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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양성자 가속기가 수상하다

양성자 가속기가 수상하다

첨단기술 토대 마련하는 거대과학 시설로 주목… 원전 관련 핵변환 기술
로 이어질 가능성도

‘양성자 가속기’라는 과학시설이 요즘 여러모로 주목받고 있다. 가속기
안에서 엄청난 속도와 에너지를 얻는
양성자가 물질에 충격을 가해 원자배열이나 원자핵까지 바꾸는 능력 덕에
이 장치는 ‘현대판 연금술사’로 불리는데,
최근엔 핵변환 시설로도 개발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반핵단체들이 국내 양
성자 가속기 개발사업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특히 핵폐기물 처분장 터를 확보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아온
정부가 지난달 비장의 카드로 핵폐기물
처분장을 유치하는 지역에 양성자 가속기도 세우겠다는 연계방침을 밝히면
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정부는 가속기가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만한 첨단 거대과학 시설이란 점을 부각하고 있고, 반
핵단체들은 현행 가속기 개발사업이
원전 관련 핵변환 기술로 나아갈 것이라며 정부가 이런 장기계획을 감추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사진/ 양성자 가속장치의 구조

핵폐기장 처분장 유치 위한 비장의 카드

지난해 7월 과학기술부 연구개발사업으로 시작된 양성자 가속기 개발사업
은 2012년까지 연구비 1286억원을
들여 100MeV(메가 전자볼트)급 가속기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름도 낯선 양성자 가속기는
어디에 쓰는 물건이길래 과학계는 물론 환경단체들 사이에서도 이처럼 주목
받을까. 양성자 가속기는 말 그대로
양성자를 가속하는 장치다. 그러나 자동차 가속장치처럼 우리가 쉽게 상상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빛의
속도(초속 30만㎞)에 가깝게 초속 26만㎞까지 가속할 수 있다. 그만큼 양성
자의 운동에너지는 실로 엄청나다.
고에너지의 양성자는 원자들의 미시세계에 충격을 가해 원자나 원자핵을 변
환시킬 수 있다.

양성자 가속의 원리는 이렇다. 원자를 구성하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 가
운데 양(+) 전하를 띤 양성자만을
골라내 아주 센 전기장을 걸어주면, 양성자는 전기력에 대한 반발로 엄청
난 속도와 에너지를 얻으며 가속관
안을 날아 통과한다. 가속기를 총에 비유하면, 양성자는 총알이고 전기력
은 화약인 셈이다. 고에너지를 얻은
양성자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원자력연구소 정책연구부장 오근배 박사
는 “양성자가 물질과 충돌해 생기는
반응으로, 물질의 궁극적 특성을 규명하는 기초연구나 새로운 성질을 지닌
물질을 생산하는 산업에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애초 물리학의 기초연구시설로 처음 개발된 양성자 가속기는 20세기 말부
터 산업·의료용으로 나노기술·생명공학기술·정보기술·우주기술
등 분야에서 점차 쓰임새를 넓히고 있다. 나노미터(㎚·10억분의 1m) 두께
의 웨이퍼를 만드는 데 양성자
빔이 쓰이고, 미생물의 유용한 유전자원을 발굴하는 데에도 한몫 한다. 또
고품질의 전력반도체 개발에 가속기는
필수장비가 되고 있으며 정전기 없는 플라스틱 등 다양한 기능성 신물질 개
발에도 쓰인다. 분자생물학 분야에선
가속된 양성자로 유전자의 원자배열을 바꿔 품종개량에 쓸 새로운 유전형질
의 돌연변이를 만드는 기술도 연구되고
있다.

의료 분야에선 엑스선과 달리 주변 정상세포는 파괴하지 않고 암세포만을
골라 죽이는 정밀한 암치료술에 양성자
가속기는 요긴한 첨단장비가 되고 있다. 양성자 가속기에서 생산된 방사성
동위원소는 3차원 촬영 의료장비인
양전자방출 단층촬영기(PET)의 진단시료로 활용된다. 이와 관련해 최근 과
기부는 원자력의학원이 자체 개발한
의료용 양성자 가속기 ‘사이클로트론’(14MeV)을 경북대·조선대에 설치하
기로 한 데 이어 앞으로 전국
권역별로 국산 사이클로트론의 운영기관을 3곳 더 확보할 계획을 밝혔다.

가속기의 쓰임새는 얼마나 빠르게 양성자를 가속할 수 있느냐의 성능에 따
라 달라진다. 양성자의 속도가 높을수록
에너지가 커지고, 에너지에 따라 쓰임새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병호 양성
자기반공학 기술개발사업단장은 “에너지
크기는 전자볼트(eV)로 나타내는데 수천eV부터, 그것의 100만배인 기가 전
자볼트(GeV)까지 모두 쓰임새가
다르다”며 “여기에 더해 우리가 산업용으로 개발하는 가속기는 한번에 얼
마나 많은 양의 양성자를 생산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양성자가 1천eV의 에너지에선 초
당 500㎞의 속도로 날아 대상물질의
표면에 있는 원자를 낱개로 떼어내는 나노 정밀가공에 쓸 수 있다. 에너지
가 100KeV이면 초속 5천㎞인
양성자는 원자 사이사이에 파고들어 물질의 결정구조와 성분을 바꾼다. 전
기가 흐르는 플라스틱을 이렇게 만들
수 있다.

에너지가 그것의 100배인 10MeV에 이르면 양성자는 초속 5만㎞로 원자핵까
지 뚫고들어가 핵반응을 일으킨다.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를 생성할 수 있다. 에너지가 100MeV 땐 초속 13
만㎞의 양성자가 무거운 원자핵을
깨어 가벼운 원자핵을 생성하는 식으로 새로운 동위원소를 만들어낸다. 원
자핵을 깨는 과정에서 중성자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다. 1GeV 이상 에너지에서 양성자는 광속에 가까운 초속 26만㎞
가 된다. 이 정도가 되면
양성자는 원자핵을 산산히 파쇄할 능력을 얻는데 이때 뉴트리노와 뮤온 등
소립자들이 다량 방출돼 물질의 궁극적
특성을 다루는 입자물리학·핵물리학의 기초연구에 이용된다. GeV급 가속기
는 미국과 일본에서 개발하고 있다.
미국은 2006년까지 차세대 신물질 개발과 생명공학용 가속장치로 ‘1GeV가
속기’(SNS)를 개발 중이며,
일본도 2006년까지 400MeV, 3GeV와 50GeV짜리의 ‘복합양성자가속기’
(HIPA)의 개발에 나서고
있다.

양성자 가속기의 놀라운 쓰임새 때문에 원자력계도 가속기의 응용 기술에
눈을 돌리고 있다. 중성자를 이용해
핵반응을 일으키는 원자로에, 양성자 가속기에서 생산된 중성자를 이용하
면 원자로의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원자력학계는 기대하고 있다. 또 반감기가 수백만년이나 돼 골칫거리인 초
우라늄 핵종을 양성자 가속기를 이용해
짧은 반감기의 핵종으로 변환할 수 있다면 핵폐기물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
다는 것이다. 학계는 가속기 구동
핵변환 시설이 ‘클린 에너지 원자력’을 다시 부흥시키는 미래기술이 될
수 있다고 잔뜩 기대하고 있다.

기초연구용 시설인가, 핵변환 가속기인가

이런 과학계의 기술개발 방향에 환경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반핵단체들은 양성자 가
속기 개발사업이 결국 핵변환 기술을 개발해
원전 기술에 쓰려는 장기계획 아래 추진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반핵연대
쪽은 “정부가 추진하는 100MeV 가속기는
핵변환용 가속기로 나아가는 중간단계”라며 “정부가 이런 장기계획을 감춘 채 가속기
를 마치 순수한 기초연구용 시설로 홍보하며 핵폐기장
터 확보와 연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와 사업단은 “오해”라고 해명하
고 있다. 최병호 단장은 “우리가 개발하는
가속기는 핵변환에 쓸 수 있는 가속기와는 방식도 다르고 기초연구와 산업용으로 계획
돼 핵변환 가속기와는 무관하다”며 “게다가 핵변환용
가속기는 어느 나라에서도 실제 구현하지 못한 미래의 기술로 개념 연구가 진행되는 수
준”이라고 말했다.

원전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에너지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환경단체들의 이런 우
려와 의혹 제기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지금도 18기 원전에서 핵폐기물이 계속 만들어지고 원전 중심 정책이 계속되는 상황에
서, 핵변환용 가속기는 언젠가 추진될 수 있는
매력적인 미래기술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대안센터 이상훈 사무국장은 “핵발전소를 단계
적으로 폐쇄하는 독일처럼 재생 가능한 대안에너지를
현실문제로 받아들일 때에만 환경과 에너지의 문제가 풀릴 것”이라며 “핵발전소 중심
에서 벗어나 다양한 대안의 에너지를 개발하려는
강한 정책의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오철우 기자/ 한겨레 사회부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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