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 활동소식

이웃이 있는 느림의 마을, 기자촌

글,사진 / 김태현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활동가)

서울에서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며 이웃과 골목길에서 안부를 묻고 길가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이미 기억 속의
일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여지없이 깨어 준 곳이 있었으니 바로 ‘기자촌’이었다. 처음에 기자촌이라는 말을 접한 것은
어느 버스의 바깥 노선안내의 종착지점이었는데, 버스 차체에 적힌 ‘기자촌’이라는 말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촌’이라는 말
자체도 도시에서 흔치 않을뿐더러 ‘기자’라는 말이 설마 영어의 ‘저널리스트’를 말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기자촌을 아는 이들을 만나 보면 이구동성으로 꼭 한 번 가볼 만한 곳이며 공기가 너무 좋아 살아 볼 만한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왕 갈 것이면 철쭉이 만발하는 봄이 좋은데 기자촌은 북한산 자락에 있어 서울 도심보다 일주일 정도 봄이 늦다고 귀뜸해 준다.
그렇게 꼭 한 번 가보려던 기자촌을 철쭉들이 갓 들어간 다소 여름날 같은, 어느 화창한 봄날에 찾아가게 되었다. 비록 짙은 연분홍
철쭉들은 보지 못했지만 아는 이들 사이에서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 집 안의 울창한 나무

광화문에서 155번, 154번 버스를 타면 연신내를 지나 버스의 종착점인 기자촌까지 데려다 준다. 정보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기자촌은 정말 기자들이 사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서울시 은평구 진관외동 산 175번지. 1969년 4백2십 가구가 입주하면서 조성된
한국 최초의 언론인 집단 촌락”. 동시에 그 기자촌은 그린벨트 지역에 북한산 자락 아래의 공원녹지 지역, 심지어 군사보호 지역으로
묶여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는 미개발지였다고 한다.

기자촌에서 첫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 1, 2층 중심의 단독주택과 정원, 그리고 집 안의 나무들이었다. 아파트가 주택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정부가 주택 부족난을 민간개발에 맡기면서 어느 곳 할 것 없이 다세대 다가구 주택이 판을 치게 된 오늘날 우리의 주택
현실에서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군의 모습은 결코 익숙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들의 형태는 시골에서 흔히 보는 작은 슬레이트에서부터
70년대 전국에서 볼 수 있었던 근대식 양옥, 일본식의 적산가옥, 그리고 최근에 지어진 유럽풍의 목조집과 대리석 벽돌을 붙인 집들까지,
한 시기에 형성되어 근 30년간 미개발지로 묶여 변화가 없었던 지역치고는 집들의 형태가 다양했다.

아마 최근에 군사보호 지역이 해제되어 일제히 신개축이 일어났기 때문인 것도 같다. 새로 지은 집들도 2층 단독주택 중심이며 어느
집 할 것 없이 정원이 있고 나무가 들어서 있고 하다 못해 작은 마당이라도 가지고 있었다. 담쟁이들이 온 벽을 휘감으며 녹색을 던져주는
집들도 많았다. 담들은 대체로 낮아서 집 안이 비교적 쉽게 들여다보였다.

▲ 기자촌의 모습

이러한 동네 환경은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도 이어졌다. 골목길에 동네 아이들이 앞집 옆집을 옮겨다니고 대문 위 장독대를 오르내리며
노는 모습, 화창한 봄날 오후 큰길가 화단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아주머니들의 모습, 이웃간의 모임을 마치고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는
모습, 뒷산 등산길에서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과 상대방의 안부는 물론 다른 이웃의 안부를 묻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서 여느 동네와
같지 않음이 느껴졌다.

또한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여유는 나에게도 직접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나무와 수풀이 울창한 언덕과 그 위에 앉아 있는 판잣집의
모습이 너무 조화로워 한 컷 찍으려는 나에게 등산에서 돌아와 동네로 들어서려던 할아버지가 “그렇게 하면 찍혀? 찍은 거는 어떻게
다시 보나?”라며 말을 거셨다.

그분은 담뱃갑 크기의 작은 기계로 어떻게 사진이 찍히는지, 어떻게 다시 보는지를 물어본 것인데, 실제 그것이 궁금했다기보다 모자를
쓰고 가방을 메고 사진을 찍고 있는 이방인인 듯한 이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셨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 마시려는
나에게 약수터 이용자를 위해 마련되어 있던 컵을 권해 주셨던 아저씨, 뒷산에서 자신의 강아지와 나를 인사시켜 주시던 할머니, 슈퍼에서
빨대를 직접 집어주시던 할아버지에게서도 이곳 사람들의 친절과 여유가 느껴졌다.

▲ 집들이 산자락 지형에 적응하여 들어서 있다. 적산가옥과 집 안의 나무들이
보인다.

공원녹지 지역으로 묶이고 군사보호 지역으로 묶여 개발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곳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외부의 개발 억제
요인은 지역 개발이 느리게 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같다. 그리고 그런 지역의 물리적 환경이 사람들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쳐 ‘이웃’이라는
것이 아직 존재하게 해준 듯하다.

서울시는 최근 이곳을 생태마을로 지정했다고 하는데, 다른 빈민촌들과는 달리 자체적으로 자신의 주택을 돌볼 수 있는 경제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며 산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만 더 나아가 내가 아닌 우리는 어떤 동네에서
살고 싶은가를 생각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처음으로 찾아가 보았고 하루라는 짧은 경험이었지만 여느 동네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사람들 간의 소통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는 기자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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