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 활동소식

“거제주민 분노했다.”

지난 6월 20일 오후 4시 30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한국석유공사 빌딩
앞을 우리나라 남쪽 끝 거제땅에서 상경한 주민 150명이 둘러섰다. 그 이유는 거제시 U2 석유비축기지 3차 공사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기 위한 것. 과거 주민과의 합의사항을 무산시킨 한국석유공사에 대해 항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곳까지 나선 것이다.

6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온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차에서 막 내려 긴장이 풀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노란 띠를 두르고 분노의
외침을 터트렸다.

“석유공사 각성하라, 3차공사 철회하라”

▲ 거제에서 올라온 지역주민들이 석유비축기지 3차공사반대를
위한 집회용 플랭카드를 들고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는 92년 당시 ‘더 이상 추가공사를 하지 않는다’는 일운면 번영회와의 공증각서를 무시하고 99년부터 750만배럴
규모의 3차기지 공사를 강행했다.
거제시 공동대책위원회 박종철 집행위원장은 “1차, 2차 석유기지 공사 이후 92년에 3차기지 공사는 없다는 약속을 공사측으로부터
받았지만 그들은 그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특히 주민투표를 통해 공사반대에 대한 의사표명을 굳건히 해왔지만 한국석유공사는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고 전했다.

1,2차 공사당시 주민들은 의식적인 각성이 없었다. 또한 석유비축기지 공사의 경우 에너지 안보정책에 따라 매우 보안적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에 대해 자세히 인지하지 못했다.

현재 국내 석유비축기지 중 일부기지는 적정 석유비축량을 초과하고 있고 전국기지 총 40%가 활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자칫 거제의 석유비축기지가 핵폐기장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 졸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지원금 반납, 법적 대응, 물리적 저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반대에 나섰지만 석유공사 쪽은 지난해 일부 주민대표의 합의서를
근거로 공사를 시작해 현재 30% 정도 공사가 진행된 상태이다.

할머니의 삭발까지 이끌어낸 저지운동

손자손녀의 재롱을 보며 행복한 한때를 보낼 수 있는 이 초여름 오후에 내 손자손녀의 미래와 건강을 위해 또 거제의 미래를 위해
상경한 할머니, 할아버지.
지난 6월 2일 삭발식을 시작으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거제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박창균 신부에 이어 이날은 할머니 4분과
할아버지 6분이 삭발을 하기로 했다.

▲ 이마에 주름이 가득한 할아버지가
삭발을 하며 오열하고 있다.
▲ 유치원 원장인 서수현할머니를
포함해 네분의 할머니가 삭발을 했다.
▲ 삭발식을 기다리고 있노라니…삭발식을
보고 있노라니 눈물이 나네

집회참가자 가운데 최고령인 83세의 할머니는 콧물과 눈물이 뒤섞이는 줄도 모르고 삭발하는 중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가슴속
분노를 터트렸다.
그는 “U2 관련된 안팎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공증각서 썼는데도 불구하고 법과 재물에 공모하여 우리들의 피를 말리고 몰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법 앞에서는 굴하지 않을 것을 명심해주기 바랍니다.”라고 울먹였다.

이에 박종철 위원장은 “가슴속에 분한 것이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난다. 오늘은 머리카락을 깎지만 더 이상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머리카락이 아니라 더한 목숨도 그들 앞에 갖다 놓을 것이다.”라고 열변했다.

거제시 일운면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는 서수원 원장은 “주민 투표를 무시하는 석유공사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 83세의 노인을
삭발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주민을 위해 행하는 정책이고, 공사인지 잘 모르겠다.”며, “우리들의 요구를 들어주세요”라고 목소리
높여 말했다.

집회가 열리고 있는 시각에도 거제시청 앞에서는 거제도 석유비축기지 3차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무기한 단식농성이 21일째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 박창균 신부는 혈압이 위험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다.

연달아 “우리 신부님 살려내라”라고 말하는 한 신도가 머리카락 한 묶음과 십자가 목걸이를 두 손에 꼭 쥐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네 분의 할머니 머리를 직접 깎은 거제시 참교육학부모 회장은 “여자가 삭발한다는 것은 여자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머리카락을 모두
버린다는 것인데, 할머님들의 그 각오는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그만큼 우리에게는 절실하다”라고 호소했다.

석유공사, 이동식 화장실까지 마련

집회가 있던 날 기자가 석유공사 빌딩을 찾은 시각은 이른 오후 3시. 사옥의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마다 철재 막대기로
막아 놓고 집회를 위해 상경하는 지역주민들과의 충돌을 예방하고 있는 상태였다.

▲ 석유공사가 사옥 밖 계단 앞에 마련한 이동식
화장실과 물통

하지만 6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사옥 밖 계단 앞에 이동식 화장실과 물통 등 갖가지를 마련해 두는
석유공사 측의 모습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석유물류기지 들어서면 거제시는
끝장난다”

기지주변 환경영향평가 시급히 이뤄져야

석유비축기지는 엄중한 보완 시설이다. 아무나 접근도 못하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인지 기지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도 지역주민이
쉽게 알 수 없다.
지난 2002년 거제도 연안에 해마다 날아와 겨울을 지내는 철새 아비가 집단 폐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또 2002년 3월 일운면 한 마을에 주민이 목격한 바, 자고 일어난 아침에 항상 끼는 물안개라고 생각하고 넘겼던 것이 기지에서
유출된 가스가 물위로 얕게 깔려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아이들은 아토피성 질환에 고통을 겪고 있다.

지역주민의 이러한 신체적 영향은 아직 그 원인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거제시 공동대책위원회는 석유비축기지의
안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제 환경운동연합 전병수 간사는 “새로운 석유비축기지를 건설하기 전에 이미 사용중인 1,2차 석유기지에 대한 환경성 및 안정성
평가가 빠른 시일 내에 주민이 요구하는 조사기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거제주민이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기지의 환경영향평가와 그에 대한 재검토이다.
산업자원부에서 내놓은 비공식 자료에 의하면 누출사고가 몇 회 있었다. 하지만 이를 공식적으로 다루지 않고 간과해 지역주민들의
신뢰는 땅으로 떨어진지 오래다.

석유공사 측은 환경부에 등록된 128개 환경영향평가 조사기관 중 하나를 지정해 평가를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고 주민들은 신뢰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원하고 있다.

결국 150인의 상경집회 이후 한국석유공사와 거제시 공대위는 1차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합의문 초안에 따르면 거제시 공동대책위원회가 추천하는 조사연구위원으로 구성된 조사단과 함께 대전대학교 환경문제연구소가 환경성
조사 및 평가를 담당하고, 그 평가 결과에 대해서는 석유공사가 지정한 환경전문기관에 자문을 얻어 조정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글/ 조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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