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 활동소식

히말라야 산맥에 드리워진 깊은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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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내주신 장용창 회원님은 지난 1월에
인도로 가셔서 요가와 인도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초에는 네팔에 가서 현지 환경단체인 ‘지구의벗 네팔’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으며, 네팔의 환경과 인권, 사회 문제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신 점을 보내주셨습니다.

현재 상황

네팔에서는 국왕이 이끄는 정부군과 마오이스트(마오쩌뚱의 영향을 받은 공산주의자) 게릴라와의 내전이
10년째 계속되고 있다. 수도인 카트만두와 그 주변지역, 그리고 일부 국경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마오이스트의 점령 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같은 지역에 국왕 정부의 군대와 경찰도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그 두 집단 사이의 전투는 끊일
날이 없고, 그 두 집단 사이에서 민중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왜 이 글을 쓰나?

아픈 사람을 보면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다. 다른 존재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동정심이야말로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나는 내 안에 있는 이 동정심, 사랑의 힘을 믿으며, 이를 실현하고 강화하며, 이를 실천으로 옮기고자
한다. 한국에 있을 때, 환경운동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들인 지방의 사람들과 인간 이외의
동식물들이 환경문제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나의 관심은 환경운동이 아니라 그 사회에서 가장 절실한 문제이다.

▲정부군과 마오이스트 반군 사이의 충돌로 난민이 된 희생자가 난민촌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 Ajaya Joshi / Nepal Photo Agency

네팔에도 여러 환경문제가 있고, 여러 환경단체가 있지만, 10년째 내전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수질오염이니
철새 보호니 하는 문제들은 나의 관심에서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내전이 종료되고 평화가 정착되기 전에는 그 어떤 환경문제도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네팔 대법원이 헌법에 명시된 환경보전의 의무를 정부가 이행하도록 명령을 내린 경우가 수십 건이나
되지만 실제로 이행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전쟁하느라 바쁜 네팔 정부는 환경에 관심을 기울일 만한 의지도 없고, 돈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동정심, 혹은 공감이라고 번역되는 Sympathy에 대해 생각해 보자. 네팔이 우리나라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혹은 네팔의 상황이 나라는 개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나의 일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따지지 말자.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은 서로 관련되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주기 바란다. 동정심으로부터 이해가 나오고, 이해로부터 행동이 나온다. 네팔 민중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있을지 생각해보자.

네팔에 등산 갔다온 사람들을 여러 명 만났었지만, 네팔 내전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들에게 마오이스트는 외국인 등산객에게 돈을 요구하는 집단일 뿐이다.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히말라야의 신령스런 산들이 주는
기운만 받아갈 것이 아니라, 그 험악한 히말라야 때문에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는 이 불행한 내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해야 하지 아닐까?

긍정적 사고

인도에서 지난 4개월 동안 지내면서 가장 크게 변한 점이라면 긍정적 사고가 훨씬 증가했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매일 ‘비판’, ‘사회적 비판’, ‘비판적 사고’ 뭐 이런 말로 미화되는 온갖 부정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인도에 온 이후로 나는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도 말고,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라도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런 다짐은 정말로 효과를 발휘해서, 나날이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 네팔에 발을 딛는 순간 나는 마오이스트 문제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국경에서 수도까지
열두 시간 버스를 타야 하고 그 가운데 아홉 시간은 고갯길이었다. 이렇게 교통이 힘들다면 중앙과 지방 사이의 갈등이 심각하리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지역 차별의 문제는 마오이스트 내전의 핵심 원인이었다.

요가에도 단계가 있다. 나처럼 수준이 낮은 수행자는 부정적인 생각을 아예 하지 말도록 노력해야
한다. 수준이 조금 높아지면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되, 그러한 부정적인 인식과 감정으로부터 초연해진다. 나는
아직 이 높은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말한 것처럼 부정적인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고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라도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이 계율을 깨고 높은 수준에 도전하려고
한다. 부정적인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되, 이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정부군이 마오이스트 반군을 차단하기 위해 도로를 봉쇄하자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2005년 4월. ⓒ Nepal Photo Agency

네팔 내전의 경과

1. 1960년 이전

네팔은 오래도록 독립을 유지해 왔다.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독립을 유지해왔다.
이것은 히말라야의 험한 산맥이 네팔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영국이 1800년대 말에 네팔을 침략했지만, 험한 산악지형에서
네팔을 이길 수가 없었다. 1860년경 네팔의 수상이 쿠데타를 일으켜 국왕의 권력을 누르고, 수상의 아들이 대를 이어 수상이
된다는 통치방식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100여년 동안 유지된다.

2. 1960년-1991년: 국왕 독재

1960년에 국왕은 다시 수상으로부터 권력을 되찾는다. 그러면서 이 국왕은 정당 설립을 금지함으로써
독재의 길을 트는데, 이런 국왕 독재가 1990까지 30년간 유지된다.

그러나 그 사이 공산당이 성장한다. 국왕은 지방으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수도인 카트만두에만 투자했고,
지방 민중의 불만은 컸다. 이런 상황에서 공산당의 성장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더욱이 지방과 중앙과의 교통이 좋지 않기 때문에
국왕이 아무리 독재를 하려고 한들, 그 독재의 힘이 지방에까지 촘촘히 뻗칠 수는 없었다.

3. 1991년의 민중항쟁

국왕 독재에 대한 불만은 지방뿐만이 아니라 중앙에서도 커졌다. 21세기를 10년 앞두고 있는 시대에
정당설립이 금지된다니 이런 황당한 일이 세상에 네팔말고 어디에 있겠는가? 이제 카트만두의 시민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경찰을
두려워한 시민들은 낮에는 조용히 있다가 밤만 되면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국왕은 네팔을 떠나라”고 외쳤다.

1991년 4월에 시민들의 시위가 극에 달했고, 네팔 역사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왕궁으로 향할 때 경찰은 발포를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 후 시민들의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고, 마침내 국왕도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4. 1991년-1996년

1991년의 민중항쟁 이후 정당 설립이 허가되고, 국회 구성을 위한 선거를 하게 된다. 국민회의라는
우익 정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공산당에도 두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CPN-UML)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오쩌뚱주의 공산당(CPN-Maoist)였다. 이 중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은 이름만 공산당일 뿐 우파정당이나 마찬가지였고,
마오쩌뚱주의(마오이스트) 공산당이 좌파로서 지금의 전쟁을 이끌고 있는 당이다. 1991년의 선거에서 마오쩌뚱주의 공산당은 5%의
지지율밖에 못 얻었다.

상식을 동원해보자. 의회가 구성되었을 때 처음 하는 일이 무엇인가? 바로 헌법을 제정하고 국가의
권력이 국왕이 아닌 국민에게 있음을 헌법에 명시하는 일이다. 그런데 네팔의회는 2005년 오늘날까지도 민주주의 헌법을 만들지
않고 있다.

이렇게 의회가 힘을 못쓰고 있는 사이, 혹은 안 쓰고 있는 사이, 국왕은 슬금슬금 다시 과거의
권력을 되찾았다. 그러는 사이 국민들의 불만은 점점 더 커진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의회가 구성되어 지난 30년간의 과오가 수정되고
국가 발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헌법이 안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더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현재까지도 유효한 네팔의 헌법은 모든 권력이 국왕에게 있다는 1960년의 헌법이다.

5. 내전의 발발: 1996년 2월 11일

1996년 2월 4일, 마오이스트 공산당은 40개 조항의 요구사항이 담긴 편지를 당시 형식상 권력자였던
수상에게 전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일주일 내에 전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정확히 일주일 후 마오이스트 공산당은
지방에 있는 국왕의 경찰서 등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요구했던 40개 조항은 일부 과격한 것을 제외하고는 상식적인 것들이었고, 대부분의 네팔
국민들이 동의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수십년 계속된 상황을 개선하라는 요구였다. 마오이스트 공산당이 굳이 총을 들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40개 요구사항은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그 과격한 좌파공산당이
인내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40개 조항 중 우리 환경단체의 관심을 끄는 것으로 강에 관한 것이 있다. 네팔의 서쪽 국경은
인도와 맞닿아 있는데, 여기를 마하칼리 강이 흐른다. 인도는 오래 전부터 댐을 만들어 마하칼리 강을 이용해왔는데 반해, 네팔
정부는 지방에 대한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강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네팔은 인도의 압력에 따라 이 강에 관한 협약을 맺었는데, 그 내용인 즉 두 나라가 강물을 평등하게
이용하되, 서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간섭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겉으로는 평등한 조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평등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도는 많은 행정력을 동원해서 그 강을 이용하고 있는 데 반해 네팔은 전혀 이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것은 사실 인도의 강물 이용을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누구나 알다시피 댐을 지으면 그 주변 지역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마련인데, 인도 정부가 지은 댐 때문에 네팔 주민이 피해를 입어도, 그 조약에 따르면 피해 보상을 전혀 못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환경단체의 관심을 끄는 요구사항 중 두 번째는 다음과 같다. 시민단체, 혹은 국제시민단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제국주의적 행위들이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오이스트 공산당에 따르면 지구의벗네팔도 이 조항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지구의벗네팔의 모든 예산이 외국 비정부기구로부터 지원되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분명 마오이스트의 생각이 극단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마오이스트 공산당이 2005년 현재 인정하고
있는 유일한 해외 원조 사업은 국제연합아동기금(유니세프; UNICEF)가 진행하고 있는 비타민 공급사업뿐이다.

6. 전쟁의 진행과 결과

제1차 휴전협정 직후인 2001년에 피해가 가장 심했는데, 대략적인 추산에 따르면 2001년 11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중앙정부가 전쟁 중 살해한 마오이스트의 숫자는 4100명, 일반국민의 숫자는 200명이다. 그러나 역사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사람이라면 저 4100명중 대다수가 무기를 들지 않은 일반국민일 것이라는 추측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자와
반공주의자와의 전쟁에서 이것은 뻔할뻔자의 스토리다. 같은 기간 동안 마오이스트가 살해한 중앙정부측 군인과 경찰은 700명, 기타
일반국민은 400명이다. 마오이스트들 또한 내부규율이 완벽하지 않아서 개인적인 보복을 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또한 게릴라 전쟁에서 흔히 일어났던 불행한 일들이다.

마오이스트들은 또한 수력발전용 댐과 관개시설, 도로, 통신망, 지방의 정부청사 등을 파괴했는데,
이들은 이런 시설들을 모두 제국주의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999년에 비해 2000년 들어 국민총생산이 현격히
줄어들게 된다. 나는 이것이 정말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설들이 제국주의 산물인 것은 맞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어 놓은 시설을 파괴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결국 그 고통은 민중들에게 전가된다.

7. 현재 상황

전쟁 발발 이후 평화 협상이 여러 차례 이루어졌지만, 성공을 거둔 적이 한 번도 없다. 2005년
현재 시점에서 볼 때 가장 최근의 평화협상은 2003년에 있었다. 2003년 1월 국왕 정부와 마오이스트 양측은 휴전협정을 맺고
22개 조항의 행동강령을 제정한다. 이 행동강령은, 예를 들어 상대방 진영에 대한 공격행위를 중단한다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이 휴전협정도 양측이 다시 전투를 시작함으로써 6개월만에 파기되고 만다.

현재 일부 중앙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 마오이스트 게릴라 군이 포진하고 있다. 또한 거의 모든 지역에
국왕 정부의 군대와 경찰이 포진하고 있다. 양측간의 소소한 전투는 거의 매일 있다고 할 수 있다.

8. 외국의 반응

다행히도 외국의 개입은 미미하다. 만일 미국이 다른 분쟁지역에서 하는 것처럼 어느 한쪽, 혹은
양쪽에 무기를 지원한다면 전쟁의 피해가 훨씬 심각해질 텐데, 다행히도 미국은 그냥 지켜보고 있다. 네팔에게 더 중요한 나라는
인도와 중국이다. 마오이스트 공산당은 인도를 제국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인도와 중국도 군사적 지원은 하지 않고 있다. 단지
도로나 댐을 건설하는 것을 국왕정부 측에 지원하고 있을 뿐이다.

유엔도 조용히 있다. 유엔이 하는 일은 단지 인권감시기구를 만들어 양측이 저지르고 있는 인권유린
행위를 조사하고 공개할 뿐이다. 카트만두에 있는 인권단체나 정당들은 유엔이 더 많은 활동을 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정부의 언론 규제에 맞서 항의하는 네팔언론인연합 회원들.
2005년 5월 24일. ⓒ Sameer Lama / Nepal Photo Agency

네팔 내전의 원인

모든 사회현상이 그러하듯 전쟁의 원인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나 전쟁은 가장 극단적인 갈등의
표출이기 때문에, 그 원인 또한 훨씬 깊은 곳에서 찾아야 한다. 나는 네팔을 잘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에서만 추측해보기로 한다.

(1) 뿌리 깊은 지역 차별

네팔에는 100개 이상의 서로 다른 소수민족이 있으며, 20여 개의 언어가 있다. 공식언어인 네팔어는
48%의 인구만이 사용하고 있다. 각 소수민족은 그 분포지역을 지도에 표시할 수 있을 만큼 지리적으로 고정되어 있고, 서로 교류하지
않고 있다. 카트만두에서 활동하는 어느 변호사는 서부의 언어를 전혀 모른다고 내게 말했다.

지난 수백년 동안 국왕과 수상은 지방에서 세금을 거두어 자기 민족이 있는 카트만두를 위해 지출하는
착취행위를 계속해왔다. 카트만두의 인구는 1백만명, 네팔 인구는 2천3백만명으로서 카트만두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5%밖에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예산의 80%는 카트만두 등 중앙을 위해 지출되어왔다. 더욱이 지방에서는 전근대적인 지주 소작 관계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1991년에 국왕이 잠시 물러나고 국회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1996년까지도 지방의
상황이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러니 지방의 민중들은 이제 ‘문제는 국왕이 아니라 중앙의 사람들이다’라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지방 사람들이 ‘토지는 농민에게,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라’며 지방 빈곤 타파 정책을 들고 나온 공산당을 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방 민중들에게 있어 마오이스트 공산당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2) 시대착오적인 마오이스트 공산당의 폭력 혁명 사상

위에서 말한 지역 차별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나 물어보자 그렇다고
굳이 총을 들어야 했나? 이렇게 물어보면 마오이스트 공산당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1900년대초 이후 공산당이 게릴라 활동을 한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입어야 했던 그 상처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일반 민중들은 공산당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게릴라의 협박에 의해 식량을 제공할 수밖에 없고,
그 다음날이면 반공 진영의 군대가 들이닥쳐 빨갱이에게 밥을 주는 놈도 빨갱이라며 총살을 한다. 이런 일들은 공산당이 활동했던
전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발생했다. 내 고향 제주도에서도 50여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도대체 네팔 공산당은 이런 슬픈 역사에서 지혜를 얻을 줄도 모르는 바보들인가?
그렇다. 네팔 공산당은 바보들이다. 내전을 시작하기 전 1996년 경 마오이스트가 작성한 전쟁 계획서를 보면, 전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의 길에 나서자라고 결의하고 있다. 전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의 실험이 상처만을 남기고 끝난 20세기말에 저런 소리를
하고 있을 만큼 그들은 바보이다.

즉, 나의 판단에 의하면, 국왕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과 공산당의 위험한 폭력성이 결합되어 네팔
내전은 발생한 것이다.

해결방안: 나의 의견

(1) 비폭력의 원칙

나는 마오이스트의 주장에 거의 모두 동의한다. 구시대적인 국왕의 통치는 이제 끝나야 하며, 국가
권력이 국민에게 있음을 명시하는 헌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 균형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네팔의 민중을 착취하고
있는 제국주의 기업들은 네팔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나는 혁명전쟁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총이 아니라 사랑이다. 간디처럼
총을 들어 저항하기보다 무자비하게 학살당하는 용기와 신념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비폭력의 정신과 실천만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마오이스트가 혁명전쟁에서 승리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고 문제가 그렇게 쉽게 해결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사회문제의 원인은 몇 년 동안의 전쟁으로 해결될 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더욱이 전쟁이 남길 상처는 전쟁이 가져올 일말의
이익보다 훨씬 광범위하다는 사실은 전세계 역사가 증명한다.

(2) 네팔을 위해

네팔의 평화는 멀게만 보인다. 30여 년 동안 통치해온 국왕과 그의 일가족이 2001년 테러로
세상을 뜨고 그의 동생이 국왕이 되어 통치하고 있다. 그 동생도 형보다 그다지 나아 보이지 않는다. 평화정착을 위해 뭔가를 양보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지 않고 있다. 마오이스트측이 평화정착을 위해 요구한 사항 중 중앙정부가 받아들여 실천한 것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오이스트측 또한 고집이 세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10년 동안 게릴라전을 유지하고 있으니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 지금은 국민들이 마오이스트의 정책을 지지할지 몰라도, 세상에 어느 국민이 기나긴
전쟁을 좋아하겠는가? 그런데도 평화정착을 위한 전향적인 태도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것은 대화이다. 평화협상이 매번 실패해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나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단체인 유엔이 나서야 한다. 유엔이 나서서, 열번이고 백번이고 양측간의 대화를 이끌어내고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런 합의 속에 국왕이 권력을 내놓고 마오이스트 또한 무기를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글/ 국제연대 자원활동가 모임 ‘그린허브’ 장용창 회원

* 자료 출처

1. 대부분의 자료는 다음 책에서 얻은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카트만두에서 활동하는
기자이므로 마오이스트측의 직접적인 의견을 얻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Deepak Thapa, 「A kingdom under siege」, 2003, Printhouse.

2. 위 책을 읽고 모호한 점은 지구의벗네팔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에게 물어보고 답변을
얻었다.

3. 아래의 홈페이지는 여행객들의 안전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마오이스트 문제를
요약하고 있다.
http://www.globalsecurity.org/military/world/para/upf.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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