년까지
60%로 확장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 미루

이틀 뒤, ‘생태건축과 대체에너지’ 수업의 마지막 날 공동체 뒤안의 넓은 벌판에 우뚝
선 풍차를 둘러본 우리들은 스코틀랜드 소나무가 빽빽이 우거진 숲으로 들어가 열 두 개의 커다란 나무 기둥으로 그레이엄의 구조물을
직접 만들었다.
지난 겨울 돌풍으로 뽑혀져나간 아름드리 나무들이 주위에 산재해 있어 기둥을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전기톱으로 잔가지를 쳐내고
길이를 일정하게 맞추기만 하면 되었다. 튼튼한 받침목을 수직으로 세운 다음 첫 번째 기둥을 올리고, 거기에 비스듬하게 두 번째
기둥을 올리고… 마침내 받침목을 들어내며 열두 번째 마지막 기둥을 첫 번째 기둥 아래 밀어넣었다. 그러자 오직 기둥들이 서로를
받치는 힘으로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는 작은 오두막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런, 정말 되잖아…! 팀의 간사이자 반평생을 핀드혼에서
살아온 크레이그 아저씨가 기뻐하며 말했다.

“모닥불 둘레에서 춤출 수 있는 숲속의 비밀공간으로 이용해야겠는걸!”

하나의 훌륭한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막대를 더 나은 목재로 가공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다만
비슷한 굵기를 가진 다른 막대를 열심히 모으고 당분간 안정된 받침대를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니. 핀드혼 공동체의 역사야말로 그
완벽한 예였다. 자연의 정령들에게서 받은 메시지를 그대로 실행에 옮김으로써 성공적으로 모래땅을 비옥한 토지로 바꾸어낸 창립자
아일린과 카리스마를 갖춘 그녀의 남편은 처음 20년 동안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어느날 아일린은 ‘나의 메시지를
더 이상 사람들에게 전하지 말라’는 정령의 소리를 들었고, 결과적으로 그녀의 침묵은 공동체의 다른 멤버들에게 골고루 중심 역할을
나눠주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오늘날 핀드혼은 하나의 커다란 연못과 같다. 여기저기서 무수한 동심원들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겹치며 만들어내는 하모니. 그 창조적인 역동성에 끌려서 사람들이 전세계에서 찾아오고, 그들의 에너지는 다시 핀드혼의 문화적 다양성에
기름진 거름을 제공한다.

핀드혼을 하나로 묶는 끈

이번 프로그램의 제일 첫 시간에 우리는 ‘왜 어떤 공동체는 금세 사라지고, 어떤 공동체는 세대를 이어 지속될까’ 하는 의문에
부딪혔다. 유엔의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정열적인 브라질 아주머니 메이가 거기에 몇 가지 해답을 제시했는데,
그 중 한가지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나보다 더 큰 존재에 함께 속하고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서로에게서 깊은 공동체 의식을
발견하고 끈끈하게 연결된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그 소속감이 특정한 종교나 영적인 교감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명쾌한 문장으로
명시된 미래에 대한 비전을 나눔으로써 생겨날 수도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전통마을에서 공동체의 소속감은 흔히 장례의식을
통해 표면으로 드러난다. 죽음을 맞이하고 이해하는 중요한 의식을 치루면서 사람들은 지지고 볶고 다투는 일상생활의 이면에 서로를
끈끈히 이어주는 영적인 유대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한다.


▲ 모닥불 모임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천막 안에서. 핀드혼의 ‘산 역사’ 크레이그가 소라고둥을 불고
있다. ⓒ 미루

핀드혼 사람들을 이어주는 ‘끈’은 무엇일까? 두 가지 차원의 믿음이 강력한 끈으로 작용하고
있다. 첫째는 모든 자연의 생물과 사물들은 지적인 능력과 감성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 둘째는 그 생물 및 사물들과 사람, 또한
사람과 사람은 서로 인종과 성별과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평등하다는 절대적인 신뢰.
이러한 믿음을 일상생활 속에서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이곳 사람들은 매일 격려받는다. 공동체 식당에서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사람들은
뷔페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손에 손을 잡고 둘러선다. 그날 요리를 담당한 사람은 ‘잠시 눈을 감기를 청합니다. 녹색 채소와 감미로운
올리브 오일, 그들을 키워낸 대지의 에너지가 우리 몸과 평화롭게 하나가 되기를 청합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날의 요리와 요리사,
함께 서있는 사람들의 기운을 느끼며 침묵을 지킨다. ‘조율(Tuning)’이라고 불리는 이 의식은 모든 공식적인 회의와 명상시간에는
물론, 파티와 음악회 전에도 간단히 치러진다.
단 20초 동안의 조율이 사람들의 태도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지 지켜보면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옆사람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인다. 이거야말로 어떤 선사님이나 공자님의 말씀보다
강력하지 않은가. 각 사람 안의 긍정적인 잠재력을 신뢰하는 것.

생태마을 프로그램에 참여한 서른 명의 우리 멤버들도 물론 매일 아침, 매일 오후, 매일 저녁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서로 손을
잡고 조율을 거쳤다. 마지막으로 몇몇 친구들과 숙소에 모여 맥주잔을 기울일 때 누군가 말했다. “우리야말로 하나의 작은 공동체였어.
그렇지 않아?” 그날 저녁 모였던 이들은 그 말에 완전히 동의했다. 마음의 문을 완전히 열 때의 홀가분한 기분과 그 뒤에 찾아오는
끈끈한 공동체 의식은 부인하기 힘든 강력한 것이었으니까.

이 글을 쓰는 지금, 생태마을 프로그램이 끝난 뒤 모처럼만의
홀가분한 시간을 핀드혼에서 보내고 있는 중이다. 첫날에는 이곳에서 15년째 살고 있는 친구와 함께 스쿠터를 타고 근처 계곡에
피크닉을 다녀왔고(그와는 복도에서 인사하며 우연히 친해졌다) 어제는 하루종일 ‘깊이있는 생태학’(Deep Ecology) 워크숍에
참여해서 거의 처음 만나는 11명의 사람들과 더불어 자연파괴와 이상기후 변화, 전쟁, 기아, 가족의 해체를 대하는 절망감을 토로했다.
워크숍의 제목은 ‘절망에서 얻는 새로운 힘’(Despair and Empowerment). 죄책감과 두려움, 절망이라는 부정적인
반응을 그룹 안에 털어놓는 과정 속에 자기 안에 숨어있는 긍정적인 변화의 힘을 깨닫는 것이 워크숍의 목표였다.


▲ 모임에는 언제나 촛불이 빠지지 않는다. 때로는 흙과 물, 향이
담긴 대접을 같이 놓고 불, 흙, 물, 바람의 4원소의 에너지를 느끼도록 한다. ⓒ 미루

텔레비전과 인터넷에서 끔찍한 자연파괴 소식을 대할 때마다 답답함과 무기력함을 느껴왔던
나에게 이날의 모임은 중요한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런 다음 공동체 내 카페에 들러서 멤버들의 노래와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열린 무대’(Open Mike)라는 이름으로 격주마다 열리는 이 행사는 이름 그대로 원하는 사람 누구나 마음껏 끼를 발산하는
흥겨운 자리였다. 여기서 우연히 만난 한 친구가 내게 와인을 샀고, 또다른 친구가 수요일에 바닷가에서 모닥불 파티를 열자고 제안해
기쁘게 수락했다.

핀드혼의 문화는 입이 떡 벌어지도록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인간관계는 감성을 꽃피우게 하고, 거의 매주마다 열리는
학술적이거나 문화적인 행사들은 적절한 지적자극을 준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한다. 이곳이야말로
평생 자기가 이루고 싶었던 바로 그 공동체의 모습이라고. 나는 이상주의자의 모험을 특별히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세상에
한 군데쯤, 이상적인 공동체가 실현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분명히 즐거운 일이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aboveink)

※ 이 글은 월간[이장](http://www.e-jang.net)에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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