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 관련자료

불확실성 인정해야 신뢰 얻는다

①부안 핵폐기장 논란<하>
부안사태가 악화한 주요 원인의 하나는 정부와 사업자가 주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핵폐기물 시설의 안전성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면서 주민들의 불안과 형평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지
역이기주의로 몰아침으로써 처음부터 설득과 이해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와 사업자는 핵폐기물 시설의 안전성을 지나치게 확신해 오히려 불신을 샀다. 한국
수력원자력의 홈페이지에 실린 ‘원전수거물 바로알기’ 코너에서는 중·저준위 폐기물이 “작업
자가 사용했던 작업복, 휴지, 덧신, 장갑, 폐부품 등이 주류”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폐기
물에는 작업복이나 장갑뿐 아니라 이보다 방사능 세기가 100배 이상인 폐 필터 등도 포함돼 있
어 가볍게 볼 것만은 아니다.

스웨덴, 프랑스, 일본 등에서 중·저준위 처분장이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겨
우 10여년의 운전경험이 쌓였을 뿐이다. 방사능 위험이 없어지기까지는 약 300년 동안 철저한 관
리가 필요하다.

정부는 중·저준위 처분장과 함께 들어설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핵발전소에서 태우고 난 핵연료는 높은 열과 방사능 때문에 중간
저장시설로 옮겨와 물 속에 보관된다. 만일 핵연료를 식히는 냉각수가 누출되거나 취급 잘못으
로 핵반응이 일어난다면 중대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소는 지난 1990년 과학기술처에 낸 연구보고서 ‘방사성 폐기물 관련 기술기준 설
정을 위한 연구’에서 사용후핵연료에 일어날 수 있는 사고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외부
로 방사능이 누출되는 사고들이 포함돼 있다. 취급 잘못으로 핵연료에 작은 구멍이 생기는 사고
는 연간 3회꼴, 10개 이상의 핵연료봉에 중대손상이 일어나는 사고는 2년에 3번꼴로 일어날 수
있으며 굴뚝을 통해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누출된다.

보고서는 강한 태풍으로 저장조의 지붕이 날아가고 16.5t의 냉각수가 외부로 흘러나가면 총 3300
큐리의 방사능이 누출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또 핵연료를 잘못 쌓거나 취급이 잘못돼 저장조 바
닥에서 핵반응이 일어나 방사능이 외부로 누출되는 중대사고도 일어날 수 있다.

정부는 사용후핵연료를 앞으로 재처리 등을 통해 다시 쓸 것인지, 고준위폐기물로 처분할 것인
지 결정하지 않고 있다. 원자력법에서도 ‘방사성폐기물 관리 대책’의 범위에서 사용후핵연료
또는 고준위폐기물 처분이 제외돼 있다. 세계 6위의 원전국가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폐기물 정책
이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최종원 한국원자력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를 “맨션아파트에 화장실이 없는 셈”이라고 꼬집었
다. 최 박사는 “고준위폐기물을 사업자에 맡겨놓지 말고 국민의 건강과 국토보전 임무를 충실
히 수행할 전담기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진국에서는 경제성과 환경오염, 핵확산 등의 이유로 재처리가 더이상 대안이 될 수 없고 고속
증식로가 기술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막혀 사용후핵연료를 깊은 땅속에 영구히 묻기 위한 준비에
나서고 있다. 최연홍 서울시립대 교수(행정학)는 “불확실성이 큰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과
중·저준위 폐기물처분장을 분리해서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안전성을 둘러싼 시각차도 문제다. 정부와 사업자는 핵폐기물의 물리적 안전성만을 강조한다. 그
러나 주민들에게 핵폐기장은 문화적 충격이기도 하다. 김환석 국민대 교수(과학사회학)는 “과학
적 안전성 못지 않게 후손에 대한 죄책감이나 오염된 곳으로 낙인 찍히는 것에 대한 불안감 등
사회문화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갈등을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최소한의 신뢰라도 형성돼야 한다고 말한다. 신뢰의 첫
걸음은 과거의 잘못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불확실성을 솔직히 털어놓으면서 이해와 협조를 구하
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핵폐기장 문제로 부안에서 전주까지 약 50㎞를 삼보일배하고 반대시위로 두차례나 병원에 입원
한 문규현 신부는 그 출발점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전주/박임근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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