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 활동소식

[탐방기]태국 소수민족의 전통과 삶, 그리고 환경보호


태국의 고산지대, 태국 북부와 북동부의
치앙마이, 치앙라이, 매홍손에는 중국(주로 윈난성), 버마, 라오스에서 이주 온 카렌(karen), 아카(Akha),
리수(Lisu), 라후(Lahu), 몽(Hmong), 미옌(Mien), 루아(Lua), 후틴(H’tin),
카무(Khamu) 등 약 1백만명에 해당하는 아홉 소주민족들이 150-200년전부터 생활둥지를 틀고 있다.
중국 내전, 버마내전, 인도차이나에서의 공산화과정 중 이주한 이들은 버마 카렌족의 이주를 시작으로 리수족,
라후족이 그 뒤를 이었으며 최근에는 아카족의 이주가 늘고 있다. 이들이 사는 지역은 티벳에서 원류하여 중국
윈난성을 거쳐 흐르는 메콩강 유역의 산악지대와 고산지대인데 그들은 원래부터 유지해오던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분쟁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해 온 것이다.



:
태국고산지대 소수민족인 카무족 어린이들.필자가 방문한 날은 음력보름맞이 행사로 전통옷을 입고
축제중이었다.

아래 : 카무족의 전통 춤

많은 변화기 있기 전 그들의생활방은 산과 강으로부터 음식을 얻는
아주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그들은 목재생산품 판매를 허용하지 않고 숲의 목재는 개인적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며, 사람들이 아픈 경우에도 그들은 산림의 약초로서 그들의 건강을 다스렸다. 집도 대나무 혹은 숲생산재로
지어진 친환경적인 가옥구조였다. 그러나 현재 그들의 삶은 사냥과 획득 대신에 쌀과 옥수수를 경작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으며 오피엄 경작 및 수확은 20년전에 폐지되었다. 이들의 삶은 상업주의, 물질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돈의 필요성은 먹을 식물을 재배하는 생활방식에서 배추와 같은 환금작물의
재배 생활방식으로 변하게 했으며 이들 환금작물재배는 자동차, TV 등을 사는데 매우 유용했다. 현재 이들
산악지대 거주 소수민족이 겪고 있는 가장 큰 고통은 태국 시민권이 없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이들은 땅을
소유할수도, 선거를 할수도, 건강보험에 들 권리도 없다. 태국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들의 태국 시민권 획득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모든 것이 인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1)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리수족
가장 대표적인 소수민족은 버마에서 이주해 온 카렌족으로 이들은 목이 긴 종족으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필자는 메콩축제가 끝난 이후 산지역주민발전재단 (Hill Area Development Foundation)의
창설자인 떤자이 디떼 태국 상원의원의 소개로 태국 치앙라이(Chiang Rai)주 매찬(Mai Chan)시
빵사(Pangsa)라는 리수족 마을에서 리수족의 활동가를 직접 만나 리수족의 전통은 물론 떤자이디떼와 HDAF
재단의 동을
들을 수 있는 고귀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 고산지대 어디를
가도 교회는 없는 곳이 없다.아카마을에도, 리수마을에도. 일요일
예배를 보고 있는 리수족

아래 : 이수족의 전통가옥

리수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이들은 원해 티벳버마지역에서 거주하였으며 전쟁과 분쟁을 피해 남중국과 버마를
통해 티벳에서 이주해왔다. 갈등과 분쟁의 장소를 피해 자유를 찾기 위해 이들은 다른 종족들과의 다양한 연락수단을
가져야 했으며 그런 과정에서 그들은 자연 중국어, 라오어, 아카어, 라후어들을 습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말은 있으되 그들의 문자가 없어 모든 전통은 언어로만 전달된다. 리수족이 믿는 전통에
의하면 신이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중에는 영국민족, 중국한족, 태국민족, 라후족, 아카족, 리수족, 카렌족의
7개 종족이 있었다. 태국족에게는 돌에 문자를 그릴 수 있는 능력, 영국민족은 나무에 문자를 쓸 수 있는
능력, 리수족에게는 떡에 문자를 그릴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 바, 리수족은 전쟁기간동안 너무 배가 고파
그 떡을 다 먹어버려서 글자가 없다고 했다. 리수족의 전통은 마지막 아들이 부모를 모신다. 부모사랑을 더
오랫동안 받지 못하고 또 사회에 적응하려면 일정정도 재산도 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걱정이 더 되는 막내아들에게
부모의 재산을 다 주기 때문이다. 리수족도 아들 존중 사상이 여전하다.
아들이 없고 딸만 있는 집안에는 막내딸의 남편이 여자집에 와서 살면서 딸의 부모를 봉양한다. 이들의 전통적
집구조는 나무를 이용한 집이나 더 이상 숲과 나무를 베는 것을 규정하는 태국 법으로 이들은 콘크리트로 지어진
집에서 살고 있다. 리수의 문화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죽은사람을 땅에 묻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시신을
땅에 묻을 때는 먼저 마을에서 동전을 던져 동서남북 묘지의 방향을 결정하고 그 방향에 도착하여 달걀을 머리위로
던져 달걀이 깨지는 장소에 묘를 쓴다. 역시 묘는 산지에 차려진다.

2) 산악지대발전재단의 활동과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



: 불교의식에
참여하고 있는 떤자이 디떼 (Tuenjai Deetes) 상원의원

아래 :치앙라이지역에 공장설립을 반대하는 지역주민들과의 사전
간담회

필자가 묵은 리수족의
마을, 빵사는 96가구의 469명이 거주하는 제법 큰 마을로, 1992년 UNEP 글로벌 500상(UNEP
Global 500)을 수상하고 1994년 골드만환경재단의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한 떤자이 디떼(Tuenjai
Deetes)가 30년전 고산지역주민발전재단(Hill Area Development Foundation(HDAF))을
만들어 맨처음 소수민족의 인권, 문맹교육, 환경교육을 시작했던 곳이다. 빵(Pang)은 작은 집, 사(Sa)는
나무이름인데 빵사의 뜻은 ‘사’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집이란 뜻이다. 떤자이는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1999년
치앙라이주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현재 인권, 발전, 환경 소속위에서 6년의 임기중 5년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그녀가 창설한 고산지역주민발전재단의 사무총장이다. NGO와 정치권간의 거리를
애써 두고자 하는 우리와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정치권에 있다고 해서 NGO를 떠나면 실지 정치와 행동의
분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태국 활동가들은 정치와 NGO간의 거리를 두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여전히 HDAF 활동가들의 모임과 조직의 활동을 조직한다. 그녀가 11월 26-27일 치앙라이 주 치앙콩에서
진행된 메콩축제를 위해 방콕에서 치앙라이로 내려온 것을 기해 11월 28일 일요일에는 치앙라이에서 고산지역주민발전재단
전 활동가들의 회의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
유네스코 아태지역본부 후원으로 지워진 소수민족 교육의 장, 그리고 매찬시 아카족 마을 부근의
재단(HDAF) 사무실에 있는 태양전지판

중간 : 치앙라이 사무실의 재단 활동가들

아래 : 치앙라이에
소재한 재단 본부 사무실. 좋은 일을 하는 기업으로부터 건물을 제공받아 한달 세금은 50달러라고
한다. 앞에는 아름다운 자연호수가 있고 그 호수 앞에는 정자유로운 쉼터 공간이 함께 하고
있다.

11월 29일 월요일에는
그녀와 치앙라이주 치앙센 지역주민들과의 간담회가 있었는데 전통적으로 농업지대인 치앙센 지역에 정부가 하이테크
산업단지를 건설하려고 들어 지역주민이 그에 반대하는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농업지역에 공장이 들어서면 자연환경파괴는
물론이고 지역주민의 삶이 바뀌는 것을 우려하여 지역주민들은 정부의 시책에 반대하기 위한 활동에 떤자이 상원의원은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녀를 정치가, 상원의원, 국회의원이 아닌 여전히
활동가로 부르고 있었다.
고산지역주민발전재단은 매찬시 아카족 마을 깊은 산속과 치앙라이 두곳에 사무실이 있다. 아카족 마을 인근
사무실은 아태지역 유네스코가 주민교육장소와 사무실을 함께 지원한 곳으로 모두 5명의 스탭이 일하고 있고
치앙라이사무실에는 9명의 스탭이 상근하고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인권, 환경, ADIS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유기농교육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매찬과 치앙라이 사무실의 스탭들은 한달에 한번씩 만나며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정보와 활동을 공유한다. 떤자이씨가 30년전 이 마을에서 활동할 당시
태국 왕은 세번이나 방문해 그녀의 활동을 격려한 바가 있다.


떤자이씨가 30년전 처음 리수족 마을 빵사에서 교육을 시작할 때는 모두 50명의 학생이었다. 그 50명의
학생중 한 사람이 바로 자헤(Jahe)씨다. 당시 5살이던 그는 어느새 37세의 중년이 되어 인구 73,000명의
땀본 패튜언트(TAMBON PATUENT) 행정구의 최고 행정책임자가 되었다. 치앙라이 대학에서 사회교육(non
formal education)과 지리를 전공 할 당시에도 그는 떤자이 디테씨의 지원을 받으며 공부했다.
그래서 그는 떤자이 디떼 상원의원을 ‘엄마’라고 부른다.



:
떤자이 디떼(Tuenjai Deetes)상원의원이 맨처음 50명으로 시작한 비공식교육기관의
학교는 1999년 태국정부가 인정하는 정식학교가 되어 현재 7명의 교사와 235명의 어린이들이
공부하고 있다.

중간 :30년전 떤자이 디떼(Tuenjai Deetes)와
자헤(Jahe)가 함께 심은 나무들이 학교운동장에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아래:
자헤(Jahe)씨와 치오(Chio)씨 부부, 그리고 그들의 딸. 막내아들인 자헤씨는 리수족의
전통에 따라 65세의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그리고 그는 아침식사도 빨래도 그리고 유기농
텃밭도 치오씨랑 함께 가꾸는 아름다운 사람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학생활동을 할 때 그는 당시 농업을 전공하던 현재의
아내 치오(Chio)를 만났다. 그리고 둘은 함께 고산지역주민발전재단에서 소수민족의 인권과 환경교육 활동을
전개했다. 자헤씨는 재단에서 13년간 일하다 1999년 지역주민에 의해 지방관청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선출되었고 40명의 지방관리들에 의해 다시 행정 책임자로 선출되었다. 다시 2002년 바뀐 법에 의해 전
지역주민은 그를 다시 최고 행정책임자로 선출하였고 그는 현재 75명의 행정직원과 함께 지역주민을 위한 행정가로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치오씨는 타이민족이지만 소수민족과 결혼한 몇 안되는 경우 중의 한 사람이다. 그녀는
마을에서 지역주민들에게 유기농 농사를 권장할 뿐만 아니라 직접 주민들과 함께 유기농 밭을 가꾸고도 있다.
또한 지역주민들에게 마을 앞 호수의 물고기들을 잡을때도 지속가능한 어업이 가능하도록 하여 지역주민들은 현재
마을앞 하천의 1Km 내에서는 물고기를 잡지 않고 있다.

고산지대 지역에도 현대화는 부분적으로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높은
산중까지 들어온 교회며 각종 편의가정용품들, 하물며 우리나라 서천에서 나는 마른 김이 고산지대 마을에서도
팔리고 있는 상황에서 필자는 그들에게 과거와 더 좋으니 문명의 이기와 무관한 삶을 살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세계화, 소비주의로 인한 폐해점에 대해서는 우리의 경험을 전달하고 그들이 현재
유지하고 있는 자연과, 세대간의 조화로운 삶이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 지구공동체를 위한 우리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부분에서 현대화된 모습으로 변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곳은 우리가 그리는 이상향 같은 곳이기도 하다. 갈등과 분쟁을 피해 온 그들이니 만큼 그들은 작은
공동체로 공동의 일과 공동의 세대키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시민권이 없어 어떤 권리 행사도 어려운
그들의 삶이지만 그를 갖기 위한 많은 정치적 노력과 더불어 그들에게는 주변의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일상이 늘상 함께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겐 항상 얼굴 가득한 웃음이 있었다. 컴퓨터와, 핸드폰, 값비싼
교육기관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더 배울 것이 많은 그들의 삶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에 있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태국 소수민족에게 놓여있는 또 하나의 위협- 즉, 메콩강내 댐건설 등으로 인한 공동체파괴-에 함께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아카족의 마을에서
함께 공차기하고 있는 아카족어린이들

아카족 마을의 75세된 할머니와 갓 태어난 아카족 아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세대를 이어가며 지켜지는 의미있는 전통과 주변의 파괴되지 않은 환경이 함께 하는 ……


글 : 김춘이 (환경연합 국제연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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