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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생태이야기②] 모아이 석상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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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개봉된 영화 ‘박물관이 살아 있다(Night At The Museum)’는 미국 뉴욕에 있는 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자연사박물관은 지구의 과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장구한 기간 동안의 자연 상징물을 수집해 전시함으로서 지구와 자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곳으로, 주로 지질시대 화석 및 광물, 지구상의 동식물과 인류의 흔적이 전시되곤 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국가차원의 자연사박물관이 없지만, 주요 국가에서는 자연사박물관을 정부 차원에서 투자하고 운영한다. 이 중 캐나다, 영국, 미국의 자연사 박물관이 유명하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에 따르면, 영국은 과거 식민지에서 희귀 동식물을 많이 수집해 다양한 전시물을 갖고 있고, 캐나다는 원주민의 토착 문화 전시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어 미국의 자연사박물관은 상당한 투자로 다양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 말하고 있다.

뉴욕 자연사박물관은 ‘지구 박물관’이란 별칭처럼 수십 억 년의 지구 역사를 담고 있어, 인기 관광 코스라 한다. 영화 ‘박물관이 살아 있다’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한 만큼 가족 코미디 영화로, 이집트 고대 유물의 힘으로 전시물들이 밤마다 살아 움직인다는 만화 같은 상상으로 채워져 있다.

자연사박물관인 만큼 영화에서는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온다. 미국 26대 대통령 루스벨트를 비롯해, 4세기 말 로마제국을 위협한 훈족, 미 서부 개척사에 등장하는 미모의 여성 인디언으로 지금도 1달라 동전에 새겨진 사카주웨아, 로마의 황제 옥타비아누스 등 역사 시대 주요 인물이 등장해 각기 독특한 개성을 뽐낸다. 영화에서 빼놓기 어려운 것이 뼈만 남은 티라노사우루스인데, 포악한 생김새와 달리 익살스런 표정과 행동으로 영화의 재미를 더해 준다.

밤마다 살아 움직이는 것 중에는 유난히 ‘gum gum’을 외치는 거대 석상이 등장하는데, 이 석상의 고향은 남미 칠레 이스터 섬으로, 모아이(Moai) 석상이라 불린다. 얼마 전 개봉된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에서도 모아이 같은 거대 석상이 등장해 문명의 기원을 암시하는 장치로 사용되기도 했다. ‘박물관이 살아 있다’에서는 주인공이 신비한 능력의 이집트 유물을 노리는 악당들을 물리치고, 박물관도 지키면서 사랑도 얻어 낸다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됐지만, 이스터 섬은 문명의 몰락이라는 비극으로 마무리 됐다.

이스터 섬은 칠레 해안에서 3,800km 떨어진 태평양 가운데 외로운 섬이다. 이스터 섬은 둘레가 58Km, 면적은 180 ㎢로 우리나라 제주도의 1/10 크기에 불과하다. 이 섬에는 평균 6m 크기의 600 여 개의 석상과 채석장에서 미완성된 형태로 남아 있는 300 여 개 등 900 여 개의 거대 석상이 존재하고 있다. 가장 큰 것은 20m가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학자들은 이 섬의 석상들이 원주민들의 조상들의 모습을 형상화해 수호신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모아이 석상의 평균 무게는 100 톤에 달하는데, 기중기가 없던 시절, 섬 가운데 채석장에서 석상이 세워진 해안가까지 약 15Km를 어떻게 이동시킬 수 있었을까는 상당한 미스터리였다. 그 때문에 한 때 모아이 석상을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주장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게 됐다.

하지만 학자들의 연구결과 나무 한 그루 찾아 볼 수 없는 현재와 달리, 과거 이스터 섬은 울창한 산림지대였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를 바탕으로 많은 가설이 제시 됐는데, 어떤 학자는 나무껍질로 만든 밧줄을 활용해 옮겼을 것이라 주장한다. 석상의 좌우 양쪽과 뒤에서 각기 밧줄을 묶고 양쪽에서 번갈아 힘을 주고 당기고, 뒤에서 지탱해주면 마치 석상이 뒤뚱뒤뚱 걸어가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나무 썰매, 윤활유 방식 등의 가설이 제시됐다. ‘문명의 붕괴’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카누 사다리’ 방식을 지목한다. 나무를 카누처럼 파낸 후 석상을 싣고, 고정된 나무 레일 위에 나무 롤러로 먼 거리를 이동시킨 방법이다. 어찌됐든 거대 석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스터 섬의 나무들은 잘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스터 섬의 비극은 부족 간 경쟁적으로 석상 건설에 매달리면서 극에 달했다. 상대 부족의 석상을 훼손하고 자신의 석상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은 현대 비정한 경쟁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스터 섬의 마지막 나무를 베고 난 후, 이스터 섬 사람들은 카누를 만들 나무마저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섬에서 나무와 숲이 사라지자,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새들이 멸종했고, 바다를 나갈 수 없으니 물고기 사냥조차 어려워졌다.

토양 역시 침식이 격해져 식량 생산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스터 섬 패총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동물의 뼈와 함께 인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식량부족이 극에 달하자 사람까지 잡아먹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마도 가장 힘이 없는 어린 아이들이 카니발니즘의 희생 대상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스터 섬은 16세기까지 인구 7천명이 살 정도로 번성하면서, 수백 개에 달하는 거대 석상을 세웠지만, 그렇게 멸망했다.

1994년 제작된 영화 ‘라파누이(Rapa Nui)’는 지배 부족과 피지배 부족 간 경쟁과 몰락 등 이스터 섬 역사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여기서 ’라파누이‘는 원주민이 이스터 섬을 부르는 명칭으로 ‘커다란 땅’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모아이 석상의 비극은 하나뿐인 지구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던져주는 것이 크다. 특히 녹색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개발과 파괴가 자행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어쩌면 곧 쳐올 미래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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