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 활동소식

‘숨 쉬라, 너는 살아있다!’ 프랑스 자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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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마을(plum
village)은 아름다운 명상서적으로 잘 알려진 틱낫한 스님의 명상센터로 프랑스 보르도 지방 포도밭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매순간 호흡하며 명상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중심으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수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모든
물자는 창고 안에 분리해서 쌓아둔 뒤 자체적으로 재활용하고, 음식을 남기지 않고 설거지물을 공동으로 쓰는 등
우리나라 사찰에서와 같이 기본적으로 환경친화적인 생활방식이 이용된다. www.plumvillage.org에서
참가신청 및 할인혜택을 문의할 수 있다.



▲ 아랫말의 작은 연못과 벤치. 푹신한 잔디를 밟으며 산보하기엔 그만이에요.
한국출신
비구니스님 띤님과 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미루


세 가지 만남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화창한 오후. 자두마을 아랫말(Lower Hamlet)에 도착했을 때 먼저 눈에 띈 것은 농가를 개조한
몇 채의 허름한 석조건물이었다. 잎사귀를 모조리 떨군 땅딸막한 자두나무 과수원을 배경으로, 말라붙은 연꽃 줄기를 내민 얼어붙은
연못과 나무의자가 두어 개가 달랑 놓인 정원은 스산하기만 했다.
정원에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음을 확인한 나는 일단 자물쇠 채워진 종무소 유리문 앞에 짐을 내려놓고, 식당문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거기서 또 하나의 ‘기괴한’ 장면을 발견했다. 마침 점심시간인지 어둑어둑한 테이블에 둘러앉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완벽한 정적
속에서, 그릇에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만 빼놓고, 유령과 같은 얼굴로 묵묵히 밥술을 뜨고 있었던 것이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침묵!
이런, 나 여기 잘 온 거 맞나? 그중 몇몇의 얼굴에서 새로 도착한 손님을 반기는 미소를 발견했을 때에야 ‘저 사람들도 나같은
보통 사람이구나’ 싶어서 조금 안심을 했을 정도였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한국말!

“한국에서 오신 분, 이에요?”

돌아다보니 사슴같은 눈의 비구니 스님이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과연 한국에서 태어난 우리 사람. 그러나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오로지 영어만을 쓰도록 길러진 그녀는 더 이상의 한국말은 할
줄 몰랐다. 그로부터 내가 자두마을에 머문 3주간 우리의 대화는 영어로 이루어졌다.
“한국분이 오셔서 기뻐요. 웃말(Upper Hamlet)에 한국서 오신 스님이 계신데 영어를 못하세요. 괜찮다면 미루가
내일 큰스님의 법문을 그분께 통역해주겠어요?”
그러마고 약속하며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떠다니는 맑은 하늘과 같은 그녀의 눈은 나의 영혼을 조용히 빨아들이며
그 자리에 서있었다. 다른 스님들과 마찬가지로 갈색 겨울용 점퍼를 입고 발에는 낡은 운동화를 신었을 뿐인데, 그녀의 몸은 마치
땅속에 깊이 뿌리박고 선 나무와 같아 보였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한 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얼굴을 할 수 있을까? 그녀, 띤님(信嚴 ‘신엄’의 베트남식 법명)의 눈은 자두마을에 도착해 내가 세번째로 발견한 것이었다.

도대체 이곳은 어떤 곳일까? 콩나물같은 의문이 머리를 내미는 걸 꾹 참고서, 종무스님의 안내를 받아 끙끙거리며 숙소로 짐을 날랐다.


▲ 법회는 이렇게. 편하게 앉아서들 말씀을 들어요. ⓒ 미루


부처의 채널

이틀 뒤 틱낫한 큰스님의 법문이 웃말(Upper Hamlet)에서 열렸다. 자두마을에는 웃말과 아랫말, 새말(New Hamlet),
세 개의 작은 마을이 있고 각기 숙소와 법당, 산책길을 갖추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열리는 큰스님의 법문은 세 곳에서 돌아가며
열린다고 했다. 굽이굽이 구릉 따라 펼쳐진 꿈같은 포도밭 길을 걸어 웃말에 도착했다. 2-3백여 개의 방석이 놓인 커다란 마루
법당에 들어섰을 때 띤님이 한국에서 오신 스님에게로 나를 안내해주었다.
큰스님은 베트남어와 불어, 영어로 번갈아가며 법문을 하시는데 오늘은 베트남어 차례. 사람들은 법당 중간중간 놓인 통역기에 헤드폰을
연결한 뒤 자리에 앉는다. 그러면 유럽 여러 나라 출신의 스님들이 큰스님의 말씀을 불어, 영어, 독어, 스페인어 등으로 동시통역하게
된다. 나는 헤드폰을 영어 통역기에 꽂은 뒤 공책을 펴고 한국 스님 곁에 앉았다. 능력이 되는 한 내가 들은 영어를 한글로 모두
적어 스님께 드릴 작정이었다.
‘이것 참 대단한 영어공부로구나!’ 속으로 살짝 웃으며 시작한 나의 임무는 그로부터 꼬박 3주간 여덟 번의 법문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동시 번역하는 대장정으로 이어졌다. 중간에는 손목이 아프고 영어도 잘 들리지 않아 괴로울 때도 몇 번이나 있었지만, A4
스물대여섯 장은 족히 넘을 법한 그 기록을 이탈리아 여행 중에 틈틈이 다시 읽으며 오히려 그 한국 스님과의 인연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 “당신은 이미 도착해 있습니다. 가야할 곳도, 해야할 일도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거워하세요. 그리고 사랑하세요. 다음 세대에 올 부처의 이름은 ‘미스터/미즈 러브’입니다.”
-틱낫한- ⓒ 미루


큰스님의 법문은 크리스마스나 새해, 한 주의 시작 같은 특별한 때에 따라, 그날 참석하는 사람들의 국적과 배경에 따라 조금씩
변주되었다. 나와 도오 스님이 처음 법문을 들은 날에는 한국의 불교전통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나오기도 했고, 인도양에서 지진해일이
일어났을 때는 ‘왜 죄 없는 이들이 휴가중에 그와 같은 변을 당해야 하나, 내가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하는 한 비구니스님의
질문에 답하는 말씀을 펴기도 했다. 그날은 특별히 중간에 법문을 멈추고 다함께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틱낫한 스님이 가장 여러 번 되풀이한 말은 ‘지금 이 순간을 즐거워하라(Enjoy the present moment)’는 것이었다.
우리는 해야할 일도, 가야할 곳도 없습니다(Nothing to do, nowhere to go).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나는 한 대의 텔레비전과 같이 욕망의 채널과 후회의 채널, 환희와 즐거움의 채널을 모두 내 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채널을 틀면 다른 채널은 모두 사라집니다. 수행은 결코 어렵지 않으며, 명상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입니다. 내 안의
채널을 돌리십시오. 부처의 채널로…
‘우리는 이미 도착해있다(We have arrived)’는 그의 말은 자두마을의 산책로에 나무푯말로 새겨져 있다. 정말일까?
진리의 저 높은 문턱을 향해 턱걸이할 필요 없이, 나는 벌써 도착해 있는 것일까? 호흡을 하며 깊이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는 그의
말이 맞는 것일까?
나는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기로 했다. 별 수 있나. 그의 마을에 왔으니 그를 따를 수밖에. 깊이 호흡하고, 깊이 바라보자.
한 번 해보자.

공동체의 힘

그때부터 이빨을 닦을 때나, 그릇을 씻을 때나, 숙소로 통하는 진흙길을 걸을 때나 깊이 숨 쉬고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무엇을 바라보란 말인가? 난들 아나! 목적어, 주어 따지나보면 골치만 아픈 것이 명상. 조용히 숨 쉬며 들숨,
날숨을 느끼다보면 나의 시선이 서서히 안쪽으로, 안쪽으로 거두어들여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두운 부엌에 들어섰을 때 점차
어둠에 눈이 익기를 기다리면 가마솥과 부뚜막을 구별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조용히 서있으면 전에 못 보던 것을 볼 수
있었다.
새털구름이 떠가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가만히 서있으면 내가 흘러가는 구름이 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고, 유난히
싱싱한 이곳의 상추를 씹을 때면 상추가 나를 도와 건강을 지켜주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 틱낫한 스님의 법문은 한시간 반씩 2부로 나뉘어져요.

중간 휴식시간에 법당에 남아서 책을 읽는
스님 발견. 아랫말에 있는 이 법당은 유리창 바깥에
불상이
있어요. 법당 안에는 남자 손바닥만한 작은 불상만 모셔져 있구요. 그게 왠지 좋았습니다.

ⓒ 미루


아침식사 후 비구니스님들의 일손을 도와주는 일손 명상(Working Meditation), 다같이 침묵속에 터덜터덜 산책을 나가는
산보 명상(walking Meditation), 맛있는 과자 한쪽에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수행 얘기를 나누는 차 명상(Tea
Meditation)과 같은 프로그램은 모두 그러한 일상 속 명상의 연장이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이 없고, 아무것도 놓칠 것이
없었다.

틱낫한 스님이 두 번째로 강조한 것은 ‘공동체’에 대한 것이었다. 촛불 하나를 켜면 외로운 빛 하나가 생기지만, 그 옆에 하나를
더 켜면 두 개의 빛이 만나 더 밝아지는 지점이 있다. 두 촛불은 서로 ‘나는 세상에 홀로 서있어’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미 옆 촛불의 빛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는 혼자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의 힘(Collective Energy)’이다.
상상해보라! 세상에 촛불이 단 두 개뿐이겠는가. 수십, 수백만의 초가 불을 밝히고 있다. 공동체의 에너지 안에 있으면 명상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기쁨의 힘이 샘솟는 걸 느낄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만큼 공동체의 힘은 강하고, 공동체의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나의 룸메이트 마리나는 홍콩에서 온 노동운동가로, 다른 사람의 얘기를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잠시 휴직서를 내고 3개월째
자두마을에 머물고 있는 그녀는 때때로 옆방과 아래채의 친구들을 우리 방으로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내가 흙길, 상추,
구름과 대화를 나누며 기쁨에 가득 차 있을 무렵, 어느 한가한 오후 프랑스 소녀 엠마누엘이 우리방을 찾아왔다. 늦은 오후의 황금빛
햇살이 서쪽 창문으로 가득히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어제 파리에 사는 우리 언니가 전화를 했어. 내가 부모님께 다녀온 얘기를 들었다면서 꼭 만나서 얘기를 해야겠다고 하더라.
만나보면 알겠지, 언니와 부모님이 나를 계속 가족으로 받아들여줄지 어떨지는.”
엠마누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항상 ‘테제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평화로운 미소를 짓는 그녀에게?

아, 석가모니 부처의 말이 맞았다. 인생은 고통이다. 엠마누엘은 다섯 살 때 술 취한 친아버지에게서 성추행 당한 일을 평생 아무에게도
말못할 비밀로 가슴속에 꽁꽁 동여맨 채 살아온 것이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의 그녀는 ‘이 세상을 살아갈 단 하나의 이유만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가겠다!’고 외쳤다고 한다. 그리고 명상을 통해 평안을 찾은 지금, 마지막 남은 고통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 부모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부모님 집을 찾았을 때, 엠마누엘의 어머니는 소리쳤다. 네
말대로라면 내가 평생을 인간이 아닌 짐승과 살아왔다는 거냐? 아니다, 나는 내 남편이 짐승이 아니라는 걸 안다. 이제부터 넌
내 딸이 아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십자가에 대고 맹세했다. 자신은 결단코 딸에게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아버지는 완전히 잊어버린 거야. 술에 취해서 내게 했던 일을… 식구들이 다시 나를 받아줄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지금 내가 자유를 느낀다는 거야. 평생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자유를 말야.”
“엠마누엘, 네 이야기를 타티아나에게 해준다면 정말 도움이 될 거야. 그애도 너랑 똑같은 기억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거든.
내일이 타티아나가 떠나는 날인데, 시간 되면 찾아가서 얘기해주지 않겠어?”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마리나가 이렇게 입을 열었을 때 나는 속으로 쯧 혀를 찼다. 콜럼비아 출신의 지적인 여인 타티아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러나 마리나가 자기의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리나 역시 10대와 20대
시절 전부를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린 끝에, 정신과 상담을 받고서야 어린시절의 참담한 경험을 기억해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오빠, 이웃남자에게서 성추행 당했던 일을 감쪽같이 잊어버린 채, 이유 없는 모멸감에 시달려온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명상센터를 세상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은신처로 생각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상처입은 짐승처럼 마음에 피를 흘리며 자두마을에 들어온 사람은 평화로운 명상시간과 친절한 사람들 속에 머물며
얼마간의 평안을 찾는다. 그러나 자신의 상처를 덮어두고 거기서 달아나려고 하는 사람은, 곧 자기를 외면한 채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결코 평화를 찾을 수 없다. 나는 엠마누엘과 마리나가 자신의 상처를 용감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한 공동체에 속한 친구들로서 함께 아픔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자두마을을 떠나기 일주일 전, 도오 스님이 한국의 선수행법을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서른 명 남짓한 일반인들과 스님이
모여 앉은 가운데, 마지막으로 수행 중 의문 나는 점을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손을 든 사람은 중년의
프랑스 여인.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어 40년 간 괴로워해 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통역을 하던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프랑스의 진한 ‘쇼콜라 쇼'(핫초콜렛)보다도 몇 배나 더 진한 외로움을 느꼈다. 그녀의 존재
자체에서 흘러넘치는 그 외로움이란. 조금이라도 그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스님의 말씀에 약간의 비유를 섞어 대답해주었다.
“부정적인 생각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언제나 당신 곁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당신이 만들어낸 존재일 뿐, 사실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 사실을 깨닫고 괴로움에서 벗어나십시오.”
대답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법당 안은 그녀의 흐느낌으로 가득 찼다. 모임이 끝난 후 나와 몇몇의 사람은 그녀의 손을 잡고서 눈을
감고 함께 호흡명상을 했다. 그리고 자기 전에 그녀를 위해 기도해주기로 약속했다. 내 가슴에 그녀를 꼭 안았을 때, 내 안의
작은 에너지가 흘러나가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기를 바란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고서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문득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안의 기쁨이 고갈되어 버린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싱싱한 상추도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산보명상도 즐겁지 않았다. 도대체 왜?
명랑하고 즐겁던 진리의 날들은 어디로 가버렸나? 길을 찾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안개에 가려 길은 사라졌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을 때, 미소가 사라진 지쳐빠진 얼굴로 나는 띤님을 찾았다. 궁금한 것들을 모조리 물어보고 그녀의 지혜로운 대답 속에서 구원을
얻고 싶었다. 음, 그러고 보니 틱낫한 스님에 대해서도 수행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참 많았네. 무얼 먼저 물어봐야 하나. 팽팽,
생각이 바쁘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노래를 불러봐요

“노래를 불러봐요.”
연못 앞의 벤치에서 한찬 말이 없던 띤님이 불쑥 청했다. 노래에 자신이 없는 나는 마지못해 띄엄띄엄 한 곡조를 띄웠다. ‘하여
나는 바람 부는 처음을 알고파서 두리번거린다……’ 김민기의 짧은 곡을 영어로 번역해서 들려주었다. 노래를 마쳤을 때
저만치서 어린 아들 리키를 데리고 온 웨일즈 아주머니가 부드러운 곡조를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띤님은 그녀가
훌륭한 어머니라고 했다. ‘왜요?’ 하고 내가 물었다.


▲ 날씨가 좋으면 이 길을 따라 한없이 걸어갑니다. 특별히 갈 곳은 없지요.

그냥 산보예요. 그게 명상이에요. 집에서도
할 수 있어요. 학교 뒷산에서도 할 수 있어요. 사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이미 그걸 하고 있지요.

미루


“리키를 보면 알 수 있어요. 평화로운 리키의 눈 속에 그의 어머니가 보여요.”
띤님이 또 무슨 말을 했더라? ‘친구들이 있어서 세상은 참 아름답지요?’라고 했던가. 그러자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생각났다.
상희, 유석이, 문학회 친구들. 그들을 생각하자 마음이 따뜻해졌다. 문득, 지금 내가 앉은 연못과 벤치가 따뜻하고 밝은 햇살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까부터 죽 햇볕 속에 앉아 있었을 텐데 그걸 몰랐네. 괴롭게 꼬리를 물던 생각의 콘베이어
벨트가 끼이익~ 멈춰서는 소리가 들렸다. 질문이 사라졌다. 평화로움. 내 마음의 정원이 꼭 한 뼘만큼 넓어져서 더 이상 그 안에서
바글거리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어졌다.
“큰스님의 가르침은 너무나 깊고 넓어요. 한입에 모두를 베어 물려고 하면 ‘가르침의 뱀’에 물릴지도 몰라요. 진리에
이르는 길은 참으로 여러 가지예요.”
마음이 가라앉은 나는 이번에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김민기의 다른 노래, ‘여러 갈래 길’을 불러주었다. 그러자 띤님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진리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예요. 모르겠어요?”
어린 아들이 훌륭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나에게도 나만의 열매가 있을 것이다. 깊이 호흡하자, 열매를 맺기 위해.
열매의 이름이 부처인지 또 다른 이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블로그 http://blog.naver.com/aboveink)

※ 이 글은 월간[이장](http://www.e-jang.net)에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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