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인터넷 다움 카페의 회원으로 가입하기 위해 아이디를 만들었다. 그것을 만드는 과정이 실로 눈물(?)겨웠다. 내가 생각한 아이디를 십여 번이나 쳐 봤지만 계속 중복된 아이디라는 안내문이 나왔다. 갑자기 얼마 전에 강의에서 들은 ‘미치광이풀’이 생각났다.
갑자기 얼마 전에 강의에서 들은 ‘미치광이풀’이 생각났다. 그리하여 나는 “미치광이님”이 되고 말았다. 미치광이, 미치광이, 내가 미치광이라. 나는 미치광이가 되기로 했다. 어떤 일에 빠져 열심히 하는 사람은 곧 미치광이가 아닌가. 긍정적인 뜻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드디어 실내수업 2번을 마치고 처음으로 봄꽃을 보기 위해 포천에 있는 광덕산으로 현장학습을 떠나는 날이 되었다. 현장으로 떠나기 전 화요일에 이미 광덕산에서 자생하는 봄꽃에 대해 슬라이드로 보고 또 각자 식물도감을 사서 공부를 했다. 나는 김태정님의 도감과 현진오 박사님의 도감을 사서 시간이 날 때마다 들추어 보곤 했다. 그러나 도감으로 보는 꽃들은 달력이나 사진으로 보는 멀고 먼 이방인같이 느껴졌다. 그 예쁜 꽃들을 내가 실제 만나볼 수 있을까? 그 꽃을 알아볼 수 있을까? 너무 무지한 탓에 그냥 지나치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버스로 광덕산에 도착한 우리는 점심을 먹고 현진오 박사님의 전체강의를 10분 정도 들은 후에 모둠끼리 모여 1모둠부터 차례로 산에 오르기로 했다. 내가 속한 5모둠은 주로 중고등학교 교사였는데, 식물분류학자인 현진오 박사님께서 1모둠과 같이 산행을 하기로 되어 있어서 좀 아쉬웠다. 그런데 올라가다가 알고 보니 그 전에 답사를 다닌 경험이 있는 분이 몇몇 있어서 우리끼리도 어느 정도의 자급자족(?)은 되었다. 나의 무지함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부터 우리의 학습열기는 대단했다. 우거진 수풀도 마다 않고 용감히 들어가 될 수 있으면 많이 보고 알고자 했다. 꽃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도감을 펴 들고 그 이름을 알아내려고 했다. 우리끼리 해결이 안 되는 것은 하산할 때 박사님께 여쭈어 보기로 하고 유보하기도 했다. 꽃 하나하나를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모두 몰려가 사진도 찍고 도감도 보고 관찰을 하기도 했다. 나는 내가 모르는 꽃이 얼마나 많은지를 절감하면서 도감을 열심히 찾았다. 도감에서만 보던 꽃을 보니 무척 신기하기도 했고, 예전에 알고 있던 꽃을 만나면 더욱 반가웠다. 어쩌면 그리도 작고 여린 줄기에서 예쁜 꽃을 피워내는지 그 생명력에 놀라웠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던 꽃들을 직접 보고 있으니 달력이나 사진을 통해 보던 느낌과는 무척 달랐다. 그것들은 꽃만을 확대하여 평면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꽃의 온전한 모습을 보고 느끼기에 확실히 한계가 있었다. 또한 주변의 식물에 비해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할 수 없어서 더욱 이방인처럼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실제 우리가 산에 와서 꽃을 관찰해 보니 꽃들은 아주 작고 우리 몸을 땅으로 구부리고 자세히 보아야만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꽃을 보려면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던 강의자의 말씀을 실감했다. 별꽃종류는 무척 작아서 새로 산 루페를 처음으로 사용하여 관찰했다. 꽃 하나하나마다 모두 저마다의 특징이 있고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특히 신기했던 것은 족도리풀을 발견했을 때이다. 어떤 선생님(부끄럽지만 아직도 모둠원들의 성함을 잘 모름)께서 길다랗게 위로 뻗은 잎을 발견했는데 나뭇잎을 헤치고 보니 땅 가까이에 진보랏빛 족도리모양의 꽃이 수줍게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꽃은 줄기나 꽃대에 위쪽에서 피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핀 것을 보니 신기했다. 그 밖에도 동의나물, 피나물, 양지꽃, 꿩의 바람꽃, 얼레지, 현호색, 산괴불주머니, 붉은 참반디, 홀아비바람꽃, 회리바람꽃, 나도개감채, 구슬붕이, 태백제비꽃, 둥글레, 미나리냉이, 달래, 연령초, 모데미풀, 너도바람꽃, 벌깨덩굴, 꽃이 카메라 셔터같이 생긴 천마괭이눈 등등….이런 꽃들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산 위쪽에서 내 아이디인 미치광이풀도 직접 보았다. 미치광이 풀은 그 뿌리에 황산아트로핀성분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노란색 꽃이 피는 미치광이풀도 광덕산에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아쉽게도 보지 못했다. 산 위쪽으로 올라가니 얼레지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두 잎 사이에서 꽃대가 길게 올라와 보랏빛 꽃잎을 활짝 펼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름다운 자태였다. 사람으로 치면 성숙하고 수줍은 처녀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이 아름다운 얼레지가 산나물을 캐는 사람들에 의해 마구 없어지고 있다고 하니 몇 년 후면 이런 꽃들을 못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스러웠다. 투명망토가 있다면 그들 눈에 안 뜨이게 하고 싶다는 얼토당토않는 상상을 해 보았다.
산 중턱에서 모둠을 바꾸어 우리 모둠과 현진오 박사님이 함께 하게 되었다.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 보았지만 이름을 알 수 없었던 꽃들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는 꽃이 피어 있어야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겨우 아는 정도인데 잎만 보고도 무엇인지, 그 식물의 특성까지도 말씀해 주셨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란 말이 실감이 되었고 한번 관찰로만으로는 안되고 계속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선을 타고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 오는 길에는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별로 꽃을 관찰하지 못하고 길을 보고 내려 왔다. 그런데 언제 우리가 이런 길을 올라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길이 생소했다. 그 이유인즉 우리는 올라 갈 때 길을 보고 걸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사인 꽃을 보고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등산(登山)과 입산(入山)의 차이일까?
버스 안에서는 현진오 박사님과 윤무부 교수님이 만든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우리 꽃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식물사진을 찍는 방법에 대한 강의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광화문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 꽃 도감을 다시 한번 펼쳐 보았다. 광덕산에서 보았던 이 꽃들이 도감에서 보았던 것과는 매우 다른 느낌으로 실감나게 내 이웃처럼 다정하게 다가왔다. 얼마 전 1학년 국어 교과서 “내나무”단원을 배울 때 요즈음 내가 공부하는 환경 생태에 관한 말을 아이들에게 꺼냈더니 “생태가 뭐예요? 얼리지 않은 동태말인가요?”라고 묻는 친구가 있었다. 반면에 진지하게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친구도 있었다. 이들 친구들에게 광덕산에 갔다 온 얘기를 재미나게 해 줄 참이다. 우리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꽃이 살고 있는지, 그 꽃들이 얼마나 예쁜지를, 그리고 얼마나 그 생명이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는지를 말이다.
광덕산에서 돌아 온 나는 어린 시절 집 뒷산에서 놀다가 자그마하고 아름다운 꽃을 발견한 기쁨, 희열을 다시 맛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때 그 작은 꽃을 우리 집 뒤뜰에 옮겨 심는다고 하다가 죽였던 일이 생각났다. 이제는 그런 무지한 일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현장학습 때 우리 친구들에게 한마디라도 무언가를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이 연수를 신청했는데, 그 외에 우선 나 자신이 깨닫고 느끼는 것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글: 이경희 님(장기중학교 교사, 환경생태 전문가 과정 참여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