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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적 질병으로서 구제역 톺아보기

 


마티즈(Henri Matisse:1869-1954)의 ‘Dance(슈추킨을 위한 춤)’를 인간과 다른 생명과의 공존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패러디한 작품(디자인-이성진).





지인의 부고를 받으면 우리는 하던 일을 제쳐놓고 허위허위 빈소로 달려간다. 가까운 사이가 아니어도, 단 한 번 만난 적 없는 유명인의 부고를 접해도 우리는 잠시 하던 것을 멈춘다. 한시적 생명체라는 하나의 운명 앞에서 나와 고인이 어떤 관계였든 죽음은 죽음 그 자체의 무게만으로 가슴을 뻥 뚫고 지나가는 까닭에서다.




흑과 백, 침묵과 수다, 통곡과 웃음은 적어도 장례식장에서만큼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고인에 대한 애도의 표현으로써 하나가 된다.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하는 일체의 가벼움이 장례식장에서 용납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죽음이라는 것이 워낙 무겁기에 그 무게를 조금 덜어내고자 함이 아닐까.




그럴 때의 가벼움은 이따금 힘겹게 고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또 다른 방식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로 목숨을 빼앗긴 수많은 동물들의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가벼움도 용납될 수 없을 듯하다. 애꿎은 죽음 자체가 갖는 무거움이 이미 너무 쉽게 간과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구제역 사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정될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방역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부터 축산 농가 보상, 살처분, 환경오염, 공장식 축산업, 돼지고기 가격 폭등, 수입 규제 완화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쟁점들을 차례차례 토해내고 있다.




지난 1월 26일 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정범구, 류근찬, 홍희덕 의원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환경보건시민센터 김선경 위원은 “구제역 감염이 해당 가축 총 두수의 30퍼센트에 다다른 경우를 기준으로 아무 대응을 하지 않은 상태를 가정하더라도 감염된 돼지 3백만 두 중 사망하는 돼지는 15만~20만 두, 감염된 소 1백20만 두 중 사망하는 소는 6만 두”라고 지적했다. 방역이라는 명분으로 현재까지(1월 30일 기준) 총 2백90만 두가 넘는 생명을 생매장하고도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살처분 방침만 고수하고 있는 정부의 융통성 없음을 꼬집은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놀라웠던 것은 공장식 축산 체계에 대한 비판이 더 이상 동물 복지 차원의 접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방청석에 있던 참석자들은 가축의 저항력을 약화시키는 공장식 축산 체계의 근본적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 한 구제역과 같은 질병은 근절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구제역에 대한 방역 조치는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이뤄졌지만 불행히도 이번 방역 의도는 가축의 전염병을 예방하는 데 있었던 것 같지 않다. 당국의 예외 없는 살처분 대처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은 계속 확산되고 있는 추세인데다 살처분된 가축의 수는 구제역 감염 시 예상되는 동물의 치사율을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살처분이라는 것마저 국제수역사무국(OIE)이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이뤄져 동물들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좁은 구덩이 속으로 겹겹이 내몰려 버둥거리다가 그대로 아비규환의 나락에 묻혀야 했다. 그러니까 인수공통전염병도 아니고 두 갈래 발굽 동물에 감염되었다 해도 2~3주 후에는 자연 회복되며 이미 성장한 동물의 경우 사망률이 1퍼센트에 불과한 구제역에 대한 이 같은 방역 대란은 전염병을 막아 가축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였다기보다 사실 구제역 발발 국가라는 ‘오명’으로 인해 축산물의 상품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당국의 몸부림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방역의 성패는 별개의 문제로 한다면 말이다.        




구제역은 정말 살처분 외에는 해답이 없는 무시무시한 병일까. 물론 가축이 전염병에 걸렸다는데 치료할 생각은 않고 병이 다른 동물에게 확산되도록 마냥 내버려 둔다는 것은 이상하다. 그러나 김 위원이 지적했듯이 가축 전염병 대응에 있어서 병으로 인한 사망률을 훨씬 넘어서는 숫자의 동물을 ‘예방적’ 차원에서 살처분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더욱 이상하다.




돼지의 경우 살처분 수가 이미 전체 양돈 수의 30퍼센트에 육박해 고기 가격이 폭등하는 사태를 빚고 있을 정도이다. 정부는 돼지고기 수입 관세를 한시적으로 철폐함으로써 이에 대응하고 있으나 국내 축산물 수출시 있을지 모를 불이익이 두려워 살처분 방침을 밀어붙였던 상황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구제역에 대한 당국의 살처분 대책은 마치 폭주하는 기계처럼 중단될 기미가 없어 보인다. 정부가 뜬금없이 제시한 축산업 허가제는 코앞에 닥친 구제역 대응과는 거리가 있으며 이번 구제역 사태가 축산업을 영위할 자격이 없는 일부 축산 농가 때문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무엇보다 당국의 태도에는 실패한 방역, 특히 살처분에 대한 반성이 없다.




구제역이 처음부터 발발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구제역은 이미 폭넓게 확산되어버렸다. 행여 발생이 줄어든다 해도 원인과 전파 경로를 밝히기 어려운 구제역이 언제 또 발발할지 모를 일이다. 항간에서는 ‘백신 맞은 고기, 안심하고 드세요’라고 홍보하는 마당에 정부는 지금도 구제역 발발 농가 반경 500m이내는 물론 3km이내 가축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더 이상 살처분으로써 예방할 수 없게 된 구제역의 확산을 인정하고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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