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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성장과 ‘에코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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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기술을 이끌어왔던 우리의 천재적 지도자는 위대한 환경주의자가 된 지 오래다. 그는 독일문화의 뿌리이자 오랜 꿈이었던 자연과 기술의 종합에 성공했다.” 1941년 독일 잡지 ‘디 쉬트라세’에 실렸던 글 가운데 일부다. 여기에서 말하는 위대한 환경주의자는 누굴까? 놀랍게도 아돌프 히틀러다. 채식을 즐기고 담배를 싫어했던 히틀러는 자서전 ‘나의 투쟁’에서 자연을 ‘모든 지혜의 여왕’으로 칭송했다. 그는 재생에너지에도 상당한 호감을 보였으며, 심지어 지구를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과 비슷한 생각을 피력하곤 했다고 한다.


히틀러의 경우는 녹색주의가 좌뿐만 아니라 우로부터도 동원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녹색은 어떤 정치색채에도 스며들 수 있다. 좌파이론과 녹색주의가 손을 잡으면 서구 녹색당과 같은 모습이 된다. 위험한 건 극우정당이 녹색으로 분칠하고 나타났을 때다. 특히 인종주의와 녹색 상상력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에코파시즘’이라는 괴물을 낳게 된다.


녹색성장은 개발주의 변종 의혹


따지고 보면 ‘자연 사랑’과 ‘호전적 인종주의’가 비빔밥처럼 뒤섞여 있는 것이 나치의 정치사상이다. 나치는 유기농업을 대대적으로 장려하고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환경보호법을 만들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녹색성장을 새로운 60년의 비전으로 제시했다. 워낙 느닷없는 일인데다가 알맹이가 없어 ‘국면 돌파용’이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극우와는 거리가 멀고 인종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다. 최소한 지금까지의 행적을 봐서는 그렇다. 따라서 그가 말한 녹색성장 비전이 정치적 동원수단이라는 혐의가 짙다 해도 이를 에코파시즘의 아류쯤으로 평가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오히려 문제의식만은 최근 중국인들에게 확산되고 있는 ‘녹색 고양이론’에 가깝다. 중국은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게 좋은 고양이”라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을 버린 지 오래다. 이제 가장 좋은 고양이는 친환경산업과 같은 ‘녹색 고양이’다. 녹색 고양이가 아니라면 쥐를 잡기도 전에 먼저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녹색성장론은 우리사회가 녹색의 불모지라는 점을 생각하면 환영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개운치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녹색성장과는 극단적으로 배치되는 7.4.7과 대운하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전력이 있다. 집권 후에도 기업 프렌들리를 앞세워 환경정책의 전방위적인 후퇴를 예고해 왔다. 그런데 대통령의 발언에는 이들 정책을 수정하거나 폐기하겠다는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말만 녹색성장이지 사실은 녹색을 가장한 개발주의의 변종이라고 의심받는 이유다.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방식도 문제다. 벌써 녹색성장을 주문처럼 외우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 이토록 녹색성장론자들이 많았던가 싶을 정도다. 대통령 한마디에 정부부처의 장관들이 일제히 대한민국의 녹색희망을 합창하고, 국무총리는 “녹색성장이 성공하면 미국과 일본을 일이십년은 앞서 나갈 것”이라고 바람을 잡는다. 국민들에게 녹색성장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녹색성장은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처럼 기술개발이나 에너지원 변화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핵심은 시장으로 하여금 ‘생태적 진실’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에너지를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고도 그 대가를 치르지 않는 사회에서 녹색성장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경향신문





‘오염있는 곳에 세금’ 인식이 우선


따라서 녹색성장은 생태적 세제개혁에서 시작돼야 한다. 생태적 세제개혁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에서 ‘오염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로 사회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일도 국민의 공감을 얻는 것이 우선이다. 불도저식 녹색성장은 우리 사회에 에코파시즘의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



* 이 글은 8월 24일 경향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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